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2화 (23/485)

022. 최종 테스트 돌입

‘익스트림 발리볼의 개발자들. 또 한 번 대한민국을 놀라게 할 게임을 준비하다’

80%정도가 완성된 버전을 플레이 해본 영길은 무려 10페이지짜리 특집 기사를 준비해 잡지에 실었다.

그것도 원고 내용의 90%가 극찬으로 이루어진, 마치 돈 받고 광고용으로 작성한 기사같은 호평 일색의 기사를.

물론 상혁이 영길에게 좋은 기사를 써달라고 돈을 찔러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상혁은 추후 게임을 번들로 제공하게 되면 영길이 있는 ‘PC 동호인’ 잡지에 우선권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을 뿐이었다.

그 조건을 걸고 상혁이 부탁한 것은 단 하나. ‘솔직한 리뷰’였다.

영길은 게임 전문 기자의 자존심을 걸고 그러겠노라고 약속했고 기사를 작성할 때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스페이스 침략자들, 슈퍼 머리오, 라스트 판타지, 우주 크래프트···. 게임 업계의 역사를 바꾼 게임들 속에서 대한민국의 게임이 도전장을 던진다.’

로 시작되는 기사는 기사를 의뢰했던 상혁조차 오글거림으로 몸을 베베 꼴 정도의 문장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그런 상혁의 앞에서 잡지를 들고 문장 하나하나를 소리내어 읽어주면서 상혁을 놀리고 있었다.

“또한 개발팀의 이름 외에 개발자 개인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이 놀라운 게임의 기획자는 자신은 자신의 이름값이 아닌 오로지 출시한 게임의 가치로 평가받고 싶다며 이 위대한 게임을 만들고 있는 천재 개발자답지 않은 겸손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씨, 이제 그만해, 임마!”

“푸하하하하!!”

“민준 오빠, 상혁 오빠 좀 그만 놀려요. 그러다 얼굴 터지겠어요.”

옆에서 보다 못한 서연이 민준을 만류하자 민준은 그제야 잡지를 내려놓았다.

“엘란테 사장이 이 기사를 보면 기겁하겠네.”

“그런 용도로 부탁한 거니까. 그런데, 괜찮겠어? 그쪽에서도 뭔가 조치를 취할 텐데?”

“지들이 뭘 어쩌겠어. 어차피 게임 퀄리티나 재미에서 우리 게임이 압승인데.”

“그래도 잡지에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지금 만들던 버전을 개선한다든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것도 컨셉이랑 메인시스템 베낀 게 엄청 티 나는데 거기서 더 베낀다고? 상식이 있으면 그런 짓은 안하겠지.”

“상식이 있으면 애당초 남이 개발 중인 게임을 베껴 만들지 않지 않았을까?”

“흠···. 그 말은 일리가 있군···.”

민준의 말대로, 애당초 상식이 결여된 상대방에게 무언가 상식적인 행동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혁은 지금 만들고 있는 자신들의 게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찌됐건, 최후의 승자는 우리가 될 거야. 그쪽에서는 지금 잡지 들고 악쓰면서 소리나 지르고 있겠지.”

“그러려나?”

***

상혁의 말대로, 그 시각 엘란테 소프트의 사무실에서는 진만이 잡지를 들고 준표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미친 빌어먹을 자식들 같으니!”

“저쪽에서는 우리보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걸요?”

“대체 우리가 자기네 게임을 베껴서 개발 중인걸 어떻게 알아낸 거야?”

“우리가 걔네들 게임을 입수한 경로와 같은 경로로 알아냈겠죠. 아마도 음악 외주 준 곳에서 유출한 거 같은데···.”

“이거 법적으로 못 거나? 외주 담당자한테 따지면 어때?”

“애당초 피드백 달라는 게임을 베껴서 만드는 게 저희라서 그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저희가 불리할걸요?”

“아씨, 그럼 어쩌자고!”

진만은 들고있던 잡지를 쾅하고 책상에 집어던졌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하는 말에 진만이 다시 화를 내자, 준표는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베끼자고 한 시점에서 이런 건 각오했어야죠. 뭐낀 놈이 성낸다더니, 완전 그 꼴 아닙니까?”

“넌 대체 누구 편이야?”

“저야 회사 편이죠. 어디편이겠습니까?”

“그래? 그럼 회사편에 서서 의견좀 내봐. 지금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지.”

“아무것도요.”

“뭐? 아무 의견도 없다고?”

“아뇨.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대놓고 이놈들이 우리 예상 발매일에 동시 발매 하겠다는 이야기까지 기사에 쓰여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저희가 공개적으로 ‘우리도 비슷한 게임 만들고 있다!’ 라고 홍보하면 괜히 상대방만 더 자극하는 꼴이 될 테니까요.”

준표의 말을 들은 진만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우리가 먼저 출시하지는 못하나?”

“먼저 출시한다고요?”

준표는 진만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갑자기 사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내부 QA팀의 QA담당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한 뭉치의 종이를 가져왔다.

“이게 뭐야?”

“저희 버그 리스트요.”

“버그가 이렇게 많아?”

“아직 시스템 60%도 구축 못했는데 이정도예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시스템을 강제로 기존 게임에 얹다보니까 코드가 완전히 개판 3분전입니다. 이건 스파게티 수준이 아니라 그냥 털실뭉치 수준이에요.”

“인력 충원으로 해결 안 돼?”

“충원이랑 야근까지 다 감안해서 잡은 발매일이 8월이에요.”

안 그래도 개발 계획이 뒤집히면서 현재 개발팀 전체가 풀 야근 중이었기에 진만이 원하는 대로 출시일을 앞당기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후···. 내가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인 건가?”

진만은 자신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고등학생들이 모인 동인팀이니까 나름 메이저 개발사인 자신들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 진만을 바라보는 준표는 태연한 척 행동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흐름대로면 ‘다시 원래대로 갈아엎자’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했던 준표는 한숨을 푹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진만이 집어던진 잡지를 집어들었다.

“아예 방법이 없는건 아니죠. 저희도 승산은 있으니까요.”

“승산? 지금 상황에서 무슨 승산?”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첫 단계는, 현재 자신과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준표는 잡지를 집어 들며 진만에게 말했다.

“솔직히 인정하겠습니다. 그 고등학생이라는 개발자 친구들은 저희 개발팀 다 합친 것보다 실력이 좋아요. 특히 같은 기획자 입장에서 볼 때 코딩한 놈이랑 시스템 기획한 놈은 괴물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힘든 이야기에 진만은 입을 다물었다.

“원래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새로 만든다는 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아무도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시행착오라는 걸 거치게 되어있죠. 그게 쌓이면서 생기는 게 노하우고요.”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이놈은 그게 안보여요.”

“무슨 의미야?”

“그놈이 개발한 시스템을 보면 분명 기존 게임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인데 마치 몇 년 이상 다듬어진 것처럼 깔끔하게 디자인한 부분들이 있거든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분명 고등학생이 디자인했다고 보기에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게임 플레이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

“반대로 그 완벽하게 짜인 짜임새 때문에 저희 게임과 비교해서 딱히 표절시비는 생기지 않을 겁니다.”

“무슨 뜻이야?”

“잡지에 실려 있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저희 게임은 너무 어설퍼서 베껴서 만들었다는 느낌도 못줄 거라는 말입니다.”

“너 지금 장난해? 불난 집에 지금 기름 붓는 거야? 그게 어째서 승산이 되는데?”

“저희는 시장이 다르니까요. 저희 게임은 컨셉과 추가 시스템을 넣었어도 기본은 SRPG에요. 기존에 만들던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쪽 타겟 유저는 저쪽하고 비교하는 완전히 다른 유저들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애당초 SRPG하고 싶은 유저들이 우리 게임을 살거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그렇죠.”

“그게 그렇게 쉽게 풀리려나?”

“뭐, 저희 쪽은 전문 시나리오라이터도 있고 하니 스토리 쪽은 조금 더 나을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우리 게임이 저쪽 게임하고 비벼볼만한 부분은 스토리랑 장르라는 거지?”

“그렇죠. RPG 좋아하는 사람들은 RPG만 하니까요. SRPG는 충분히 재밌는 장르에요.”

“그럼 저기가 우리보다 압도적인 건 뭔데?”

“재미요.”

“시발···. 그게 제일 중요한 거 아냐?”

“중요한건 저쪽 게임이 더 재미있다고 해서 우리 게임이 재미없는 건 아니라는 거죠. 지금도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 있어요 우리 게임은. 굳이 이기려고만 안하면, 충분히 예전보다 더 팔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우린 유통채널도 있잖아요. 저쪽은 퍼블리셔도 없는 거 같던데.”

준표의 말을 들은 진만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자신이 신입 때부터 뽑아서 함께한 개발자가 지금, 3년간 자신들이 쌓아놓은 것을 믿고 밀어붙이자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빌어먹을. 자네 말이 맞아. 우리도 개발사 나부랭이로써 쌓아놓은 게 분명 있지!”

그렇게 말하는 진만의 마지막 말은 거의 다짐에 가까운 말투였다.

“3년간 제대로 보너스 한번 제대로 못 받으면서 굴러먹은 진짜 개발자들의 저력을 저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새끼들에게 보여주자고!”

***

시간은 언제나처럼 쏜살같이 흘러간다.

특히 상혁은 회귀 이후로 하루하루가 더 빠르게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회귀 전 고등학생일 때는 하루 하루가 지금보다는 천천히 갔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이것저것 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다른 게임회사에서 자신들이 만들던 게임을 베끼는 해프닝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 이슈는 곧 팀 내에서 빠르게 잊혀져버렸다.

민준의 우려와는 달리 상대 개발사에서는 딱히 아무런 대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이후에 별다른 대응을 하기보다 개발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했고 덕분에 이전보다 빠르게 개발속도를 높여갈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상혁이 가장 중점적으로 관리한 것은, ‘개발이 재미있게 느껴지게 하는 것’ 이었다.

조금 텐션이 떨어지는 것 같으면 새로운 배울 거리를 던져준다던가 혹은 작업의 종류를 교대로 교체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게임 개발의 모든 부분이 재미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작업과 재미없는 작업을 교대로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고 상혁은 그런 식으로 서연이 작업을 지루하지 않게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팀은 자연스레 밤늦게까지 협업하는 분위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정말로 노는 분위기로 게임을 개발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사람 중에는 바쁜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항상 일정에 쫓겨서 바득바득 출시에 목매는 삶을 살았던 상혁과 민준은 오히려 지금의 템포가 조금 더 몸에 맞는 느낌이었다.

“뼈 속까지 사축이라 그런가보다.”

농담 삼아 민준이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팀원들이 마치 개발 초기 분위기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개선 작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상혁은 생각했다.

이제 정말 출시만 남아있다고.

지금 시점에서 상대 개발사에서 반격할 여지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애당초 게임 플레이 자체는 자신들의 게임이 압도적으로 재미있었으니까, 지금은 그보다 더 나아진 상태.

애당초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서 전력으로 뭔가를 만드는데, 그 결과물이 나쁠 리가 없다.

그렇게 모두가 전심전력으로 게임을 개선하는데 쏟은 시간이 4달.

마지막 수정을 마친 개발 버전을 실제 설치 가능한 CD로 만들 순간이 다가왔다.

모두가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민준이 최종 컴파일을 마치고 완성된 게임의 CD를 트레이에서 꺼냈다.

문제는 최종 테스트.

물론 여기 있는 인원들은 개발하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 테스트 버전을 이골 나게 플레이한 인원들 뿐이었기에, 최종 테스트는 가급적 게임을 해보지 않았거나 개편 전 버전을 플레이한 경험만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적합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상혁이 아는 가장 만만한 인물이 선정되었다.

“이걸 나보고 해보라고?”

현주가 상혁을 보며 눈을 반짝이자, 상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음악 관련 비용도 내 주셨으니까요. 투자한 게임의 최종 결과물을 가장 먼저 해 보실 권리가 있죠.”

“중간 버전 한번만 해보자고 내가 그렇게 애걸복걸할 때는 절대 안 된다더니?”

“테스트 셈플이 오염···, 아니,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둘게요.”

“좋아. 나도 너희들이 게임을 완성하는 걸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람이니까. 어쨌든, 너희를 제외하면 내가 이 게임의 완성버전을 해보는 최초의 사람인거네?”

“맞아요.”

“피드백은 언제까지 해 주면 돼?”

“3일정도 드릴 수 있어요.”

“좋아. 마침 내일은 금요일이니까, 월요일에 이야기 해 주면 되지? 내가 어떤 걸 주로 봐야 돼?”

“흠···. 얼마나 재미있는지?”

“게임이 가진 문제점 같은걸 찾아달라는 게 아니고?”

“그런 게 있으면 개발과정에서 찾았겠죠. 이미 그건 최종 빌드에요. 팀원 전원이 수도 없이 테스트를 했고, 민준이가 코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검토한데다 저희 팀원 전부가 수도 없이 내부 테스트를 하면서 다듬은 버전이죠. 게임에서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제가 판매금액에서 문제점 하나마다 5만원씩 선생님께 드릴게요.”

“저도 선생님이 버그 찾으면 제 사비로 버그 하나당 5만원씩 드리죠.”

민준까지 그렇게 말하자 현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 엄청난 자신감인데?”

상혁이 그렇게 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듣자 더 기대감이 생기는 현주.

현주가 미소를 지으며 그가 건네준 CD를 가방에 넣는 것을 본 상혁은 지금까지 수고한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이제 최종 테스트를 하러 가볼까?”

자신이 직접 만든 완성된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 해보는 것.

그것은 상혁이 회귀 이후에 가장 좋아하게 된 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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