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21화 (22/485)

021. 역습의 서막

남성연의 말을 들은 상혁과 민준이 가장 처음에 떠올린 생각은, ‘그건 불가능할텐데?’ 였다.

애당초 자신들이 기억하는 타임라인에서 이것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게임이 국내에서 발매된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런 게임이 존재한다는 것은, 기존에 자신들이 알고 있던 게임 업계 역사와 전혀 다른 무언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상혁은 성연이 넘겨주는 CD를 받아 긴장된 표정으로 개발용 컴퓨터에 설치를 진행했다.

그리고는 마치 게임의 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꼼꼼하게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플레이 하기를 1시간.

시계 바늘이 11시를 가리키려 하는 한밤중에 상혁은 테스트 플레이를 종료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플레이를 모두 마친 상혁의 반응은···.

“시발 갓겜을 가져다 똥겜을 만들어놨네?”

분명 남성연이 말한대로 비슷한 게임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특히 스케줄 파트의 UI는 대놓고 베꼈다고 할 만큼 일부 장식을 빼고는 기능이나 버튼의 명칭, 위치까지 완전히 판박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걸 똑같은 게임이라고 부르기에는 성연이 건넨 게임은 너무나 하자가 많은 게임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상혁은 이 게임은 자신들의 게임을 무리하게 다른 개발중인 게임에 접붙이려다 탄생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결과물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 결론이 보여주는 상황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개발 중인 버전이 유출되었다’는 것.

그것도 꽤 오래전의 버전이 유출된 것이 분명했다.

“그래···. 마치 우리가 처음 혜진 선생님한테 플레이를 맡겼을 때 버전을 억지로 베껴서 만든 것 같은···. 어? 잠깐만?”

아마도 범인은 개발 중 보안과 관련된 개념이 부족하며 다른 개발자와 연이 닿을 수 있는 위치에서 일하는 팀원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지금 상혁의 곁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마찬가지로 유출 되서는 안 되는 타사의 개발 버전을 멋대로 가져와서는 자신에게 플레이를 시키고 있었다.

“남성연 씨?”

“응?”

“혹시 개발 버전 다른 사람한테 넘긴 적 있어요?”

그러자 성연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쉬고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나 때문인 거 같다. 미안하다. 내가 너희들한테 할 말이 없네.”

“어쩌다 그렇게 된 건데요?”

성연은 일행에게 자신이 기억하는 유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프로 개발자에게 피드백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 선배를 통해 부탁했다는 이야기부터, 그 선배가 게임을 보여준 회사가 지금 복제 게임을 만들고 있는 그 회사라는 사실까지.

의문의 여지없는 데이터 유출 사고라고 볼 수 있었다.

“설마 업계에서 일하는 프로들이 남이 개발 중인 게임을 가지고 장난질 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미안···.”

상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구로의 중소기업에서 일할 적에 다른 회사 제품을 완전히 카피한 거나 다름없는 게임을 강제로 몇 번 만들어야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당사자인 성연은 이 고등학생들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고 있었다.

단지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 말고는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만을 잘 알고 있을 뿐이었다.

“외주비로 받은 것도 돌려주고 지금까지 작업한 곡도 전부 너희가 쓸 수 있게 할게. 그걸로도 사과로는 부족하겠지만···.”

90도로 허리를 숙여 사과하던 성연은 자신의 등을 누군가가 쓰다듬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눈앞에 여전히 씁쓸한 미소를 유지한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상혁이 보였다.

“뭐, 형이 호의로 진행하다 문제 생긴 건데 그거 가지고 어떻게 뭐라고 하겠어요. 보안 관련 사항을 먼저 이야기 하지 않은 제 잘못도 있고요. 현주 선생님한테는 이야기 해 뒀는데 형한테도 미리 이야기 해 둘걸 그랬네요.”

“정말 내가 할 말이 없다···.”

“형이 나쁜 거예요? 베낀 놈들이 죽일 놈들이지.”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난 도저히 생각이 안 나서···.”

“글쎄요···.”

상혁은 여전히 게임이 구동중인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법적으로 뭔가 조치를 취한다던가···.”

“그게 대놓고 싹 베꼈으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어중간하게 베끼면서 다 망가트려 놔서 법적으로 가기엔 좀 모호한 부분이 있어요.”

실제로 자신들이 설계한 게임은 스케쥴/영지관리/측근수집의 3가지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서로 시너지를 내도록 디자인되게 되어 있었지만, ‘엘란테 소프트’라는 중소기업에서 베낀 게임은 강제로 영지관리를 자신들이 만들던 SRPG에 끼워 맞추면서 전체 플레이가 틀어진 이상한 게임이 되어 있었다.

그때, 상혁의 옆으로 다가온 민준이 상혁에게 물었다.

“게임 퀄리티 자체는 어때? 아까 개망쳐놨다고 뭐라고 하지 않았어?”

“흠···. 게임 플레이 부분에서는 확실히 열화된 부분이 보여. 뭐랄까 자기들 시스템에 억지로 맞추려고 시스템을 퇴화시킨 느낌?”

“서연이 생각은 어때? 아트 적인 부분에서는?”

“프로가 그린 그림일테니 제가 뭐라고 하긴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제 그림이 나은 것 같아요.”

“음악은 지금 외주 의뢰 왔으니 뭐라 하기 그렇고 나는 소스코드 보기 전엔 프로그래밍 부분에서는 딱히 뭐라 할 수가 없다. 그럼 일단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까, 이거 복사해서 다들 내일 하루 집이나 부실에서 플레이해보고 모레 대응책을 생각해보자.”

상혁은 때때로 이런 민준의 냉정함에 도움을 받곤 했다.

그렇게 냉정함을 같이 찾은 상혁은 민준의 의견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성연이형도 이거 플레이해보고 감상 좀 말해주세요.”

“나···. 나도?”

바로 팀에서 제적당할줄 알았던 성연에게 상혁이 테스트를 부탁하자 성연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유출건은 형 잘못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물론 다음 프로젝트엔 보안좀 지켜달라고 부탁하긴 하겠지만요.”

이번 건에 대한 용서 뿐만이 아니라, 다음프로젝트에 대해서까지 언급하는 상혁을 본 성연의 표정이 확하고 밝아졌다.

그리고는 상혁을 보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응, 응! 그럴게! 나도 열심히 테스트 해 보고 이야기해줄게!”

“그럼 일단 내일 부실이나 모레 부실에서 봅시다. 밤이 늦었으니까요.”

상혁은 팀원들에게 그렇게 말한뒤, 부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부실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벌어지자 주먹으로 벽을 쾅하고 쳤다.

“아오 시발!”

설마 했던 사태가 벌어지자 상혁의 안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유출을 한 당사자인 성연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막연하게 프로니까 알아서 하겠지 라고 판단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같은 시간, 부원들을 전부 돌려보낸 민준은 부실에 성연과 단 둘이 남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성연 씨도 이게 얼마나 잘못한 건지는 아시죠?”

“···.할말이 없다. 진짜···. 미안하다···.”

“상혁이가 아니었으면 난 성연 씨를 팀에서 내보내자고 했을 거예요. 그게 맞는 행동이기도 하고요. 근데 상혁이는 내보내기는커녕, 잘못도 크게 묻지 않았어요. 왜 그랬는지 아시겠어요?”

“잘 모르겠다···.”

“내 사람이니까.”

“···.”

“지금 아마 주먹으로 벽 때리면서 혼자 분을 삭이고 있을 겁니다. 걘 그런 놈이니까요.”

성연은 입을 다물었다. 단순히 대수롭지 않은 문제처럼 이야기를 하는 상혁을 보며, 그 정도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민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용서한 상혁이, 자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잘못했다, 진짜 잘못했어···.”

“알면 됐습니다. 어찌됐건 상혁이나 제가 보안 관련해서 주의를 주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까요. ‘프로’인 성연 씨가 그런 기초적인 실수를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거든요.”

“···미안···.”

“정말 미안하다면, 그리고 그 유출을 권했다는 선배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할게.”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성연 씨가 해야 할 일을 알려드리죠.”

기본적으로 법정 싸움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이쪽의 손해를 증명하는 것이다.

보상 금액부터가 그것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니까.

그리고 그것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직접적인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매출’의 발생이 우선이었다.

‘그건 상혁이가 할 일이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든 게임을 완성시켜 최대한의 매출을 뽑아내는 것. 그것은 기획자인 상혁이 할 일이었다.

‘그리고 때가 왔을 때 증거가 될 물증을 잡아두는 건 내가 할 일이고.’

컨셉을 베껴 만들었다면 표절이지만, 코드의 일부를 베꼈다면 그것은 도용의 문제가 된다.

민준은 성연에게, 구체적인 증거를 모으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무엇을 찾아야하고, 무엇을 모아야 할지에 대해서.

그래야 언젠가 맞는 때가 왔을 때 상혁이 사용할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테니까.

***

이틀 후.

전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부실에 모인 팀원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재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복제된 게임을 플레이 했다.

때로는 노트에 무언가를 적기도 하면서.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다시 부실에 모여서 대책회의가 시작되었다.

다들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상혁은 심호흡을 하고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나는 다시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었어. 게임 플레이는 우리쪽이 훨씬 재미있다고.”

“아트쪽은 채색을 여러 사람이 담당했는지 일러스트별로 색감이 조금 안 맞는 부분이 있었어요. 캐릭터 디자인도 제 것보다 좋은 느낌은 아니고요.”

“서연이 의견에는 나도 동의해. 확실히 우리 쪽은 의상부터 가구까지 고증에 철저하게 신경을 써서 실제로 일러스트만 봐도 진짜로 17세기 후반 궁전에 있는 느낌인데, 이거는 조잡한 판타지 게임을 억지로 끼워맞추느라 캐릭터 디자인이 중구난방인 느낌이야.”

상혁이 서연의 의견에 동의하며 민준을 바라보자 민준이 입을 열었다.

“난 하루 동안 어설픈 코더가 자주 실수하는 부분을 일부러 수행하면서 버그 쪽을 찾았는데···.”

그렇게 말한 민준은 3페이지 정도의 리스트를 내밀었다.

“개발 중인 버전임을 감안해도 자잘한 버그가 너무 많다. 치명적인 버그도 꽤 있고.”

“좋아. 그럼 우리 모두 이 복제 게임이 오리지널인 우리 게임보다 열화된 버전임에 동의하는 거지?”

“아 하나 빼고.”

“저도 하나 빼고요.”

“나도.”

3명이 동시에 그렇게 말하자 상혁은 뭔지 짐작간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 부분은 상혁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가장 약한 약점에 대한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장이군?”

“문장이에요.”

“문장이지.”

“맞아.”

솔직히 상혁은 시스템 기획에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남이 볼 때 절대 문장을 잘 쓰는 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축에 속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만큼은 복제 게임이 상혁의 버전보다 뛰어난 점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우리게임은 지금 봐도 좀 오글거리거나 어색한 대사가 많지.”

“캐릭터 이름도 좀···.”

“아 씨, 그래도 플레이하는덴 지장 없다고 다들 넘어가기로 했잖아!”

“그거야 경쟁작이 없었을 때고···”

“게임은 플레이가 제일 중요한 거야.”

“그건 니가 시스템 기획자니까 그렇게 말하는거고···.”

“후···.”

상혁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어찌됐건 나머지 부분에서는 우리가 압승이라는 거잖아.”

“그건 맞지.”

“그럼 나는 일단 방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어차피 우리가 이길 테고.”

“그냥 둔다고?”

“법적으로 뭐 걸어봤자 우리 게임도 ‘공주 키우기 2’를 모티브로 한 거라서 그쪽에서 자기들도 그렇게 했다고 하면 복제를 입증할 방법이 없잖아.”

“그래도 그냥 가자는 건 좀···.”

서연이 난색을 표하자 상혁은 씨익하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론 완전히 그냥 넘어가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그럼요?”

“잘못을 했으니 댓가를 치루게 해야겠지?”

그렇게 말한 상혁이 성연을 보며 말했다.

“성연이 형. 이번 건은 확실하게 우리 쪽에 대한 그쪽의 잘못이 맞죠?”

“그···.그렇지. 굉장히 양심 없는 행동이지.”

“그럼 저쪽에서 잘못을 먼저 했으니 우리 쪽서도 좀 더럽게 나가도 문제는 없겠죠?”

“응? 그렇지 않을까? 법적인 부분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야···.”

“그럼 형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할게. 선배도 이번 건 때문에 나한테 엄청 미안해하더라고.”

“그럼···.”

상혁의 입꼬리가 스윽 하고 올라갔다.

“그쪽 게임 발매일 좀 알아봐줘요.”

“그건 왜?”

“어차피 저희가 압살할건데 아예 동시 발매로 눌러버리려고요.”

동시 발매가 안 되더라도 적어도 비슷한 시기에 약간 늦게 발매하자는 것이 상혁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자신들이 먼저 발매하더라도 유통 채널의 확보가 되지 않은 이상에는 빠르게 인지도를 쌓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럴바에는 먼저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후순위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무슨 의도에서 그러는 건지는 알겠는데 반대로 우리 게임이 인지도에서 완전히 밀릴 수도 있지 않아? 선점 효과는 중요하잖아.”

그때 상혁의 설명을 들은 민준이 질문을 던졌다.

“선점 효과 중요하지.”

“그런데 왜 후발매야? 우리가 개발 진도도 압도적으로 빠를 건데? 무리하면 못해도 한 달은 먼저 발매할 수 있지 않을까?”

“흠, 민준아. 내가 아직 말을 안 한 게 있는데.”

“뭔데?”

“난 ‘발매’를 늦게 한다고 했지 ‘공개’를 늦게 한다는 의미로 말한 게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상혁이 민준을 바라보자, 민준은 그제야 상혁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바로 알아차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자신의 친구가 그대로 넘어갈 성격의 인간이 아닌 건 누구보다 25년 넘게 친구였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영길 기자님 명함. 아직 가지고 있지?”

아마도 저쪽에서는 공개할 만한 퀄리티가 되기 전 까지는 최대한 개발에 집중하고 싶을 것이다.

상혁은 그 의도를 정면으로 짓밟을 생각이었다.

상대보다 먼저 ‘잡지’에 개발 중인 게임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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