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9화 (20/485)

019. 컬쳐쇼크

1998년의 대한민국 게임 시장은 컴퓨터의 급속적인 보급과 함께 막 발전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이후 99년부터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수없이 많은 온라인 게임 제작 업체가 난립하게 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이야기.

현재 시점에서 지금의 게임 회사들은 몇몇 견실한 중소기업을 제외하고는 PC를 패키지를 메인으로 게임을 만들겠다는 열정 하나로 뭉친 직원들이 우중충한 사무실에서 박봉에 고통스러워하며 개발에 전념하는 그런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그래밍이야 그나마 학원이라던가 대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약간은 있었지만, 당시 기획자들은 실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전무하기 때문에 항상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개발을 해야 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작업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아무도 확인해줄 수 없는 상태에서, 그냥 견적과 믿음만으로 작업을 밀어붙여야 한다.

그렇기에 현재는 어차피 실무경험이 있는 경력자라고 해도 실력이 그만그만한 상태라 기획자의 자질은 실무보다는 얼마나 많은 게임을 해 보았으며 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게 평가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 중소기업 ‘엘란테’의 유일한 기획자이자 기획팀장이며 개발 총괄인 오준표는 그 부분에서는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개발자였다.

그래서 누구보다 게임을 잘 알고 있다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창업 시기부터 개발에 참여하여 2개의 게임을 성공적으로 런칭한 그는, 외주 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경준이 한 장의 CD를 가지고 왔을 때,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보고 개발 중인 동인 게임의 평가를 해달라고요?”

“예. 아는 후배가 이번에 이 게임의 BGM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개발자들이 고등학생들이라 전문가가 좋은 평가를 해주시면 의욕도 살고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경준이 의도한 바는 따로 있었다.

눈앞에 앉아있는 준표가 이 엄청난 게임을 하고 조금은 경각심을 느껴 주기를 바란 것이다.

물론 준표가 들으면 방방 뛰면서 반박하겠지만, 경준은 자신이 참여한 지금의 프로젝트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였다.

작업 지시라고 전달되는 것들은 한없이 애매해서 작업을 해 가면 리젝당하기 일쑤였고, 그래픽은 DOS 시절에나 어울릴만한 해상도의 도트 그래픽에 게임 시스템도 딱히 신선할 것이 전혀 없었다.

발매되는 순간 ‘아, 새 게임 나왔나보다’ 외에 아무런 메리트가 없어 보이는 게임.

그것이 자신이 현재 참여중인 ‘루나시아 스토리’에 대한 경준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뭐, 경준 씨 부탁이기도 하고, 어려운 부탁은 아니니까 일단 해보기는 하겠는데요, 좋은 평가를 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시다시피 게임 제작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라서.”

‘만만한 게 아니라서 지금 1년째 만드는 게임이 그 모양이냐!’

웃으며 이야기하는 준표를 보며, 경준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문제가 있으면 그 부분을 지적해주시는 것도 걔네들한테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무래도 ‘전문가의’ 피드백이니까요.”

경준이 일부러 ‘전문가’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자 준표는 기분좋은 듯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렇죠! 어휴, 얘네들이 부럽네요. 제가 개발할 때는 누가 봐줄 사람도 없었어요. 그냥 완성될 때까지 달리는 거지. 그걸 생각하면 얘네는 운이 좋은 거나 다름없네요!”

그렇게 말한 준표는 CD를 들어 자신의 책상에 휙 던져놓고는 자리에 돌아와 말했다.

“그럼 오늘 가져오신 곡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잠시 후, 묘하게 보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경준에게 말했다.

“아, 이거 뭔가 느낌이 이게 아닌데?”

***

사실 경준의 부탁을 받은 시점에서 준표는 제대로 된 피드백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게 고등학생들이 만든 게임이 아닌가.

애당초 자신이 게임 업계 들어와서 고생한 걸 생각하면 고등학생 레벨에서 만든 게임이야 안 봐도 뻔했다.

“뭐, 취미 삼아 만든 그런 종류겠지.”

그렇게 말한 준표는 경준에게 넘겨받은 CD를 돌려보며 말했다.

“역시 용량도 별로고.”

CD의 특징 중 하나가 데이터가 씌워진 부분과 아닌 부분의 색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뒷면의 둔탁하게 빛나는 부분의 넓이를 보면, 게임을 실제로 돌리지 않아도 대략적인 용량의 가늠이 가능했다.

“그래도 부탁이니 일단 해보긴 할까?”

그렇게 말하며 CD를 컴퓨터에 넣은 순간, 옆에서 준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지금 회의 들어오시라는데요?”

“뭐?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오늘 회의의 주요 내용을 알고 있는 준표로서는 딱히 내키는 회의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들어가야 하는 회의이기에 참여는 해야 했다.

“후. 또 사장이 2시간동안 설교하는 걸 들으러 가야하나···.”

“뭐 최근엔 이틀에 한번 꼴로 계속 그러시잖아요.”

“이번엔 또 뭐 가지고 그런데?”

“그 얼마 전에 ‘우주 크래프트’ 확장팩 나왔잖아요? 우리도 그런 거 만들면 안 되냐는 이야기 하고 계시던데···.”

“아이씨 SRPG 만들던 걸 RTS로 어떻게 갈아엎어!”

“뭐. 그건 사장님이랑 이야기하시고요. 저는 작업하러 갑니다.”

이럴 땐 회의 참여 안하는 일반 작업자가 더 부러운 준표였다.

결국 준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피드백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일단 사장이 던지는 ‘갈아엎어’의 융단폭격을 피해가야 할 차례였다.

***

“갈아엎자.”

예상대로 사장인 김진만은 준표가 들어오자마자 폭탄선언을 날렸다.

그러자 준표는 익숙한 일인 듯 한숨을 쉬더니 사장을 보며 말했다.

“사장님, 이번이 4번째 말씀하시는 건 아시죠? ‘공주 키우기 3탄’때 한번, ‘발더스의 문’ 때 한번, ‘우주 크래프트’ 본판 때 한번. 이번엔 뭐 때문에 그러시나요?”

“’우주 크래프트’ 확장팩 해봤는데 지금 우리 걸로는 안 되겠더라고.”

이럴 때가 준표가 가장 스트레스 받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갑자기 ‘혁신의 길’이나 ‘실리콘 밸리의 영웅들’ 같은 황당한 자기 개발서를 주워서 읽고는 ‘패러다임 쉬프트가 필요하다’ 며 회사내 파티션을 전부 중고로 팔아버리고는 이주 만에 다시 사서 설치하질 않나, 매 게임이 발매될 때마다 만들던 게임을 갈아엎자고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우주 크래프트’는 개발자만 50명은 넘을 텐데 저희도 50명 늘려주시면 만들어드릴게요. 개발 기간도 한 3년 더 주시고.”

그렇게 말하자 진만이 한걸음 물러서는 태도를 취했다.

“그렇게 확 바꾸자는 게 아니라 좋은 게임에서 베껴올 건 베껴오고 해서 우리 게임을 업그레이드 해보자는 거지!”

“지금 개발도 절반 이상 진행됐는데 좀 중심을 가지고 출시까지 뚝심 있게 버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시작된 설득은 30분이 넘어가서야 겨우 평소와 같은 결론을 낼 수 있었다.

‘현상 유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과의 대화에서 일정 부분은 준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확실히 신선함이 없긴 하지.’

3년 전쯤에나 잘나가던 MS-DOS용 SPRG 시스템의 답습. 윈도우로 넘어오면서 컬러는 256색으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320x240 해상도의 낮은 그래픽.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표는 지금의 개발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개발력이 부족하니까···.’

인원도 부족하지만 다들 경험도 부족하다.

매번 팔리는 게임이 불법복제덕분에 제대로 팔리지 않으니 게임을 출시해도 보너스는 커녕 월급이 나오는 것에 감사해야하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열악한 환경에서 게임 개발을 지속하고 있는 단한가지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걸 못 버티는 인원들은 죄다 물갈이 당했기에 이미 개발팀 내에서는 고작 개발 3년차인 자신이 최고참 개발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에이 시발!”

회의실에서 나오며 평소처럼 소심하게 회의실 옆 쓰레기통을 살짝 발로 찬 준표는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위해 개발툴을 열었다.

그리고는 다시 집중하여 개발에 전념하려 했지만 아까 회의실에서 흥분하여 목소리를 올렸던 탓인지 쉽사리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맞다. 아까 고딩들이 만들었다는 게임 하려고 했었지.’

기대감보다는 오히려 이 타이밍에 다른 아마추어개발자가 만든 게임을 보고 비웃으려는 생각으로, 준표는 게임을 설치한 뒤 구동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뭐야 이거? 진짜로 이걸 고등학생들이 만들었다고?”

해상도부터 자신들의 게임보다 2배는 높은 640x480 해상도에 깔끔하게 정리된 UI, 플레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스탭별로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된 튜토리얼 등 준표가 플레이 해본 게임은 자신이 아는 게임보다 시대를 아득히 앞서가는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미래의 게임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기에 단순하게 그것을 ‘굉장히 깔끔하고 신선하다’정도로 받아들였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의 눈물’은 준표에게 거의 컬쳐쇼크 급의 충격을 주고 있었다.

“허, ‘공주 키우기 2’가 이런 식으로 재해석이 가능할 줄은 몰랐네?”

궁정 내 정치싸움에 집중된 스케줄 시스템과 반란을 막기 위해 영지를 관리하는 시스템, 그리고 측근의 영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를 완성해나가는 완성도 높은 플레이가 준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작 게임이야? 처음 보는 거 같은데?”

그때 뒤에서 사장인 진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준표는 급하게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사장님?”

“한글인 거 보니까 한국게임 아니면 한글화 발매된 게임 같은데 나는 처음 보는데?”

“아는 사람이 자기가 아는 고등학생들이 개발 중인 게임에 대해서 피드백을 부탁해서요. 가벼운 게임인줄 알고 기분 전환 삼아서 플레이 해보는 중이었습니다. 이제 끄려고요.”

“뭐? 아니야! 계속해! 게임 개발자면 다른 사람이 만든 게임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 근데 이걸 고등학생들이 만들었다고?”

“네. 아직 미완성인 개발 버전이긴 하지만요.”

“흠···.”

턱을 손으로 슥슥 쓰다듬으며, 진만은 게임의 화면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준표 씨. 이거 나한테도 좀 보내줘 봐.”

“예?”

준표는 본능적으로 뭔가 불안한 감각을 느꼈다.

분명 이 게임을 하고 나서도 평소처럼 지금 개발 중인 게임을 갈아엎자는 헛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근데 진짜로 이정도로 만들 수 있으면 갈아엎는 게 좋을지도.’

기존에 사장이 우기던 것들은 자신의 역량으로는 도저히 재현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발더스의 문’이나 ‘우주 크래프트’나 전부 지금의 개발팀 규모로는 절대 구현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외국에서 잔뼈 굵은 개발자들만큼의 개발력이 지금 준표의 회사에는 없기도 했었고.

그러나 지금 준표에게 충격을 준 게임은 귀신같은 해외 개발자들이 만든 메이저 PC게임이 아니라,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만든 동인게임이다.

깔끔한 UI와 해상도 높은 그래픽으로 숨기고 있지만, 준표는 짧은 플레이 안에 아직 이 게임의 많은 부분이 미완성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준표로 하여금 ‘나도 이 정도는 만들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어느새 준표는 자신도 모르게 경준에게 받은 CD를 진만에게 넘기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생각에 동의해달라고 몸으로 표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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