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8화 (19/485)

018. 미래의 레전드와 만남

비록 상혁이 BGM 관련 내용을 현주에게 맡긴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BGM 관련 작업까지 모조리 맡긴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외주처 섭외와 비용관련 문제를 맡겼을 뿐.

그렇기에 상혁은 작업에서 며칠 말미를 내여 BGM 관련 기획을 별도로 처리하여 가져다주자 현주는 그 작업 의뢰서를 보고 감탄성을 흘렸다.

“너 진짜 문서 잘 만든다? 혹시 학교 관련 서류 작업 좀 해볼 생각 없니?”

현주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상혁이 가져온 기획서는 시선이 주로 가는 곳에 주요 내용이 배치되어있는가 하면, 별도로 기억해야 할 사항을 따로 묶어 첨삭하고 상세하게 풀어야할 부분은 상세하게 푸는 등, 문서를 보는 사람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배려가 되어있는 문서였다.

애당초 기획서 작성 기술도 1998년과 2020년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모르는 현주의 눈에 상혁은 ‘기똥차게 문서를 잘 작성하는 고등학생’으로 보일 뿐이었다.

“뭐, 진짜 한가해서 미칠 거 같으면 한두 건 정도는 도와드릴게요. 일단은 지금 작업 의뢰서 드린 거 가지고 외주처 섭외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품안에서 CD 한 장을 꺼내 현주에게 내밀었다.

“이건 거기 들어있는 샘플 곡을 CD로 따로 구운 거예요. 참고용으로요.”

“오, 이런 거 있으면 파악하기 좀 편하겠다. 같이 전달할게.”

“그럼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상혁은 현주에게 엄청나게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단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공유 BGM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그녀가 음악 담당으로 한명의 남성을 데려왔을 때 그 사람이 누군지를 알게 되고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남성연이라고!?’

2020년에 게임업계에서 일했던 상혁은 당연히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게임 음악의 전설.

한국 게이머가 가장 사랑하는 게임 음악 작곡가 1위.

게임보다 BGM이 더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제작자.

물론 그것은 20년쯤 후의 일이고, 1998년 기준으로 남성연은 이제 막 게임 음악 쪽에 몸을 담으려고 결심한 음악인일 뿐이었다.

“혹시 따로 하고 계신일이 있으신가요?”

“외주 전문 스튜디오에서 작곡을 맡고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OST작업도 하는 스튜디오인데, 저는 입사한지 얼마 안 되서 제 이름 걸고 한 프로젝트는 없어요.”

“아, 그럼 이번에 맡으시면 이게 처음이신 게 되나요?”

“네.”

치밀어 오르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상혁은 냉정하게 생각하려 애썼다.

‘냉정하자. 이상혁. 20년 후쯤 레전드 게임 작곡가여도 지금은 어떤 레벨인지 모르잖아.’

물론 2020년 기준으로도 중소기업의 무명 기획자였던 자신과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실례이긴 하겠지만, 회귀전의 자신을 떠올려보면 자신은 1998년에는 무지막지한 허접이었다.

자신의 경우 지금이야 회귀를 했으니 지식과 경험이 있어 능숙하게 일을 해 나가고 있지만, 일단 눈앞의 남성연이 회귀자는 아닐 것이기에 현재 실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미래의 레전드 작곡가에게 조심스러운 말투로 현재 실력을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포트폴리오를 요구했다.

“일단 개인 작업물 같은 걸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아, 그거라면···.”

남성연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CD한 장을 꺼내어 상혁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상혁을 보며 말했다.

“일단 건네주신 작업 의뢰서를 기반으로 샘플곡을 하나 만들어와 봤습니다.

급하게 만드느라 피아노로 멜로디만 딴 거라서 부끄럽지만요.”

“예?”

CD를 받아든 상혁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남성연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아무 작업물이나 듣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외주 맡길 작업을 계약도 전에 미리 작업해 온 것이었다.

상혁은 재빨리 부실 한쪽에 있는 오디오에 CD를 넣고는 재생을 눌렀다.

그러자 단일 트랙에 4분 30초 분량 정도 되는 재생 목록이 액정화면에 표시되었다.

잠시 후 위압감이 느껴지는 묵직한 피아노곡이 부실 안을 채워나갔다.

“작업한 곡은 외주 요청서에 있는 곡 중에서···.”

“3번 트랙이네요? 악의 출현(Advent of Evil)?”

“전반부만 들어도 아시네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딱 이미지를 맞춰서 작업해 오셔서요.”

정확히 자신이 의뢰한 내용 그대로, 아니 그 이상의 음악이었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자신이 만든 게임의 등장인물이 궁전 로비를 걸어 주인공에게 접근하는 그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20년 후 게임 음악계를 이끌어갈 전설의 재능은, 20년 전 이곳에서 여전히 그 싹을 틔워내고 있었다.

“굉장하시네요.”

음악의 재생이 끝나자, 상혁은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그리고 옆에서 듣고 있던 서연도 눈을 반짝이며 상혁의 의견에 동의했다.

“어, 진짜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느낌이었어요. 악의로 가득 찬 살찐 대신이 저한테 걸어오는 느낌이랄까?”

“음악에 대해서는 난 잘 모르지만 나도 이 음악이 우리 게임에 잘 어울린다는 건 알 것 같다.”

민준까지 동의한 마당에 더 망설일 이유가 없던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연의 손을 잡았다.

“저희 게임의 배경 음악을 잘 부탁드립니다.

돈은 제가 안내지만 대신 내주시는 현주 선생님이 빵빵하게 주실 겁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현주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상혁에게 투덜거렸다.

“돈은 내가 내는데 왜 생색은 니가 내니?”

“어휴, 선생님. 선생님!”

그러자 상혁이 현주의 손을 잡더니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디서 저런 존잘을! 어휴 우리게임이 성공하면 15%는 선생님 덕이라고 할게요!!”

“엑!? 겨우 15%?”

“그럼 20%!”

“됐고, 이거는 내가 개인적으로 투자하는 거니까, 게임 잘 팔리면 나중에 돌려줘야 된다?”

“이자까지 쳐 드리죠.”

그렇게 말한 상혁은 게임의 테스트판 데이터가 담긴 CD를 꺼내 성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건 지금 개발된 부분까지 담겨있는 테스트 버전인데 플레이 해보시고 어울리는 음악으로 작곡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즐거워 보이는 개발팀이랑 일하게 돼서 두근거리네요.”

“저도요. 엄청나게 재능 있는 음악가분이 저희 게임 음악 담당을 해주신다니 엄청나게 기대됩니다.”

그렇게 성연은 상혁에게 테스트 버전을 받아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혁은 자신이 이 게임을 개발함에 있어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갑자기 핵심 개발인원 중 한명이 교통사고를 당한다든가 하는, 말 그대로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인팀 개발이란 것이 원래 개발자 개개인의 이슈가 아니면 프로젝트에 걸림돌이 될 만한 사유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개인이 마음잡고 개발에만 집중하면 어떻게든 진도는 뺄 수 있는 게 동인팀이기에 갑자기 회사가 망해서 단체로 정리해고를 한다던가 하는 일로 프로젝트가 접히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개발 일정을 떠올리며 변수를 정리해 나가던 상혁은, 순간 자신이 보안 관련 주의 사항을 성연에게 설명하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상혁이 그 이야기를 하자, 민준은 그 우려가 별거 아닐 거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에이 설마 프로인데 그 정도 기본도 모를까?”

“그렇겠지?”

그러나 상혁과 민준이 잘 몰랐던 점은, 2020년대의 ‘프로 작업자’와 1990년대의 ‘프로 작업자’의 저작권이나 보안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

성연은 상혁에게 받은 CD를 가지고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주로 영화나 드라마의 OST 외주를 작업하는 스튜디오에서는 월급이 싼 대신 남는 시간에 개인 작업을 해도 뭐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기본적으로 장비도 회사에 있는 것이 더 좋았고.

그렇게 성연이 회사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회사엔 한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남아있는 직원은 농담삼아 직원들이 ‘지박령’이라고 놀려댈 정도로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작곡가 경준이었다.

“어? 성연이 니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퇴근한줄 알았는데?”

선배의 질문에 성연은 웃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퇴근이 아니라 선문 고등학교에 개인 외주 미팅 갔다 왔어요.”

“고등학교에? 뭐, 임시강사같은 거?”

“아뇨, 작곡이요. 게임 BGM 작업 외주에요.”

“고등학교라며?”

“거기 고등학생들이 만드는 게임에 들어갈 음악 작업하는 거예요.”

경준은 흥미를 느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정식 발매되는 게임이 그렇게 많지 않은 관계로 게임 음악 외주 자체가 별로 없는데, 상대가 고등학생이라는데 더 흥미가 간 것이다.

“그래서, 금액은 맞아? 고등학생이면 돈 없어서 외주비도 제대로 못 주는거 아냐?”

“음악 비용은 선생님이 낸다던데요?”

“선생님이? 신기하네?”

“이야기 들어보니까 제자들이 만든 게임을 해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음악은 자기 돈으로 해준다고 했나 봐요.”

“얼마나 잘 만들었길래?”

“저도 해본 적은 없어요. 오늘 가서 테스트 버전 받아왔거든요.”

“그럼 돌려봐. 같이 보자.”

성연은 자신의 자리에 가서 컴퓨터를 키고는 CD를 집어넣었다.

이윽고 설치를 마친 게임을 구동시키자 자신이 작업 의뢰서에서 보았던 게임화면 샘플이 떠올랐다.

“퀄 좋네. 르네상스 프랑스 궁전같은 느낌인데?”

“저도 그게 느낌이 좋은 거 같아서 외주 해볼까 한 거였어요.”

그렇게 말하며, 성연은 게임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작업 의뢰서를 통해서 대충 어떤 게임인지 파악하고 있던 성연은 금새 게임에 빠져들 수 있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경준은 때때로 감탄사를, 때때론 탄성을 터트리며 그 플레이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후 플레이는 본편에서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뜬 이후, 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나도 지금 게임 음악 외주 하나 맡고 있는 거 알지?”

“알죠.”

“어째 그거는 회사에서 만든 건데 도 고등학생이 만든 이 게임이 퀄리티가 더 좋다?”

“저는 게임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 정도에요?”

“일단 압도적으로 재미있잖아. 체험판이 이정도면 본편은 장난 아니겠다. 야.”

“헤헤···.”

자신이 참여하기로 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고평가 받는 건 그리 나쁜 기분이 아니었기에, 성연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뭔가 생각난 듯 경준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입을 열었다.

“아, 좋은 생각이 났다.”

“뭐가요?”

“이거 한번 보여줘 보자.”

“누구한테요?”

“내 게임 작업하는 프로개발자한테.”

“이거를요?”

“이 정도면 나쁜 이야기는 안 나올 테고, 너도 작업하는 고등학생들한테 ‘이거 프로한테 보여줬는데 엄청 감탄하더라’ 같은 감상같은 거 들려주면 걔네도 좋아하지 않을까? 만약에 우리나 걔네가 모르는 문제점이 있으면 프로가 지적도 해줄 수 있을 거고.”

경준의 제안은 성연이 듣기에 나쁘지 않은 제안 같았다.

그리고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그였기에, 자신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프로가 평가하는 것도 한번 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좋은 이야기 같기는 한데, 혹시 개발 중인 버전을 유출한 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연이 말을 꺼내자 경준은 그럴 리가 없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에이, 내가 거기 프로젝트 어떤 건지 잘 아는데, 거기서 지금 개발 중인 게임은 장르부터 완전히 다른 게임이야. 그리고 프로 개발자가 존심이 있지 동인 개발자 게임을 베끼기라도 하겠어? 그럼 그건 진짜 양심이 쥐좆만큼도 없는 새끼들이겠지. 적어도 내가 아는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래도···.”

“이 친구들이 재능은 있는 것 같아도 아직은 아마추어잖아. 아무래도 프로의 조언이 있으면 좀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결국 지금도 좋은 게임인데,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말에 욕심이 난 성연은 경준의 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아직 보안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이 없는 시대였기에 생긴, 어쩌다보면 사고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 부탁 한번 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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