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내부 실전 평가
팀원들을 돌아보며, 상혁은 입술을 혀로 핥았다.
‘익스트림 발리볼’을 만들 때와는 또 다르게, 조금은 긴장된 느낌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던 게임의 개선에 집중했던 ‘피○츄 배구’와는 다르게, 자신이 만든 오리지널 컨셉이 많이 들어간 기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감상을 듣고 싶은데.”
상혁이 말하자 민준은 역으로 물었다.
우선 기획자인 상혁의 의견을 먼저 듣고 싶어서였다.
“네 판단은 어떤데?”
민준의 말에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내 판단에 대한 이야기는 너희들 의견을 듣고 나서 나중에 해줄게.
괜히 선입견같은 걸 만들 수도 있으니까.”
사실, 전날 플레이했던 상혁은 내심 이 게임의 테스트버전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초기 기획대로 컨셉도 잘 살아있고, 만들려고 했던 기능 대부분이 적절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은 온갖 게임에 익숙한 골수 게이머의 판단이다.
애당초 자신은 2020년도에 많이 나오던 타이쿤 게임에도 익숙하기에, 상혁은 자신의 의견보다는 다른 팀원의 견해가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팀원들은 긴장된 상혁을 힐끗 바라보고는 감상을 던지기 시작했다.
“난 좋았던 거 같아. 스케줄 파트도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진 것 같고, 타이쿤 파트도 잘 만들어진 느낌이야. 괜찮지 않을까?”
프로그래머인 민준은 구조적인 짜임새를 중심으로 게임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는···.”
그때 서연이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피자 상혁이 미소를 지었다.
“애당초 뜯어고칠 게 있으면 뜯어고치려고 중간 테스트를 하는 거니까 의견이 있으면 편하게 이야기해줘.”
그러자 상혁의 말에 서연이 용기를 얻었는지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온갖 게임 시스템에 익숙한 상혁과 민준에게는 조금 신선한 느낌의 해석이었다.
“타이쿤 파트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튜토리얼이 있긴 하지만, 영지 경영이란 것 자체도 개념이 잘 이해가 안 가는 느낌이기도 하고···.”
서연의 말을 들은 상혁이 턱을 손에 괴고는 고민을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서연은 급하게 손을 내밀며 추가 의견을 전했다.
“아, 그건 제가 게임을 잘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아무래도 오빠들이 좀 더 잘 아실 테니 너무 신경 쓰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니, 일리 있는 이야기야.”
“오빠?”
“생각해보니 내가 타이쿤 파트를 설계할 때 너무 진화한 시스템을 쓴 게 아닌가 싶기도 해.”
일반적으로 게임 장르는 뒤로 갈수록 복잡해지는 경향을 띈다. ‘롤러코스터 팩토리 1’보다 2가 복잡하고, 2보다 3가 복잡하듯이.
기본적으로 게임 유저가 장르에 익숙해질수록 요구하는 장르의 복잡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출시 예상 시점 기준으로 1998년의 일반적인 게이머들이 타이쿤 장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좀 많이 벗어난 것일지도 모르지.”
사실 그 부분이 상혁이 가장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2020년의 게이머의 기준으로 기획한 게임을 1998년의 게이머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대가 가지는 갭은, 그것이 비록 20년 정도의 갭이라 하더라도 시대 변화가 빠른 현대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간단한 예로, 미적분을 발명한 것은 희대의 천재 아이작 뉴턴이지만 2020년에는 웬만한 고등학생들도 미적분을 다 풀지 않는가.
민준도 서연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보태자 상혁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좋아, 그럼 그 부분은 좀 더 라이트하게 수정해보자고.”
“수정이요? 힘들게 만든 건데···.”
“애당초 서연이 네가 말한 문제같은 걸 초기에 발견하기 위해서 하는 게 지금 같은 테스트니까. 일단 좀 더 이해하고 배우기 쉬운 방향으로 수정해보고 2차 테스트 때 재미있는지 확인해보자고. 재미없으면 다시 또 바꾸면 되는 거고.”
서연은 깨달았다.
어째서 상혁이 리소스를 전부 흑백으로 작업하라고 한 것인지를.
이 두 사람은 애당초 중간 수정을 염두에 두고 개발을 진행한 것이다.
자신들도 당연히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럼 아예 들어내?”
한술 더 떠서, 민준은 문제가 되는 시스템을 아예 삭제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자 상혁은 민준의 의견에는 고개를 저었다.
“‘공주 키우기 2’가 '공주 키우기 3'보다 강점을 가진 부분은 RPG 파트가 있기 때문이었어. 마법이나 검술수업, 알바로 올린 능력치를 가지고 이것저것 이득을 볼 수 있는 서브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어떤 ‘플레이의 메리트’를 게임 안에서 체감하기 좋은 형태였지. 3같은 경우는 수확제 말고는 따로 쓸 일도 없잖아? 유저가 노력해서 무언가를 얻었다면, 그걸 쓰면서 즐길 수 있는 수단도 있어야지.”
“흠···. 그것도 그렇네. 다른 파트에서 유저가 쌓은 것들이 영지 경영파트에서 활용이 되었으면 한다는 거지?”
“그렇지. 마치 삼국지에서 내정 능력치가 좋은 장수를 얻으면 설비를 짓거나 농사를 하는데 도움을 얻는 것처럼···.”
거기까지 말하던 상혁의 입이 멈췄다.
그리고는 민준을 보며 말했다.
“바로 답이 나온 것 같네.”
“그러게?”
“무슨 말이세요?”
“우린 측근 시스템이 있잖아.”
“그렇죠.”
“그럼 아까 말한 대로 서연이가 복잡하다고 했던 부분을 측근이 대신 해줄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아, 의사를 얻으면 그쪽 관련 경영은 신경 안 써도 되게요?”
“맞아. 장수 능력치가 높은 측근을 얻으면 병사가 알아서 증가한다던가 훈련이 자동으로 되는 식이지. 그리고···.”
상혁은 보드에 계단을 하나 그렸다.
“처음부터 모든 기능을 개방해서 영지 전체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1년차에는 농사만, 2년차에는 위생 관련을, 3년차에는 군사 관련 기능을 오픈하는 식으로 계단식으로 구현해서 복잡도를 줄이는 거야.”
“아, 그럼 초반에는 스케줄에 집중하고, 스케줄로 측근을 얻어서 후반에 복잡해지는 걸 막을 수 있겠네요?”
“그렇지, 그걸 못 따라가면 게임의 난이도가 어려워지는 식으로 만들어볼까 하는데.”
“개념이 좀 복잡하지 않아?”
“쉽게 설명하면 삼국지 같은 거지. 예를들어 초반에 장수가 부족할 때는 내가 전부 일일이 병사도 모으고 내정도 관리하고 하지만 나중에 영지가 커지면 믿을만한 장수를 태수로 임명하고 위임하잖아?”
“그런 개념이면 어렵지 않을 것 같네”
“그럼 그런 식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지.”
“저는 괜찮은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게임 내내 제가 신경 쓰였던 건 측근을 얻는 부분이었는데, 영지 경영도 해야 하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조금 방해가 되는 느낌이었거든요.”
“지금 아이디어대로 수정하면 측근을 얻는데 방해되는 느낌이 아니라 측근을 얻었기 때문에 유저한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바뀌는 거지.”
“우선 그럼 그 방향으로 수정해보자. 그리고 다시 테스트를 해보고.”
“좋아요.”
“오케이.”
서연은 팀의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누구의 아이디어도 묵살하지 않고 진지하게 경청하는 느낌.
그것은 마치 자신이 정말 개발팀의 일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한편, 서연의 의견을 들은 상혁은 속으로 뜨끔한 느낌을 받고 있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2020년의 게이머를 기준으로 디자인해버린 자신의 기획 때문이었다.
‘그렇지···. 2020년대 유저는 타이쿤 장르에 익숙하지만 지금 유저는 그렇지 않다는 걸 깜빡했어···.’
상혁은 현재의 유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의 복잡성도 기획의 기본 조건으로 체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15년을 현업으로 일했으니 회귀한 시점에서 더 배울게 없다고 생각하던 상혁에게는 커다란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끊임없는 테스트와 수정.
그것이 상혁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잡은 진행의 컨셉이었고 팀은 상혁의 그런 의도대로 잘 굴러가고 있었다.
특히 서연에게 미리 UI 에 대해 가르친 판단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시스템이 수정되면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리소스가 UI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번 정도의 수정을 더 거쳤을 때, 이제 기본적인 게임플레이 자체는 완성되었다고 판단한 상혁은 그때까지의 버전에 들어간 리소스의 채색을 서연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민준이 개발 중인 코드를 정리하고 알파버전을 제작하는 동안, 자신은 들어간 시스템의 볼륨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이벤트 스크립트 작업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채색이 완료된 알파버전을 그들이 손에 넣는데는 서연이 합류한 날로부터 5달이 지난 후였다.
내부 테스트는 대 호평.
하지만 상혁이 이 알파버전을 개발 중간에 굳이 따로 만든 이유는 단순한 내부테스트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기초적인 게임의 중심 플레이가 완성된 만큼, 이제 그 플레이의 재미를 검증해줄 외부의 감상도 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CBT(Closed Beta Test).
상혁은 자신들의 게임을 가지고 CBT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준비는 완료 되었다. 이제는 테스트 할 사람을 구하기만 하면 되는 단계였다.
“근데 누굴 시키지?”
“전처럼 반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 어때?”
민준이 의견을 내었지만 상혁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전번 게임은 무료 공개가 목적이었고 한 명이라도 더 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완전히 오픈했지만 이번 건 돈 받고 팔 거잖아. 난 고딩들의 보안의식을 믿지 않는다.”
‘지도 고딩이면서···.’
민준이 작게 투덜거렸지만, 상혁은 못들은 척 하면서 보드를 보고 마커를 입에 물었다.
“애당초 타겟으로 잡은 유저들이 ‘공주 키우기 2’를 좋아했는데 ‘공주 키우기 3’에 실망한 유저들을 대상으로 잡은 거니까 그런 그룹의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때, 서연이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런 사람이 필요한 거면 현주 선생님은 어때요?”
“너희 사촌 언니면서 선문고 게임 제작부의 담당 선생님인 김현주 선생님을 말하는 거니?”
“왜 그런 투로 소개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맞아요. 저희 사촌언니요.”
“현주 선생님이 왜?”
“모르셨어요?”
서연이 말했다.
“현주 선생님 ‘공주 키우기 2’ 코스프레도 할 정도로 완전 열혈 팬이신데?”
그렇게 말하며 서연은 지갑을 꺼내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그리고 거기엔 비록 행사장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방이 분명해 보이는 실내에서 공주 키우기의 주인공 캐릭터 모습을 한 현주 선생이 손가락으로 V를 그리며 포즈를 취한 모습이 찍혀있었다.
상혁은 그 사진을 보자마자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테스터 확보···.”
“예?”
“테스터는 확보한 것 같다고.”
상혁은 확신했다.
사진 안에서 미소짓고 있는 현주의 모습은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테스터의 모습 그 자체라고.
그래서 그들은 그 길로 알파버전이 든 CD를 들고는 다짜고짜 교무실로 쳐들어가게 되었다.
‘악역영애 키우기’를 최초로 플레이할 외부 유저를 섭외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