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4화 (15/485)

014. 악영영애 키우기

“그러니까, 이 게임은 악당이 주인공이라고요?”

“비슷한데 좀 달라. 정확히는 ‘죽기 전에 악당’ 이었던 거지. 죽고 나서 과거로 돌아와서 자신의 삶을 후회하고, 멋진 귀족 영애로 다시 살기로 결심하는 거야.”

‘아, 난 참 업보를 많이 쌓은 삶을 살았구나.’ 하고.

나쁜 심보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며 탐욕적으로 살던 귀족 영애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탄핵당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 자신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와 새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악역 영애물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상혁이 생각한 형태는 주인공이 개심하는 형태의 이야기였다.

“물론 회귀하는 10살 전에도 주인공은 사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주변 평가는 최악인 상태지. 주인공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경쟁 가문의 암계, 다른 영애와의 경쟁, 영지의 위협 등을 상대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이뤄가는 거야. 역사상 가장 유능한 여성 대신이 될 수도 있고, 왕자와 결혼해서 왕비가 되거나 영지민에게 사랑받는 영주가 될 수도 있는 거지.”

서연은 머릿속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떠올렸다.

폭정에 의한 반란으로 37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여성.

그런 그녀가 죽음의 순간에 과거로 돌아가 반역을 막는 이야기.

“저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왠지 자신이 좋아하는 중세풍 드레스를 잔뜩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던 서연은 손을 들며 적극적으로 동의 의사를 표했다.

“좋아 그럼 이제 구체화를 해보자. 각자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던져봐. ‘난 이런 플레이가 들어갔으면 좋겠다.’ 정도면 괜찮으니까.”

기본적인 컨셉의 방향이 잡혔으니 이제는 살을 붙이고 불필요한 부분을 깎을 차례였다.

그리고 그건 게임 개발에서 가장 재미있는 파트 중의 하나였다.

“저는 옷이 많아서 갈아입을 때 능력치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평판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보다 둘로 나누면 어때? 귀족들 사이의 인지도랑 백성의 존경심은 좀 다른 느낌 아냐?”

“특정 엔딩을 보면 다음 회차에 쓸 수 있는 스킬을 주는 건 어떨까? 매혹 10증가 같은 패시브 스킬 같은 거 말야.”

“이름에 따라 스토리가 변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특정 이름을 넣으면 난이도가 올라간다던가···.”

이미 게임의 아이디어를 낸 시점에서 상혁의 머릿속에는 게임의 전체적인 형태가 완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회의를 진행하며, 상혁은 자신이 구상한 시스템을 머릿속으로 수정하기도 하고, 해당 아이디어를 적용했을 때 게임 전체 플레이가 유기적으로 변하는 수준을 시뮬레이트하며, 기본 방향성에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적절히 쳐내는 방향으로 회의를 진행해 나갔다.

다들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있었고 특히 자신이 초등학생인 1993년에 방영된 ‘베르세이유의 장미’를 최애 애니메이션으로 꼽는 서연은 거의 5분마다 새 아이디어를 쏟아내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상혁의 뇌를 팝콘처럼 튀겨 버릴 뻔 했다.

그렇게 해서 상혁은 회의를 통해 세 게임의 기본적인 프레임을 잡아나갔다.

기본적으로 ‘공주 키우기2’의 게임 흐름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아르바이트’와 ‘교육’으로 진행하는 ‘스케쥴 파트’.

키워놓은 능력치로 필드를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먹고 전투를 수행하는 RPG 형태의 ‘무사 수행’ 파트.

그리고 1년에 한번 가을에 키워놓은 능력치를 가지고 대회에 나가 승리하는 ‘수확제’파트.

‘공주 키우기3’의 경우는 그중 RPG 파트인 ‘무사수행’부분을 떼고 스케줄 쪽에 좀 더 비중을 둔 형태로 만들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함으로써 게임은 훨씬 가벼운 게임이 되었다.

상혁이 의도한 것은, 정확하게 ‘공주키우기 3’가 실수한 점이라고 생각한 부분을 역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단순화 시킨 부분을 좀 더 복잡하게.

유저가 게임에 좀 더 파고들 수 있는 요소를 도입한다.

마치 숙련된 플레이어가 ‘공주 키우기 2’를 하면서 모든 아이템의 위치와 각 필드의 적의 강함을 다 외우고 게임을 하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기존 플레이의 단순한 답습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혁의 목표였다.

그 목표를 가지고, 상혁은 회의를 가이드 해 나갔고 결국 ‘공주 키우기2’와 완전히 다른 별도의 게임 시스템을 확립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정리할게.”

긴 회의동안 나온 아이디어 중 쳐낼건 쳐 내고 덧붙일 건 덧붙여 게임의 기본 모델을 구축한 상혁은 화이트보드에 어지럽게 적혀있는 아이디어들을 지우개로 지우며 회의 내용을 정리했다.

“일단 공주 키우기의 특징인 다양한 직업으로의 육성은 배제. 좀 더 귀족 영애의 세계에 집중한 플레이를 만드는 걸로.”

공주 키우기는 사실 그냥 딸 키우기라고 보는 게 좋을 만큼 엔딩의 종류가 다양했다.

엔딩의 숫자가 늘어나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렇게 할 경우 각 직업별로 육성 방식을 모두 줘야하기 때문에 게임의 넓이가 넓어지는 만큼 깊이가 낮아진다.

세 사람은 좀 더 궁중의 삶에 집중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그 부분은 방향성을 변경하게 되었다.

“둘째로 측근 시스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서 측근의 영입이 가능하고, 해당 측근의 구성에 따라서 일어나는 이벤트가 바뀐다.

예를 들어 원래 영지 관리를 잘못해서 위생 상태가 안 좋아지면 전염병이 창궐하지만, 그렇게 되어도 의사 캐릭터가 측근으로 있으면 전염병의 수습이 가능하다는 식이다.

다른 예로 반란이 있어 나거나 암살이 일어날 때 그것을 막아줄 수 있는 기사같은 측근도 존재하고.

이것은 서연의 아이디어였다.

단순하게 베르세이유의 장미에서 나오는 오스칼 같은 측근을 데리고 싶다는 욕망에서 나온 아이디어였지만, 상혁은 그것이 굉장히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단순하게 ‘몇 년 몇월까지 영지 위생 상태가 일정 수치 이하이면 무조건 게임오버.’ 이런 것보다는 눈에 띄는 형태로 ‘측근 누구를 영입했다’ 라는 식으로 보여주는 게 게이머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편할 것 같아. 플레이도 다양하게 바뀔 거 같고.”

이 아이디어가 들어가면서 게임 플레이는 ‘공주 키우기’같은 능력치 올리는 시뮬레이터가 아니라, 목표를 가지고 측근을 수집하는 일종의 덱 빌딩 게임같이 변하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 측근 구성을 할 것인가가 엔딩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된 것이다.

“다음으로 ‘공주 키우기 2’의 RPG 파트는 영지 관리형태의 타이쿤 게임 파트로 교체.”

그렇게 말한 상혁은 3개의 커다란 동그라미를 보드에 그리고는 안에 글자를 적어 넣었다.

“그럼 이 게임의 기본 플로우는 ‘스케줄’ ‘영지경영’ ‘측근 영입’이렇게 3가지가 되겠군.”

스케줄을 통해서 능력치를 키워 영지를 경영하고 측근을 영입한다.

영지에 도움이 되는 건물을 건설하거나 정책을 반영하기 위해 능력치를 키우고, 사교 이벤트를 통해서 영입한 측근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

그것이 3사람이 잡은 게임의 기본적인 구조였다.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잘 만들면 진짜로 18세기 궁전의 귀족 영애가 된 느낌일 거 같아.”

“나도 동의.”

“저도요. 전 엄청 마음에 들어요.”

“그럼 일단 오늘은 기본 방향을 잡았으니 내일부터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회의해보자.”

상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날의 회의를 마쳤다.

지금은 겨우 기본 틀만 잡았을 뿐이니까.

구체적으로 게임의 완성된 형태를 그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

아이디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상혁이 구체적인 게임의 모델을 잡는데는 그 후로도 3일의 시간이 더 걸리게 되었다.

그러나 상혁에게는 그 3일이 전혀 아깝지 않았는데, 기본적으로 회의 자체가 엄청나게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즐겁네.”

다들 목이 아플 정도로 떠드는 과정 속에서,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은 상혁의 말을 들은 두 사람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그러게요.”

“나도 즐겁다.”

“역시 게임은 좋은 거 같아.”

자신이 플레이하고 싶은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만드는 이에게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을 준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의 각본을 자신이 쓰는 작가의 기분 같은 느낌인 것이다.

회의가 진행될수록, 세 사람은 점점 마음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만들고 싶다.’

‘이 게임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결국 세 사람은 3일간의 회의를 마치고 제작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회의도 즐겁고 아직도 더 다듬어야할 곳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열정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었다.

“우선 만들자. 만들면서 더 붙일게 있으면 붙이고 뗄거를 떼는 걸로 하자.”

“좋아요. 저도 빨리 게임에 들어갈 일러스트를 그리고 싶어요.”

“나도 코딩이 마렵다.”

“그럼 최종 정리를 할게. 내일 회의를 마지막으로 하자.”

그렇게 말한 상혁은 다음날 두 사람 앞에 한 뭉치의 프린트를 내밀었다.

그것은 상혁과 자주 일하던 민준에게는 익숙한 결과물이었지만 서연은 처음 보는 형태의 기획서였다.

“플레이 시나리오요?”

“우리가 만든 게임이 출시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유저의 시선으로 플레이가 이런 느낌이다를 수필형태로 적은거야. 대략 완성된 결과물이 유저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상상해서 잡은 거지.”

용산의 한 게임샵에 들린 한 게이머가 18세기 프랑스 귀족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패키지를 보고 흥미를 느껴 게임을 집어드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플레이 시나리오는, 패키지 뒷면에 새겨진 게임 소개 문구를 보고 게임 구매를 결정한 게이머가 플레이를 마칠 때까지의 과정을 소설같은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서연은 자신이 실제로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라도 된 것처럼 완성된 게임을 온전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초회 플레이에서 반란을 막기 위해 민생에만 신경 쓰다 독살 엔딩.

이후 귀족간의 사교에 신경 쓰기 위해 자금을 소진하다보니 영지 정비에 쓸 돈이 모자라서 전염병이 창궐.

결국 게임의 요령을 파악한 게이머가 때로는 암계를, 때로는 정면 돌파로 위기를 하나씩 깨부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비로 평가받는 엔딩을 보는 장면에서, 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

물론 모두가 함께 의논해서 만든 결과물에 100%확신을 가진 상혁이었지만, 아무리 자신감 있는 기획이라도 반응을 볼 때는 어느 정도는 긴장하게 마련이다.

상혁은 기획을 본 서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마른 입술을 핥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때?”

“···완전···.”

“뭐?”

“완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지금당장 그런 게임이 있으면 그림 그리는 것도 멈추고 밤새 플레이하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상혁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오빠? 진짜죠? 제가 그림만 그려드리면 진짜로 이런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으어어~~. 흥분하지~~. 말고오오~~.”

“아, 죄송해요.”

숨을 고른 상혁이 서연을 보며 말했다.

“뭐, 원래 아이디어에서 많이 덜어냈으니 이정도면 우리 인원으로 만들만 할 거야. 민준, 니가 보기엔 어때?”

“개발 일정 따라 다르겠지만 완성하는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네트워크 지원하는 게임도 아니니까.”

“개발할 수 있냐 말고 어떤 느낌의 게임이냐를 물은 건데?”

“어? 재밌어. 난 이 아이디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재밌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최종 결정은 기획 전문가인 니가 결정했으면 했지.”

“내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애당초 기획을 써 왔겠냐?”

“그건 그래. 그럼 3명 다 이걸 만드는 거로 동의하는 건가?”

“네! 네네! 동의요!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게임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으로서 팀원들의 이런 태도는 상혁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럼 한번 해 보자고.”

미소를 지으며 상혁이 말하자 서연과 민준은 각자 자리에 가서 앉았다.

바로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서.

그리고 상혁은 서연이 자신을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제 작업이 시작되면, 서연이 100%자신을 호출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그리고 서연은 잠시 후 상혁의 예상대로 뒤를 보며 손을 들더니 상혁에게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상혁오빠?”

“응.”

“이거 기획서 내용이 지난번하고 다른데요?”

“알아.”

이전에 ‘기공 무림전’을 만들 때, 상혁은 모든 UI의 디자인을 버튼 하나 하나의 배치까지 모두 자신이 알아서 해 주었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리소스 작업을 들어가려던 서연이 곤란해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곤란함은, 상혁이 일부러 일으킨 것이었다.

“서연이 너는 이번 기회에 나랑 UI 디자인 좀 같이 공부해보자.”

그것은 이제 자신의 팀원이 된 서연을 한 단계 위로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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