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3화 (14/485)

013. 98년도 게임판은 갓겜 전쟁터

서연이 밝힌 팀 해산의 원인은, 상혁과 민준이 빠진 이후에 혁찬이 느낀 과도한 부담감이 주원인이었다.

애당초 게임 기획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상혁의 도움으로 게임 제작에 대해 한스탭 한스탭 배우게 되면서, 자신이 배워야 할 지식의 방대함에 짓눌린 것이다.

그 와중에 자신이 처음 만든 체험판이 잡지사 번들로 제공되는 사태까지 겪으면서, 혁찬이 느끼는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결국 혁찬은 개인적으로 공부를 더 하고 준비를 마친 후에 제작을 이어가고 싶다며 팀 해산을 제안하게 되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원래 동인팀이라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강제로 업무를 시킬 수 없다는 게 특징이라 설득 외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그렇게 프로젝트는 잠정 중단되었다.

그렇게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나서, 상실감에 빠졌던 서연은 자신이 그린 일러스트가 실린 잡지를 보고 펑펑 울었다.

3년의 시간을 헛되게 날린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울던 서연은 잡지에 붙어있는 ‘익스트림 발리볼’의 번들 디스켓이 눈에 들어오고 나서 겨우 눈물을 멈출 수 있었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어차피 이번 게임 제작이 완료되면 상혁과 민준의 팀에 가입을 부탁할 생각이었던 서연은 그 시간이 조금 더 빨리 왔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밤새 울어서 반쯤 충혈 된 눈으로 선문고등학교의 게임 동아리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기대를 안고 찾아온 두 사람은, 그런 그녀의 사연에는 사실 전혀 관심이 없었다.

‘드디어 원화가를 확보했다.’

두 사람에게는 자신들이 만드는 차기작의 스케일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심적으로 무리를 했을 서연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상혁은 서연에게 마음에도 없는 제안을 했다.

“그럼 일단 합류는 확정인걸로 하고 오늘은 집에 가서 쉴래? 우리는 남아서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러자 서연이 고개를 저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아뇨. 아까 상혁 오빠가 웃긴 모습을 보여줘서 기분이 좀 풀리기도 했고, 솔직히 안 받아주시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것도 해결돼서 지금은 오빠들이 저랑 무슨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어요.”

“그럼 3명이서 같이 지금부터 회의를 하자.”

상혁은 부실 벽에 있는 캐비넷에서 쿠키와 초코파이를 꺼내 접시에 담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커피도 뽑아서 각자의 자리에 놓고는, 화이트 보드를 끌고와 잘 보이는 자리에 놓고 회의를 시작했다.

“일단 아직 무슨 게임을 만들지는 확정한게 아무것도 없어. 있더라도 서연이 니가 합류한 시점에서 그 계획은 파기야.”

“왜요?”

“난 3명이 다 같이 재미있다고 동의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거든.”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서연이 너도 알겠지만, 우리의 첫 번째 게임은 ‘익스트림 발리볼’이었고 그건 무료 배포를 전제로 개발한 게임이었어. 게다가 캐릭터도 무료로 한번 풀었고. 그래서 난 차기작은 정말로 돈 받고 팔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상혁의 말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없어도 게임은 만들 수 있지만, 돈이 있으면 더 즐겁게 만들 수 있으니까.

“그 전에.”

상혁은 마커의 뚜껑을 탁 소리 내어 열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게임을 만든다면 어떤 게임을 만들었으면 좋겠어?”

“전 제 그림을 잘 살릴 수 있는 게임이요.”

상혁은 마카로 보드에 ‘원화가 돋보이는 게임’이라고 적었다.

“난 시스템이 좀 헤비한 게임이었으면 좋겠다. 시뮬레이션 장르도 좋고, FPS도 좋고.”

민준의 말을 들은 상혁은 보드에 ‘시스템이 헤비한 게임’ 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아래쪽에 ‘없어서 못하는 게임’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난 지금 유저들이 마음속으로 하고 싶어 하는데 없어서 못하는 그런 종류의 게임이 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럼 이 3개를 전제 조건으로 지금 우리가 개발해서 가장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게임에 대해 토론해보자.”

그리고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

그 전에도 서연은 혁찬의 팀에서 두 사람이 회의에 참여한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어디까지나 서연이 있던 팀의 상황을 기준으로 3사람이 만들기 적합한 게임을 가이드 하기 위한 회의였지, 지금처럼 고삐풀린 망아지같이 폭주하는 형태의 회의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거의 절반 정도는 서연이 알아듣지도 못할 단어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 덕에 서연은 모르는 말이 나올 때마다 중간중간 손을 들어 물어보면서 겨우 회의를 따라잡고 있었다.

그러나 서연을 정말로 당황시켰던 점은, 마치 전문 개발자처럼 회의를 진행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미래의 일을 확신하는 듯이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말투였다.

“우리가 지금 개발해서 내년 출시일건데 그때쯤에는 초고속 인터넷도 나온다니까?”

“나오기야 하지, 그거 전국에 다 깔리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는 생각 안 하냐?”

“미리 선점해두고 pc 방 유저 중심으로 시장 선점해뒀다가 가정용으로 확장하면 되지!”

“서버 비는 누가 댈 건데? 지금은 클라우드 개념도 도입되기 전이라 서버 장비부터 우리가 다 사서 깔아야 하지 않아?”

이 이야기를 하는 상혁과 민준은 나름 서연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회귀하기 전 2020년대에는 초등학생도 서버가 뭔지, 핑이나 랙이 뭔지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을 갖고 있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8년의 여중생에게 두 사람의 대화는 심각하게 따라가기 어려웠고, 결국 상혁은 회의에 참가한 서연을 위해서 모든 단어를 98년 중학생 수준의 단어로 낮춰서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일단 통신기능이 있는 게임쪽은 제외하자. 아직 우리한테 거기 필요한 설비를 구축할 자금은 없으니까.”

“그럼 그냥 패키지 게임?”

“그게 맞겠지.”

“패키지면 어떤 거? 원화를 살리려면 비쥬얼 노블이 좋을 텐데?”

“근데 그건 시스템이 너무 가볍잖아. 넌 만족 못할걸? 그리고 난 혁찬이처럼 시나리오로 승부하는 그런 짓은 못한다?”

“흠···. 그럼 일단 우리 예상 출시일에 시장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줘.”

상혁은 보드에 90년대 말 인기 게임들을 정리해서 적었고 그것을 본 민준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우주 크래프트’ 확장팩이 올 겨울 발매라고?”

“응. 그리고 무지개 식스는 얼마 전에 발매했는데 아직 국내에서 인지도는 낮은 편이고. 금방 엄청나게 인기를 끌겠지만.”

“그럼 RTS 랑 FPS쪽에 갓겜 두 개가 포진해있는 거네. RPG는?”

“’발더스 케이트’가 올해 겨울. 한글 발매가 내년 초.”

“그것도 갓겜이지. 시뮬은?”

“’삼국전 6’랑 ‘커만도스’가 이미 나왔고 ‘롤러코스터 팩토리’가 내년 발매일걸?”

“액션은?”

“내년에 ‘바이오 핵저드3’.”

“뭐야 98년도 왜 이래? 갓겜 존나 많네? 지금 말한 것 중에 ‘바이오 핵저드3’ 빼면 전부 한글 발매 아냐?”

“뭐 그렇지···.”

그때 서연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뭐 물어볼 거 있니?”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뭔데?”

“오빠들은 어떻게 무슨 게임이 언제 나오는지 다 알고 계세요? 말씀하신 것 중에 우주 크래프트랑 삼국전 빼고는 다 처음 들어보는 게임들인데요?”

“어? 어···.”

상혁이 당황하는 사이, 민준이 재치있게 서연의 질문에 답했다.

“해외 쪽 게임 잡지보고 파악한 거야.”

“아항···. 그래도 그걸 다 기억하고 계신다니 대단하네요.”

“인기 있을 것 같은 것만 기억해둔 거지, 1년에 게임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다 기억은 못해.”

실제로는 ‘인기 있을 것 같은’이 아니라 ‘인기가 있었던’ 게임들을 기억하고 있는 거지만, 자신들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말 할 수는 없었던 상혁은 적당히 둘러대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보드에 정리한 게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한마디로 지금 시기는 이제 본격적으로 대형 제작사의 게임들이 시장을 먹어나가는 시기라고 봐야 해. 디스켓 세대에서 CD-ROM세대로 넘어가면서, 게임 용량이 커지는 만큼 퀄리티도 올라가고, 제작비도 커지는 거지. ‘이 게임은 무려 CD가 3장짜리입니다!’ 라는 문구가 게임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그런 시대가 오고 있는 거라고나 할까?”

“그럼 저희는 불리한 거 아니에요?”

“뭐, 작은 팀은 작은 팀대로 살아남을 방법이 있지. 그래서 아까 내가 ‘하고 싶은데 없어서 못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한 거야.”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자신이 97년도부터 99년까지 적어놓은 발매작의 리스트를 쭉 훑어보았다.

“여기 적어놓은 게임들은 대부분 인지도 있는 회사에서 만들거나 게임 자체가 엄청나게 재미있거나 해서 히트 칠만한 게임들이야. 혹은 이미 히트를 쳤거나. 아니면 잠시 묻혀 있었지만 인터넷 환경이 발전하면서 같이 뜨는 게임들도 있고···.”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상혁의 시선이 어떤 한 게임의 제목에 멈췄다.

그리고는 손을 턱에 가져다 대고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무슨 게임을···.”

서연이 말을 걸려는데, 옆에서 민준이 부드럽게 서연의 팔을 잡았다.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 같으니까 잠깐 놔둬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자.”

민준의 말대로 상혁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지금까지 플레이한 수많은 게임들의 시스템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게임을 중앙에 두고, 마치 퍼즐의 맞는 조각을 찾기라고 하는 것처럼.

이윽고 상혁은 손에 든 붉은 마커로 자신이 보고 있던 게임의 제목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는 ‘99년도 갓겜’이라 적힌 리스트의 게임에도 동그라미를 하나 추가했다.

이윽고 상혁이 옆으로 비키자 민준과 서연은 상혁이 무슨 게임에 주목했는지를 볼 수 있었다.

상혁이 동그라미를 친 게임은 바로 ‘공주 키우기 3’와 ‘롤러코스터 팩토리’였다.

“공주 키우기 3?”

그 게임은 서연도 알고 있는 게임이었다.

DOS시절부터 인기를 끌었던 육성게임이 윈도우로 플랫폼을 바꾸면서 그래픽을 대폭 끌어올려 발매한 3번째 시리즈 작품.

자신의 딸을 다양한 직업으로 키워나가는 게임으로 97년에 발매되었기에 서연도 플레이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분명 3편은 별로였는데?’

물론 공주 키우기 3편은 재미있는 게임이긴 했지만, 2편이 워낙 갓겜이라는 평이 많은 작품이라 2편을 플레이한 유저들 중 3편에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

유통사에서 무려 정식 한글 더빙까지 해서 발매하였으나 발매 직전 베타판이 유출되어 발매 된지 1년밖에 안된 게임이 반값 덤핑에 들어간 비운의 게임.

상혁은 그런 게임에 동그라미를 친 것이었다.

“그런데 공주를 키우려면 그냥 공주 키우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오빠는 하고 싶은데 없어서 못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서연이 묻자 상혁은 보드를 다시 돌아보더니 ‘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서연이 하고 있는 오해를 정정해주었다.

“그래. 공주 키우기 하고 싶은 사람은 3편을 하면 되지. 내가 만들었으면 하는 게임은 공주 키우기 3편 같은 게임이 아니야.”

그리고는 벽장으로 가서 오래된 패키지 하나를 꺼내 탁자위에 놓았다.

“우주 갓겜인 2편의 후속작을 만들자는 거지.”

육성 시뮬레이션에 ‘무사수행’이라는 RPG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던 공주키우기 2편.

상혁은 그 ‘RPG’대신 ‘타이쿤’을 넣어 새로운 공주 키우기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공주는 1편 2편 3편에 걸쳐서 벌써 8년째 키워봤잖아. 이제 다른 걸 키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상혁은 시스템만 고치려는 것이 아니었다. 아예 컨셉도 바꿔서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제목은 ‘악역영애 메이커’.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민준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상혁의 말대로라면 주인공이 악역영애가 되면서 암살의 위기라던가 독살을 회피하거나, 음모를 깨부수는 등의 기존 공주 키우기에는 없던 긴장감 있는 이벤트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히 ‘딸을 어떻게 키울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공주로 만들어갈 것인가’ 라는 테마가 부여된 느낌이었다.

“나쁘지 않은데?”

민준은 상혁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때,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서연이 손을 들었다.

“저기···. 공주 키우기 2편을 리메이크해보겠다는 건 이해했는데요···. ‘악역 영애’는 뭐에요?”

상혁은 서연의 말을 듣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 맞다. 얘는 1998년 사람이지.’

아무래도 이 기획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악역 영애물이 뭔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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