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12화 (13/485)

012. 운도 실력

그날 이후로 팀 내 분위기가 변했다.

교보문고에서 자신들의 게임을 줄지어 사는 유저들을 눈으로 확인한 상혁은 그날 이후로 자신의 안에서 좀 더 게임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치솟고 있음을 느꼈다.

민준은 회귀 이후부터 계속 자신의 실력 이하의 코딩만 반복해서 수행했기에 좀 더 스케일 큰 게임의 코드 작업을 하고 싶어했고, 혁찬은 갑자기 친구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민솔과 서연은 마치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였기에, 이미 결정되어있는 일이긴 했지만 상혁이 이제 민준과 게임을 만들기 위해 팀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혁찬과 서연, 민솔이 서운한 감정을 느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3개월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상혁과 민준은 이 초보 개발자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직접적인 도움보다는 이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치고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이드 해 주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3개월 동안 선문중 게임 개발부 3인은 상혁과 민준에게 단순히 선후배관계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마치 영원히 같은 팀으로 일할 것 같은 느낌, 혹은 기대감.

친하니까, 혹은 자신들을 아끼고 있으니 두 사람이 굳이 팀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 것이다.

물론 떠나는 입장의 두 사람도 마음이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혁과 민준에게 있어서 중학생 팀에서의 작업은 게임제작이라기보다는 교육에 가까웠기에 언젠가는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들의 게임을 만드는 것. 그것이 두 사람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회귀 이후의 삶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조금의 아쉬운 매달림과 서운함의 토로, 위로의 과정을 거쳐 헤어짐은 조촐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불과 일주일 전 게이머들 사이를 뜨겁게 달구었던 당사자들의 모임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가라앉은 분위기의 모임이었다.

최초로 그들이 만났던 중학교 게임 부실 안에서, 상혁과 민준은 치킨과 피자를 시켜놓고 지금까지 자신들의 말을 들으며 게임을 만드느라 수고했다는 인사를 보냈다.

“선배···. 혹시···. 아, 아니에요···.”

서연은 마지막까지 상혁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려다 혁찬을 보고 말을 속으로 집어넣는 모습을 보였다.

혁찬은 혁찬대로, 두 사람이 떠난 이후에 팀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우울해했고, 민솔은 학원 선생님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실력이 뛰어난 민준에게 코딩을 더 배울 수 없다는 사실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뭐, 영원히 안볼 것도 아니고 왜 그러냐 너희들? 어차피 몇 달 있음 중학교 졸업이잖아? 고등학교 안 올 거야?”

“가, 가야죠···.”

혁찬이 대답하자 상혁은 혁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내가 가르쳐서 배우는 게 있듯이, 네가 팀을 스스로 이끌면서 느끼고 배우는 부분도 있을 거야. 예전과는 다르게, 넌 이제 ‘일을 만들 줄 아는’ 기획자잖아?”

프로그래머가 코딩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코딩할지에 대한 기획이 필요하다.

원화가가 일러스트를 그릴 때도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기획이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기획은 작업의 가장 앞에서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일을 주로 맡게 된다.

과거에 아무것도 모르던 혁찬이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충분히 그 역할을 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상혁은 믿고 있었다.

“나중에 혹시 생각 있으면 선문고로 와서 전부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던가.”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너 정도로 재능 있는 시나리오 라이터는 업계에서도 손꼽을 걸?”

그렇게 말한 상혁은 서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너 정도 원화가도 찾기 힘들 거고.”

그러자 이번엔 민준이 민솔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분위기가 칭찬하는 분위기인건 아는데 미안한데 나는 칭찬 안 할거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민솔은 그런 민준의 이야기를 듣고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민준은 그런 민솔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래도 이번 체험판 코드는 좋았어. 버그도 안 나오고. 간단하지만 탄탄한 코드였다.”

두 사람의 말이 진심인 것은 여기 방에 모여 있는 중학생 3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두 사람의 발목을 붙잡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주 놀러갈게요.”

“당연하지. 안 놀러 오면 찾아와서 갈굴 거다?”

애당초 상혁과 민준은 이 아이들이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팀에 스카웃 할 생각이 있었으므로, 심각한 분위기의 3명과는 다르게 이것을 딱히 이별 같은 분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식으로 감성에 젖기에는 그들 안에 있는 40대의 영혼은 만남과 이별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

송별회를 마친 두 사람은 인사를 하며 선문중학교를 나섰고, 혁찬과 서연, 민솔은 그런 두 사람을 배웅하겠다며 학교 정문까지 두 사람을 따라 나왔다.

이윽고 아이들과의 거리가 꽤 멀어져서 말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무렵, 상혁은 깊은 한숨을 쉬며 민준에게 말했다.

“후···. 짜식들···. 누가 보면 우리가 군대 가는 줄 알겠네?”

“뭐, 감정이 풍부할 나이니까.”

“아니 그냥 가이드하던 거 후순위로 밀고 우리 작업 좀 시작하겠다는 건데 송별회니 뭐니 한다고 하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러게. 원래 가볍게 이야기 마무리 하고 가끔 들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이별 분위기를 잡으면 도로 가기도 좀 그렇지 않냐?”

민준의 말에 상혁도 동의했다.

이런 분위기로 헤어졌는데 다음주에 ‘안녕~놀러왔어~’하고 웃으면서 동아리 부실로 찾아갈 정도로 상혁의 얼굴 가죽은 두껍지 않았으니까.

결국 상혁은 이 뻘쭘함이 가라앉을 때 까지는 중학생 부실에 찾아가지 않으리라 결정했다.

어차피 민준과 게임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니까.

“그럼 우린 이제 다음 스탭을 밟으러 가볼까?”

“좋아. 바로 동아리 부실로 가서 회의부터 해보자!”

평소 잘 흥분하지 않는 민준이 흥분할 정도로, 새 게임이란 단어는 그 존재만으로 천상 개발자인 두 사람을 두근거림으로 가득 채우는 마력이 있었다.

***

게임의 개발 과정에서 가장 선행되는 것은, ‘무슨 게임을 만들까’를 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만들고자 하는 장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자 하는 게임의 컨셉, 플레이, 시스템, 추구하는 재미 등을 결정하는 복잡한 과정이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기에 앞서 개발할 게임의 구체적인 모양을 잡아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때때로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선행 기획.

본격적 제작에 앞서 게임의 구체적인 모양을 기획이라는 형식으로 미리 잡아두는 것.

현재 상혁과 민준은 그런 ‘선행 기획’의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획은,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계속 반복되는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되는 날 회의에서 민준은 결국 책상을 두드리며 상혁에게 외쳤다.

“결국 일주일 동안 열심히 회의하면서 내린 결론은, 우린 원화가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지. 원화가가 없어도 우린 능력 있는 개발자잖아.”

“만들고 싶은 게임도 맘대로 못 만드는 데 무슨 능력 있는 개발자야?”

상혁은 입을 다물었다.

물론 회귀한 두 사람에게는 1998년의 어떤 개발자도 가지지 못한 커다란 어드벤티지가 있다.

대략 어느 연도에 어떤 게임이 히트를 치고, 인터넷은 언제 깔리며, 스마트폰은 언제 보급되고 각 시대에 따른 컴퓨터 사양이 어떻게 되는지.

현대 게임계의 타임라인을 기반으로 한 풍부한 지식을 가진 기획자와 아직 이 시대에서 아무도 시도해본 적 없는 다양한 게임 시스템을 구축해본 경험이 있는 프로그래머.

그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능력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만으로 극복하기에는 시대의 벽이 너무나 컷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스마트폰 게임을 만드는 능력은 아무 쓸모가 없는 법이다.

차라리 2020년이면 일부러 단순한 그래픽의 게임을 내놓고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역으로 눈길을 끌 수도 있겠지만, 1998년에 그런 게임을 출시하면 그냥 ‘그래픽 구린 게임’ 취급받기 딱 좋을 정도였다.

“아 씨, 그때 원화가도 철야 같이 시켜서 한꺼번에 3명이서 과로사할걸.”

결국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하기 시작한 상혁은 책상에 머리를 비비며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게임만들고싶어 게임만들고싶어 게임만들고싶어어어어!!”

민준은 그런 상혁을 보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리던 상혁은 고개를 들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후회의 말을 뱉었다.

“아 그때 역시 걔네 스카웃 제의 한번 해볼걸.”

그러자 민준이 상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스스로 하는 경험도 좋은 배움이 될거라고 졸업하면 스카웃 하자고 한건 내가 아니라 너였잖아.”

“그때는 내가 원화가 없이도 괜찮은 게임 기획을 하나 더 뽑을 수 있을줄 알았지···.”

상혁은 다시 책상에 머리를 박고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아···. 혁찬이네는 개쩌는 원화가도 있는데···. 난 이게 뭐야···. 부럽다···. 걔네들은 지금 신나게 게임 만들고 있겠지?”

“상혁아.”

“왜.”

“상혁아?”

“아 몰라, 원화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떠오를 때까지 난 고개 처박고 있을 거야.”

“그 원화가가 너 찾아온 거 같은데?”

민준의 말에 상혁의 고개가 빛과 같은 속도로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리고 민준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 상혁은, 동아리 부실에 달려있는 유리 너머로 빼꼼 하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서연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무슨 일로 왔어?”

상혁은 급하게 책상에 눌린 머리를 정돈하고는 서연을 불러 커피를 대접했다.

그러자 서연은 상혁이 건네준 커피를 호르륵 홀짝이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부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와, 부실이 엄청 좋네요?”

“너 안 온지 일주일밖에 안 됐어.”

“가구 배치라도 바꾸신 거예요? 완전 풍경이 다른 것 같은데?”

“가구 배치는커녕 너희가 마지막 온 날 이후로 청소도 한번 안했는데?”

서연은 상혁의 말을 듣고는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 역시 선배님이 타주시는 커피는 맛있네요! 매일 먹고 싶다!”

“졸업하고 오면 매일 먹을 수 있을 텐데.”

상혁은 농담반 진담 반으로 던진 이야기였는데, 예상치 못하게 서연이 날름 받아들였다.

“내일 부터는 안 돼요?”

“뭐?”

상혁의 동작이 그대로 굳었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가 해서.

“니 말은···.”

“저, 선배님들하고 같이 게임 만들고 싶어요.”

뭔가 이상함을 느낀 상혁은 그제야 서연의 눈동자에 맺혀있는 붉게 충혈된 자국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녀는, 어제 밤새 울고 오늘 부실로 찾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가 원래 있던 혁찬의 팀을 나오려고 하는 이유를, 조금 목이 메인 듯한 목소리를 숨겨가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혁찬이가 팀을 깨고 싶대요.”

지금 해야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위로? 격려?

여러 가지 생각이 상혁의 머리를 헤집었지만 상혁은 그중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대신 아무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실 밖으로 나왔을 뿐.

그렇게 부실 밖으로 나온 상혁은 부실 문을 닫고는 있는 힘껏 소리를 억누르면서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부실 안에서 절대 안 들릴 목소리로 작게 소리 지르며.

“흐아아아아 원화가 확보오오오!!”

자기들끼리 게임을 만들 때 배우는 것들? 아직 시간이 많아?

안 그래도 후회 중이었는데 원화가가 제발로 굴러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위로같은 걸 할 만한 깜냥은 상혁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일주일 전의 자신 좆까.

허세 따위는 게임을 만드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세상은 약육강식이니까.

그것이 일주일 동안 원화가 없이 생고생한 상혁이 갖게 된 마음의 변화였다.

그리고 그렇게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상혁의 등 뒤에는 부실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체 상혁을 지켜보는 두 명의 눈동자가 있었다.

“엄청 좋아하는데?”

“그러게요. 제가 합류한다니까 좋아해 주셔서 기쁘긴 한데, 자기가 가르치던 후배들 팀이 깨졌다는데 만세 하시는 거 같아서 좀 기분이 그렇네요.”

“원래 저런 녀석이야.”

민준이 피식 웃자 서연도 민준을 보며 미소 지었다.

사실 그녀도 위로나 격려보다 이런 반응이 더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반쯤은 희극같고 반쯤은 비극 같은 분위기 속에서, 상혁 일행은 3번째 개발자를 팀에 맞이하게 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능력 있는 원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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