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7화 (8/485)

007. 개념없는 뉴비에겐 참교육

게임이란 것을 접하고 게임에 빠지게 된 사람이라면 으레 한 번쯤은 ‘나도 게임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운이 맞는다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 팀을 이루고 게임 제작에 입문하게 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동인 게임 팀이란 건, 그런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을 통해 모인 사람들은, 처음엔 행복한 꿈을 꾸면서, 즐겁게 게임 제작에 대한 꿈을 키워나간다.

처음엔 무지하게 즐겁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면서, 자신은 이런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런 게임을 좋아한다고 소개한다거나,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함께 만들어갈 게임에 대한 형태를 잡아가는 과정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지 않을 수 없는, 게임 제작의 ‘재미있는’ 파트 이니까.

올해 중학교 3학년을 맞이한 김서연 역시 처음에는 게임 제작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매일 방과후에 빈 교실에 모여서, 게임 아이디어에 대해 토론하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칭찬받는 과정은 그녀에겐 참으로 즐거운 과정이었다.

그녀는 친구들이 스티커사진을 찍으러 놀러 다니거나 노래방에 가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은 뭔가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팀이 모여서 하는 일이란 대부분 모여서 잡담을 하고 게임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었지만, 그녀는 그것도 다 게임 제작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즐겁게 놀면서’ 1년이 지나 2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는 뭔가 일이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이제 슬슬 게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의 조심스러운 말에 최초에 팀을 소집한 기획자인 혁찬은 웃으며 그녀에게 답했다.

“그래서 지금 회의 중이잖아.”

“아니, 내 말은 ‘회의’ 말고 무언가 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야.”

“하지만 전에 만들던 기획은 문제가 있어서 새로 만들기로 한 거잖아.”

그녀는 갑갑했다. 애당초 문서 한 장 없이 말로 회의만 진행하다가, 혁찬이 ‘그럴 듯하다’라고 생각되면 그녀에게 그림을 그려오라고 시킨다.

그리고 열심히 그녀가 말하는 대로 그림을 그려오면, 혁찬은 진도를 더 나가지 않고 뭔가의 이유를 붙여 프로젝트를 엎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또 1년을 허비했을 때, 그녀의 인내심은 완전히 바닥나고 말았다.

“2년 동안 벌써 8번이나 갈아엎었잖아! 게임은 대체 언제 만들건데?”

“힘들게 만들었다가 재미없으면 안 되니까 신중하게 만들려는 거잖아. 너 말고는 다들 불만 없는데, 왜 너만 자꾸 불평하는 거야?”

“우리는 벌써 3학년인데 되어 있는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지!”

“그거야 하면서 배우는 중이니까 그런거고, 너도 그림 그리면서 실력 많이 늘었잖아? 지금 와서 불평하는 거야?”

결국, 그날 저녁 그녀는 사촌언니인 현주에게 불평을 쏟아놓았다.

“아으! 열 받아!”

“언제는 즐겁다고 나한테 2시간동안 자기가 만드는 게임 이야기하더니?”

“그때는 나도 즐거운 줄 알았지!”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작업을 하려고 열어둔 포토샵을 껐다.

어차피 자신이 뭘 그리던 게임 제작으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바탕화면에 배구공 모양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더니 익스트림 발리볼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어? 그거 익스트림 발리볼 아냐?”

“언니도 이게임 알아?”

“알지. 지금 우리 학교에서는 애들이 집에 안가고 컴퓨터실에서 그것만 해서 아예 금지령도 내렸는데? 근데 중학교에서도 하는구나?”

“어. 이거 캐릭터도 귀엽고, 디스켓만 있으면 세이브 가지고 다니면서 친구랑 대전할 수 있어서 인기가 많아.”

“아니, 내 말은 그거 우리 학교 애들이 만든 거라서 우리 학교에만 깔린 줄 알았거든.”

“뭐?!”

화면에서 상대 캐릭터가 강 스파이크로 점수를 넣고 있었지만 서연은 막지 못했다.

단지 멍하니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자신의 사촌언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 게임 만든 제작자가 언니네 학교에 있다고?”

“어. 너도 알다시피 원칙적으로는 학교에 불법 프로그램은 깔 수 없잖아. 그래서 출처를 물어봤더니  우리 학교 1학년 둘이서 만든 거더라고.”

“둘이서!?”

그녀는 요즘 가장 빠져 지내던 게임을 자신과 한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고등학교 1학년 둘이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투덜대던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면서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깊은 분노를 느꼈다.

‘나는 2년 동안 아무것도 못 만들었는데···.’

물론 익스트림 발리볼의 퀄리티가 외견적으로 엄청나게 뛰어난 게임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점이 서연의 무언가를 자극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 팀의 일원이었다면, 정말로 멋지게 캐릭터 디자인이나 애니메이션 등을 처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누구는 두 달만에 이런 게임을 만든다는데 우리는 못 만들지? 뭐가 부족해서?’

그 부족한 무엇인가를, 서연은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촌언니가 앉아있는 침대로 갔다.

그리고 잡지책을 읽고 있는 사촌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언니. 나 부탁 하나만 들어주어라.”

***

“그래서, 여기가 거긴가?”

상혁이 ‘선문중학교 게임 제작부’ 라고 쓰여진 명판이 달려있는 문 앞에서 말했다.

그러자 상혁과 마찬가지로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민혁이 상혁의 질문에 답했다.

“아크릴로 현판까지 만들어놨네?”

“우리한테 부탁한 현주 선생이 이사장 손녀라며. 그럼 사촌도 이사장 손녀잖아. 귀여운 손녀 때문에 해준 거 아냐?”

“더러운 금수저놈들! 부들부들부들!”

상혁이 과장된 포즈로 주먹을 떨며 입으로 부들부들 소리를 내자, 민준이 그 등을 탁 치며 말했다.

“뻘짓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 보자. 어떤 상황인가 보게.”

그리고는 상혁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의 시선을 가장 끄는 것은, 겨우 중학교 동아리 부실이라고 볼 수 없는 화려한 내부 시설이었다.

그렇다고 만화에서 나오는 그런 부실같이 엄청나게 비싼 쇼파가 있다던가 하는 럭셔리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벽 한쪽에 가득 꽂혀있는 게임이나 만화책이라던가, 자리마다 놓여있는 최신식 컴퓨터라던가 하는 부분이 게임 제작 동아리라는 느낌보다는 무슨 작은 게임 업체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시선을 가장 끄는 것은, 다른 것보다도 자리마다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파티션이었다.

“뭔 회사도 아니고 동아리에 파티션이래?”

황당해하는 민준이 입을 열자 파티션 안쪽에서 드르륵 하고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파티션 안쪽에서 한 남학생이 걸어 나왔다.

“어? 누구세요? 저희 부실은 외부자 출입 금지인데?”

“아, 노크하는 걸 깜빡했네. 난 김상혁이고 이쪽은 박민준이라고 해. 우린 선문고등학교에서 왔어.”

“아항···. 그런데 선문고 형들이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

“여기, 게임 제작 동아리 맞지? 우린 선문고 현주 선생님 부탁으로 게임 제작하는 거 도와주러 왔어.”

“제작을요?”

그때 파티션의 다른 편에서 벌떡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녀린 팔이 위로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아! 오빠들이!?”

“네가 서연이니?”

“네!”

그녀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반기자, 방 전체가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오빠들 잠깐만요? 혁찬아?”

“어···.”

“두 분은 선문고 1학년생인데 ‘익스트림 발리볼’의 개발자시래. 내 사촌 언니가 거기 선생님으로 계셔서 내가 어렵게 부탁해서 불러왔어.”

“야! 너는 이런 중요한 일을 상의도 안하고···.”

“오빠, 잠깐만 기다리세요? 지금 금방 음료수 좀 차려올게요?”

혁찬의 말을 생깐 서연은 휙하고 몸을 돌리더니 콧노래를 부르며 방 한구석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보며 상혁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냉장고도 있다니 이 금수저놈들···. 부들부들.”

“그 부들부들 하고 입으로 의성어 내는 것 좀 안하면 안 되냐?”

“이게 내 이번 지도 컨셉이거든?”

“맘대로 해라···.”

상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동안 서연이 음료수를 가져와 두 사람에게 건넸다.

그리고 부실 중앙의 쇼파 테이블로 두 사람을 끌고 가 앉혔다.

“뭐, 일단 난 프로그래밍 쪽 지도  하고 있을게. 진행 쪽은 니가 알아서 해.”

그렇게 말한 민준은 쇼파에서 일어나더니 프로그래머 파트를 맡고 있다는 여학생쪽의 자리로 가버렸다.

그래서 상혁은 서연과 혁찬을 두고 어색한 대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은 1년이지만 내가 더 나이가 많기도 하고, 지도상 편의를 위해서 편하게 말할게. 괜찮을까?”

“그···러, 세요···.”

“뭘 그리 어색해해? 우린 너희를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니까 편하게 대하면 돼. 앞으로 자주 봐야 할 거니까.”

“저는 조금 이해가 안 되요.”

편하게 하라고 말 하자마자, 혁찬은 입을 삐죽 내밀며 상혁에게 말했다.

“뭐가?”

“저희는 저희대로 개발하고 있는데 왜 팀원 한명이 멋대로 외부 인원을 끌어들였는지가 말이죠.”

“뭐, 편하게 생각해. 어찌됐건 우린 게임을 완성한 경험이 있고, 너희는 없잖아. 그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생님이 부탁하신 거 아닐까?”

“익스트림 발리볼요? 그런 거 만들 거였으면 저희도 2개는 만들었을 걸요?”

“호오? 그래?”

순식간에 자신이 만든 게임을 ‘그런 거’ 취급당한 상혁은 화내는 대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근데 왜 안 만들었어?”

“저희는 좀 더 큰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고요. ‘라스트 판타지 택틱스’ 같은 게임요.”

솔직히,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상혁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목표하는 게임이 비쥬얼 노블 장르정도 일 것이라 생각했지 개발인원이 수십 명 들어가는 SRPG장르의 이름이 나올 줄 몰랐다.

‘이거 미친 놈일세? 5명도 안 되는 멤버로 '라스트 판타지 택틱스' 같은걸 만들고 싶다고?’

성대까지 올라온 욕설을 참으며, 상혁은 미소를 유지했다. 어차피 조언 정도만 하러 온 건데, 화내봤자 에너지만 낭비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좋아. 네 말대로 간단한건 만들기 싫어서 그랬다 쳐. 그럼 혹시 네가 만들고 싶은 게임에 대한 기획서가 있니?”

“저희는 빠른 의사결정과 오픈된 아이디어를 지향하기 때문에 문서로 따로 정리하지는 않아요.”

“개 씹. 아니, 흠흠···. 그래···. 빠른 의사 결정 중요하지···.”

“그렇죠? 아이디어는 계속 변화하는 거니까요!”

“그, 그래···. 그럼 혹시 진행된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뭔가를 좀 볼 수 있을까? 우리가 그걸 알아야 도울 수 있을 거 같거든?”

상혁의 말에 혁찬은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더니 구석에서 수십 장의 프린트된 일러스트를 가져왔다.

일러스트를 집어든 상혁은 속으로 또 욕을 퍼부어야했다.

‘이 새끼들은 중학생이 부실에 컬러프린터도 있어?!’

생각할수록 자신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이 비교되어 화가 나는 상혁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혁을 불러낸 장본인인 서연은, 초조한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다···. 뭐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화를 안 내시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 팀의 운영방식은 확실하게 비정상이었다. 그리고 익스트림 발리볼의 개발자 정도의 능력자라면, 그 정도는 쉽게 알아보리라 기대했는데, 그녀가 보기에 상혁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뜻미지근했다.

상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가 작업한 일러스트를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거기엔 2년 동안 컴퓨터 그래픽을 바닥부터 공부하면서 빠르게 급성장한 그녀의 히스토리가, 종이 위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일러스트들을 그녀의 노력의 증거로 생각하는 서연과 다르게, 혁찬은 그 일러스트들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마치 자신이 그리기라도 한 것처럼, 혁찬은 가슴을 피며 상혁에게 말했다.

“어때요? 멋진 컨셉 아닌가요?”

“니가 그렸냐? 왜 니가 자랑스러워 하니?”

“제가 잡은 컨셉을 일러스터가 그림으로 표현한 거니까요. 제 작업물이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상혁은 혁찬의 말을 듣더니 얼굴이 귀까지 빨개졌다.

그리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대가리 박아···.”

“예?! 소리가 작아서 못들었···.”

“대가리 박으라고 이 새끼야!”

거기까지였다.

거기까지가 상혁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한계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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