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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화 (4/485)

003. 개발자 시그니쳐 에디션

상혁은 일주일동안 기본 캐릭터의 도트 스프라이트만을 우선적으로 작업했다.

그렇게 완성한 리소스는 캐릭터 스프라이트 단 하나.

그것도 엄청나게 조악해서 프레임마다 연결도 부드럽지 않고, 애니메이션도 엉성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괴로울 정도의 물건이었다.

아무리 그래픽 전문가가 아니라지만 일반인이 그린것보다도 나을게 없는 조악한 퀄리티에 민준은 황당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걸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민준을 뒤로하고 상혁은 자신이 작업한 리소스를 민준이 추가로 작업한 버전과 합쳐 베타 버전의 ‘익스트림 발리볼’을 만들어냈다.

민준은 굳이 지금 시점에서 베타 버전을 서둘러 완성하는 상혁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후 상혁이 한 행동을 통해서 자기 팀의 기획자가 어떤 식으로 잔머리를 굴렸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상혁이 베타 버전을 반 친구들을 대상으로 풀어버렸던 것이다.

당연히 공짜 게임을 거절할 친구들은 없었고 상혁은 무료로 밸런스 및 버그 테스트를 수행할 충직한 부하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거기에 추가로 그래픽 리소스 까지도.

“상혁아. 이거 ‘바바누바’ 캐릭터 도트 작업한 건데 좀 봐줘.”

게임에 미친 상혁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힘들게 해금한 캐릭터가 육각형이나 팔각형의 도형인 것을 납득하지 못했고, 상혁에게 게임의 버전업을 요구했다.

상혁은 그런 친구들에게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너희들이 캐릭터를 그려보는 건 어때?”

민준이 상혁을 위해 만든 스프라이트 편집기는 완전 초보자가 작업해도 캐릭터의 간단한 애니메이션을 편하게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기에, 딱히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고등학생인 두 사람의 친구들도 편하게 자신만의 캐릭터를 디자인해 넣을 수 있었다.

물론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아니기에 한 캐릭터를 그리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것은 작업에 참가하는 인원의 숫자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는 상혁의 아이디어에 이미 하겠다는 친구들이 넘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해금한 캐릭터를 자신이 디자인할 수 있다는데 흥분해서 멋대로 캐릭터 스프라이트를 작업해 왔고, 상혁은 덕분에 퀄리티는 높지 않더라도 굉장히 다양한 컨셉의 그래픽 리소스를 빠르게 모을 수 있었다.

“상혁아, 30판 넘게 붙었는데 ‘울트론’ 캐릭터로는 ‘파이기’ 절대 못 잡아. 울트론이 해금하기 더 어려운 건 맞는데 좀 심하더라고.”

“그 부분은 성찬이도 이야기하기에 지금 밸런스 검토 중이야.”

거기에 밸런스 테스터들에 의한 피드백까지.

상혁은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민준은 그런 상혁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

“미성년자를 공짜로 착취하는 나쁜 어른?”

“첫 번째로, 나도 쟤네랑 똑같이 미성년자야. 둘째로, 쟤들은 그냥 놀이 차원에서 날 돕는 거고.”

“뭐, 네 잔머리 덕분에 빠르게 진도를 뺄 수 있으니 그거에 대해서는 더 불만을 표하지 않겠어.

어차피 수익이 발생하는 게임도 아니고”

“네 쪽 작업은 어때?”

“애당초 베이스는 금방 완성했으니까, 지금은 버그 잡고 다듬는 거지. 예전처럼 철야 안 해도 한 달이면 완성하고도 남을 걸?”

“생각보다 빠른데?”

“우리가 하는 건 개발이 아니라 제작이니까.”

“제작?”

상혁이 묻자 민준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영화 찍는 사람들은 영화 ‘제작자’라고 하고 애니 만드는 사람들은 애니 ‘제작자’라고 하지? 게임만 ‘개발자’라고 하잖아?”

“그건 그렇지.”

“그건 기본적으로 게임 제작의 상당 부분이 ‘개발’에 할당되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니가 테트리스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테트리스를 만든다고 쳐. 그럼 뭘 새로 만들어야 하지?”

잠시 생각하던 상혁이 답했다.

“레벨별로 블록이 떨어지는 속도, 한 개의 레벨을 클리어 하는데 적절한 총 블록의 개수, 각 블록이 등장하는 패턴의 적절성, 전체 블록의 형태, 레벨 클리어 시에 난쟁이가 중간에 나와서 출 춤의 종류 같은 거?”

“그렇지. 그리고 그런 것들은 어디서 보고 만들 수 없이 전부 새로 만들어야 해. 일반적으로 게임을 제작한다고 하면, 그 시간의 태반은 한 번도 만든 적이 없는 코드를 구축해놓고 돌아가게 하려고 노력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지. 돌리기 전엔 돌아가는지 아무도 확신 못 하는 그런 코드들을.”

“아, 그럼 넌 이미 많은 종류의 시스템을 코딩해보았으니 그런 부분에서 유리하다는 건가?”

“맞아. 거기에 이번엔 피○츄 배구라는 샘플도 있었으니까.”

“그럼 앞으로 개발하는 게임도 어느 정도는 개발 기간 단축을 기대해도 좋다는 이야기지?”

“2020년 기준으로도 너무 혁신적인 것만 만들지 않으면?”

“좋아. 리소스 문제도 해결됐고 프로그래밍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남은 건 배포 계획뿐이군.”

“어. 혹시 계획 잡아둔 거 있어?”

당연한 이야기지만 1998년에는 스팀처럼 자유롭게 자신이 개발한 게임을 인터넷으로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게이머들은 동네마다 있는 게임샵에 가서 게임을 사던가, 아니면 용산에 가서 게임을 사야 했고 그것은 엄청나게 불편한 과정이었다.

“우선은 PC통신 게시판에 업로드를 하려고.”

“오프라인은?”

“우선은 1998년 고등학생들의 놀라운 전파력을 믿어봐야겠지.”

애당초 전생에서 상혁도 친구가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것 같으면 ‘야 나도’ 라는 한마디로 게임을 얻어내곤 했었다.

안쓰럽게도 정품 사용 문화가 더럽게 척박한 시대라 게임 팔아서 돈 벌기는 힘든 시대였지만, 역으로 그만큼 재미만 있으면 전파력은 보장된다는 이야기였다.

상혁은 그 ‘야 나도’의 힘을 믿기로 했다.

***

두 사람의 첫 번째 게임 개발은, 적어도 15년차 개발자인인 두 사람이 판단하기에는 아무런 저항 없이 순탄하게 진행되어갔다.

리소스 조달도 완료되었고 밸런스 테스트도 마무리 단계. 민준의 실력으로 이정도 작은 프로그램의 구조를 탄탄하게 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에 발생하는 버그도 많지 않았다.

사실 버그가 발생할 구석이 많을 정도로 복잡한 게임도 아니었고.

오히려 상혁 같은 경우는 ‘첫 게임이라고 너무 가볍고 만들기 쉬운 게임을 잡은 건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 말은, 수업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두 사람의 고등학생 신분을 감안해도 빡빡하게 잡은 3달의 개발 기간이, 채 두 달밖에 안 된 시점에서 널널하게 남는다는 이야기였다.

무려 회귀하기 전엔 미친 듯이 철야를 하다 과로사까지 한 두 사람으로써는 이런 루즈한 개발 스케줄은 아무리 참으려 해도 버티기가 어려웠다.

결국 두 사람은 두 달만에 게임의 완성 버전을 완성해내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꽤 괜찮은 그래픽의 캐릭터 도트 애니메이션이 들어간 버전을.

물론 전문가가 그리면 전캐릭터 다 합쳐서 한 달도 안걸릴 작업이었지만 상혁은 부족한 실력을 넉넉한 시간으로 해결했다.

아무리 실력이 모자라도 캐릭터 스프라이트 하나 그리는데 한사람이 두 달을 투자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퀄리티는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리는 사람이 게임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퀄리티는 더 올라가는 법이다.

거기에 경쟁이 있으면 더더욱 그렇게 된다.

자신의 친구가 수정한 버전을 상혁은 나머지 친구들에게 그대로 보여주었고 누군가 자신이 그린 캐릭터보다 더 매력적인 도트를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은 자신이 그린 캐릭터를 다시 수정해서 상혁에게 가져왔다.

상혁은 그렇게 친구들을 서로 경쟁시켜 그래픽의 부족한 퀄리티를 끌어올렸다.

그렇기에 완성버전에 들어가는 캐릭터 스프라이트는, 비록 부분 부분적으로 아마추어적인 실력이 보이긴 했어도 그린 사람의 애정이 담뿍 들어간 독특한 매력을 가진 그래픽이 되어있었다.

바로 돈 받고 팔아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마지막 캐릭터의 수정 리소스를 게임에 넣고 돌린 상혁은 이제 게임의 완성단계가 되었음을 깨닫고 민준에게 완성을 통보했다.

게임이 완성되었음을 민준이 상혁에게 알린 다음날의 컴퓨터실.

수업을 마친 상혁과 민준은 컴퓨터실에서 개발용으로 쓰고 있던 자리 근처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시는 코딩 같은 거 안 하겠다.’라고 우기던 민준은 마지막 코드를 컴파일 하면서 고개를 저었고, 상혁은 즐거운 표정으로 그걸 옆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놀리지 마라.”

민준이 미리 선수를 치자, 상혁은 싱글싱글 웃는 표정으로 민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안 놀릴 건데?”

“웃지도 마.”

“안 웃고 있는데?”

“웃고 있잖아!”

“아, 이건 코딩 안한다던 고집스런 친구가 자진해서 게임을 완성한 게 웃겨서 짓는 표정이 아니라, 단순하게 우리 두 사람이 게임을 완성한 게 기뻐서 짓는 미소라고.”

“그것도 하지 마.”

“옙. 파트너가 거슬린다는데 그만 해야죠. 옙.”

두 사람이 떠드는 사이 컴파일이 끝났다.

민준은 완성된 파일을 압축해서 디스켓 3장에 복사한 뒤 상혁에게 건네주었다.

형광색의 투박한 디스켓에는 상혁이 직접 손으로 그린 마스코트 캐릭터와 함께 싸인펜으로 ‘익스트림 발리볼’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만들고 나서 보니 참 조잡하네.”

“돈 받고 팔 것도 아닌데 뭐.”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이제?”

“근처 대학교에 pc통신 되는 카페가 있거든. 거기 가서 업로드 하려고.”

“그래? 그럼 당분간은 작업 없나?”

그렇게 말하며 민준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려다 급하게 표정을 굳혔다.

그러자 자신의 표정을 보면서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상혁의 얼굴이 시선에 들어왔다.

“웃지 말라고.”

“슬슬 인정하지? 너도 나랑 똑같이 일 중독자라는 사실을.”

“야, 과거로 회귀만 안했으면 나도 코딩만 하지는 않았을 거다.”

솔직히, 민준도 중간에 좀 놀아보려고 이것저것 시도를 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애당초 티비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은 예전 생에서 민준이 다 보았던 것들이었고 게임은 최신 게임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민준의 기준에서는 눈이 썩는 것들 뿐이었다.

“최신 게임을 하는데 레트로 게임 하는 기분으로 플레이해야 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데.”

“하긴 PS5 게임을 하던 사람이 PS1 그래픽으로 돌아가는 게 쉬운 건 아니지.”

“차라리 코딩이 제일 재미있더라고. 내가 빨리 작업한 건 순전히 그 것 때문이니까 쓸데없는 오해는 하지 말도록.”

“오케이! 그럼, 내일 같이 갈 거지?”

“PC통신 카페?”

“응.”

“그래. 할 것도 없고, 마침 내일은 주말이니까.”

그때, 이야기하던 두 사람 근처로 한명이 다가왔다.

상혁이나 민준과 같은 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소년은 얼티밋 발리볼의 마지막 베타까지 참여했던 같은 반 친구 창민이었다.

“다 된 거야?”

“응.”

상혁이 웃으며 디스켓 중 한 장을 창민에게 건넸다.

“최종 버전을 우리 학교 컴퓨터실에 까는 영광은 너에게 맡기마.”

“오케이. 오늘 다 깔아둘게. 애들도 좋아할 거야.”

“디스켓은 내일 돌려주면 돼.”

“저, 그게···.”

“어?”

창민이 머뭇거리더니 상혁에게 말했다.

“나 너희 개발하는데 도움 많이 줬지 않냐? 캐릭터도 두 개나 그리고, 테스트도 열심히 했잖아..”

“응. 많이 도와줬지. 음료수라도 사줄까?”

상혁이 말하자 창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 디스켓 내가 가지면 안 될까?”

“뭐하게? 대전용 세이브는 거기 못 담아. 용량 한계까지 꽉 채워놨거든.”

“아니, 게임 자체가 갖고 싶어서.”

“너 집에 컴퓨터 없잖아?”

“한 대 샀어. 이거 하려고.”

“미친, 진짜?!”

상혁의 물음에 창민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은 그런 창민을 보더니 잠시 민준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그리고는 창민이 손에 들고 있는 디스켓을 가져가더니 빈 공간에 싸인을 하고는 민준에게 넘기자, 민준도 빈 공간에 싸인을 했다.

“자. 가져.”

“싸인은 뭐냐? 니네가 무슨 연예인이냐?”

“이 새끼 개발자가 직접 새겨주는 시그니쳐 에디션을 무시하네? 너 임마 그게 나중에 얼마에 팔릴지 니가 어케알아?”

“시그니쳐가 뭐야?”

“싸인이 시그니쳐다. 무식한 고딩아.”

“너희도 고딩이잖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디스켓을 받은 창민은 꽤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상혁과 민준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유저가 자신들의 게임을 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살 정도로 게임을 사랑한다는 느낌은 15년을 개발자로 살았던 전생에는 느끼지 못했던 보람이었기 때문에.

창민은 소중한 것을 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디스켓을 들고 컴퓨터실의 다른 컴퓨터로 향했다.

그리고는 약속한대로 컴퓨터실 전체에 익스트림 발리볼의 최종 버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뭐랄까, 나쁘지 않네.”

그 모습을 보던 상혁이 감상을 내뱉자 민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게임업계에 투신한 2007년 즈음에는 이미 전국에 초고속 인터넷이 쫙 깔려있었고, 대한민국 게임계는 대부분 온라인 게임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15년간, 게임 업계에서 죽어라 일하면서도 유저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게 애당초 유저 간담회 같은걸 하는 중소기업은 아주 적은 데다 대기업에서도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에게 유저가 게임을 설치하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은 특이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과거를 주제로 한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은 그 시점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인터넷이 발전하지 못한 1998년의 대한민국에서 두 사람이 내일 업로드 할 게임이 두 사람의 두 번째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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