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프롤로그
게임은 요물이다.
그것은 주로 생명을 흡수하는 마력처럼 플레이하는 사람의 시간과 돈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지만, 때로는 플레이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요물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마력을 풍기기도 한다.
‘플레이할 때 즐거우니까 만들 때는 더 즐거울 거야.’
수백억이 들어가고 수백 명의 개발 인원이 투입된 화려한 게임의 트레일러는 그 뒤에 감춰진 개발자의 피와 눈물 따위는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하루라도 빨리 업계에 투신해서 나같이 멋진 결과물을 만드는 팀의 일원이 되라고 어린 지망생들을 꾈 뿐이다.
그리고 그런 멋진 꿈을 가지고 업계에 투신한 수많은 개발자들은, 게임 개발이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야근, 철야는 기본이고 월급이 밀리는 것도 다반사에, 힘들게 만들던 프로젝트가 윗선의 한마디나 개발 책임자의 변덕에 의해 갈아엎어진다.
물론 극소수의 누군가는 업계의 최전선에서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게임 시장이 주는 달콤한 과실을 누리며 살곤 한다.
마치 마리오와 젤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처럼,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게임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게임업계 사람들을 희망 고문하며 말려 죽인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기회를 줄게.’
‘다음번엔 네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알면서도 속는 호구가 개발자라는 인종이다.
그리고 이곳, 과로사의 성지 구로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개발자 2명도 그런 희망 고문에 15년째 속고 있는 호구 중의 하나였다.
-타타타타타타탁-
전기세를 아낀답시고 딱 하나만 켜놓은 데다, 수명이 간당간당해서 어슴푸레 빛나고 있는 낡은 형광등 아래서, 오로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부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두운 조명 아래서, 조명보다 더 어두운 다크서클을 한 채로 작업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은 이미 그런 상황이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는 듯 자신들의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올해로 현업 15년 차이며 40세 생일을 얼마 전 맞이한 기획자 이상혁이었다.
벌써 며칠째 뜬눈으로 기획서를 검토하던 그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노려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시발 진짜 좆같아서 못해먹겠네.”
매번 있는 일이기에 건너편에 앉아있던 프로그래머 민준은 그런 상혁의 투정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뜬금없이 왜 그래? 뭐 언제는 안 좋은 적이 있었냐?”
“아냐, 이번엔 좀 특별히 트리플로 좆같애.”
평소엔 ‘더블 좆같아’를 시전 하던 상혁이 ‘트리플 좆같아’를 시전하자 민준은 하던 일을 멈추고 상혁의 자리로 다가갔다.
상혁이 앉은 자리의 모니터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허접해 보이는 기획서가 몇 개 열려있었다.
3년을 진행했다는 프로젝트 치고는 한없이 부실한 기획서들이었다.
마치 누군가 고의로 파일을 누락한 것처럼 몇몇 번호가 비어있는 파일들.
상혁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다가 민준에게 말했다.
기획이 이 수준이면 절대 프로그래밍 파트도 정상은 아닐 터였다.
“너는 어때?”
“서버는 아예 새로 짜야 해. 이거 대부분의 계산이 클라에서 돌아가서 서버로 통지하는 식이라 아마 치트 에디터로도 다 뚫릴걸?”
“너도 좆같은 건 마찬가지겠네.”
이번 프로젝트만 잘 마무리 해주면 개발팀을 통째로 꾸려주겠다는 대표의 말에 속아서 맡은 일이었지만,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상혁은 한숨을 내뱉었다.
누구는 3년 내내 놀면서 일도 제대로 안 하고 월급 타 먹는데, 왜 그 뒷수습은 자신들이 해야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심각한 것은 프로젝트의 상태만이 아니었다.
“근데 너 안색이 왜 그러냐? 좀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아마도···.”
“병원 좀 가라니까?”
“3일째 철야 중인데 병원 갈 시간이 어딨어? 그러는 너나 병원 좀 가라.”
“잊었냐? 나도 같이 철야 중인 거?”
민준은 책상 위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에너지 드링크를 이리 저리 들어보며 남아있는 캔을 찾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면서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비틀.
“민준아! 괜찮아?”
“아냐, 잠깐 어지러워서 그래.”
“너 진짜 오늘은 쉬어라.”
“하던 것만 마무리할게. 그리고 같이 들어가자.”
“아니면 찜질방이라도 갈래?”
“지금 욕탕 들어가면 그대로 익사할 것 같다.”
오늘따라 민준은 몸 상태가 심각함을 느끼고 있었다.
쿵쿵쿵쿵쿵쿵.
마치 귀에 들려올 것 같이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가 느껴지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내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이 느껴진다.
점점 가빠지는 숨결을 느끼며, 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찬바람이라도 쐬야 몸 상태가 조금은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러나 마치 누군가가 강하게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민준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어?!! 시발 뭐야!?! 민준아!? 야 박민준!!!”
시끄럽게 웅웅거리는 소꿉친구의 목소리.
민준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시발···. 좆같은 인생···.’
멍해지는 시야 속으로 애타게 자신을 붙잡고 흔들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민준아! 민준아! 아! 지금 119 부를···. 헉!”
휴대폰을 꺼내려던 상혁은 그대로 폰을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쓰러지기 직전의 민준과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사, 상혁아···?”
“미, 민준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바닥에 쓰러져서 서로를 부르던 두 사람.
민준은 이것이 자신들의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했다.
파릇파릇한 고교 시절에, 상혁을 만나서, 게임업계에 대한 꿈을 가지고 함께 게임 개발자가 되었다.
그리고 업계에서 15년간 원하던 게임 개발은 손도 못 대고 계속 착취만 당하다 과로사.
민준은 생각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대체 왜 자신은 프로그래머가 되려고 한 걸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던 민준의 기억이 자신에게 게임을 만들자고 웃으며 말하던 상혁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민준은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반대편에서 죽어가는 빌어먹을 친구놈이 꼬드긴 것임을···.
“으···. 으으···.”
민준은 남은 힘을 끌어 모아 필사적으로 상혁에게 기어갔다.
상혁은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런 민준을 바라보고 있었다.1
아마도 자신을 걱정해서 죽어가는 몸으로 기어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준이 한 행동은, 상혁이 생각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컥! 미, 민준아?!”
“개, 갯색기. 너···. 니가, 게임···. 꼬시지만···.”
민준은 병아리만한 힘을 끌어 모아서 상혁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는 울면서 속삭였다.
“너,만. 아니었어도···.”
상혁은 민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신도 이런 인생을 맞이하게 될 줄 전혀 몰랐는데···.
“미,안,하다···.”
상혁의 사과를 들은 민준은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업계에서도 같은 날 두 명이 동시에 과로사한 건 처음일 텐데···. 개발자 인터뷰가 아니라 과로사 피해자로 뉴스에 실리겠구나···.’
죽음의 문턱에서, 민준이 느끼는 감각은 생각보다 단순한 감각이었다.
단순한 후회.
이 뭣 같은 게임업계에 대한 회한.
일단 자신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상혁을 만나서 게임 제작자가 될 결심을 하기 전으로 갈 수 있다면, 자신은 절대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을 거라는, 때늦은 결심.
그리고 무엇보다 저 미친 폭주 기관차 같은 기획자 친구랑 절교할 거라는 생각.
그러나 다 부질 없는 생각이다.
인생에 두 번째 기회란 건 없으니까.
그렇게 민준은 조용히 눈을 감고 생을 포기했다.
가장 사이가 좋던 친구, 상혁과 함께.
게임 기획자가 된 지 15년. 구로의 중소기업에서 3달째 철야와 야근을 반복하던 한 평범한 개발자 두 사람의 최후였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선물받고 나서부터 계속 쓰고 있었던 알람시계에서 흘러나오는 전자음에 눈을 뜨기 전 까지는.
민준은 자신이 구로에서 미친 듯이 굴림 당하던 15년 차 프로그래머라고 생각했다.
“여긴···. 내···방?”
익숙한 책상, 그리운 냄새.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끈달린 형광등과 노랗게 물든 벽지.
마치 추억 속 한 장면으로 들어온 것 같은 광경 속에서, 민준은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19···98년?!?”
민준은 깨달았다.
자신이 죽기 직전 생각하던 두 번째 기회가 정말로 찾아왔다는 것을.
1998년.
민준이 상혁을 만났던 그 시절.
자신의 인생을 망가트리는 결정을 내렸던 그 시절로.
민준은, 회귀해버린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이 정말로 회귀한 것인지는 민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민준은 진심을 담아서 이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앞으로의 자신에게 보내는 결심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시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진 모르지만!”
민준은 외쳤다.
“난 두 번 다시 코딩 안 해!”
그렇게 외친 민준은 책장에 걸려있던 프로그래밍 기초 관련 서적을 모두 끈으로 묶었다.
그리고 학교로 향하는 길에 그것을 폐지 수거함에 넣어버렸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새 인생을 살 기회가 온 것이다.
적어도 이번 생에는 프로그래머같은 직업으로 살다가 사축으로 과로사 하는 엔딩은 맞이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회귀한 오늘 날짜에 대해서 자신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침에 교실에서 코딩 관련 서적을 읽고 있던 자신에게, 상혁이 말을 걸고, 함께 게임을 만들어볼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
민준은 거기서 ‘한번 해볼까?’ 라고 했던 게 자신의 인생에 있던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했다.
“이번엔 어림도 없지.”
간단한 일이다.
전생의 기억처럼 상혁이 다가와서 자신에게 “너 프로그래밍 배우는 중이야?” 라고 물어볼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 서적을 다 버려버렸으니까.
학교의 그 누구도 자신이 프로그래밍을 배운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상혁도 자신에게 접근하지 않겠지.
민준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등학생 시절의 앳된 얼굴을 한 상혁이, 대학교 전공서적 수준으로 두꺼운 프로그래밍 책을 자신 앞에 턱 하니 내려놓기 전 까지는···.
“안녕, 민준아?”
“안녕?”
회귀한 시대에서 민준의 소꿉친구인 상혁이 꺼낸 말은 자신이 기억하던 ‘너 프로그래밍 배우는 중이야?’ 가 아니었다.
상혁은 그 말 대신, 엄청나게 확신에 찬 말투로 민준에게 말했다.
마치 ‘너는 당연히 이것을 해야 한다’라는 말투로.
“내가 볼 때 넌 코딩에 재능이 있을 거 같아! 아니, 넌 꼭 코딩을 해야 해! 혹시 코딩 배워볼 생각 없니!?”
민준은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자신의 기억으로, 자신은 절대로 상혁에게 코딩을 배우고 있다고 말 한 적이 없었다.
‘얘가 내가 프로그래밍 공부하는 걸 어떻게 알았지?’
잠시 고민하던 민준은 한 가지 가설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방금 25년의 세월을 넘어 회귀한 민준으로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초현실적인 결론이었다.
‘진짜로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그거 말고는 답이 없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추측이다.
그날 밤 구로에서 죽은 건 자신만이 아니었으니까.
“너···. 혹시···.”
민준의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표정을 본 상혁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상혁도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민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헉?! 시발?! 너?! 혹시!?”
“아니, 진짜로?!”
그리고 정말로 0.1초의 간격도 차이나지 않게, 두 사람은 똑같은 말을 외치고 말았다.
“너도 회귀했냐?!”
“너도 회귀했냐?!”
얄궂은 운명의 신은 사이좋게 구로에서 과로사한 두 사람을 나란히 25년 전 과거로 돌려보냈다.
그것도 전생의 기억을 온전히 갖춘 두 사람을.
격변하는 대한민국 게임 시장의 태동기인 1998년으로 회귀한 15년 차 개발자 이상혁과 박민준은 그렇게 마치 운명처럼 두 번째 인생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