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화. 대종사(大宗師) (2)
퍼버버벅!
묵비의 무형탄은 이제 완성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 강한 관통력을 위해 상황에 따라 철전을 날릴 때도 있었지만, 그게 아닌 경우에는 모조리 무형탄을 날렸다.
몇십 발, 아니 몇백 발을 쏘았는지 알 수가 없다. 옥청의 빈틈을 노리고 공격해 오는 이들까지 겨누었으니, 정말로 수백 발을 쐈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최소의 내공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무형탄을 생성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파괴력 넘치는 구룡파천궁술 없이도 적을 손쉽게 학살하는 신궁(神弓)의 능력이었다.
쿠르르릉!
빈틈이라고 했지만, 옥청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빈틈이 사라졌다. 철마단의 숫자도 줄고 있었거니와 무섭게 달아오른 혼원결에 모든 것을 맡기니, 무당 무공의 정수가 시시각각 몸에 붙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관은 여유롭게 뒷짐까지 진 채 철마단을 분쇄했다. 한 명, 한 명 확실하게 중독시키는 그의 용독술은 검궁(劍弓), 두 사람에게 있어 든든하기 그지없는 방벽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철마단의 숫자가 순식간에 이십여 명으로 줄었다.
철마단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다 같이 도망쳐도 이상하지 않을 학살에 가까운 승부였지만,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들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당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녕 다 죽여야 끝날 승부란 말인가.”
그때였다.
번쩍!
저 멀리서 거대한 무언가가 빠르게 회전하며 남은 철마단원들에게로 날아왔다.
퍼버버버버버벅!
돌풍처럼 날아온 시커먼 거병(巨兵)은 철마단원들이 입은 갑옷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엄청난 무게, 상상을 초월하는 회전, 묵비의 화살 못지않은 속도까지.
한순간 전권을 뚫고 들어온 광룡부에 의해 남은 철마단원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산화해 버렸다.
세 사람이 언덕 위를 바라보았다.
철컹!
회전하며 되돌아온 광룡부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 든 연호정이 말했다.
“다친 사람은 없나?”
당관이 피식 웃었다.
“저것이 이제는 반말도 하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가주님은 털끝 하나 안 다치셨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쪽 싸움은?”
“죽였습니다.”
당관의 눈이 반짝였다.
증오하는 감정을 떠나 적장의 무공은 실로 대단했다. 아직 무극에 오르지 못해 섬세한 가늠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연호정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떻게든 이길 놈이라고 확신은 했지만, 저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다소 지쳐 보이기는 했으나 내외상이 생각보다 훨씬 가벼운 듯했다.
‘괴물 같은 놈.’
파바바박!
세 사람이 단숨에 연호정 옆으로 다가왔다.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좀 힘들긴 하군요.”
묵비의 얼굴에 걱정이 깃들었다.
“잠깐 쉴까요?”
“그럴 수는 없지. 그냥 엄살 한번 부려 봤다.”
연호정의 눈이 저 멀리 대전 방향을 향했다.
거대한 궁전 주변, 희뿌연 연기가 마구 피어오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마기들이 줄줄이 튀어나오고 있다. 어서 가자.”
* * *
카아아아앙!
혁련휘의 마안이 번뜩였다.
단숨에 목을 비틀려 했는데, 목계담의 목을 휘감은 쇠사슬이 끊어져 버렸다.
당연히 사슬을 끊은 사람은 목계담이었다.
부르르.
한차례 몸을 떨던 목계담이 광기 어린 눈으로 혁련휘를 노려보았다.
“천인걸.”
혁련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으로 목계담을 바라볼 뿐.
“이 내가, 그리 쉽게 보이더냐?”
목계담이 무너진 대전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돌무더기가 들썩이더니, 한 자루 길쭉한 언월도가 그의 손에 잡혔다.
중원의 청룡언월도와 거의 흡사한 외양이지만, 칼날이 조금 더 길고 용두(龍頭)가 종을 알 수 없는 짐승의 아가리로 바뀐 것이 달랐다.
그 짐승은 호랑이나 사자, 혹은 늑대와도 닮은 듯했다. 길쭉하게 찢어진 눈 부위에는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그것이 무척이나 불길해 보였다.
혁련휘의 눈에 살기가 담겼다.
‘파천월도(破天月刀)?!’
신마림을 세우신 천요명 선조께서 제련을 시작해, 삼 대 림주께서 완성하신 천혜의 보도(寶刀)이자 절대마병(絶代魔兵)이었다.
넉 자 길이의 시커먼 창봉은 용의 비늘처럼 섬세한 음각이 새겨져 있었고, 두꺼운 칼날은 두 자가 넘었다.
심지어 마수의 대가리도, 칼날까지도 온통 시커멓게 물든 월도.
저 마병에는 성마를 이룬 선대의 마기가 깃들어 있었다. 아무런 충돌 없이 완벽하게 섞여 들어간 마기로 인해, 성마에 이르지 못한 자가 쥐고 휘두르다간 마성(魔性)에 빠져 광인이 되거나 원정을 강탈당해 사망할 수 있는 저주받은 병기였다.
파천, 당대 마도의 하늘인 광혈교를 언젠가 꼭 무너트리겠다는 의지가 서린 병기.
“감히 네놈이 파천월도를 쥐어?”
화르르륵!
파천월도에서 시커먼 불꽃이 아른거렸다.
목계담의 마공이 일으킨 불꽃이 아니었다. 파천월도, 병기 자체에서 뿜어지는 마의 불꽃이었다.
혁련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파아아악!
목계담이 괴성을 지르며 혁련휘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전보다 확연히 빨라진 속도였다. 일순간 거리를 바짝 좁히는데, 딱히 신법이나 보법을 쓰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땅을 박찬 것뿐인데도 저런 속도가 나오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 혁련휘는 목계담의 눈을 바라보았다.
광기로 젖은 그의 눈, 어느새 흰자위도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파천월도의 마기가 삽시간에 목계담의 육신으로 파고든 것이다.
혁련휘가 양손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종횡의 십자(十字)로 휘둘러진 파천월도를 시커멓게 물든 손톱 열 개만으로 막아 낸다.
막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힘이었다.
혁련휘의 몸이 미친 듯이 뒤로 밀려 나갔다. 어떻게든 쓰러지진 않았지만, 감당키 힘든 마력의 충격파에 온몸의 관절이 삐걱대는 듯했다.
“후우우.”
목계담의 입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두 눈은 완전한 흑안(黑眼)이 되었고, 어깨 위로는 붉고 푸른 마기가 흘러나왔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마귀를 보는 듯했다. 지옥의 악졸들을 이끄는 귀장의 모습이 이러할까 싶었다.
혁련휘가 서글픈 눈으로 목계담을 바라보았다.
종횡의 십자참(十字斬). 저것은 자신이 목계담에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일선도법(一線刀法)이었다.
그중 십자참은 일선도법의 시작이자 끝이라, 궁극에 이르면 대륙의 도제(刀帝)와 맞붙어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자신했던 무공이었다.
그 십자의 도법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생사의 싸움에서 불필요한 감정이 자꾸만 가슴을 뒤흔들었다.
“죽어도 파천결을 내놓지는 않겠다, 이거지?”
“…….”
“좋다. 이 자리에서 널 죽이고 네 자식 놈에게 가야겠다.”
목계담이 사악하게 웃으며 파천월도를 들었다.
“걱정하지 마라. 파천결만 토해 내면 네 아들놈에겐 볼일이 없으니, 곧장 너 있는 곳으로 보내…….”
쾅!
짧고 강렬한 폭음과 함께 목계담이 삼 장이나 밀려 나갔다.
마병진기(魔兵眞氣)로 흑안이 된 그의 눈에 놀라움이 일었다.
‘언제?’
그가 혁련휘를 바라보았다.
철컹! 철컹!
혁련휘의 몸에 휘감겨 있던 쇠사슬이 저절로 끊어지며 땅으로 떨어졌다.
우우우우웅!!
섞일 듯 섞이지 않은 수십 가지의 마기가 강제로 묶여 혁련휘의 혈도를 돌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득!
혁련휘의 발밑으로 깊고 굵은 금이 쫙쫙 번졌다.
목계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색색의 마기를 피워 올리는 혁련휘의 육신 뒤로 거대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이룬 기운이 너무나도 거대하고, 이룬 경지가 너무나도 드높아 상단전의 힘까지 개방한 절대고수의 기세와는 달랐다.
뿜어져 나오는 색색의 진기가 높이 솟구치며 실제 육안으로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형상은…….
‘헉!’
목계담이 파천월도를 바라보았다.
파천월도의 칼날을 물고 있는, 불길한 보석을 눈 삼아 번뜩이며 포효하는 마수의 대가리.
다시 혁련휘를 보니, 집채만 한 오색(五色)의 마기가 파천월도의 마수보다 훨씬 더 실감 나는 마수의 형상으로 화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파천월도의 용두는 파천결의 지옥수(地獄獸)를 본떠 만든 것이다.”
혁련휘의 목소리가 동굴 안에서 말하는 것처럼 낮고 거대한 울림을 발했다.
“또한 파천결이란, 신마의 시조 천요명 선사께서 언제고 광혈을 깨부수길 원하시어 후손들이 더 편하게 익힐 수 있도록 개조한 마공이다. 네가 아는 것과 달리 애초에 파천결 자체가 개별적인 마공이란 말이다.”
“뭐, 뭐라고?!”
“이것이 바로 파천결의 원본이다. 안정을 위해 출력을 제한한 파천결과 다른, 극단적인 출력과 절대적인 파괴력을 도모하는 궁극의 반쪽짜리지.”
번쩍!
혁련휘의 눈을 본 목계담은 순간 말 못 할 공포를 느꼈다.
충혈되었던 혁련휘의 눈동자도 오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눈 하나에 몰려든 오색의 마기가 제멋대로 위치를 바꾸며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옛날 광혈의 교주들도 감히 익힐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절대마공, 오색지옥공(五色地獄功)이 바로 이것이다.”
흡정마공으로 수십 명의 마기를 강탈해 강제로 마공을 운용하는 혁련휘였다. 제아무리 지고한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원본 무공의 위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무공의 근본, 내공이 엉망진창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목계담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의 깨달음이 무림 최고를 논하는 수준인 것도 있지만, 애초에 오색지옥공이라는 무공 자체가 대단하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혁련휘를 보던 목계담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미친놈! 그런 힘이 있었으면서도 이 황량한 청해 땅에만 박혀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혁련휘의 얼굴에 씁쓸함이 어렸다.
“이 힘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었다면, 내 어찌 광혈을 찾아가지 않았겠느냐.”
“……?!”
“하늘을 제압할 만한 힘이 있어도 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다면 반쪽짜리에 불과한 법. 내가 마도(魔道)를 내려놓고 순수한 무도(武道)를 추구한 이유가 달리 있었겠느냐?”
목계담의 얼굴에 허망함이 번졌다.
혁련휘가 천천히 어깨를 휘돌렸다.
“설명이 길었구나. 애초에 이 싸움의 주인공은 네놈이 아니야. 슬슬 무대에서 빠지려무나.”
“……뭐?”
카아아앙! 콰드드득!
목계담의 하반신이 땅을 파고들었다.
벼락처럼 다가온 혁련휘가 내리찍은 손을 파천월도의 창봉으로 막았다. 하지만 그 힘을 다 감당하지 못해 몸의 절반이 땅에 파묻혀 버렸다.
목계담의 눈이 몽롱해졌다.
한순간이나마 힘의 끝을 본 그였다.
아니, 마(魔)가 지닌 욕망 가득한 힘을 느낀 그였다. 혁련휘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기를 받아 내니, 그야말로 숨도 못 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파삭!
정신이 붕괴될 것 같다.
목계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혁련휘의 등 뒤에 선 거대한 지옥수의 붉은 눈이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위엄, 그 공포.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한의 절망.
“으아아아아아!!”
혁련휘가 파천월도를 쥐었다.
우두두둑!
끝까지 파천월도를 손에서 놓지 못한 목계담의 두 팔이 통째로 뜯겨 날아갔다.
양팔이 날아갔음에도 목계담은 핏대를 세우며 비명을 질렀다. 육신의 고통 따위는 느끼지도 못한다. 오색지옥공으로 구현된 지옥수를 마주한 공포가 너무 컸던 것이다.
성마를 뚫고 확장된 상단전조차도 버티지 못한다. 오히려 위대한 경지를 뚫었기 때문에, 목계담은 죽지도 못한 채 공포로 떨고 있었다.
혁련휘가 눈을 감고 파천혈도를 휘둘렀다.
서걱.
목계담의 머리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육신과 분리된 머리, 허공을 날아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의 표정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
다시 눈을 뜬 혁련휘가 반파된 대전을 바라보았다.
“이만 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