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화. 대종사(大宗師) (1)
“끝났나.”
수백 개의 관이 어두운 통로로 이동하고 있었다.
“사형.”
목계담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제 막 열 살이 넘은 듯한 소년이 불안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어, 어떻게 해요? 우리 이제 가요?”
“곧 가야지.”
소년은 혁련휘의 막내 제자로, 방원후라는 이름을 썼다.
더 이상 제자를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혁련휘의 마음을 돌려놓을 정도로 방원후의 재능은 뛰어난 것이었다. 정확히는, 근골도 근골이지만 마공을 익히기에 타고난 재목이었다.
그런 방원후를 보는 목계담의 눈은 썩 밝지 못했다.
재능이 출중하다 한들 애는 애다. 귀찮은 혹을 하나 달고 다니는 게 기꺼울 리 없었다. 하물며 이런 순간임에야.
“할 일은 끝났다. 이만 가자.”
“사, 사형.”
“…….”
“저기…… 사부님은요? 다른 사형이랑 사저는…….”
“시끄럽다.”
목계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살고 싶다면 따라와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도 다 큰 성인과 똑같이 대한다. 방원후의 목이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통로에서 나온 목계담은 곧장 대전으로 향하다가 움찔했다.
쿠르릉.
저 멀리서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파.
묵로와 철마단이 침입한 적들과 싸우는 소리일 것이다.
‘…….’
이 정도 충격파라면 그야말로 호각지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적어도 충천하는 기세만 보면 박빙의 승부라 할 만했다.
목계담의 눈이 깊어졌다.
‘늙은이와 동수를 이룰 정도라.’
그냥 자신을 무시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난적이 쳐들어온 모양이었다.
세상에는 참 강자가 많다. 하물며 묵로와 맞붙은 적은 자신보다 어린 나이로 성천에 이름을 올린 희대의 천재라 했다.
‘붙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싸움이란 그런 것이다.
다만…… 묵로가 압도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진정한 강자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상관없어.’
파천결만 손에 넣으면 된다. 지금이야 재능 넘치는 괴물들이 여기저기서 판을 치고 있지만, 파천결만 이 손에 들어오면 그런 괴물들의 정점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목계담이 대전 호위 마인에게 물었다.
“명도강 장로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목계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하고 있는 건가, 그 늙은이는.”
죄수 하나 데리고 오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예전부터 명도강은 게으르기로 유명한 자였다. 그래도 나서야 할 때는 나설 줄 아는 인물이라 함께하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받아 주었거늘, 주인 알기를 개같이 아는 모양인지 간단한 임무도 이렇게나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함헌 장로를 불러라.”
“예.”
그때였다.
‘……?!’
목계담은 저 지하 어딘가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기이한 기운을 느꼈다.
느꼈다 싶은 순간, 그 기운의 주인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였다.
목계담의 무뚝뚝한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쾅! 콰쾅!
대전이 흔들렸다.
대전만이 아니었다. 신마림의 본궁 전체가 흔들렸다. 엄청난 힘이 돌풍을 일으키며 솟구치는데, 그 파괴력이 실로 대단하여 산맥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대체 누구?!’
당황하는 와중에도 목계담은 의아함을 느꼈다.
솟구치는 이 기운의 주인이 누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데, 또한 굉장히 잡스러웠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조각난 시체를 한데 엮어 만든 거대한 시체 덩어리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잡스럽지만 강하고, 불안정하지만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괴물의 등장이었다.
목계담이 놀라서 대전 밖으로 뛰쳐나온 순간.
콰아앙!
굉음과 함께 대전 앞, 중앙 공터에서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마른 장작 같은 손이다. 그 끝에 돋아난 뾰족하고 시커먼 손톱은 광혈교의 이사제장 야혁의 손을 연상시켰다.
쿠구궁!
이내 손 주위로 동그랗게 일어난 땅이 갈라지며 한 명의 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걸레짝이 된 옷은 입었다기보다는 걸쳤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돌가루가 덮인 머리카락은 회색으로 물들었고, 마른 듯 잘 짜인 근육은 노인의 그것 같지 않았다.
“……!!”
처음이었다.
목계담은 마(魔)에 온전히 몸을 담은 이후, 처음으로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푸스스스스.
걸레짝이 된 옷 위로 대충 걸친 쇠사슬이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피부에 휘감기진 않았다. 그저 몸 주변을 배회하는 느낌이랄까. 마치 스스로 살아 있기라도 한 양 노인의 전신을 휘도는 쇠사슬이 철컹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그게 묘하게 섬뜩했다.
쇠사슬만이 아니었다. 노인이 내뿜는 이질적인 기세는 그 밀도가 반선(半仙)에 경지에 달해 있었다.
목계담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천인……!”
“아니지.”
우두둑.
천천히 목을 돌리던 노인이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주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천씨는 버렸다. 나는 신마림주 혁련휘다.”
“……!”
“그렇지 않으냐?”
목계담의 눈이 충혈되었다.
“……어떻게?”
그의 질문에는 많은 의문이 깃들어 있었다.
혁련휘의 눈이 깊어졌다. 목계담처럼 충혈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사이한 기운을 뿜는 눈동자가 압권이었다.
“마(魔)를 알고 싶다 했더냐?”
“…….”
“그럴듯한 환상에 젖어 네놈이 살고 싶은 대로만 사는 것은 마가 아니야.”
“……닥치시오.”
혁련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간 목계담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내지를 뻔했다. 혁련휘에게서 수많은 빈틈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벌하게 예민해진 본능이 움직임을 막았다. 만약 이 순간 공격을 감행했다면 아무 저항도 못 해 보고 치명적인 반격을 당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함정!’
함정이다. 함정이 분명했다.
그저 혁련휘의 무공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상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닐 터다.
이유는 분명했다. 혁련휘의 마기가 지나치게 불안정했기 때문이었다.
마기의 밀도는 높았지만, 그 양은 자신에 비해 한참 모자랐다. 기(氣)만 놓고 따지면 이제 막 무극에 든 고수만도 못하다는 게 목계담의 생각이었다.
다만 상대는 강호 무림 최강을 논하는 반선의 강자였다.
육신과 진기는 저 지경이 되었을지라도 깨달음만큼은 천하 최강에 가장 가까운 이다. 쉽사리 승부를 볼 만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저런 함정은 지속적으로 깔아 둘 것이다. 흔들려선 안 돼!’
혁련휘가 한숨을 쉬었다.
“망가졌구나.”
“…….”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신마림의 역사가, 저주받은 천씨 일가가 아닌 미쳐 버린 머저리의 손으로 끝장이 나게 될 줄 뉘라서 알았던가.”
“닥치시오!”
콰르릉!
목계담의 몸에서 강력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 앞에서 혁련휘의 몸이 비틀거렸다.
목계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혹시나 이기지 못하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지금 저 꼴을 보아하니 패배할 이유가 없는 듯했다.
반면 혁련휘의 눈은 차분했다.
충혈된 눈을 하고서도 감정에 동요가 없다. 아니, 없어 보였다.
“제자는 광혈을 끌어들이고 자식은 그와 맞상대할 고수를 끌어들였구나.”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부터 죽이고, 다 지옥으로 보내 줄 테니까.”
“네놈이?”
혁련휘가 코웃음을 쳤다.
“저 멀리서 광혈의 사제장과 싸우는 이의 기세를 읽었음에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역시 너는 멀었다.”
“닥쳐!”
훅!
무서운 속도로 접근한 목계담이 혁련휘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휘두르기도 전에 퍼부어지는 살기가 훨씬 더 위협적이다. 오 장 거리를 일순간 무(無)로 만들어 버리는 신법도 대단했다.
혁련휘가 눈을 감았다.
콰르르릉!
목계담이 맥없이 튕겨 나가며 대전의 문을 부수고 태사의까지 날아갔다.
“……?!”
목계담의 얼굴에 경악이 깃들었다.
별다른 타격은 받지 않았다. 그저 밀었을 뿐이니까.
내치는 주먹을 너무나도 쉽게 피한 혁련휘가 손으로 가슴을 밀어 냈다. 그 한 번의 밀어 냄으로 여기까지 날아와 버렸다.
다행히 온몸을 꽉 채운 마기 덕에, 대전 문을 부수고 태사의까지 박살 냈음에도 좀 뻐근한 것 말고는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정신적인 충격은 상당했다.
퍼어억!
그리고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들려온 기괴한 소리.
다급히 일어난 목계담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울컥! 울컥!
혁련휘의 악마 같은 손이 호위 마인 하나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한데 목이 잡힌 마인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저 벌벌 떨 뿐인데, 자세히 보니 몸이 서서히 얇아지고 있었다.
훅!
칠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마기가 혁련휘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우윳빛 기운이 혁련휘의 피부로 스며들었다.
마기는 물론 생기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마공을 익히는 자들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파멸의 무학, 흡정마공이었다.
쾅!
분노 가득한 목계담의 진각으로 인해 널따란 대전 벽에 금이 쩍쩍 갔다.
“흡정마공…… 내 알고는 있었지만 진정 위선자가 따로 없구나! 결국 네놈 혼자 독식하기 위해 몇 글자 읽지도 않은 나를 뇌옥에 가뒀었더냐!”
이제야 알겠다. 혁련휘의 저 기괴한 기도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명도강을 비롯한 간수들의 마기와 생기를 모조리 빨아먹은 게 분명했다.
푸스스스.
혁련휘의 손에 잡혀 있던 호위 마인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말이 많구나, 목계담.”
“……!”
“위선자? 독식? 고작 그따위 말이나 지껄여 대는 것이 너의 마(魔)였더냐?”
“이!”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 내 오늘 진정한 마의 끝이 무엇인지 보여 줄 터이니, 주둥이 그만 나불대고 덤비기나 하거라.”
“천인걸!!”
파아아앙!
분노로 가득 찬 목계담의 몸에서 붉고 푸른 두 개의 마기가 불타오르듯 솟구쳤다. 신마림 삼대마공 중 적린마공(赤燐魔功)과 청존대마력(靑尊大魔力)이 동시에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악!”
방원후가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숨었다.
혁련휘의 안광이 번쩍였다.
‘제법이구나.’
신마림의 삼대마공은 중원 정점의 신공절학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만한 난이도의 절학을 두 개나 연마할 수 있는 재능은 천하를 뒤져도 흔치 않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목계담의 재능은 지극히 뛰어난 것이었다.
목계담이 쌍장을 내질렀다.
콰르릉!
우레와 같은 굉음과 함께, 적청의 거대한 장력이 대전 벽을 무너트리며 혁련휘에게 쏟아졌다.
아무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혁련휘.
목계담의 얼굴에 희열이 번질 때였다.
훅!
“……?”
혁련휘의 손짓 한 번에 붉고 푸른 장력이 씻은 듯 사라졌다.
목계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손짓 한 번으로 적린장과 청마신장을 소멸시키다니?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무공이었다.
하지만 혁련휘는 장력을 소멸시킨 게 아니었다.
울컥! 울컥!
혁련휘의 오른손 손등을 따라 꿈틀거리던 핏줄이 그대로 팔을 타고 올라 어깨, 목, 다시 어깨를 지나 왼팔로 내려왔다.
그가 왼손을 들어 목계담에게 겨누었다.
순간 목숨의 위협을 느낀 목계담이 대전 천장을 뚫고 날아올랐다.
콰르르릉!!
적청의 거대한 마력이 허공에 뜬 목계담을 향해 날아갔다.
쾅!
허공답보의 비술로 장력을 피했지만, 피했다 싶은 순간 장력이 폭발을 일으켰다.
그 엄청난 위력에 목계담의 신형이 대전 앞 바닥으로 추락했다. 설마 허공에서 폭발을 일으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벌떡 일어난 목계담.
키이이이이잉!
순간을 노리고 날아든 쇠사슬이 단박에 그의 목을 휘감았다.
목계담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혁련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무 쉬워서 현기증이 나는 승부는 또 처음이구나, 애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