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925화 (925/963)

925화. 천적(天敵) (6)

퍼억!

막원의 가슴에 세 갈래 상처가 났다.

고랑이 파이듯 뜯겨 나간 상처였다. 마치 맹수의 앞발에 맞은 것 같았다.

쾅!

복부에 박힌 철봉에서 무시무시한 발경이 터졌다. 야혁이 피를 토하며 밀려 나갔다.

막원은 침착하게 가슴의 혈도를 짚어 출혈을 막았다.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아프다고 엄살이나 떨 때가 아니었다.

“이놈!”

입가의 피를 닦은 야혁이 또 한 번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야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변칙적인 공격을 유도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본능의 무공, 야수 같은 몸놀림으로 막원의 공격을 회피하거나 맞받아친 적은 있어도 속임수를 쓰거나 허초를 남발한 적은 없었다.

‘정말 짐승과 싸우는 것 같군.’

부와아악!

휘두르는 손끝에서 종이 찢기는 소리가 났다.

위협적으로 날이 선 시커먼 손톱은 강철보다도 더 단단한 것 같았다. 짐승의 발톱보다 훨씬 더 높은 강도에 강력한 마기까지 깃들어 있으니, 그야말로 장인이 만든 신병이기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카아아앙!

철봉이 부러질 듯 휘어졌다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쾅!

철인각(鐵印脚)으로 야혁의 복부를 갈겼는데, 발끝에서 상당한 고통이 밀려왔다.

사람 몸이 아니라 두꺼운 철문을 걷어찬 것만 같다. 극단적인 진기를 담아 내치는 공격이 아니면 그럴듯한 충격도 주지 못했다.

야혁이 씨익 웃으며 양팔을 마구 휘둘렀다.

쩌저저저정!

빠르다.

몸놀림도 그랬지만, 손톱을 휘두르는 속도 역시 쾌검의 달인처럼 빨랐다.

침착하게 야혁의 공격을 막아 내던 막원이 후방으로 물러났다.

야혁이 버럭 소리쳤다.

“제대로 싸우지 못하겠느냐!”

그 한마디가 곧 야혁의 성격과 무공을 대변하고 있었다.

야혁은 속임수 따위는 쓰지 않았다. 그저 공격 일변도의 무공으로 상대를 몰아치는데, 피한 적은 있어도 제대로 된 방어초를 구사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단단한 몸을 믿고 공격만 한다기에는 움직임이 너무 직선적이었다. 더하여 진짜로 몸의 내구도를 믿었다면 굳이 피할 필요도 없었다.

‘진짜 짐승이다.’

짐승끼리 싸울 땐 무림인처럼 허초로 속이거나 상대를 유인하는 등의 일 따위는 없다.

싸움을 최대한 피할 뿐, 한번 싸움이 시작되면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것이 전부다. 다소 위험할 것 같은 공격은 본능적으로 피하고, 그 외에는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이빨을 들이댈 뿐이다.

‘독특하군.’

저런 단순함으로 어떻게 무극을 뚫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어쩌면 무극을 뚫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저런 성향으로 굳어졌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마공만의 독특한 경지 상승법이 존재한다거나.

‘어쨌든.’

막원의 눈이 번뜩였다.

‘짐승이란 말이지.’

파아아앙!

야혁이 몸을 한껏 웅크렸다.

피슉!

돌풍을 일으키며 쏘아진 철봉이 그의 어깨에 상처를 내고 날아갔다.

일순간 쏘아 낸 철봉은 마치 비검술과 같았다. 천무신병기의 강력한 역장을 뭉쳐 놓은 철봉, 스치지 않았음에도 무서운 발경이 서려 있어 야혁의 어깨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놓았다.

“이노옴!”

파아아아아앙!

어깨를 다쳤지만 휘두르는 데엔 전혀 문제가 없다. 야혁은 야수마공상의 유일무이한 공격 수단, 백팔야수기(百八野獸技)를 쏟아 냈다.

퍼퍼펑! 사악!

기본적으로 야수마공에 권법은 없다.

손아귀에 걸리는 모든 것을 뚫고, 찢고 해체한다. 강력한 힘으로 적을 분쇄하는 것이 야수마공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단순하지만 강했다. 순수한 완력으로는 전 무림 최강을 논해도 이상하지 않다. 야수마공을 대성하는 순간, 뼈의 골밀도와 근육의 구조까지도 짐승처럼 변하기 때문이었다.

퍼어억! 찌이이이이익!

양팔에 천무신병기를 집약시켜 조법(爪法)을 막았지만, 그 힘이 너무 강해서 뒤로 십여 장이나 밀려 나갔다.

한껏 집중한 내공 방패도 박살 나 버렸다. 소맷자락은 다 찢어졌고, 팔뚝에도 작은 상처가 났다.

하지만 막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크허어엉!!

이제는 정말 짐승이라도 된 듯 거친 포효를 터트리며 달려온다.

그 소리가 진짜 호랑이의 포효처럼 들렸다. 쩍 벌린 입 안으로 보이는 송곳니도 유난히 도드라진 것 같았다.

‘좋군.’

막원이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연호정이 황룡에 올랐을 적, 그는 단검을 들고 그와 비무를 벌였다.

단검 역시 훌륭한 병기다. 특히나 상대의 완력이 자신을 압도하는 경우, 굳이 중장병을 쓸 이유가 없다.

그리고 막원은 고수였다. 백병을 수족처럼 다룰 수 있는, 당금 무림에서 병기에 관한 최고의 달인이 그였다.

파아아악!

거치적거리는 장병을 던져 버리고 역수로 단검을 쥔 막원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쾅!

야혁 역시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탄력이 어찌나 좋은지,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막원 근처로 옮겨 갔다.

그때, 막원이 무서운 속도로 단검을 휘둘렀다.

퍼버버버벅!

양팔로 막원의 공격을 막아 내던 야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위보다도 단단한 양팔에 수십 개의 검상이 생겼다. 근육을 끊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너무 쉽게 상처가 난 것이 충격적이었다.

터어엉! 터엉!

허공을 박차는 막원의 몸놀림은 그야말로 한 마리 새를 연상케 했다.

한순간 야혁의 전방에서 사라진 막원이 부드럽게 그의 뒤로 돌아갔다.

야혁은 깜짝 놀랐다.

허공답보라면 그 역시 못할 바가 없지만, 막원처럼 자유롭게 허공을 노니는 건 불가능했다. 저 무당의 제운종이나 곤륜의 운룡대팔식이 아니면 이와 같은 몸놀림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파악!

야혁의 굽은 등과 목을 짚은 막원이 순식간에 왼팔로 그의 목을 휘감았다.

“크아아아!”

야혁이 팔다리를 마구 휘둘렀다.

놀랍게도 야혁의 손은 제 뒤에 매달린 막원에게 잘 닿지 않았다.

야수마공은 경지가 깊어질수록 신체를 짐승의 몸처럼 변화시킨다. 근육 다발이 세밀해지면서 많아지고, 골격은 굽어지는 대신 더 굵고 단단해지는 것이다.

덕분에 폭발적인 힘과 체력을 얻을 수 있지만,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처럼 어깨를 돌리기는 힘들어진다.

당연하게도, 진짜 네발 달린 짐승은 아닌지라 야혁의 굵고 길쭉한 팔이 점차 막원의 등을 긁기 시작했다.

찌익! 찌이이이익!

두 번의 긁힘. 위력은 크지 않았다.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막원의 단검에서 은백색 찬연한 광채가 뿜어졌다.

퍼버버버버벅!

옆구리부터 갈빗대 위아래를 쾌속하게 찌르고 들어가는 단검술.

“으아아악!”

야혁이 마구 버둥거렸다. 그 힘이 어찌나 센지, 무극에 도달한 막원조차도 목을 휘감은 팔이 풀릴 뻔한 것을 느꼈다.

파아악!

대충 십여 번을 찌른 막원이 팔을 풀고 야혁의 등에서 떨어지려 했다.

그때, 야혁의 굵직한 손이 그의 팔뚝을 잡았다.

막원이 기다렸다는 듯 단검을 역수로 돌려 야혁의 손목을 찍어 버렸다.

푸욱!

“크윽!”

뼈와 뼈 사이를 정확하게 가르고 들어가는 단검.

그 한 번의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 삼 할이 넘는 공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야혁이 버둥거리며 대지로 떨어졌다.

투웅!

허공을 날아 바닥에 착지한 막원.

콰앙!

볼썽사납게 추락한 야혁.

그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퍼어어엉!

무서운 힘으로 땅을 박찬 막원이 어느새 바르게 쥔 단검을 엄청난 속도로 휘둘렀다.

단검은 말 그대로 짧은 검이었다. 단검술을 위한 무공을 굳이 창안할 필요 없이, 그 자신이 알고 있는 참혼검법(斬魂劍法)을 펼치면 그만이었다.

평범한 장검으로 구사할 때보다 위력은 줄어든 대신 두 배는 더 빠르고, 세 배는 더 교묘해졌다.

파바바바바박!

야혁의 온몸에 그물 같은 검상이 새겨졌다.

힘을 다한 강검(强劍)이 아니기 때문에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그러나 같은 부위에 같은 초식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때려 박은 탓에 야혁이 받는 고통은 상당했다.

“크아아아!”

콰쾅!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두 손에 무서운 마기가 서려 있다. 단검에 손목이 찔렸는데도 어떻게든 휘두르는 게 가능한 모양이었다.

참혼검법의 경력이 모조리 박살 나며 막원의 몸까지 튕겨 냈다.

이제 내 차례라는 듯 야혁이 살기를 흩뿌리며 달려드는 그 순간.

번쩍!

막원의 몸에서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이 어찌나 밝고 강했는지, 야혁은 한순간 두 눈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물러나야 했다.

후욱!

양팔과 두 다리로 미친 듯이 속도를 줄인 야혁은 또 한 번 경악했다.

콰르르릉!

은백색 찬연한 광채를 몸에 두른 막원의 기세가 삽시간에 증폭되었다.

야혁이 입을 쩍 벌렸다.

‘뭐야!?’

순간적으로 증폭된 막원의 기세는 종전보다 두 배 이상의 힘을 내고 있었다.

‘마력 증폭?!’

광혈교에도 저와 비슷한 증폭기가 있었다.

하지만 막원처럼 순간적인, 그리고 부드러운 진기의 폭발은 불가능했다. 무공의 위력이 두 배가 되는 건 아니지만, 이 기세로 볼 때 조금 전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무공을 구현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오랜만이군.’

천무신병기의 비기, 천무병장공(天武兵將功)의 개방이었다. 쓸 수 있는 모든 내력을 폭발시켜 순간적으로 신체와 내력, 신경의 강화를 도모하는 비술이었다.

다만, 비기라고 한들 무(武)의 이치에 통달한 성천급의 강자에게는 조금 더 강한 필살기에 그칠 것이다. 신체, 내공, 신경을 강화해 두 배의 힘을 낸다고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야혁에게는 통한다.

막원은 확신했고, 그의 확신은 곧바로 현실로 드러났다.

파아아아악!

더 빠른 속도로 접근한 막원이, 이전보다 더 빨라진 참혼검법을 구사했다.

파바바바바박!

“크윽!”

야혁이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다.

온몸이 바위처럼 단단했지만, 증폭된 내력 앞에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애초에 몸의 경도를 이만큼이나 올리며 신체의 구조까지 바꾸는 야수마공 자체가 정상이 아니었다. 정상이 아닌 무공으로 궁극에 영역에 도달해 보았자, 그 무공을 버릴 만큼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한 야혁의 한계는 명확했다.

강한 힘으로 부딪치는 전면전에서는 누구보다도 강하지만, 결국 단단한 것은 더 단단한 것 앞에서 부러지기 마련인바. 극단적인 공격력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야혁에게 있어, 순간적으로 두 배의 출력을 보장하는 비기가 있는 막원은 말 그대로 천적(天敵)에 가까웠다.

쩌저저저정!

시커먼 손톱과 단검이 부딪치며 화려한 불똥이 튀었다.

그전에는 힘에서 밀렸지만, 이제는 밀리지 않는다. 증폭된 내력으로 맞상대하니 야혁의 비상식적인 힘에도 맞설 수 있는 것이다.

힘은 비슷했고, 속도는 훨씬 더 빨랐다. 야혁의 몸이 점점 피로 물들었다.

쩌저정! 퍽! 쩌저저저정! 퍽!

수없이 부딪치다가도 빈틈을 노리고 쑤셔지는 단검에 야혁의 복부에 엄청난 자상이 생겼다.

야수마공의 회복력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피를 토하고 죽었을 것이다. 몇 번이나 칼에 찔리고도 기량이 떨어지지 않는 야혁도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였다.

쩌저정! 터어엉!

참혼검법만 구사하던 막원이 야혁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부우웅! 쾅!

허공을 돈 야혁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신기(神技)에 가까운 금나수였다.

순식간에 야혁을 땅에 눕힌 막원이 역수로 쥔 단검으로 그의 겨드랑이를 찍고는 그대로 그어 버렸다.

촤아아악!

“크윽!”

이를 악문 야혁이 무릎으로 막원의 상체를 찍었다.

쾅!

막원이 답답한 신음과 함께 밀려났다. 맞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기어이 참고 공격한 것이다.

천무병장공이 흔들리고, 뿜어져 나오던 기세가 확 줄어들었다.

주르륵.

야혁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겨드랑이는 급소다. 혈을 짚어 지혈하기 애매한 부위였다. 진기로 피부와 근육을 조였지만, 다량의 혈관이 베인 탓에 전투 속행이 불가능했다.

“후우. 후우.”

한차례 숨을 몰아쉰 막원이 재차 땅을 박차려 할 때였다.

“헉!”

야혁이 깜짝 놀란 눈으로 신마림의 본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늙은이?!”

훅!

빈틈을 노리고 접근한 막원이 그의 가슴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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