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화. 속전속결 (2)
본디 연호정이 창안하여 손에 넣은 부법의 초식은 일곱 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두 개의 초식을 추가했다.
사실 말이 초식이지, 추가된 두 가지 초식은 깨달음의 구현에 가까웠다.
도끼든 검이든 창이든 낫이든, 궁극에 이르면 제각기 특성에 맞는 한계 지점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두 가지 초식만큼은 도끼로 펼치지 않아도 되었다. 결국 무(武)라는 것도 하늘에 오른 뒤엔 구분을 두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일곱 초식 역시 초식이라는 말을 붙이기 애매할 정도로 간단한 투로를 자랑했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병임을 떠나, 도끼란 휘둘러서 찍어 내거나 힘을 더해 베어 내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광룡부든 흑백쌍룡부든, 길이와 무게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도끼다.
오히려 그 세 자루의 도끼를 사신무에 녹여 휘둘러 댄 연호정이 비상식적인 것이었다. 쌍룡부까지야 그럴 수 있다지만, 천하에 어떤 고수가 있어 팔십 근이 넘는 광룡부를 쾌검의 달인처럼 휘둘러 댈 수 있겠는가.
또한, 연호정은 광룡부를 언제나 그리 과격하게 휘두르진 않았다. 단 일격에 끝낼 수 있다면 굳이 화려한 공격을 구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잡한 초식, 단순한 일격, 기를 이용한 기공술, 그 모든 것을 펼쳐 본 수백 번의 싸움.
그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지금의 연호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연호정이었기에, 모든 것을 겪고 올라와 황룡까지 이른 연호정이었기에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무엇보다 강력한 무공, 광풍구룡살을 만들 수 있었다.
단순하고 위력적인 도끼질.
그 안에 자신의 기세와 상상력을 담아낼 수 있는 의지.
광룡부라는 희대의 병기가, 광풍구룡살의 일초 무참(舞斬)을 휘둘렀다.
번쩍!
한 줄기 거대한 빛의 무리가 반경 오 장 너비를 갈라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참격이지만, 어쩐지 그 일격을 풀어 낸 연호정의 동작은 춤을 추는 무희처럼 아름답고 역동적으로 보였다.
쩌어어어어어어엉!!
튕겨 나간 이후에야 무시무시한 공명음이 터졌다. 독고저를 든 손을 다른 손으로 덮어 가면서 한계까지 진기를 끌어올렸음에도 혈승의 몸은 십여 장 너머로 튕겨 나가고야 말았다.
촤아아악!
안타깝게도 대금불은 혈승처럼 막아 내지는 못했다.
어느새 뽑아 든 붉은색 석장으로 막긴 했으나, 무참의 공격력은 석장을 밀어 내고 그의 오른팔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야 말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참격을 따라 폭발한 충격파가 대금불의 몸을 이십여 장 너머로 날려 보내기까지 했다.
쿠르르릉.
단 한 번의 역동적인 휘두름.
그 여파는 엄청났다. 휘둘러진 광룡부 앞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공으로 파괴력을 올릴 필요 없이 그저 도끼라는 병기에 가장 어울리는 힘을 담아 내치니, 충격파가 뒤따라오며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 버린다.
이것이 바로 광풍구룡살의 일초 무참이었다.
‘엄청나구만.’
정작 광풍구룡살을 실전에서 처음 써 본 연호정조차 당황했다.
충분히 두 사람을 튕겨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튕겨 낸 게 아니라 날려 보낸 수준이었다.
‘황룡공이 아무리 뛰어난 절기라도 이런 힘을 낼 수가 있나?’
그때였다.
번쩍!
머리 한구석에서 불꽃이 튀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
황룡신왕공은 천하제일의 신공이다.
하지만 천하제일의 신공을 익힌다고 천하제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천하제이, 제삼, 제사의 신공을 익힌 자에게도 죽을 수 있는 것이 무림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경험, 그날의 몸 상태, 정신력, 환경, 실수, 운 등등 온갖 요소가 작용한다.
그것은 세상 누구보다도 많이 싸워 온 연호정이 질릴 만큼 잘 알고 있는 요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몸 상태는 살펴야 한다.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 운은 따라 주면 좋고, 따라 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정신력과 환경은?
‘광풍과 금룡이무, 용형보는 전부 황룡에서 기인했다.’
황룡으로 오를 수 있었던 건 깨달음 덕분이다.
깨달음, 정신력.
광풍과 금룡이무의 초식이 단순해진 것은 복잡한 초식 운용이 필요 없을 만큼의 경험과 깨달음이 쌓인 까닭도 있지만, 이제는 투로보다 정신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단전!’
단 한 번의 휘두름.
도끼를 한 번 휘두를 때 어떤 각오로 휘두르는가.
어떤 상상을 하며 휘두르는가, 이 초식의 이름이 무참인 이유는 무엇인가.
비로소 연호정은 깨달았다. 몸은 알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몰랐던 것을 그 순간 완전하게 이해했다.
‘나는 이미 상식에서 벗어났다.’
상단전의 힘과 황룡공이 공명한다.
원래 황룡공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황룡공의 운용은 전적으로 연호정이 해석한 무공이다.
‘어떤 기세로, 어떻게 휘두르는가. 나의 정신과 집중도에 따라 나의 무공은 완전히 다른 무공이 된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편차가 크다.
이 수준에서 보일 수 없는 힘을 낼 수도 있고, 이 수준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조잡한 무공을 구현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환경적인 요인으로 승패가 날 수도,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집중력이 강하고 의지가 확고하다면 어떤 복잡한 환경에서의 싸움이라도 이 초원에서의 싸움과 다를 것 없는 양상을 보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은, 연호정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번쩍!
창조한 무공의 일초를 펼친 것만으로 그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본 것이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니면 무엇이랴.
파아아아악!
그 깨달음의 순간은 영원과도 같은 찰나였다. 홀로 그 많은 것을 머리에 담았지만, 흐르는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불과했다.
어느새 혈승이 독고저를 쥐고 달려들고 있었다. 연호정의 압도적인 일격을 막은 것만으로도 내부가 진탕되었지만, 그럼에도 혈음보리신공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혈승의 존재는 엄청난 위협이었다.
파아아아!
뇌음천보경으로 날아온 혈승이 우장을 펼쳤다.
순간 연호정은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드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연호정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아아.
붉은 피부에 입술 밖으로 거대한 송곳니가 비어져 나온 악불의 환상이 일었다. 그 악불이 동굴과도 같은 목소리로 신음을 흘리며 오른손을 내밀고 있는 듯했다.
무시무시한 무공이었다. 연호정의 일격을 맞고 비로소 정신을 차린 혈승이 구사하는 소뢰음사 최강의 장법, 혈수대장공(血樹大掌功)이었다.
피할 곳이 없었다. 발 한 번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손바닥 전체에서 뿜어지는 공력이 해일을 방불케 했다.
연호정이 좌장을 내질렀다. 금룡번천장이었다.
콰아앙!
장력 대 장력이 만나 거대한 폭풍을 일으켰다.
인간을 넘어선 무신들의 격전. 반경 십여 장의 땅이 갈라지며 조금씩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강하다.’
용형칠기보로 남은 충격을 상쇄한 연호정이 대금불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석장을 고쳐 쥐고 달려드는 대금불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두 초고수가 맞붙어 동수를 이뤄 낼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포착.’
연호정이 입을 달싹였다.
“광풍섬(狂風閃).”
광풍구룡살 사초 광풍섬.
이기어검(以氣馭劍)의 비기였다.
쿠르르릉!
연호정의 머리 위로 무시무시한 돌풍이 일었다.
의념이 이는 순간, 흑백쌍룡부가 제각기 회전하며 거대한 회오리를 일으켰다.
바람은 육안에 보이지 않는 법. 초원의 모래바람이 돌풍을 따라 치솟으며 흙색 용권풍을 만들었다.
그 용권풍 두 줄기가 휘어지며 대금불에게로 날아갔다.
쩌저저저저저저정! 퍼어엉!
미친 듯이 회전하는 두 개의 도끼를 석장 한 자루로 어떻게든 막았지만, 돌풍이 끌고 온 충격파까지 막지는 못했다.
진정한 자연재해를 맞닥뜨린 대금불은 그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한번 튕겨 나가고 말았다.
그 거리가 무려 이십여 장에 육박했다. 내공으로 육신을 무겁게 만들지 않았다면 더 멀리 날아갔을 것이다.
카아앙!
어느새 다가온 독고저가 광룡부의 창대에 막혔다.
쩌저저저정!
짧은 독고저를 단검처럼 휘두르는데, 정말이지 이렇게나 빠르고 유연한 단검술은 연호정도 본 적이 없었다.
도끼를 휘두를 새가 없었다. 단순하지만 압도적인 빠르기로 연호정의 공격 기회를 차단한 혈승이 오른손 검지를 폈다.
피잉! 퍼억!
광룡부의 도끼날을 스치고 날아간 혈음지(血飮指)의 공력이 저 멀리 만독십방벽의 천장을 뚫고 소멸했다.
혈승 정도의 고수라면 기공으로 만독십방벽을 뚫을 수 있다.
그것을 확인한 혈승이 버럭 외쳤다.
“대금불은 나한, 나찰과 함께 저 독구름부터 치워 버려라!”
그 외침 이전에 이미 십방벽 앞에 도달한 홍나한과 나찰군들은 쉽사리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전진은커녕 자꾸만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오 장 안쪽으로 들어가는 순간 흘러나온 무형의 독기가 그들 전부를 중독시켰기 때문이었다.
하독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융해삼생공에서 흘러나온 독기가 서서히 흩어지는 구간이 오 장 거리인데, 그 안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중독 증세를 겪는 것이다.
“커헉!”
“쿨록!”
내력이 약한 나찰 십여 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죽진 않았지만, 체내의 독기가 내장까지 파고들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혈승은 믿을 수가 없었다.
‘저런 지독한!’
저 안에 암왕이라도 있는 것인가?
“공격해라! 대금불 자네의 기공이라면 뚫을……!”
콰릉!
말을 하다 만 혈승이 답답한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단타로 친 금룡진악권이 공기를 빨아들이며 혈승의 호흡을 방해한 것이다. 더하여 중간 타점에서 폭발한 권풍이 그의 몸까지 뒤로 날려 버렸다.
‘이런 미친!’
혈승은 믿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이 동대륙의 강자는 경지 면에서 자신과 차이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기가 찰 지경인데, 그 경지에서 보일 수 없는 무공으로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혈승이 이를 악물었다.
천효락만 가로채고 나면 이놈들과는 싸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한번 자존심에 상처를 입자, 어떻게든 이놈을 죽이지 않고선 분이 풀리지 않을 듯싶었다.
“이놈!”
혈수대장공으로 연호정을 물러나게 한 그가 목에 걸린 염주를 끊었다.
촤르르르륵!
줄이 끊어졌는데도 떨어지는 구슬이 없었다. 혈승의 독문병기, 독고저에 이은 백팔적공주(百八勣功珠)였다.
“열 합 내로 죽여 주마!”
그때였다.
‘……?!’
백팔적공주로 쏟아부은 혈음보리진기가 중간에서 툭툭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쿵!
무서운 진각과 함께 탄력적으로 허리를 돌린 연호정이 정직한 일권을 내질렀다.
투로는 정직했지만, 뿜어져 나오는 공력은 태산과도 같았다. 혈승은 당황하여 뇌음천보경으로 회피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콰아아앙!
독고저 하나로 금룡진악권을 막은 혈승의 코와 입에서 핏물이 터졌다.
치익!
땅에 떨어진 핏물에서 고약한 냄새를 동반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
혈승의 얼굴이 당황으로 굳어졌다. 이미 한 차례 해독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극에 이른 당가의 독이다.”
혈승은 깜짝 놀랐다. 어느새 연호정이 후측방에서 나타나 광룡부를 어깨 뒤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호정이 차갑게 말했다.
“십 합은 무슨.”
번쩍!!
벼락처럼 떨어진 참격이 혈승의 독고저를 반으로 쪼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