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3화. 갈등의 씨앗 (9)
제갈문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디 소속이라고?”
군사부 무인이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정확히는, 생각지도 못한 조직 출신이었다.
“……우연인가?”
아니겠지.
가만히 허공을 노려보던 제갈문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어디에 있다고?”
“아직 입맹 전입니다. 어지간하면 들이라고 할 텐데 신분이 신분인지라…….”
찾아온 손님을 차별 없이 대하라고 엄포를 놓기에는 상대의 신분이 지나치게 의외였다.
“일단 외전 객당으로 들여라. 그리고 검룡단(劍龍團) 전원을 객당으로 보내라. 명목은 호위이고, 실제는 감시다.”
“알겠습니다.”
맹주 선출에 관해 본격적인 얘기가 나올 시기.
당연히 여러 사람이 모일 수밖에 없는 시기지만, 설마 ‘그곳’에서 사람을 보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봉공과 장로 모두를 무성전으로 소집해라. 긴급 소집이다.”
* * *
재회의 즐거움을 나눌 새가 없었다.
“신마림(神魔林)……?”
“그렇소.”
연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관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마선(魔仙) 혁련휘가 미지의 영역에서 궁전을 짓고 산다는 얘기만 전해졌을 뿐, 실제로 그가 어디에 거하는지, 얼마나 많은 마도 세력을 품고 사는지는 아무도 모르오.”
“그렇소. 아니, 애초에 그 얘기 자체가 허황된 것이라 믿는 사람이 대다수요.”
“그럴 수밖에. 마인(魔人)을 보는 세상 사람들의 인식은 하나요. 절대악(絶對樂)이지.”
마(魔).
마라는 글자 자체가 마귀, 귀신을 뜻한다.
다만 강호 무림에서의 마인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마귀 같은 놈이라는 뜻도 있지만, ‘마공을 연성하여 피와 살육에 미친 살인귀’에 가까운 뜻을 지닌다.
물론 마공을 연성한 것만으로도 마인이라고 부르기는 한다. 아마 마공을 연성한 자들 중에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마공을 익힌 순간, 이미 무림인들의 시선은 고울 수가 없었다.
마공은 선천적으로 사람의 정신을 좀먹고 파괴 충동을 끌어 올린다. 아무리 강함에 목말랐다고는 해도, 그런 불안정하고 난폭한 공부를 익혔으니 어찌 좋게 봐 줄 수 있겠는가.
“진정 마선이 마도의 명맥을 이은 정통 마인이라면, 그의 휘하에 마인들이 몰려드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오. 하지만…….”
“근본적으로 마인들은 불안정성을 가진 이들이오. 윗사람이 아무리 대단해도, 아무 불만 없이 왕으로 모시며 살 수는 없었을 거요.”
“음.”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연위가 연호정에게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연호정이 한숨을 쉬었다.
“제 생각이 어떤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딱히 이렇다 할 생각도 없고요. 애초에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게 없으니까요.”
연호정은 흑암제 시절을 떠올렸다.
사음교의 대대적인 중원 침공으로 세상이 전화에 휩쓸렸을 때.
연호정 역시 마인과 만난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소속 없이 떠돌아다니는 마인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강호인들의 선입관과 전혀 달랐다.
물론 마공을 잘못 연성하거나, 시작부터 불완전한 마공을 익히면 한순간 미치광이가 되거나 폐인이 될 수 있다. 심한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즉사하기도 한다. 기실 그런 사람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마공을 익혔다고 꼭 미치광이가 되라는 법은 없었다.
“마공은 근본적으로 순천의 신공들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올바른 호흡으로 탁기를 제거해 최대한 순수한 기운으로 정제, 축기하여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는 것이 정석의 무공이라면, 마공은 탁기를 끌어안고 중단전을 자극하여 온갖 음적(陰的)인 의념을 끌어모아 자연기(自然氣)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기운을 생성하는 것입니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천(逆天)이지. 애초에 진기 순환의 방식 자체가 반대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공은 위험합니다. 중단전을 자극하여 의념을 증폭하고 더 많은 기운을 얻어 내기에 성취가 빠른 대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진 혀가 섬세한 맛을 느끼지 못하듯 살인이나 폭행 등에 대한 죄책감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혀가 그런 맛을 느꼈다는 사실조차 까먹어 버리죠.”
순천의 신공을 익혀도 범죄 행위에 익숙해지면 살인이고 폭행이고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마인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가 악랄한 행위를 ‘비도덕적’이라 인식이라도 한다면, 마공을 익힌 마인들은 그런 난폭한 행위가 왜 비도덕적인지 이해 자체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공이 위험한 것이다. 세상의 규칙이란 게 있으니 악행을 굳이 저지르진 않지만, 필요하다면 거리낌 없이 피를 본다. 애초에 도덕적인 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또한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자애로움, 당연히 느낄 수 있는 죄책감 등을 상실한 자들이 자신의 마공이라고 온전히 후대에 전수할 수 있겠습니까?”
“……?!”
“마공은 위험합니다. 하지만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진짜 마공은, 그러한 폐해에서 벗어나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허어.”
“물론 제 추측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정신 나간 마인들이 온전한 구결을 남길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드는군요. 무공을 전수할 후인을 들이기도 전에 공적으로 찍혀 죽어 나가는 일도 더 많을 겁니다.”
“일리가 있구나.”
“마선 혁련휘는 마도의 적통이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만약 권신 무허대사님께서 평한 혁련휘의 모습이 사실이라면, 그의 휘하에 무수히 많은 마인이 집결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요.”
툭. 툭.
당관의 검지가 탁자를 두들겼다.
“신마림…… 마선 혁련휘가 다스리는 단체라…….”
“한데.”
연호정의 얼굴에 의아함이 일었다.
“우연히 만났다고요?”
“우연이라 했지. 하지만 나는 그리 믿지 않는다.”
당관은 천효락과 만난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습격자 놈들의 실력이 상당했다. 단순한 산적이 아니었어. 숫자도 그렇고.”
연호정이 쓰게 웃었다.
“녹림을 한 번 뒤집어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산적질로 먹고 산다는 게 말이 안 되니, 해산하든 정식 문파를 만들어 남들처럼 먹고살든 택일하라고 했었지요.”
연위가 미소를 지었다.
“잘했다.”
“그중에 빠져나간 놈들이 있긴 했습니다. 일일이 잡아 족칠 순 없어서 탈퇴한 놈들의 명단을 만들어 두었지요. 그중 일부가 벌써 섬서까지 도달한 모양입니다.”
당관이 입맛을 다셨다.
“여하간, 그놈 아무리 봐도 수상해. 무공을 익히긴 했는데, 무슨 무공을 어디까지 익혔는지는 모르겠어. 물론 붙어 보면 세 합 안에 제압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음.”
“그러나 진법만큼은 대단했다. 내 비록 진법에 문외한이지만, 범상한 실력은 아니었어. 모르긴 몰라도 제갈가의 진법 대가들에 비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싶다.”
“어쨌든, 당장에 분석이 안 되는 놈이군요.”
“그렇지.”
연호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세는 난세인 모양입니다. 그동안 잠잠했던 마도 세력에서까지 사람을 보낼 정도니.”
말을 하던 그는 문득 궁금해졌다.
‘마선 혁련휘라.’
권신 무허대사는 혁련휘와 마주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실력이 자신으로서도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 만큼 지고하다고 하였다.
‘왜 나서지 않았지?’
사음교와의 전쟁에서, 혁련휘는커녕 신마림 출신의 마인도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신마림이라는 단체명 자체를 처음 듣는다.
‘신마림에서 나온 마인이 이 시기에 무림맹을 찾아왔다. 절대 우연은 아니야.’
당연히 우연일 수가 없다.
말하자면 그들 역시 세상을 향해 귀를 열고 있다는 뜻인데.
‘천하의 동태를 보고 있었다면, 사음교의 난 당시 멀거니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다.’
흑백 연합의 결성, 그리고 무림맹주 선출.
세상사 흐름이 다르다고는 해도, 전쟁 사태보다 심각하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때는 없었고, 지금은 나타났다.
‘설마 당시 신마림은 삼교에 굴복했던 건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했다.
‘아직 모른다. 모르지만…….’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설마?’
당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냐?”
“예?”
“뭐냐고?”
“뭐냐가 뭡니까?”
“이 자식이 오랜만에 봤다고 농담도 운율 맞춰서 하네.”
“커험!”
“눈알에서 광채가 나는 걸 보니 뭔가 짚이는 구석이라도 있나 본데?”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짚이는 거 없습니다. 그냥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지요.”
“그 혹시나 하는 걸 말해 봐라.”
“싫습니다.”
“싸가지 없는 건 여전하구먼.”
“아버지가 보고 계시는데 싸가지라니요.”
“애 잘못 큰 게 왜 부모 탓이냐? 애놈 탓이지. 네 애비는 전혀 부끄러울 게 없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시긴.
연호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당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연위가 헛기침을 했다.
“이 녀석아, 그래도 오랜만에 당가주님을 뵈었는데 벌써 자리를 떠서야 쓰겠느냐?”
“어차피 오래 뵙지도 못할 겁니다.”
“으음?”
“마선 혁련휘가 수장으로 있는 신마림에서 사람을 파견했습니다. 군사님께서 가만히 두고 보시겠습니까?”
“……?!”
그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가 파군각의 대문을 두들겼다. 화룡단의 수문위를 무시할 정도로 다급한 모양이었다.
“군사부에서 나왔습니다! 연가주님 계십니까?”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두 분은 무성전으로 드십시오.”
당관이 떨떠름한 얼굴로 일어났다.
“난 안 불렀잖냐.”
“나중에 가실 겁니까, 아니면 지금 가실 겁니까?”
“쯧!”
연호정이 연지평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네 무공이나 좀 보고 싶은데, 한판 하러 갈까?”
“헉! 좋죠, 형님!”
연지평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일어났다.
그때, 밖에서 군사부 무인의 목소리가 또 한 번 튀어나왔다.
“묵룡부의 소부주님도 계십니까!”
연위는 놀란 눈으로, 당관은 득의양양한 눈으로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너도 부르나 본데?”
연호정이 입을 쩍 벌렸다.
“아니 나를 왜?”
“군사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너에게도 좋은 기회야. 누구도 보지 못했던 마도 무림의 인재를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보겠느냐?”
연호정이 떨떠름한 눈으로 연지평을 바라보았다.
연지평이 웃으며 말했다.
“다녀와서 하시지요.”
“미안하게 되었다.”
“그리 말씀하지 마세요.”
그렇게 세 사람이 파군각 대문을 열었다.
군사부 무인이 고개를 숙였다.
“군사부에서 왔습니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은 들었소. 여기 당가주님께서도 계시니 함께 가십시다.”
“아, 예! 한데…….”
“음? 달리 전할 말이 있소?”
군사부 무인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내 연호정에게 건네었다.
연호정이 눈을 크게 떴다.
“군사께서 보내신 겁니까?”
“그, 그렇습니다.”
고개를 갸웃한 연호정이 서신을 받아 펼쳤다.
“……역시.”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철두철미하셔.”
“왜? 뭐라 하시기에?”
서신을 접은 연호정이 군사부 무인에게 말했다.
“길잡이가 되어 주실 분이었소?”
“그렇습니다.”
“알겠소.”
연호정이 연위에게 말했다.
“무성전에 계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먼저 만나 보겠습니다.”
“만나 보겠다니? 누굴?”
“천효락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요.”
“네가 말이냐?!”
“예. 수뇌부분들 생각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 저더러 먼저 가서 떠봐 달라고 하시네요.”
연위가 입을 쩍 벌렸다.
연호정이 어깨를 빙빙 돌렸다.
“군사님께서는 역시 재미를 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관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너, 사고 치지 마라.”
“설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