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7화. 갈등의 씨앗 (3)
“다 됐군.”
지글지글 구워진 토끼 고기가 몹시 먹음직스러웠다.
“하나 하거라.”
“예.”
고기를 받은 당윤이 맛나게 한 입을 베어 물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꽤 우악스럽게 씹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이번 여정이 힘들었다는 뜻이리라.
사천에서 섬서로 진입한 것이 어제였다. 그전까지 하루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무림맹에 빨리 가고 싶기도 했지만, 워낙 장거리인지라 평소에 연마할 수 없는 지구력 단련에 좋기 때문이었다.
당가의 무인들은 체력이 좋았다. 거리를 벌리고 독과 암기를 쏘아 대야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러나 당가 최고의 경신술은 그 속도와 탄력 때문에 체력을 대폭 깎아 먹는다. 여느 무인들보다 더 강한 체력이 필수라는 것, 그런 부분에서 당윤에게도 단련의 여지가 있었다.
“형님은 안 드십니까?”
당관은 품에서 육포를 꺼냈다.
“이걸로 충분하다.”
당윤이 무안한 얼굴로 토끼 고기를 내려놓았다.
당관이 손을 내저었다.
“나도 배가 고팠다면 더 많이 잡았을 것이다.”
“아, 예.”
당윤은 다시 고기를 씹었다.
당가 사태 이후, 당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뇌옥에 갇히려 하였다.
당관은 당윤을 뇌옥에 가두었다. 당사자가 그것을 원한다는 걸 알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한 달의 뇌옥 수감 이후, 다시 신분을 회복시켜 이가주(二家主)로 삼았다.
이유는 명백했다. 정책에 따라 당윤의 행위는 죄가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당가의 엄격한 정책은 전 무림이 다 알고 있을 만큼 유명했다. 기실 엄격함을 넘어 지나치게 냉혹하다고 봐야 했다.
전대 가주인 암왕 당형은 그것을 인지하고 고치려 했고, 당대 가주인 당관 역시 그 문제를 직시, 천천히 개선을 꾀했다.
결과적으로 당관은 실패했다.
노력은 했으나 결과가 좋지 못했다. 친형제가 외세와 손을 잡고 난을 일으켰으니, 이는 변명조차 될 수 없는 대실패라 할 만했다.
당관은 두 번의 실패를 용납할 수 없었다.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큰 고난을 겪은 그는 제 가족부터 잘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세가(勢家) 치세의 왕도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당윤의 죄를 사했다. 혈육조차 냉정하게 처벌하는 당가답지 않은 행위였다.
당윤의 죄는 명백하지만, 그 덕분에 당가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가 개방과 연수하여 암인으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사천 무림의 중심지가 적의 손에 고스란히 떨어지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었다.
과오는 과오, 공은 공이다. 게다가 당윤은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인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 와신상담하여 결정적인 공훈을 세웠으니, 뇌옥에서 썩게 만드는 건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행위였다.
그렇게 당윤의 사면을 시작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비록 몇 달의 시간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당가는 이전과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로 발전하고 있었다.
당관의 의지, 당형의 뒷받침, 거기에 당윤을 포함한 수많은 당가의 무인들이 각성하여 가문을 재건하였다. 예전보다 전력은 떨어졌을지언정 발전 가능성만큼은 몇 배로 커진 지금이야말로 가히 당가의 또 다른 전성기라 할 만했다.
“다른 많은 조직과 같이, 본가 역시 수뇌부의 무력이 중요하다. 너의 안목과 판단력은 분명 뛰어나지만, 아직 이가주(二家主)로서 완성된 무력을 얻지 못했다.”
“예.”
“그 무력을 손에 넣기까지 많은 고난이 있을 것인즉, 어지간한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 하루라도 빨리 강해지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그래.”
이 부분 역시 당관이 달라졌음을 뜻한다. 제아무리 형제라도 가주라고 부르게 했으면 했지, 둘만 있다고 형님 소리를 뱉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당관도 달라졌고 당윤도 과거의 죄책감에서 많이 벗어났다.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나저나 형님.”
“음?”
“지금에서야 여쭙는 게 좀 그렇지만, 어째서 호위대를 대동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천을 대표하는 무인이 아닌 당가의 가주로서 가는 길이다. 당연히 최소한의 호위나 정예 무인 몇은 대동하고 가는 게 정상이었다.
당관이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가문의 상황만 보면 나나 너나 맹으로 가서는 안 되었다. 거기에 전력의 공백을 만들어서까지 무인들을 대동하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지.”
무림맹주 선출에 관해서 각 조직 수장들의 의견이 필요했다. 그래서 가는 것이다.
당가가 지금만큼의 변화를 맞이하지 않았다면 당관도 굳이 무림맹으로 가진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아버지의 영향력은 가문을 넘어 사천 전역에 뻗어 있다. 다소 무거운 짐을 지워 드려 죄송할 따름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지.”
아버지에게 가문을 맡기고 오는 길.
두 사람의 과거지사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당윤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대(大) 당가의 주인이 행차하는 길인데 조금 초라하긴 합니다.”
“초라할 게 무엇이 있겠느냐. 내 주위에 사람이 있든 없든 나는 여전히 당가의 가주다. 그 사실에 변함이 없으니, 초라하고 말 것도 없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슬슬 마음의 준비는 되었느냐?”
“예?”
“제왕독경을 전수해야 하지 않겠느냐.”
당윤의 얼굴이 굳어졌다.
“형님,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잘못 키운 아들놈을 가주로 삼을 수는 없다. 그 죄가 명확하여 신분을 다시 복권시킬 수도 없어. 말하자면 지금 내게는 후계가 없다.”
“상아가 있지 않습니까.”
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상아가 있지. 실제로 상아에게도 독경을 전수했다.”
“저도 들었습니다. 명백한 후계가 있는데 굳이 제가 제왕독경을 익힐 필요는…….”
“나는 상관없다.”
“예?”
“상아가 나의 뒤를 이어 가문의 주인이 되는 것, 나는 괜찮다.”
“그러니까…….”
“그러나 가문의 중진들은 상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절대 권력을 손에 넣은 군주라 해도 신하들의 눈치를 아예 안 볼 수는 없다.
당가의 폐쇄적이고 편협한 가규를 뜯어고치고 있으며 그 속도도 빨랐지만, 당장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었다. 다음 세대, 혹은 그다음 세대라면 모를까 여인을 당가의 주인으로 세우는 것은 아직 불가능했다.
“다른 걸 떠나, 상아 역시 가주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예?”
“녀석은 그저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리고 자유로이 날고 싶어 했어. 그게 전부다.”
당관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 가득한 하늘은 늦겨울답지 않게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평생을 가두고 억압한 아이를, 지금 와서 가문이라는 틀에 쑤셔 넣어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
“…….”
가만히 당관을 보던 당윤이 한숨을 쉬었다.
다시 모닥불로 시선을 내린 당관이 담담하게 말했다.
“너보다 재능 있는 가인(家人)이 있었다면 생각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 너만 한 가주감을 찾기는 어렵구나.”
“…….”
“먼 훗날의 일이다. 네가 가주가 된다 한들 나나 아버지보다 오래 해 먹지는 못할 거야. 징검다리 역할만 해 줘도 충분하니, 너도 너 나름의 각오를 해 두는 게 좋겠다.”
차마 당관도 당윤에게 혼인하여 자손을 보라는 얘기는 못 했다. 아직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을 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형제라도 실례다.
“됐다. 이 얘기는 나중으로 미뤄 두자. 당장은 강해지는 것만 생각해라.”
“알겠습니다.”
“푹 자 두거라. 동이 트기 전에 출발할 것이다.”
“예.”
식사를 마친 당윤은 그 자리에서 운공에 들어갔다. 잠은 잠이고, 운공은 운공이다. 하루의 마무리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무인에게 기본이었다.
그 옆에서 모닥불을 뒤적거리던 당관은 문득 당상아를 떠올렸다.
‘잘 있는 거냐.’
잘 있을 것이다. 워낙 야무진 아이이기도 하고, 그 옆에 연위도 있다. 못 본 새에 놀랍도록 성장했을 것이다.
당상아를 떠올리니, 자연스레 연위도 떠올랐다.
‘정말이지 기가 막히는군.’
연위가 황궁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왔다는 걸 들었다.
연위의 무공과 무인으로서의 판단력을 잘 아는 당관은 언젠가 그가 큰일을 해낼 줄 알고 있었다. 다만 황제를 구하는 일의 중추 역할을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가 연위에게 놀란 것은 황궁에서의 공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 놈이 흑도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그것을 가만두었단 말인가.’
없는 시간을 쪼개 가며 수련하던 때에 그 정보를 접했다.
놀란 나머지 던졌던 암기를 회수하지 못하고 놓쳤다. 몇십 년 만에 저지른 실수, 그 정도로 큰 놀라움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연호정의 사상이 달라졌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변하지 않을 놈이다.
‘분명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으니 양천의 제자가 되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정파 명문가 출신 장남이 흑도 무림의 수장 밑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은 아무나 못 하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파격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경우가 없었다. 당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언제는 안 그랬나.’
개방을 통해 녀석도 맹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녀석에게 서신을 보냈다. 빨리 안 튀어오면 재미없을 거라고.
일부러 그런 서신을 보냈다. 달라지지 않을 걸 알지만, 그래도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까. 왠지 녀석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당관이 쓰게 웃었다.
‘반응이라…… 쥐 잡듯이 잡아 보겠다고 설친다 한들 제대로 잡을 수도 없을진대.’
이미 사천에서 무극을 돌파했던 연호정이다. 그런 놈이 비왕을 죽이고 성천에 이름을 올렸다.
패왕이라는 별호와 함께.
‘징글징글하군, 정말.’
무극에 올랐다지만,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성천과의 차이는 명백할 것이다.
그런데도 벌써 비왕을 죽였다 하니, 정말이지 그 성장 속도에 기가 질리는 느낌이었다.
‘왕(王)이라 불리기는 해도 아직 그들과 동등한 경지는 아니겠지. 아무리 천재라도 한계가 있는 법이야. 비왕을 죽인 것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게 마련이다. 패왕이라는 별호를 얻었으니, 그 영향력은 실제 성천과 다를 바 없다.
‘차라리 시작부터 상아 녀석을 놈과 맺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싶군.’
어울리지 않는 공상을 하며 당관은 연신 모닥불을 들썩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
모닥불의 불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던 당관의 눈빛이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번쩍!
운공에 들어갔던 당윤의 눈도 벼락처럼 뜨였다.
“느꼈느냐?”
“느꼈습니다.”
“…….”
“무시하시겠습니까?”
가만히 모닥불을 보던 당관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넘어가도 좋을 기세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 비명,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는 듯한데.”
“그럼 가 보시지요.”
“그러자.”
파아아아악!
기다렸다는 듯 신법을 펼친 두 사람이 순식간에 야산 봉우리 정상에 도달했다.
“저기다.”
봉우리 아래, 저 멀리 보이는 굽이진 협곡 부근에 수백 개의 횃불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횃불이 마구 흔들렸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평범한 살기가 아니야. 나아가 이 기세는……?’
당관이 당윤의 어깨를 짚었다.
“먼저 앞지르지 마라. 절대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 무조건 내 뒤를 따라라.”
“알겠습니다.”
“가자.”
파아아악!
두 사람이 빠르게 아래로 움직였다.
그들이 봉우리를 절반 정도 내려왔을 때, 수백 개나 되는 횃불 중 절반 이상이 꺼졌다.
그리고 봉우리를 다 내려와 협곡으로 들어섰을 때.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구만.”
피와 시체가 가득한 풍경 속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음? 거기 더 남아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