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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830화 (830/963)

830화. 삼세(三勢)의 주인 (5)

쾅! 콰릉! 퍼엉!

온갖 폭음이 연이어 터지며 대지에 무시무시한 진동을 일으켰다.

공공대사의 권장(拳掌)은 만년한철 부럽지 않을 만큼 단단했고, 그 단단한 권장을 감싸는 소림신공의 내공은 산처럼 장중하고 바위처럼 묵직했다.

모용군의 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휘황찬란한 보검에 담긴 뇌정공의 힘은 극단적인 파괴력을 담고 있음에도 예리함을 잃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일격필살의 기공술에 능한 초고수들이었다. 내력의 틈을 파헤쳐 인간의 급소를 노리는 공격보다는 방대한 내공력으로 파괴력 넘치는 일격을 구사하는 데에 능했다.

그래서 일격, 일격을 교환할 때마다 충돌하는 발경 때문에 천지가 뒤집히는 굉음과 충격파가 일어나고 있었다.

무극에 이르진 못했지만, 두 사람의 기력 넘치는 승부는 무극의 고수들이 싸우는 것처럼 화려하고 위험천만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제갈문호의 눈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대단하다!’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승부였다.

모용군의 뇌검(雷劍)이 공간을 가로질러 압박하면, 공공대사의 권장이 물결처럼 부드럽게 검격을 분쇄한다. 공공대사의 권격이 산사태와 같은 공격을 퍼부으면, 모용군의 검풍이 거대한 검망을 내쳐 방어와 회피로 무산시킨다.

누가 확실한 우위라고 말할 수 없는 박빙의 승부였다. 공공대사가 반 수 앞서는 듯했지만, 그조차도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것이었다.

모용군의 움직임은 격렬했고 공공대사의 움직임은 여유로웠다. 언뜻 보면 바쁘게 움직이는 모용군이 밀리는 것 같았으나, 그것은 그의 무공 특성이 빠르고 강하며 변칙적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모용군의 파괴력 넘치는 무공을 받아 내며 반격하는 공공대사의 얼굴에 여유는 없었다. 움직임이 그러할 뿐, 한 번의 방심이 승패를 결정짓는 절벽 위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대사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모용가주는 어찌 이러한 경지를……!’

아는 게 있어야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하였다.

제갈문호는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며 엄청난 깨달음을 습득하고 있었다.

제갈세가의 무공은 세심하고 정교한 기공술을 특징으로 한다. 외가 무공도 일류지만, 특히 사색이 중요한 심공 법문을 포함하고 있어 기를 다루는 데에 유독 능했다.

그 신공의 특성이, 핏줄이 두 초고수의 공방에서 얻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습득하고 있었다.

‘아아!’

무림맹 군사가 된 이후 최초로.

제갈문호는 군사라는 직책을 잊고 순수한 무인으로 돌아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두 고수의 무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쉴 수 없게 만드는 박력과 깨달음으로 넘쳐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제갈문호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고수의 공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치열해져 갔다.

파아아악!

탄력 좋은 시위에서 벗어난 화살처럼 튀어 나간 모용군이 삼검(三劍)을 휘둘렀다.

이전과 비교하면 그리 빠른 쾌검은 아니었지만, 방심하고 맞상대하다가는 치명상을 면치 못한다. 변검으로 늘린 검의 수는 세 개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무형의 검기(劍氣)는 수십 다발이었다.

훅!

일순 공공대사의 몸이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모용군의 눈이 흔들렸다. 처음으로 공공대사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뒤?!’

재빨리 삼검을 회수하고 몸을 돌린 그가 무정천뢰식, 뇌형교격참(雷形交擊斬)을 날렸다.

제멋대로 휘어지고 꺾이는 번개처럼 모용군의 검이 기이한 움직임을 발했다.

쩌저저정!

뒤로 물러나는 모용군의 얼굴이 조금은 해쓱해졌다. 울컥 올라오는 핏물을 겨우 삼킨 것이다.

‘엄청나구나!’

뇌정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창졸지간에 펼친 검초라고는 하나 강철도 베어 버릴 일격이었건만, 공공대사의 주먹질 한 방에 너무나도 쉽게 무력화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번쩍! 번쩍!

칠 장이나 벌어져 있던 둘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끊어지듯 분절된 공공대사의 신형이 모용군의 코앞에서 나타났다. 두 다리가 크게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정면에서 공격을 감행한다.

‘금강부동신법(金剛不動身法)!!’

소림이 자랑하는 이대 경신술 중 하나였다.

신법 자체의 깊이가 여느 권장술보다도 더 뛰어나서, 저 신법을 익히려면 그에 상응하는 심법까지 따로 익혀야 할 정도라 하였다.

그야말로 전설처럼 전해지는 금강부동의 움직임.

그 뒤를 이어 펼쳐지는 것은 소림칠십이절예를 대표하는 무공,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이었다.

콰아아앙!

기어이 모용군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위력이…….’

엄청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검뢰신망으로 막아 낸 그 찰나지간 정신이 날아갔다가 돌아왔다.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지 않았다면 이걸로 승패가 갈렸을 것이다.

푸스스스스스.

침투한 경력을 해소하는 모용군의 몸에서 허연 연기가 흘러내렸다.

“대단하시오.”

금강부동신법에 이은 대력금강장 일타(一打).

지금껏 공공대사와 합을 겨뤄 본 이 중, 이 무공에 당하고도 정신을 차린 자는 처음이었다.

공공대사의 얼굴에 감탄이 일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무공이란 말인가.”

소림의 무공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었다.

주르륵.

공공대사의 양측 어깨가 핏물로 젖어 들었다.

대력금강장을 막은 검뢰신망의 검기가 자연스레 튀어 올라 그의 양어깨를 베고 지나간 것이다.

운으로 얻은 일격이 아니었다. 모용군의 의지가 튀어 나간 검기를 조종하여 공공대사를 공격한 것이다.

손을 떠난 검기를 의지대로 조종해 상대를 격살하는 것.

어검(馭劍)의 경지를 엿보지 못한 자는 구현할 수 없는 한 수였다. 완벽한 어검술이라기엔 무리가 있지만, 모용군의 경지가 검사로서 극에 도달하기 직전이란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뇌기를 품은 상고의 절학, 그에 걸맞은 깨달음까지. 가히 불세출의 천재가 따로 없소.”

펄럭!

재차 자세를 바꾸는 공공대사.

그의 얼굴도 조금은 창백해져 있었다. 모용군의 검기에 당해 내상을 입은 것이다.

강철 같은 공격력, 태산 같은 방어력을 지닌 소림신공을 뚫어 낼 정도의 검기였다. 익힌 무학도 대단하지만, 그 무학을 받쳐 줄 만한 깨달음이 없다면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을 뚫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부터 빈승도 최고의 절학으로만 상대하겠소.”

모용군에게 있어, 지금 이 순간 이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용군은 기가 죽지 않았다. 활활 타오르는 그의 두 눈에 엄청난 투지가 치솟고 있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허세가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 승부가 어찌 돌아갈지 몰라 꺼내지 못했을 뿐, 그 역시 비전의 검초들을 숨겨 두고 있었다.

공공대사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해방감, 그리고 투쟁심이었다. 부처를 따르는 승려로서는 가져선 안 될 그 뜨거운 마음이 무상대능력의 힘을 한계까지 열어젖히고 있었다.

훅!

공공대사가 모용군의 우측 이 장 거리에서 나타났다.

접근할 걸 알고 있었음에도 놀라움은 가시지 않았다. 금강부동신법이 천하제일을 논하는 신법이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되었다.

모용군의 보검이 질풍처럼 움직였다.

쩌저저저저정!

그토록 빠른 공방을 주고받는데도 땅 곳곳이 터지고 갈라졌다.

무의식중에 뻗은 권검(拳劍)이라도 막강한 힘이 깃들어 있다. 두 사람 모두 연성한 무공을 본능의 영역까지 체화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눈으로 좇을 수 없는 공방 속에서, 공공대사의 주먹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퍼어어억!

모용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좌측 어깨가 축 늘어졌다. 탈골되어 버린 것이다.

평범한 주먹이 아니었다. 중지 부분이 돌출된 주먹, 투골권(透骨拳)이 어깨뼈와 팔이 이어지는 곳을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갔다.

머리끝이 쭈뼛 설 만큼 날카로운 통증. 그런 와중에도 모용군의 검은 탐욕스러운 독사처럼 공공대사의 급소를 노렸다.

서걱!

공공대사의 가슴에 기다란 검상이 새겨졌다. 목에 건 굵은 염주도 끊어져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공공대사의 눈이 흔들렸다.

뼈에 닿지는 않았지만, 꽤 깊게 베인 검상이었다. 뇌기 특유의 고열로 인해 피는 얼마 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출혈보다도 상처로 침투하는 뇌기가 더 치명적이었다. 침투경을 막기 위해 공공대사의 몸이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모용군은 놓치지 않았다.

번쩍!

번개처럼 파고든 그가 공공대사의 어깨를 노렸다.

모용군의 눈에 희열이 감돌았다.

‘이걸로……!’

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공명음과 함께 모용군의 몸이 좌측으로 밀려나 비틀거렸다.

검을 쥔 손에서부터 올라온 떨림이 온몸으로 치달았다. 무언가가 그의 검을 후려쳐 검로는 물론 모용군의 몸통까지 옆으로 밀쳐 내 버린 것이었다.

당황하여 물러난 모용군의 눈이 공공대사의 왼손을 향했다.

‘염주!’

어느새 끊어진 염주의 끝을 잡은 공공대사가 무상대능력의 힘을 담뿍 담아 검을 쳐 낸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 능력이었다. 끊어진 염주를 잡아 공격을 무마하는 무공, 무학 이전에 그 소름 끼치는 판단력이 더 대단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우우우우웅!!

끊어진 염주에서 쏟아져 나온 백여덟 개의 구슬이 제각기 허공으로 떠오르며 은은한 황금빛을 뿜어냈다.

모용군의 얼굴에 다급한 빛이 떠올랐다.

피피피피피피피핑!!

백여덟 개의 구슬이 모용군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따다다다다다다당!

나무로 만들어진 목제 구슬인데도 하나하나 쳐 낼 때마다 온몸의 뼈마디가 시큰거린다.

실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그 모용군이 접근은커녕 점점 후퇴하며 검망을 펼치고 있었다.

‘이런!’

백팔불주연사(百八佛珠連射).

천하공부출소림(天下工夫出少林)이라 하였다. 천하의 모든 공부가 소림에서 나왔다는 뜻, 비록 소수이지만 소림은 암기술도 보유하고 있었다.

따다다다다당! 퍼억!

마지막 하나의 구슬이 찔러 들어오는 검첨에 산산이 터져 나갔다.

‘백여덟!’

그때였다.

퍼어어억!

모용군의 좌측 허벅지에 폭음이 터지며 그의 신형이 기울어졌다.

‘하나가 더 남았다고?!’

아니었다.

구슬을 맞은 느낌이 아니다. 이것은 지풍(指風)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허공섭물의 암기술로 모용군을 공격한 공공대사가 어느새 엄지와 맞닿은 중지를 튕겨 냈다.

‘탄지신통(彈指神通)!!’

퍼벅!

암기보다 더 빠르게 날아온 무형의 지풍이 모용군의 좌측 어깨와 허벅지를 한 번 더 때렸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속도였다. 관통력이 안 나오는 대신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드는 공공대사의 깨달음이 돋보였다.

허물어지는 모용군의 몸. 결코 무릎은 꿇지 않았지만, 그 위태로운 자세가 누가 승자인지를 알려 주는 듯했다.

쿠웅!

힘찬 진각과 함께, 공공대사의 오른 주먹이 황금빛 소용돌이로 물들었다.

후우우우우웅!!

무시무시한 힘이 모여들었다. 지금껏 구사했던 무공들과는 차원이 다른 권력(拳力)이었다.

무상대능력의 힘을 한껏 담은 그 권법.

백 보 밖의 바위를 가루로 만들어 소림 무공의 위대함을 만천하에 알렸던 최고의 절기.

그 전설의 무공이 구사되는 순간.

번쩍!!

모용군의 눈이 시퍼런 뇌광으로 물들었다.

공공대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위험!’

파아아아아악!

백보신권(百步神拳)을 거둔 공공대사의 주먹이 빠르고 부드럽게 나아갔다.

그리고.

번쩍! 우두둑!

용왕유권(龍王柔拳)이 모용군의 왼팔 상박을 부러트렸다.

지잉! 지잉!

코앞의 모용군을 내려다보던 공공대사가 천천히 좌측 어깨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사나운 뇌기로 번뜩이는 검 한 자루가 올려져 있었다. 그만한 힘을 발산하는데도 의복과 살갗은 멀쩡했다.

“허억! 허억!”

헐떡이는 모용군.

“어떻습니까, 대사님?”

공공대사가 눈을 감았다.

“빈승이 졌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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