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화. 삼세(三勢)의 주인 (4)
“……!!”
제갈문호는 깜짝 놀랐다.
설마하니 모용군이 직접 와서 공공대사에게 비무를 신청할 줄은 몰랐다. 평생에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제갈문호가 공공대사를 바라보았다.
공공대사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여전히 두 눈은 고요했고 기도 역시 잠잠했다. 놀라긴 했지만, 평정심이 흐트러질 정도는 아닌 것이다.
승려이지만 또한 무인이기도 하다. 무림에 몸을 담은 자, 언제든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타인과의 비무에 별 거부감이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공공대사가 말했다.
“느닷없이 이 땡중에게 비무를 청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이유는 너무 많군요.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렇구려.”
“다만 그 여러 이유 중 가장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이유를 꼽자면…….”
모용군의 눈이 번뜩였다.
“무(武)에 한해서 당금 무림맹에 대사님만큼 높은 경지를 이룬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공대사가 쓰게 웃었다.
“과찬이시오. 당장 승현진인만 해도 나에 못지않으며, 황궁에서 돌아온 연가주를 보니 그 검력이 능히 빈승을…….”
“승현진인은 도사지요.”
“……?”
“대사님과 좋은 승부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강자입니다. 하지만 무당 무공의 특성인지, 아니면 승현진인의 한계인지 무(武)의 완전한 개방을 보기 어렵지요.”
“…….”
“그리고 연가주는…….”
모용군이 씁쓸하게 웃었다.
“검도(劍道)에 대한 이해가 저보다 훨씬 더 높더군요.”
공공대사의 눈이 커졌다.
“그것을 알아보았소?”
“못 알아보기가 더 어렵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성천에 이름을 올린 검사, 검제 남궁 노선배에게도 크게 뒤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엄청난 고평가였다.
그러한 평가가 모용군에게서 나왔기에 제갈문호는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검도입니다. 무의 경지와 검도의 차이, 대사님이라면 아실 겁니다.”
“물론 알고 있소.”
“연가주는 한 자루의 고고한 검입니다. 싸움이 벌어진다면야 승패를 떠나 아주 화끈하게 붙어 볼 수 있겠지만…….”
모용군이 고개를 저었다.
“왠지 그와는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그에게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갈문호는 물론 공공대사 역시 모용군의 그러한 발언에 연이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모용군은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드높은 야심과 강한 자존심을 갖고도 인정할 건 인정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한데 연위에게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다니? 그 말은 모용가보다 적은 역사를 지닌 가문의 주인을 자신과 동등한, 혹은 그 이상으로 본다는 뜻과 같았다.
“연가주에게 보이는 약점은 고스란히 연호정 소부주에게 들어갈 겁니다. 저는 그것이 싫습니다.”
“같은 동료인데…….”
“아직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모용군이 고개를 저었다.
“동료이기 전에 경쟁자이고, 경쟁자이기 전에 정적입니다. 우리는 그랬습니다.”
“모용가주.”
“앞으로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다고는 하나, 그래서 더더욱 약점을 보일 수 없습니다.”
공공대사가 툭 던지듯 말했다.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겠다는 것은, 빈승과 여기 군사는 가주의 적이 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는 뜻이오?”
아니면 적으로 보지도 않는다는 뜻일까?
“약점을 보여도 상관없는 분들이기에 그렇습니다.”
“……!”
“말이 길어졌군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입니다. 저와 싸워 주십시오.”
가만히 모용군을 보던 공공대사가 손을 들어 거처 뒤편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십시다.”
“감사합니다.”
제갈문호가 놀라서 공공대사를 보았다.
“대사님!”
“그간 업무에 치여 여유 없이 살아오셨음을 아오. 군사 역시 무인이니, 이 싸움의 관전자로서 함께 가십시다.”
그 말이 모용군이 아니라 공공대사의 입에서 나왔기에 더더욱 놀라웠다.
그렇게 두 사람은 공공대사의 안내에 따라 깊은 숲속에 자리한 공터에 도달했다.
“여기였군요.”
모용군이 웃으며 요대에 검을 찼다.
“예전에, 제 아우가 첫 출정 전 이곳에서 대사님께 가르침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모용우만이 아니었다. 탕마군과 멸사군이 동시에 출정했고, 연호정 역시 공공대사와 합을 나누었더랬다.
공공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모용가주께서도 이곳에서 몇 번 수련하지 않았소?”
“아주 예전에 그랬지요.”
“빈승에게도, 모용가주에게도 익숙한 장소라면 비무를 나누기에 더할 나위가 없겠소.”
주변 환경의 변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공공대사답지 않게 호승심이 느껴지는 발언이면서도 승려 특유의 고상한 품격이 묻어났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좋소.”
공공대사가 웃으면서 자세를 낮추었다.
헐렁한 승복에 가사까지 걸친 공공대사. 목에는 큼직한 염주를 걸었으니, 비무를 하기에 좋은 복장은 아니다.
하지만 공공대사를 보는 모용군의 얼굴에는 실로 오랜만에 긴장이 떠올랐다.
스르릉.
검갑에서 빠져나온 보검이 시린 광채를 발했다.
비무라고는 하나, 초절정고수끼리의 날 선 결투였다. 아차 하면 목숨이 날아갈 것이다.
“상대가 대사님인 만큼, 허례허식은 던져두고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빈승에 대한 높은 평가, 감사할 따름이오.”
“그럼…….”
모용군의 눈빛이 돌변했다.
“갑니다.”
번쩍!
십 장 거리가 찰나지간 무(無)로 변했다.
어느새 공공대사의 일 장 거리 앞에서 검을 내지르는 모용군의 동작은 그 빠른 속도와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슥!
눈이 돌아갈 만큼의 속도였지만, 공공대사는 고개를 살짝 트는 것으로 모용군의 검을 피해 냈다.
삭!
찌르자마자 피할 걸 예상한 모용군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공격과 회피, 그 회피를 예상한 공격에 이어 또 한 번 자세를 낮춘 회피까지.
두 합의 겨룸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제갈문호의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강하다!’
단 두 합의 겨룸만으로도 두 사람의 무공이 자신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용군의 움직임과 검속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빨랐으며, 공공대사의 회피는 여유롭고도 고상했다.
모용군도 모용군이지만, 특히 공공대사에게 놀랐다. 평소 느긋하고 여유롭기 그지없던 공공대사의 움직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빨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다음.
제갈문호의 눈에 비친 것은, 소림 방장이 왜 구파일방의 수장으로 불리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일격이었다.
콰앙!!
무지막지한 폭음과 함께 모용군이 미친 듯이 뒤로 밀려 나갔다.
권(拳)도, 장(掌)도 아니다. 그저 풍성한 소매를 가볍게 휘둘렀는데, 소맷자락에 맞은 모용군의 몸이 날아오는 바위에 맞은 것처럼 튕겨 나가 버린 것이다.
지이이이잉!
모용군의 몸 곳곳에 시퍼런 전광이 이글거렸다. 공공대사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자연스레 뇌정공이 일어난 것이다.
펄럭이는 소맷자락을 휘감아 정리한 공공대사가 반대쪽 발을 앞으로 옮기며 손을 중단으로 올렸다. 고고한 학(鶴)과 같은 모습이었다.
“영광입니다.”
가슴을 턴 모용군, 어느새 그의 보검에 위협적인 청광(靑光)이 명멸을 반복했다.
“그 유명한 반선수(盤禪袖)를 보는군요.”
“알아보시는구려.”
펄럭이는 소매를 절대적인 내공을 이용, 강철 이상의 경도로 만들어 극한의 공방력을 끌어내는 신공이었다.
“과연.”
모용군의 눈가가 희미하게 떨렸다.
“두 번까지는 받아 낼 수 있겠습니다. 세 번은 힘들겠어요.”
공공대사가 빙긋 웃으며 뻗은 손을 주먹으로 변환했다.
“세 번까지 가지 않게 하겠소.”
“그 말씀, 저에 대한 고평가라고 알겠습니다.”
파아아앙!
이번에도 먼저 움직인 것은 모용군이었다.
첫 일검, 적당히 구사한 건 아니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리 쉽게 반응하다니?
‘역시 진짜다.’
공공대사의 무공은 진짜 중의 진짜다.
청광을 흩뿌리는 모용군의 검, 그 검이 무정천뢰식(無情天雷式)의 무자비한 파괴력을 담고 공공대사의 가슴을 향해 휘둘러졌다.
일순 공공대사의 안광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콰앙!
피하고 자시고 할 게 없는 정면 승부였다.
벼락의 힘을 송곳과도 같은 예리함에 담았는데, 그 검격을 주먹질 한 번으로 튕겨 냈다.
튕겨 나가 세 걸음을 물러난 모용군, 그리고 공공대사 역시 세 걸음을 물러났다. 먼저 달려든 것이 모용군이었으니 명백한 모용군의 손해였다.
하지만 모용군은 웃을 수 있었다.
‘이 정도 무(武)라면.’
아니, 이 정도 무공이기에 더더욱.
‘미련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파바바바박!
물러난 즉시 좌우를 빠르게 찍어 가며 전진한 모용군이 순식간에 공공대사의 좌측면을 점했다.
공공대사의 눈이 한 번 더 빛났다.
‘빠르도다.’
말 그대로 벼락을 닮은 움직임이었다. 일직선으로 내리치는 번개는 없는 법, 모용군의 이 보법은 소림 최고의 보법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촤르르르륵!
섬뜩한 소리와 함께 청색 검광이 거미줄처럼 펼쳐지며 공공대사를 압박했다.
저 검광에 닿은 곳은 틀림없이 베이고 터질 것이다. 단순히 베는 게 전부가 아닌, 진기의 침투로 상처 부위를 터트리고 내상 유발까지 가능케 하는 최고급 무리(武理)였다.
공공대사의 쌍수가 담청색으로 물들었다. 모용군의 시퍼런 청색 검광과는 다른, 편안하면서도 굴강함이 느껴지는 색이었다.
콰르릉!
무시무시한 압력이었다.
무정천뢰식, 검뢰신망(劍雷迅網)을 방어가 아닌 공격용으로 써먹은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기특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창의성 높은 검격을 힘으로 압도해 버리는 관음청강수(觀音靑剛手)는 과연 칠십이절예(七十二絶藝)에 이름을 올릴 만큼 무시무시한 무공이었다.
‘대단해.’
비틀거리며 물러나면서도 모용군의 기세는 죽지 않았다.
‘지금껏 뇌정공의 힘을 정면으로 맞서서 누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쩌저저저저정!
물러나면서 내치는 십이 검의 검풍(劍風)이 공공대사의 급소를 노렸다.
엇박자에 내친 검풍이었고, 그래서 더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티리리리링!
열두 개의 막강한 검풍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검풍의 수에 맞춰 공공대사의 손도 그 수를 늘린 것만 같다. 마치 탱화 속에 나오는 관음의 팔처럼, 공공대사의 팔이 실제로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천수관음!!’
천수관음장(千手觀音掌). 이 또한 칠십이절예의 하나다.
소림칠십이절예는 하나만 극한까지 익혀도 절정고수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는 태산북두의 신공들이다. 한데 이 짧은 순간, 공공대사는 벌써 세 개의 절예를 선보였다.
고급의 무공을 쓴 것이 대단한 게 아니다. 그 난해한 무공들 하나하나를 태어날 때부터 간직한 것처럼 숨 쉬듯 자연스레 구사한 게 엄청난 것이다.
정기신(精氣神)이 하나가 됨은 물론, 자신이 배우고 연성한 모든 무도(武道)를 체화하였다.
실전 경험의 유무를 따질 사람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완성된 무(武), 태산북두 소림 방장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콰앙!
강하게 땅을 박찬 모용군이 양손으로 쥔 보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래도 이기겠다!’
번쩍!
내리치는 검을 향해, 공공대사의 주먹이 흘러 들어갔다.
너무나도 부드러워 힘이라곤 요만큼도 담기지 않은 듯한 주먹.
쾅!
폭음과 함께 모용군의 몸이 훨훨 날아갔다.
“…….”
진중한 표정으로 착지하는 모용군을 보던 공공대사의 눈이 문득 자신의 주먹을 향했다.
그의 주먹엔 깊게 베인 상처가 나 있었다. 자상인데도 상처 부위가 시커멓게 물들었다. 뇌기가 살을 태운 것이다.
공공대사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 미소는 더 이상 승려의 그것이 아니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가오.”
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