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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824화 (824/963)

824화. 다시, 무림맹으로 (10)

화룡단(火龍團)은 새로이 개편된 무림맹 정예 부대인 육룡단(六龍團)의 하나로서, 돌격 부대의 성향을 띠었다.

그런 부대의 선임들을 차출하여 감시를 맡겼으니, 부대 분위기가 좋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차출된 선임들은 달랐다.

연가의 거처와 인원들을 감시하는 열 명의 화룡단 무사들은 연가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연위만 해도 그 무력이 봉공 중 첫손에 꼽히는 강자이며, 그의 차남인 연지평 역시 이십 대 초반의 나이로 절정의 무력을 손에 넣은 기린아였다.

심지어 장남인 연호정은 수년간 중원을 활보하며 엄청난 공을 쌓은 것도 모자라, 그 젊은 나이에 무극을 열어 성천의 자리에 오른 불세출의 괴수였다.

육가 중 세력은 가장 작지만, 연씨 핏줄들의 무력은 당대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도면 감히 질투할 엄두도 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맹 내 연가의 거처, 파군각(破軍閣) 안에서 근무하던 화룡단 최고 선임 풍조(馮燥)는 문득 건물에서 나오는 연지평을 발견했다.

“아, 조장님.”

풍조가 살짝 포권을 취했다.

“나오셨습니까.”

연지평이 허둥지둥 고개를 숙였다.

“아무 직책도 없는 애송이에게 그런 인사는 부담스럽습니다.”

딱딱했던 풍조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맺혔다.

그는 연가 사람들의 뛰어난 재능과 강력한 무공에 감탄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인상적으로 본 것은 그들의 성품이었다.

맹의 감시가 있기 전에도 연위와 연지평의 성격은 수더분하고 예의 바르기로 꽤 유명했다. 그중 연위는 종사급의 무력과 가주로서의 위치가 있어 은연중 서늘한 위엄을 자아냈지만, 이 연지평은 달랐다.

사람이 올바르고 순수하다. 그럼에도 지닌바 무공이 대단하여, 젊은 나이에 육룡단 책임자들에 비해도 별 모자람이 없는 무력을 자랑한다. 심지어 그런 실력을 쌓고도 성격이 좋아 언제나 자신을 낮춘다.

누구라도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날도 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연지평이 보자기를 풀었다.

보자기 안에는 면포로 둥그렇게 포장된 주먹밥들이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방금 만든 것 같았다.

“손재주가 없어서 이런 것밖에 못 만들거든요. 그래도 드시면 속이 든든하실 겁니다.”

“근무 중 취식은 금지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연지평은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럼 근무 끝나고 드십시오. 다른 단원분들 것도 하나씩 싸 왔으니까 나눠 주시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경계를 느슨하게 하려는 수작일 수도 있다며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풍조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연지평의 순수한 눈을 보다 보면, 이 청년이 진정 주변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풍조가 미소를 지었다.

“경계는 저 하나로 충분하니, 이 주먹밥은 단원들에게 나눠 주겠습니다.”

“하하, 별거 아닌 주먹밥 줬다고 타박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풍조가 저 멀리서 근무를 서던 단원 하나를 불렀다.

“가져가서 나눠 먹거라. 연가의 이공자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먹밥을 들고 가는 단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침 배가 꽤 고팠던 것이다.

흡족한 얼굴로 단원의 뒷모습을 보던 연지평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괜히 고생이시지요?”

“고생이랄 것 있겠습니까. 이 또한 임무인데요.”

“그렇군요.”

가만히 연지평을 보던 풍조가 말했다.

“모용가주님의 무력은 역시 대단하십니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이 풍조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모용가주를 본 것도 처음이니, 그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연지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도의 지략과 막강한 무력은 육가 중 으뜸이라고 합니다. 저도 잠깐 뵙고 많이 놀랐습니다.”

“하지만 연가주님의 무력 역시 모용가주님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명문가 수장들의 무력을 논하는 건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중 한 명의 핏줄 앞에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풍조의 목소리엔 거침이 없었고, 연지평 역시 아무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 역시 대단하시지요. 언제쯤 그 무력의 발치에나 이를 수 있을까 싶습니다.”

풍조가 미소를 지었다.

“이공자의 재능과 성실함이라면 그리 멀지 않은 듯합니다.”

연지평이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제 재능이야 보잘것없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께서는 재능 이상의 깨달음을 얻으신 분입니다. 말년에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이기에 더욱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연지평의 진심이었다.

연위의 무공은, 단순히 이룬 경지에 국한하여 평가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연위의 진짜 대단한 점은 극한까지 연마한 검도(劍道) 그 자체에 있었다.

전반적인 무공 상승과는 또 다른 영역에 있는 깨달음. 검도 역시 무도의 일면이라지만, 상식의 틀을 깨 버린 연위의 검도는 무인의 몸(身)과 기(氣)가 무극에 이르지 않았음에도, 그 하나만은 무극에 이른 고수들 못지않은 영역으로 치달아 버렸다.

“검도라…….”

풍조가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나중에 이 임무가 끝나면, 염치 불고하고 가주님께 가르침 한 수 청해 볼까 싶습니다.”

“하하, 아버지라면 언제든 받아 주실 겁니다.”

“사실 가르침 이전에 연가주님과 담소라도 나눠 볼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설명할 수 없지만, 그분께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봤거든요.”

“그렇군요.”

연지평이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모용가주가 담소를 나누고 있는 공간의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과연 모용가주는 지금의 아버지께 무엇을 발견할까요.”

* * *

“어떻소?”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켠 모용군이 고개를 저었다.

“폐관 전에는 그래도 마실 만하더니, 역시 너무 독하구려.”

“나도 그랬소.”

“허허, 그러셨구먼.”

화등은 밝았지만, 방 전체를 밝혀 주진 못했다.

음영 진 두 사람의 얼굴은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인상적이오.”

“……?”

“그대의 무력이 누구 못지않음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소.”

연위의 눈이 빛났다.

모용군이 고개를 저었다.

“내, 폐관에 들어 무력을 향한 집착과 성급함을 버렸소. 그러자 많은 것을 둘러볼 수 있더군. 앞만 보고 가야 할 시기가 있다면, 모든 걸 내려놓고 그간 빼놓은 건 없는지 확인할 시간도 필요한데, 내게는 그게 없었소.”

“그랬구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장에서 다시 뵈었을 때, 모용가주의 무력이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소.”

“역시 읽혔구려.”

“마치 구름과도 같았소. 가만 보다 보면, 마치 무당파의 도사를 연상케 할 정도로 허허로웠소.”

“허허, 영광이오.”

“다만 그 구름은 언제든 먹구름이 되어 벼락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섭고 위험한 것이었지.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감싸는 무당의 도사들과 달리, 모용가주가 품은 그 기도는 천지를 뒤엎는 벼락을 바탕으로 메워져 있었소이다.”

꽤 추상적인 말이지만, 달리 표현할 말도 없다.

그리고 연위의 그 말을 들은 모용군은 상대의 안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벼락 그 자체가 되기 전에, 벼락이 어디에서 튀어나오는지를 생각하라.’

더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다가 조급함을 버리고 명상에 들면서, 뇌정공의 법문을 차근차근 확인했었다.

그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그 법문에 발전의 답이 있었던 것이다.

벼락이 어디에서 튀어나오는가.

그 법문의 의미를, 모용군은 삼단전의 강인한 연마로 생각했다. 결국 모든 기(氣)의 중심에는 단전이 있으니까.

하지만 뇌정공의 법문이 뜻하는 바는 단전을 넘어선 것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영역을 사고(思考)하고 궁구하며 나아가, 종국에는 뇌기(雷氣)와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상상의 변화, 의지의 변화.

그것은 곧 기도의 변화로 이어졌고, 기도가 변화하니 막혀 있던 무공이 급진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무도(武道)는 심신 양면의 수련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극의에 다다를수록 사고력과 상상력의 중요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며, 보는 눈이 한 번 바뀌는 것만으로도 무공의 경지가 상승한다.

그것을 사람들은 깨달음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지금 정체되어 있던 자신의 현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단 한 조각의 창의(創意).

“어쩌면 이 사람보다, 그리고 공공대사님이나 승현진인보다도 더.”

“…….”

“무극에 가까이 다가간 것 같소.”

놀라운 칭찬이었지만, 모용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보이시오?”

“그렇소.”

“무극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하오. 그곳에 도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오. 단순히 그에 도달한 고수의 경지를 보았다고 하여, 나의 무극도 그러하리란 보장은 없지.”

“맞는 말씀이오.”

“다 뜬구름 잡는 소리요. 그에 이를 자신은 있지만,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먼저 오를 자신은 없소. 그것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연위는 뜻밖이라는 눈으로 모용군을 바라보았다.

이전에도 모용군과는 이러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언제나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나아가 상대의 기반을 무너트리는 데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다.

한데 지금 보니 적어도 무공에 대한 담소를 나눌 때의 모용군은 나쁘지 않은 대화 상대였다. 연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대가 보는 무극은 그러한 모양이오.”

“그렇소. 나는 내 재능과 노력을 다 썼소. 남은 것은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오.”

담담하기 그지없는 모용군의 말에, 연위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대답지 않소.”

“그렇소?”

“내가 기억하는 모용가주는 훨씬 패기만만하고 음험하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부드러운 목소리로 꽤 날 선 말을 하는 연위였다.

모용군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소. 그저 나의 상태가 달라졌을 뿐이오.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더이다.”

“아쉽구려.”

모용군이 연위의 잔을 채워 주었다.

“재미있구려. 그대와 이런 얘기를 하는 것, 생각해 본 적도 없소.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해도 과연 둘 다 무인은 무인인 모양이오.”

“그러게 말이오.”

“그러나 이 야심한 시각에 술잔을 나누며 무론을 주고받는 것은 아쉬운 일이오.”

잔을 들던 연위의 손이 멈칫했다.

시원하게 잔을 비운 모용군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저런 사족은 다 떼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소.”

“말씀하시오.”

“무림맹주가 되고 싶소?”

“……?!”

뜬금없이 이게 무슨 말인가?

잔을 다시 내려놓은 연위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무슨 말씀이오?”

“왜? 해서는 안 될 질문이었소?”

“…….”

“별다른 의도가 있는 질문은 아니니, 솔직하게 대답해 주셨으면 하오. 물론 대답하고 말고는 그대의 자유인 만큼, 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소.”

물끄러미 모용군을 보던 연위가 툭 던지듯 말했다.

“무림맹주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소. 그럴 능력도 되지 않고.”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오? 아니면 무림맹주란 자리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이오?”

“둘 다요.”

“그렇구려.”

“한데, 뜬금없이 그런 질문은 왜 하는 것이오?”

“나는 무림맹주가 되고 싶소.”

“……알고 있소.”

“그래, 알고 계시겠지.”

모용군이 비어 버린 자신의 잔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무림맹이라면, 나는 그 자리에 앉고 싶은 생각이 없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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