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807화 (807/963)

807화. 굴에 살지 않는 범 (1)

두 사람이 서둘러 식당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식당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이, 이런 빌어먹을!”

수많은 무사가 웅성거렸다. 괜한 싸움에 말려들기 싫어서인지 멀찍이 물러나 빙 둘러서 있는 그들의 숫자는 족히 삼백이 넘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차가운 얼굴의 묵비가 당당히 서 있고, 그녀의 맞은편에는 코를 움켜쥔 삼십 대 장한이 덩치 좋은 흑의(黑衣) 무사 다섯 명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가랑이를 찢어 죽일 년! 네가 감히 날 쳐?!”

묵비의 눈에 은은한 살의가 어렸다.

누가 들어도 장한의 목소리는 늘어져 있었다. 취객의 목소리란 말이다.

“썅년, 너 이리 와! 이리 와! 네년 팔다리를 싹 부러트려서 매음굴에 던져 줄 테니까!”

모욕적인 말 앞에서도 묵비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더욱더 차가워진 눈으로 장한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장한이 덩치 큰 무사들을 둘러보았다.

“이 병신들아! 뭣들 하고 있어? 주인이 이 꼬라지가 됐는데 멀뚱멀뚱 구경이나 해?! 당장 저년 잡아서 내 앞에 꿇려!”

하지만 무사들은 쉽사리 움직이질 못했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엄청나네. 저런 소리를…….”

“소부주님 친구분 아니야?”

“아무리 녹림총채주(綠林總寨主)의 아들이라지만…… 이거 상황이 너무 안 좋은데.”

소부주의 친구.

불과 며칠 전, 묵룡부의 차기 후계자가 결정되었다. 그 즉위식으로 흑도에서 명망 높은 세력의 우두머리와 후계자들, 혹은 자식들 대부분이 묵룡부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대표적인 흑도 세력 녹림에서도 총채주와 그의 자식들 몇몇이 묵룡부에 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장한, 총채주의 둘째 아들 조필도(趙珌導)였다.

조필도는 본디 성품이 잔악하고 아비의 위세를 빌려 온갖 사고를 치는 재앙으로 유명했다. 당연히 여색도 심하게 밝혔고, 술도 좋아해서 어딜 가나 사고를 안 치는 데가 없었다.

다만 그렇게나 사고를 많이 쳐 댄 것에 비해 소문은 잠잠한 편이었다. 총채주가 어떻게든 소문을 통제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흔한 별호조차 없었다. 어느 동네의 무관 사범에게도 나름의 별호가 있는데, 조필도에게는 그런 별호조차 붙지 못했다.

괴악한 별호를 붙이자니 녹림의 눈이 두렵고, 화려한 별호를 붙이자니 그 또한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조필도는 그저 조필도로만 불렸다. 적어도 녹림 산채 인근에서 조필도의 악명은 총채주 이상이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나빴다.

“당신들.”

묵비의 말에 덩치들이 움찔했다.

“이번 일은 잊어 줄 테니까, 주인 잘 보필해서 물러나요.”

덩치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다.

그들 역시 방탕한 주인을 보며 한숨을 쉴 때가 많았다. 아무리 산적 출신이라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조필도 정도로 사고를 치는 산적은 흔치 않다.

게다가 그 살벌했던 옛 시절에도 총채주의 자식쯤 되면 여느 명문가 자식 못지않은 예절과 기품을 챙기며 살았다. 산적들도 정치를 아는 것이다.

즉, 조필도는 모실 만한 주인이 아니었다. 나아가 그들은 묵비의 가벼운 한 수만으로도 그녀의 무력이 대문파의 장문인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명분으로도, 무력으로도 상대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무력만 강하다면 부하의 도리로 덤벼라도 보겠는데, 심지어 상대는 소부주의 친구라고까지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사태를 악화시키는 건 역시나 조필도였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잊어 준다고?”

조필도가 옆으로 밀쳐진 탁자를 걷어찼다.

빠각!

탁자가 부서지며 그 위에 놓여 있던 접시와 술병이 떨어져 깨졌다.

“찢어 죽일 년! 너 따위가 뭐라고 감히!”

화아아악!

조필도의 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덩치들의 얼굴에 극도의 당황이 어렸다.

조필도의 살기는 진짜였다. 억지로 드리우는 살기가 아니라, 정말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묻어 나오고 있었다.

차아앙!

허리춤에서 두꺼운 단도를 뽑아 든 조필도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그의 두 눈에선 최소한의 이성마저 사라져 버렸다.

“얼굴 가죽을 벗겨 주지.”

그때였다.

“살기가 텁텁하군.”

심각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한가로운 목소리가 모두의 시선을 빼앗았다.

스르륵!

웅성거리던 무사들이 저절로 길을 열었다.

그 사이로 연호정과 강량이 걸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무사 중 누군가가 크게 발을 굴렀다.

쿵!

“소부주님을 뵙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물러난 모든 무사가 무릎을 꿇었다.

“소부주님을 뵙습니다!!”

식당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다.

제정신이 아니라 해도 묵룡부의 후계자가 나타났다는데 싸움을 이어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필도가 이를 갈며 자세를 바로 했다.

연호정이 묵비를 바라보았다.

묵비가 한숨을 푹 쉬었다.

“미안해요.”

“네가 나한테 미안할 게 뭐가 있겠냐……라고 말하고 싶지만.”

연호정이 덩치들을 보며 말했다.

“어떤 상황인지 확인도 안 해 보고 잘잘못을 논하는 건 이상한 일이지. 그렇지 않나?”

조필도가 입을 열었다.

“소부…….”

“설명해 봐.”

“예?”

연호정은 조필도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가 검지로 제일 왼쪽에 있는 덩치를 가리켰다.

“자네.”

“예? 아, 예!”

“어떻게 된 일인지 가감 없이 설명해 주게.”

“제, 제가 말입니까?”

“왜? 이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어서 부담스럽나? 부끄럼 탈 성격 같지는 않은데.”

덩치의 얼굴이 굳어졌다.

조필도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건…….”

“시끄럽다.”

연호정의 서슴없는 언사에 조필도가 움찔했다.

연호정이 나른한 눈으로 조필도를 내려다보았다.

“네놈에게 물은 게 아니야.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 입을 연다면 목에 두 번째 주둥이를 달아 주마.”

목에 구멍을 뚫어 주겠다는 살벌한 소리였다. 조필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

사고를 마비시키는 살기다.

주변의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은 채, 오직 조필도 하나에게만 집중되는 연호정의 살기는 그의 심신을 완벽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조필도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졌다. 손에 들린 단도가 파르르 떨렸다.

눈빛 한 번으로 제압된 형국이다. 무사들은 물론 덩치들 역시 한심하다는 눈으로 조필도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연호정의 위세에 단번에 굴복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연호정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말해 보게.”

덩치의 말은 이러했다.

조필도는 언제나처럼 술을 마셨다. 특히 묵룡부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평소보다 더 과음을 했단다.

그러다 묵비가 나타났다. 그녀는 숙수에게 안주가 될 만한 것을 주문했고, 안 그래도 답답했던 조필도는 큰 소리로 먹을 줄도 모르는 것들이라고 투덜거렸다.

당연히 묵비는 그에게 시선 한 번 던지지 않았고, 그런 그녀에게 조필도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

“내가 먹던 거 나눠 줄까? 내 침 몇 방울로 조미된 거라 더 맛있을걸?”

그야말로 수준 낮은 도발이었다. 묵비는 역시나 그를 무시했다.

모두가 예상했듯 조필도는 화가 났고, 그녀에게 걸어가 들고 있던 접시를 날려 버리려 했다.

당연하게도 묵비는 접시를 뺏기지 않았다. 홀연한 걸음으로 조필도를 피해 식당 입구로 걸어갈 뿐이었다.

눈이 뒤집힌 조필도는 그녀의 뒤를 공격했고, 그 즉시 반격을 당해 코가 부러진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었다.

“…….”

덩치의 말이 끝나자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량은 기가 막힌다는 듯 조필도를 보았다.

조필도의 호위들은 경직된 얼굴로 덩치를 바라보았다. 같은 동료였고 조필도에 대한 충성심도 없지만, 이렇게까지 가감 없이 얘기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사실 더 놀란 건 직접 이 얘기를 하고 있는 덩치였다.

주르륵.

그의 이마와 목덜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딱히 이유도 없었다. 한데도 긴장한 듯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고, 감히 연호정을 쳐다보지 못한 채 두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연호정이 묵비에게 물었다.

“이 녀석의 말이 사실이야?”

묵비가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내가 괜히 대응한 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 상대 실력도 모르고 설쳤는데 죽지 않은 게 다행이지. 오히려 손속에 사정을 둔 너의 자비심에 감탄이 나오는데?”

연호정이 무심한 눈으로 조필도를 바라보았다.

조필도가 움찔했다.

“나였으면…….”

저벅.

한 걸음.

고작 한 걸음이었지만, 이 장이나 떨어져 있던 연호정은 어느새 조필도 앞에 나타나 있었다.

연호정이 조필도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한 방으로 머리통을 날려 버렸을 텐데.”

“……!!”

털썩!

신음도 없었다. 순간 꺽! 소리를 낸 조필도가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부르르르!!

조필도의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코앞에서 쏘인 절대고수의 살기가 순식간에 망막으로 침투하여 두뇌를 뒤흔들었다. 절정고수 수준의 무력으로는, 아니 초절정고수였더라도 이 살기 앞에 제정신을 유지하긴 힘들 것이다.

“흐음.”

가만히 조필도를 내려다보던 연호정이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주둥이 여는 것을 허락하마.”

“예, 예!”

조필도는 자신이 대답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것이다.

연호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예!”

“일부러 그랬지?”

“……?!”

“네놈 눈이 주색에 미쳐 세상 돌아가는 꼴도 모르는 머저리 병신의 눈 같지는 않아서 그래.”

“……예?”

“아무리 산적 놈들이라도 이 정도 세력을 구축한 이상에야 없던 격도 생기는 법이지. 하물며 총채주의 아들이라면 중원 산적왕의 자식인데, 총채주가 병신이 아니라면 제 아들놈이 이렇게까지 날뛰는 걸 가만히 두고만 봤겠어?”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서늘한 두 눈, 오직 입꼬리만 올라간 그의 웃음 같지 않은 웃음은 언제나 상대에게 섬뜩한 공포를 선사한다.

“왜? 네 애비가 시키더냐? 흑도의 차기 주인이 될 놈이 어떤 놈인지 알아보라고 명령이라도 내렸어?”

“그, 그게……!”

“그게 아니고서야 이리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날뛰었을까. 그 즉위식 자리에는 내가 아끼는 친구들 모두가 있었다. 못 봤을 수가 없어.”

“저는……!”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천하를 종횡하며 신궁(神弓)의 별호를 손에 넣은 궁사의 정체를 모르기는 어렵지. 하물며 단 한 수로 네놈이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았는데, 그 더러운 주둥이로 죽이니 마니 난장을 쳤다? 말이 되나?”

연호정이 살짝 고개를 틀었다.

조필도의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시퍼렇게 죽어 버렸다.

“네놈의 애비가 배가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천금 같은 아들내미 목숨을 걸고 나를 자극하려 한 걸 보면. 하기야, 너도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말 같지도 않은 행위에 동조했겠지?”

“소, 소부주!”

“소부주?”

파아아악!

“아악!”

조필도가 그 자리에서 뒹굴었다.

어느새 연호정의 손안에 조필도의 아랫입술과 이빨 몇 개가 뒹굴었다. 입의 아랫부분을 잡고 그대로 뜯어내 버린 것이다.

“님 자를 붙여야지, 이 친구야.”

자리에서 일어난 연호정이 손을 털었다.

찢어진 살덩이와 이빨이 떨어지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녹림총채주를 데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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