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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773화 (773/963)

773화. 복마전(伏魔殿), 그리고 복마전(伏魔戰) (11)

퍼억!

연호정의 이마가 다시 한번 곽준의 콧대를 후려쳤다.

곽준은 눈앞이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부러진 코에서부터 올라오는 끔찍한 통증은 덤이었다.

하지만 그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퍼어억!

유연하게 올려 찬 무릎이 연호정의 턱을 후려쳤다. 연호정은 피를 토하면서도 그대로 몸을 회전시켰다.

땅에서 한 발이 떨어진 곽준은 맞잡은 연호정의 손을 따라 그대로 허공에 떠올랐다.

콰앙!

곽준을 바닥에 메다꽂은 연호정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울컥!

연호정의 입에서 또 한 번 피가 흘러나왔다.

어느새 그의 옆구리가 움푹 들어갔다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곽준이 바닥에 처박히기 전 날린 단타각에 맞은 것이다.

물론 곽준의 상태도 좋지는 못했다. 끝까지 연호정을 공격하느라 마기가 몸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두둑!

곽준의 어깨에서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탈골된 어깨가 제대로 붙지를 않았다. 몸 전체에 이는 충격 때문에 역천의 마기가 특유의 회복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연호정이 재차 달려들어 오른발을 포탄처럼 날렸다.

퍼어어어억!

“컥!”

답답한 신음과 함께 곽준이 이십여 장을 직선으로 날아가 숲에 처박혔다.

“허억! 허억!”

연호정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푸스스스.

광명신단이 최고 속도로 회전했다. 온몸으로 막강한 기운이 절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불안정했다.

무극의 고수는 내상이나 외상을 빠르게 치료할 수 있다. 몸을 항상 최선의 상태로 되돌리고자 하는 진기의 본능 때문이었다.

그러나 연호정은 그 회복력의 일부분을 조금씩 가져다가 공격력으로 바꾸었다.

안 그래도 회복력에 있어서는 곽준보다 밀리는 그였다. 당연히 체력적인 부분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호정은 자신의 전투법을 되돌아보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곽준은 명백히 자신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런 고수를 매시간 치료까지 해 가며 상대할 수는 없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힘을 공격에 쏟아부어 상대에게 피해를 줘야만 했다.

화르르르륵!

연호정의 몸 곳곳에서 시뻘건 화기가 일렁였다.

호흡은 스스로의 의지로 제어하고, 광명신단이 만들어 내는 모든 내공을 주작화기로 바꾸었다.

치이이이이익!

연호정이 발이 닿은 땅이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화기로 타들어 가는 것이 아니었다. 화기보다도 독한 살기 때문에 지력(地力)이 죽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 독한 살기를 보인 적이 그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살기 역시 정신력의 일면이고, 상단전만 과하게 발달했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상중하 모든 단전이 완벽하게 호응을 이루고 있었다.

불끈! 불끈!

타오르는 살기를 전신에 담은 연호정의 몸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 파멸적인 살기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련된 몸이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만, 곽준을 상대로 날뛸 만큼은 버텨 줄 것이다.

“다시 말해 봐라.”

화아아악!

연호정의 코와 입에서 또 한 번 연기가 피어올랐다.

주작화기의 열기로 인해 뿜어지는 연기가 아니었다. 몸 전체를 장악하고도 남은 살기가 코와 입을 탈출구 삼아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었다.

“다시 말해 봐! 내 앞에서!”

사자후가 아니라 마귀의 울음소리 같다. 연호정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일갈이 곽준의 마성을 일깨웠다.

퍼어어어엉!

무너진 흙더미를 폭발시키며 일어난 곽준이 연호정을 노려보았다.

“……최고다.”

푸스스스스.

곽준의 몸에서 혈정마기가 치솟았다.

우두둑!

탈골된 어깨가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이전보다 현저히 느렸다. 물론 그조차도 무척 빨랐지만, 기존의 회복력과 비교하면 곽준의 내공 소모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재미있을 줄은 몰랐어. 네 덕분에 마공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었다.”

허세가 아닌 사실이었다.

연호정의 살기는 그 자체로 마(魔)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음한 기운을 마주한 혈정마공이 남은 일 할의 부족함을 채워 완벽하게 회복한 것이다.

그래서 이 상태다.

그 일 할의 회복을 도모하지 못했다면 부러진 어깨와 코도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고, 여태 지독한 내상에 숨을 헐떡이고 있었을 것이다.

곽준이 웃으며 걸어 나왔다.

“넌 정말 대단한 놈이야. 전투술, 내공 조예, 심리전은 물론 변수를 이용한 창의적인 싸움법까지. 그 어느 것 하나도 본 적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

“정말 감탄이 아니 나올 수가 없군. 나보다 더 지독한 놈을 볼 줄은 몰랐는데.”

“닥쳐라.”

“그렇게 ‘만들어진’ 살기만으로도 나를 이 상태로 만들 줄은 몰랐지 뭐냐?”

만들어진 살기.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연호정은 침묵하며 곽준을 노려보았다.

곽준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자신과 동종의 마(魔)를 품은 상대에 대한 경의도, 쾌락도 더는 없었다.

“코앞에서 맞붙었을 때야 깨달았다. 너는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짜 살기를 끄집어낸 것이 아니야. 그 근원에 가깝게 도달했지만, 너의 이성은 너무나도 차갑고 맑아.”

“…….”

“내가 틀렸나?”

푸스스스스스.

연호정의 몸을 꽉 채우고 있던 살기가 일순 물벼락을 맞은 불처럼 확 꺼져 버렸다.

우우우우우웅!

사라진 주작화기의 자리를 채운 것은 강력한 백호기와 유연한 청룡기,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현무기였다.

“후욱.”

거칠어졌던 호흡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들어왔다. 폐장을 담당하는 백호금기(白虎金氣)의 힘이었다.

치이이익!

입은 내상이 조금씩 낫기 시작했다. 간장을 담당하는 청룡목기(靑龍木氣)가 체내 깊숙이 침투한 마기를 씻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툭. 투둑.

연호정의 손끝에서 시커먼 물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신장을 담당하는 현무수기(玄武水氣)가 불순물을 걸러 체외로 배출해 낸 것이다.

삼신기(三神氣)의 박자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며 순식간에 연호정의 상태를 정상으로 만들었다. 곽준이 가만히 서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이 상태로 돌입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작기.

두근! 두근!

심장을 담당하는 주작화기(朱雀火氣)가 본래 있을 곳으로 돌아와 연호정의 육체를 완전(完全)하게 만들어 주었다.

연호정이 옆으로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웅!

월도가 빙글빙글 날아와서 그의 손에 잡혔다.

“고민하고 있었지.”

곽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엇을?”

“시간을 끌어야 할지, 아니면 이 상태로 끝까지 네놈을 몰아붙여야 할지.”

엄청나게 오만한 발언이었다.

천하의 혈옥마군을 앞에 두고 시간을 끌지, 몰아붙일지를 고민하고 있었단다.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고민을 할 정도의 심적 여유는 있었다는 뜻이었다.

곽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냐? 왜 ‘그걸’ 꺼내지 않았지?”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우문(愚問)이다. 살기라는 것은 꺼낸다고 꺼내지고, 부풀린다고 부풀려지는 것이 아니야.”

“헛소리하지 마라! 네놈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어! 너의 심장에는 만년설로도 꺼트릴 수 없는 지독한 살기가 잠자고 있다! 그런 것은 제어한다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살기에 익숙해지면 설령 땡중이라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곽준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어쩐지 연호정은 그가 말한 땡중의 정체가 무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내 속의 뭘 봤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잘 몰라. 다만, 정말 그런 것이 있다면 그걸 풀 상대는 네놈이 아니다.”

“……뭐?”

“내 한과 살기는 너처럼 어디서 기어 왔는지도 모를 마졸(魔卒) 놈에게 풀 것이 아니란 말이다.”

“……!”

“날 그렇게도 열렬히 사랑해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사실 진짜로 화가 나기는 했다만, 덕분에 너를 지금까지 잡아 둘 수 있었으니 나름대로 밥값은 한 것 같다.”

화아아아악!

곽준의 살기가 마기와 공명하며 사방으로 넘실거렸다.

진짜로 화가 난 곽준의 기세는 필설로 형용키 어려웠다. 그의 기파에 닿은 영역이 시커멓게 물들며 힘을 잃어 갔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기세를 앞에 두고도 연호정의 표정은 여전했다.

“날 잡아 둘지, 쓰러트릴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

“잡아 두는 것은 성공한 것 같다만, 쓰러트리겠다 마음먹는다고 그것이 가능할 것 같았더냐?”

“안 되겠더군.”

“……뭐?”

“안 되겠더라고, 아직은. 박 터지게 싸우는 것까지야 가능한데, 널 죽일 수 있을 거란 확신은 들지 않아.”

연호정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오만 살법에 당하고도 순식간에 회복하고, 심리전으로 흔들려 해도 미쳐서 깔깔 웃기나 해 대는 놈한테 뭐 통하는 게 있어야지. 그렇다고 확실한 빈틈을 보이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란 말이지.”

“…….”

“천운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지금의 내게는 널 죽일 능력이 없다. 안타까운 사실이야.”

곽준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희열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분노한 마귀의 형상 그대로였다.

“그래서 포기한 거냐?”

“누가 포기를 해?”

“……?”

“내게 널 죽일 힘이 없다는 것이지, 오늘 널 죽일 생각을 철회한 건 아니야.”

“뭔 개소리냐!”

화아악!!

순간 곽준의 표정이 돌변했다.

연호정의 등 뒤, 황궁 방향에서부터 밀려드는 회흑색 거대한 구름이 있었다.

그 기세는 마기와 너무나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기질을 품고 있었다.

사악하고 지독하다. 날카롭고 치명적이다.

흉악하고 위압적인 마기와는 다른, 하지만 비슷한 근원을 둔 기운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연호정이 투덜거렸다.

“투덜거리면서 내 욕을 한 바가지는 하겠구만.”

그때, 기다렸다는 듯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병신 같은 새끼! 도우러 오라니까 반대로 도움을 기다리고 있어?! 패왕인지 뭔지 하는 별호는 개한테나 가져다줘라!”

“거봐.”

콰콰쾅!

벼락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오면서도 대지에 몇 번이나 장력을 쏟아붓는다.

그 압도적인 힘에 신화교도들과 몇몇 사음교도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동등한 고수와 일전을 치르고도 아직 충분한 여력이 있는 듯, 연신 퍼부어 대는 신들린 장력과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는 기괴한 귀곡성이 실로 압권이었다.

파라라라라락!

그리고 마침내, 어두운 하늘을 등지고 내려오는 한 명의 고수가 있었다.

광혼귀군 곡경이었다.

연호정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그쪽 싸움은 끝났소?”

“그럼 안 끝났는데 왔겠냐?”

“꽤 화끈한 폭발을 느꼈는데.”

“화포 터지는 소리 속에서 용케 들었군. 나랑 붙은 놈 죽는 소리였다.”

“많이 안 다치신 것 같소. 다행이오.”

“너처럼 얄미운 새끼도 세상에 없을 거다.”

옷을 툭툭 털면서 연호정과 나란히 선 곡경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곽준을 보았다.

“누구인가 싶었는데, 마선은 아닌 것 같군.”

“…….”

“혈옥마군 곽준이라,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지 아마?”

곽준의 볼이 살짝 떨려 왔다.

연호정에게 당한 모욕을 똑같이 당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가 연호정을 향해 발작적으로 외쳤다.

“지금이라도 그걸 꺼내라! 이대로는 물러날 수 없어! 네놈의 그걸 모조리 먹어 치워야겠다!”

“누구 맘대로 먹어 치워, 인마.”

“당장 꺼내 들지 않으면……!”

연호정이 곽준에게 월도를 겨누었다.

화아아악!

어느 하나의 우위도 없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사신기가 모조리 솟구치며 강력하기 그지없는 위엄을 발산했다.

“내 다시는 살기 따위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혈육 앞에 맹세했다.”

연호정이 맑은 미소를 머금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뒈질 준비나 해라.”

번쩍!

연호정과 곡경이 곽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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