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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767화 (767/963)

767화. 복마전(伏魔殿), 그리고 복마전(伏魔戰) (5)

“……!!”

순식간에 거처를 나서 어도에 이른 연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군에서도 가장 실력 좋은 이들이 제이 궁문 인근에서 진을 치고 있었고, 나머지가 제삼 궁문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삼엄하기 그지없는 기세였다. 황제의 처소를 철저하게 호위하는 금군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교대는 했다지만 며칠 동안 날을 세우고 있었으니 피곤할 만도 할 텐데, 전혀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슨 일이 터져도 당장 반응할 수 있는 상태였다.

“연가주.”

팽무강이 연위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의 얼굴은 똑같이 굳어져 있었다.

“느끼셨소?”

“느꼈소.”

뒤이어 따라온 제갈아연의 얼굴엔 다급함이 가득했다.

“바깥 상황을 봐야 해요. 지금 이 충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해야만 합니다.”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섣부른 움직임은 금물이다. 이곳에서 외성 밖까지, 우리의 신법으로도 한참이나 걸려. 그 안에 무슨 일이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인만 하고 돌아올게요. 굳이 밖이 아니더라도 내성의 분위기만 살펴볼 수 있다면…….”

그때였다.

퍼어어엉!

북쪽에서 화려하기 그지없는 폭음이 들려왔다.

세 사람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츠츠츠츠츠.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외성 쪽이었다. 너무나도 먼 거리라, 범부의 눈으로는 제대로 확인조차 하기 힘들었다. 강력한 내공을 지닌 고수들이기에 볼 수 있었다.

“저 연기는……?!”

“연기가 문제가 아니오.”

연위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무극을 연 고수가 등장했소.”

마공을 연성한 정체불명의 괴인, 그리고 미지의 술력으로 존재감을 죽인 괴인.

‘이게 무슨 일이지.’

황궁에 막강한 고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 것이 바로 조금 전이었다.

그것을 알자마자 전투가 벌어졌다. 우연치고는 지나치게 시기적절했다.

‘내가 알아챘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내 기도를 읽지 않는 한, 아니 읽었다 해도 불가능해. 예민한 감각으로 상대의 무력을 읽어 낼 수는 있어도 상대의 의도까지 읽어 내지는 못한다.’

우우우웅.

검극사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연위가 상단전의 신기를 극도로 활성화시켰다.

‘……!’

연위의 눈이 흔들렸다.

‘사공(邪功)!’

북쪽에서 불길을 일으키는 미지의 고수와 싸우는 자.

엄청난 사기를 뿜으며 화려하게 충돌하고 있는데, 그 사이한 기운을 읽어 내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당금 무림에 저 정도의 사공을 연성한 자는 오직 한 명뿐이다.’

연위가 입을 열었다.

“북쪽에서 싸우는 자는 광혼귀군 곡경이오.”

“광혼귀군!”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다행이오. 그가 폐하의 사람이라고 했으니, 이쪽 소식을 듣고는 발 빠르게 도착한 모양이외다.”

말을 하면서도 연위는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꽤 들쭉날쭉하다는 것을.

존재감을 제거한 서쪽의 마인과 신화교 측 고수로 추정되는 북쪽의 괴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읽어 냈지만, 곡경이 황궁으로 들어온 것은 읽어 내지 못했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동시에 연위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 예민한 감각은 절대 완벽하지 않으며,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결코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능력이기도 했다.

“그럼, 저 남쪽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팽무강의 얼굴이 엄청나게 심각해졌다.

“설마 궁 밖에 있는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제갈아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어요. 굳이 지금에 와서야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물론…… 그 마인이 광증에 걸렸다면 모르겠지만요.”

가능성이 거의 없는 얘기였다.

연위가 말했다.

“누군가가 싸우고 있소.”

“마인과 말이오?”

“그렇소.”

“대체 누구요?”

“……모르겠소. 내 감각은 완벽하지 않아서, 한번 포착한 마인의 기운은 읽을 수 있지만 그와 맞상대하는 자의 정체는 읽을 수 없소.”

정확히는, 마인이 발산하는 마기가 너무 지독해서 상대의 기파까지 뒤덮어 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독하다!’

광혼귀군의 사기도 엄청났지만, 저 마인의 마기는 그보다 더한 것 같았다. 귀군의 기운은 지독했고, 마인의 마기는 끔찍했다.

‘한데…….’

요대에 걸린 검을 쥔 연위의 손이 하얗게 변했다.

‘왜일까? 이리 마음이 답답한 것은.’

제갈아연이 입을 열었다.

“전투 준비를 해야겠어요.”

“……?”

“연가주님께서 포착한 적측의 절대고수에게, 그와 맞상대가 가능한 아군들이 붙었어요. 그렇다면 적들 역시 조만간 어전을 노릴 겁니다.”

팽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아연이 눈을 빛냈다.

“직접 외성의 분위기를 보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연가주님의 감각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요. 두 괴물이 상대를 만났다면 농성전에도 희망이 있어요.”

“그래도 문제는 있다.”

“네. 만에 하나 적측의 절대고수들이 이긴다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게 문제였다.

어도의 병력은 충분하다. 특히나 금군은 이쪽 지리에 워낙 빠삭한 이들이었고, 내부 반란이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암살에 대한 훈련도 빠짐없이 받아 왔다.

그야말로 제국 최고의 병사들이니 웬만한 적을 상대로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전장의 판도를 뒤엎을 정도의 막강한 고수가 출현했을 경우였다.

이쪽에는 화포도 있고 소화총도 있다. 하지만 적들 역시 화포를 가지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고수의 숫자가 워낙 많았다.

굳이 절대고수가 나서지 않아도 고수진에서 밀리는 게 사실이었다.

“궁 밖에 팽가 외의 무림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궁으로 들어올지, 들어와서 어느 정도의 활약을 해 줄지는 장담할 수 없는 판국이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제갈아연이 등 뒤에 매달고 있던 깃발들을 들어 보였다.

“어전 전체에 깔아 둔 진법을 가동시키겠습니다.”

“물론 그래야겠지.”

“팽가주님은 오천인장과 함께 수성의 책임자로서 움직여 주세요.”

팽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연가주님.”

제갈아연의 표정에 강단이 어렸다.

강단은 있지만,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연위는 제갈아연이 무엇을 물어보려는 것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내 무공이 성천급 고수에게도 통하는지, 그것이 궁금한 것이더냐?”

“……네.”

“통하지 않는다.”

“그렇군요.”

“정면 승부에서는.”

“……?”

“기습이나 암습을 가한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희망적인 말이었지만, 제갈아연의 표정은 오히려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을 끌지 않았다. 연위 역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두 고수의 전장 중 한 곳을 택해 주십시오.”

팽무강이 깜짝 놀라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설마 연가주를 그쪽 전장에 보낼 생각이더냐?”

“네.”

“아연아!”

“두 곳 모두 패배한다면 희망은 없습니다. 한 곳만 무너진다 해도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그렇다고 두 곳 전장에서 적의 절대고수가 당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더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지금은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팽무강이 경직된 눈으로 연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연위는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 역시 제갈아연의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연위가 고개를 쳐들었다.

“북쪽으로 가겠다. 어전에서 그나마 가까운 쪽이 북쪽 전장이야. 게다가 광혼귀군은 일대의 지형에도 밝을 터이니, 빠르게 승부를 결정짓고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듯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연위가 팽무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이 싸움도 곧 끝나겠구려.”

“……그렇구려.”

“중앙을 부탁하오.”

팽무강이 눈을 감았다.

“꼭 살아 돌아오시오.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면, 우리 가문이 자랑하는 최고급 명주를 선물하겠소.”

연위가 미소를 지었다.

“그거 좋지요.”

파아아아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위의 신형이 사라졌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팽무강이 황보적을 불렀다.

“곧 적들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네. 금군에게 전투를 준비하라 이르게.”

황보적이 눈을 빛냈다.

“알겠소.”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등의 말은 하지 않는다. 비록 사이가 틀어졌을지언정, 그는 팽무강의 능력만큼은 신뢰하고 있었다.

“아연아. 너는 진법을 가동하고 전황을 지켜보도록 해라. 잠시 폐하께 다녀오도록 하겠다.”

“네!”

팽무강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손에 쥔 깃발들을 어도 주변, 진축에 꽂기 시작하던 제갈아연은 문득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격정이 어렸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잘 버텨 주시길.”

* * *

콰드드드득!

무시무시한 도격이 땅을 부순 것도 모자라 곽준의 뒤에 있던 성벽까지 수직으로 갈라 버렸다.

괴력의 무공이었다. 팔십 근이 넘는 초고중량의 병기를 휘두르던 연호정의 완력은 엇비슷한 경지에서도 맞상대할 자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퍼어어엉!

하지만 곽준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의 회피 능력은 실로 기묘했다. 온갖 아수라장을 겪으며 무수히 많은 고수들의 무공과 반응을 봐 온 연호정조차도 처음 보는 종류의 신법이요, 보법이었다.

번쩍!

번개처럼 내치는 십자참(十字斬)이 곽준의 몸을 노렸다.

어느새 교차한 곽준의 두 손이 허공을 찢듯 좌우로 벌어졌다.

콰아앙!

십자참의 도격과 살벌한 조공(爪功)이 부딪치며 막강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이런.’

충격파를 헤치고 나아가 반 박자 빠른 일격을 가하려던 연호정은 급하게 몸을 회전하며 전권에서 벗어났다.

치이이이익!

연호정의 좌측 어깨 의복 일부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마기의 침습이었다. 터져 나온 충격파에 섞인 지독한 마기가, 마치 의지를 갖기라도 한 듯 연호정을 노리고 날아온 것이다.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충격파란 말 그대로 충격으로 발생한 파동이다. 파동으로 퍼지는 진기는 더 이상 그 주인의 것이 아닌바, 폭발하는 기운에 의지를 싣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과 깨달음을 요한다.

‘역시 강하다.’

파편이 된 진기에 의지를 실어 적을 공격한다.

이것은 곧 이기어검(以氣馭劍)의 무리(武理)나 다름이 없었다. 겉으로는 단순하고 잔혹한 무공을 쓰는 것 같지만, 이렇게 순간순간을 노리는 곽준의 살법은 그야말로 성천의 고수다웠다.

그때였다.

“……?”

연호정의 가슴팍에서 점점 핏물이 배어 나왔다.

시선은 여전히 곽준에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연호정은 내심 크게 놀랐다.

‘언제 찔렀지?’

곽준의 손가락 네 개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뼈에 닿지는 않았지만, 정말 위험할 뻔했다.

곽준이 자신의 손톱에 묻은 연호정의 피를 핥았다.

“이봐.”

“…….”

“이름이 뭐지?”

연호정이 싸늘하게 말했다.

“통성명 안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알고 싶어졌어. 네놈이 너무 앙탈을 부리니까.”

“앙탈?”

“그 가슴 안에 있는 흉흉한 걸 꺼내 보고 싶었는데 실패했구만. 너무 꼭꼭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뭔 개소리인지 알 수가 없구만.”

“이름 좀 알려 줘 봐. 가족 관계도.”

“갑자기 왜 이래? 광증이라도 도졌나? 하긴, 처음부터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다만.”

“네놈이 품고 있는 그 지독한 한과 분노. 거의 악의(惡意)에 가깝지. 아무리 피폐한 삶을 살아도 그처럼 지독한 걸 품고 멀쩡히 돌아다니는 놈은 많지 않아. 나나 너처럼 특별한 놈들은 정말 흔치 않다니까.”

“무슨 개소리를 자꾸 하시나.”

“끝까지 그거 안 꺼내 들면, 네 애비와 형제들을 찾아가야겠어.”

연호정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곽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하니 너, 한 번도 폭발한 적 없는 건 아니지?”

“…….”

“핏줄에 녹아 있는 그 악랄한 광기…… 그런 건 경험으로 쌓기 힘들어. 사람의 자식이 귀신을 낳는 거 봤냐?”

곽준이 히죽 웃었다.

“네 선대(先代)도 너 못지않은 귀신일 거다.”

번쩍!

엄청난 살기를 품은 월도가 곽준의 머리통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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