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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766화 (766/963)

766화. 복마전(伏魔殿), 그리고 복마전(伏魔戰) (4)

“……!!”

연호정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화르르르륵!

신화교의 열양공이 아니다. 사음교의 독특한 신공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광혈교의 마공도 아닌 것 같았다.

어디에서도 느껴 보지 못했던, 기원을 알 수 없는 선명한 마기가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이이잉.

손에 쥔 월도가 저 혼자 울음을 터트렸다.

연호정의 정신과 공명하는 칼이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울었다. 긴장 가득한 도명(刀鳴), 자연스레 이루었던 신도합일(身刀合一)의 경지가 알아서 깨져 버린 것 같았다.

후우우우웅!

광명신단이 매섭게 회전하며 일순간 막대한 양의 기운을 발산했다.

화아아아악!

피처럼 끈적하고 불처럼 사나운 마기를 상대로, 한없이 강렬하고 단단한 패기가 파도처럼 솟구쳤다.

두 사람의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콰콰쾅!

“으아악!”

“크아아아악!”

엄청난 돌풍과 충격파가 일어나며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반경 십여 장에 달하는 대지가 쩍쩍 갈라지며 내려앉았고, 장엄하기 그지없는 황궁의 외성 성벽 한 군데가 와르르 무너졌다.

연호정의 한참 뒤에 있던 건물 몇 채도 폭삭 내려앉았다. 몇 그루의 나무는 서서히 휘어지다가 자연스럽게 뿌리를 드러내며 뽑혀 나왔다.

엄청난 광경이었다.

지금껏 연호정이 부딪쳤던 무극의 고수가 몇 명은 되었지만, 그 누구도 이렇게 파괴적인 기세를 보여 준 적이 없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모든 내공을 쏟아부어야 할 고수다. 기질은 다르지만, 이 넘치는 힘만 보자면 공손백룡은 물론 곡경보다도 강한 것 같았다.

‘이 자식은 대체……!?’

풍성하기 그지없는 마력, 여유롭게 발산하는 힘이 일품이었다.

흉맹한 기운만 아니라면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할 기파였다. 회귀한 이후로, 기파만 부딪쳤음에도 뼈마디가 저려 오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연호정이 기우희에게 손을 뻗었다.

훅!

기우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수십 장 밖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그녀가 날아간 방향으로 묵룡대가 움직였다. 애초에 그곳엔 묵비가 숨어 있으니 기우희가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주변에 사람은 없다. 숨어 있던 개방도들도 일찌감치 멀리 달아났다.

연호정의 동공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치이이이이익!

쏟아져 나오는 기파에 무시무시한 살기가 서렸다.

주작기(朱雀氣)는 천하 어떤 열양공에 비해도 모자람이 없는 양강의 기운이었지만, 기실 신화교의 기공술처럼 화력으로 적을 불태우는 무공은 아니었다.

살기, 살법.

불처럼 위험하고 치명적인 기운을 살기로 바꾸어 일시에 적을 제거하는 것이 주작공의 극의(極意)인바.

쿠구궁!

무겁고 사나운 백호의 기운이 투쟁심을 부풀게 하고, 어둡고 단단한 현무의 기운이 그 속에 냉정을 불어넣는다.

휘이이잉!

유연하고 신비로운 청룡의 기운은 신체의 내구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렸으며, 위험하고 살기 넘치는 주작의 기운은 모조리 튀어나와 상대를 옭아맸다.

시작하자마자 사신기(四神氣)가 총출동했다. 어설프게 대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 떠볼 이유도 없는 적이었다.

첫 일격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패배는 확정이다. 연호정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거리낄 것이 없어지자 두 배는 더 사납게 몰아치는 기파가 인상적이었다. 상대의 전력에 호흡마저 흐트러질 정도였다.

“역시! 대단하구나!”

서슴없는 칭찬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내는 연호정의 힘을 느끼고도,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상대를 보고도 환희에 젖을 뿐 긴장 따위 하지 않았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보람이 있었어!”

우두둑!

사내의 손이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어느새 그의 손톱은 맹수의 그것처럼 뾰족하게 날이 서 있었다. 색도 시커멓게 물든 것이, 흡사 마귀의 손처럼 보였다.

핏빛으로 물든 동공, 흰자위에까지 핏줄이 드러나니 광기가 철철 넘쳐흐른다.

질 좋은 비단과 같이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은 일제히 하늘 높이 솟구쳤다. 피부는 점점 하얘졌고, 장포 안에 드러난 육신 곳곳에는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실로 섬뜩한 모습이었다. 도저히 사람이라 부를 만한 외양이 아니었다.

연호정이 눈이 흔들렸다.

‘이런 놈이 있었다니!’

쾅!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지진과 같은 충격파를 일으킨다.

사내, 곽준(郭俊)이 하얗게 웃었다.

“문답무용, 어디 네놈의 심장이 얼마나 뜨거운지 볼까?”

연호정의 동공이 확 커졌다.

‘온다!’

퍼어어어어억!

연호정의 몸이 사선으로 움직였다.

엄청난 허릿심을 이용, 상반신의 탄력만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해 냈다. 아니, 피해 냈다고 생각했다.

주르르륵.

어느새 연호정의 왼팔이 피로 물들었다.

좌측 견갑이 날아가 버렸다. 하늘을 날다가 땅에 떨어진 견갑은 제멋대로 찢겨 있었다.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의 무공이 너무 빠르고 날카로워서 그대로 당해 버렸다. 조금만 늦었다면 왼팔이 통째로 날아갔을 것이다.

‘이런!’

상대의 힘을 확인하고 그에 맞춰 움직였는데도 이렇다. 예상을 벗어난 일격에 당한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강하다! 이 자식, 엄청나게 강해!’

연호정이 힘차게 월도를 휘둘렀다.

사선으로 내리친 일격에 태산과도 같은 거력이 담겼다. 힘도 힘이지만, 그 속도가 벼락과도 같았다.

연호정은 상대가 물러날 것이라 예측했다. 자연스럽게 후속타를 떠올렸다.

그때였다.

쩌어어어어엉!

귀찮은 파리라도 쫓듯, 사내가 왼 주먹을 휘둘러 월도를 쳐 냈다.

연호정은 또 한 번 놀랐다. 회피를 유도한 일격이었기에, 막아 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애초에 맨손으로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일도(一刀)가 아니었다.

“호오?”

곽준이 왼손 손등을 혀로 핥았다.

“이거 생각보다 더 강하구먼그래?”

월도를 쳐 낸 그의 왼손은 참혹하게 부러져 있었다. 살점이 뜯어졌고, 뼈마저 드러났다. 아무리 무극의 치유력이 대단하다 한들, 당분간 휘두르지 못할 것이다.

연호정의 왼손이 월도의 창봉을 잡았다.

번쩍!

순식간에 십팔연환(十八連環)의 도격을 쏟아 낸다.

벼락처럼 빠르고 날카롭다. 방금 내친 도격의 위력은 그대로 살린 채, 훨씬 더 빠르고 다채로운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그때, 연호정은 곽준의 얼굴에 떠오른 사이한 미소를 보았다.

쩌저저저저저저정! 콰드드드득!

미친 듯이 휘둘러지는 양손이 월도의 도격을 하나하나 쳐 냈다.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왼손이?!’

오른손은 그렇다 치더라도, 왼손은 멀쩡하지 않을 것이다. 한데 상대는 부러진 왼손까지 휘둘러 칼을 막아 낸 것이다.

훅!

연호정이 거리를 벌렸다.

순간의 판단력과 실전 경험이 좌우하는 근접전에서 먼저 거리를 벌린 것도 오랜만이었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초전이었다.

“음? 뭐야? 왜 물러서는 거냐?”

“……!”

연호정의 눈이 곽준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곽준의 왼손은 어느새 거의 다 나아 있었다. 멀쩡할 때와의 차이가 있다면, 아직 채 아물지 않은 피부에서 불그스름한 마기가 연기처럼 넘실거리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역천회복!’

순간 그는 스승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세상에는 별별 괴공(怪功)들이 많다. 인간의 상상력은 끝이 없어서, 기괴하기 그지없는 무공들을 창조해 내기에 이르지. 황룡을 완성치 못한다면 경지에 오른 사신공(四神功)으로도 상대하기 버거운 무공이 있을 것이다.’

‘…….’

‘그중 단연 최고는 마공이다. 마공이란 순리를 거부한 역천의 무공으로, 기를 불리는 방식 자체가 일반 무공과 다르다. 많은 사람이 그러한 방식을 잘못 써서 주화입마에 걸려 폐인이 되거나 죽기도 하지.’

‘…….’

‘다만 그러한 마공을 극에 이르도록 연마하여 비천(飛天)의 문을 열고, 그곳에 이르러서도 끊임없이 질을 키워 어느 한 지점을 돌파한다면, 그때부터는 진정한 역천이 고개를 쳐들게 된다.’

‘진정한 역천…….’

‘물론 그 정도로 마공에 미친 자와 부딪칠 일은 어지간해선 없을 것이다. 애초에 마공을 익힌 자를 찾아보기도 힘든 판국이니. 다만, 황룡을 꺼내기 전에 그런 자와 부딪치게 된다면…… 물러나는 걸 추천하겠다. 무공은 사람을 상대로 쓰는 것이지, 귀신을 상대로 쓰는 것이 아니야.’

진정한 역천.

역천이라 함은 곧 순리를 역행하는 것으로, 천도(天道)의 흐름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천도는 곧 자연이요, 자연은 곧 마땅한 이치를 품고 나아간다. 역천은 그러한 이치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다.

역천의 극의는 곧 불로불사(不老不死)다.

그야말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행위. 마기가 극에 이르면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날아가는 중상을 입어도 순식간에 회복한다.

신화교의 화정과는 전혀 다르다. 역천회복에 비하면 오히려 신화교의 무공은 훨씬 더 안정적이고 정석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연호정은 스승께서 말씀하셨던 그 진짜 역천마기를 몸에 두른 고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어. 네놈이 아직 진정한 힘을 꺼내지 않았다는 걸.”

곽준이 사이하게 웃으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왔다.

쿠구궁! 쿠구궁!

땅을 디딜 때마다 작은 지진이 터진다.

온몸에 가득 찬 마기를 아낌없이 발산한다. 장기전으로 갈지, 단기전으로 갈지의 고민도 없다. 그냥 품고 있는 힘을 마음껏 표출할 뿐이었다.

걸어 다니는 재앙이었다. 인간의 머리로는 그 힘을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지혜로운 연호정의 안목으로도 그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마귀의 등장이었다.

“너, 정체가 뭐냐?”

우뚝!

곽준이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냐?”

“여기에 네놈 말고 또 누가 있다고.”

거침없는 말투였다. 애초에 살초를 주고받은 사이니, 존중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다.

가만히 연호정을 보던 곽준이 광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피를 줄줄 흘리고 있으면서 웬 통성명이냐? 그렇게 내 이름이 궁금했더냐?”

“궁금하니까 물어보는 거다.”

“……허어.”

곽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묘하구먼. 흉중에 악랄하기 그지없는 본능을 안고 있으면서, 어째 하는 행동은 정파의 머저리들과 닮았어.”

“…….”

“어차피 잡아서 찢어 죽일 사이가 아니던가. 왜? 이름 들으면 도망치려고?”

“……안 가르쳐 줄 거면 됐다.”

화르르르륵!

피범벅이 된 왼손을 들어 전방을 겨눈 연호정이 자세를 낮추었다.

우두둑!

왼발이 땅을 파고들었다. 좌반신에 엄청난 힘을 실은 것이다.

곽준이 씨익 웃었다.

“좋아. 아주 좋아. 실망시킬 줄 알고 걱정했는데, 역시 네놈은…….”

“설마하니 혈옥마군과 싸울 날이 올 줄은 몰랐군.”

“호오? 뭐야? 알고 있었어?”

연호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성천 중 마공을 연성한 사람은 공손백룡을 제외하고 둘뿐이다. 네놈의 마기가 분명 인상적이긴 하지만, 마선(魔仙)의 무공이라기엔 너무 잡스럽지 않냐?”

“…….”

“그리고 마선이었다면 난 벌써 죽었어. 그러니 네놈의 정체는 혈옥마군일 수밖에 없지.”

곽준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화는 내지 않았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멋지다.”

화르르륵!

곽준의 눈이 흰자위까지 완전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이끌고 있어. 대단해. 정말 반할 것 같구나.”

파아아앙!

초고속으로 접근한 연호정이 냉정하게 일도를 휘둘렀다.

“들러붙지 마라, 변태 자식아.”

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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