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747화 (747/963)

747화. 피 묻은 황좌(皇座) (8)

“……!!”

일순간 정적이 일었다.

진사는 동창 적란조의 조장이기 전에 신화교의 무장이었다. 비록 황궁의 일이 다급하여 수년 전 무장의 직위를 버리고 궁으로 들어왔지만, 그 무공만큼은 틀림없는 십팔무장의 그것이었다.

말석이라고는 하나 무종의 벽을 뚫고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고수임이 분명하거늘, 단 일검에 목이 달아나다니.

“그렇구나.”

흔들리는 동창, 아니 신화교 교도들의 눈빛을 읽은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전장이니 굳이 말이 필요치 않지. 이와 같은 난전을 겪어 본 지가 오래라, 너무 정정당당하게 싸우려 들었다.”

번쩍!

검극사기가 온몸을 치달았다.

벽라진결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같은 색을 띤다면, 연위의 검극사기는 잡티 하나 없는 진청색(眞靑色)과 같았다.

차갑고 엄격한 색깔.

연위와 참으로 잘 어울리는 그 색깔은 무너지지 않는 철벽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이이이잉!

연위의 철검에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신화교도들의 붉디붉은 화룡마도, 그리고 연위의 진청색 검기.

먼저 움직인 건 신화교도들이었다.

파아악!

금군이 놀라서 보고만 있는 사이, 순식간에 연위의 전권으로 들어온 교도들의 칼날이 연위의 몸 곳곳을 노렸다.

화룡마도라더니, 찌르고 들어오는 화염의 칼날이 정녕 용의 아가리와 같았다.

몸에 닿기도 전에 피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분. 이룬 경지를 떠나, 신화교의 열양공은 진정 희대의 신공(神功)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쩌저저저정!

여덟 자루의 화룡도가 연위의 일검에 모조리 튕겨 나갔다.

칼을 이루는 것은 교도들의 팔이니, 자연 그들의 상체도 한참이나 뒤로 꺾였다.

연위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물러난 교도 하나의 심장에 연위의 검이 꽂혔다.

절제되고 빠른 움직임이었다. 적이 반응하기도 전에 일 보(一步)를 움직여, 중앙에 있던 교도의 가슴에 칼을 박았다.

초절정고수 특유의 위력적인 발경이나 화려한 검기(劍技)는 전혀 없었다. 그저 튕겨 냈고, 물러서니 먼저 치고 들어가 심장에 칼을 박았을 뿐이었다.

단순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쿨럭!”

심장과 함께 위장, 식도가 함께 찢어졌다. 교도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놈!”

“죽여!”

제아무리 조장만 못하다지만, 절정고수 일곱의 근거리 합공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다.

연위가 가볍게 일 보를 내디뎠다.

훅! 치리링!

연위가 사라진 곳에서 화룡도끼리 부딪치며 무서운 불길을 일으켰다.

교도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비슷한 힘끼리의 충돌에 속이 답답해진 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코앞에 있던 연위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대체 어디로?

퍼퍼퍽!

셋이다.

교도 셋의 목이 하늘 높이 날아오른 것은, 주변을 확인하기 위해 일제히 고개를 돌리던 순간이었다.

이미 연위는 중앙 바깥쪽에 서서 검을 세우고 있었다. 세운 검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이!”

번쩍! 번쩍!

어두운 밤, 사나운 불길이 담긴 진기의 칼날이 벼락처럼 허공을 할퀴었다.

그러나 연위는 그들의 도격을 한 치 차이로 피해 내고 있었다. 칼날이 아니라, 그 칼날에서 새어 나오는 화기의 범위에서 한 치였다.

흘러나오는 기운이 어디까지 피해를 주는가,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아무 피해도 없이 가장 이로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가.

그것만 알 수 있다면 단순하기 그지없는 보법만으로도 적들의 사각을 파고들 수 있다. 지나치게 빨리 움직일 필요도, 사나운 기세로 적의 움직임에 제약을 걸 필요도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한 줌의 힘으로도 적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간결하게.

벽산연가의 기본 보법 추풍보(秋風步)가 희대의 고수 연위의 발아래서 절대무공으로서의 자격을 얻었다.

서걱!

휘둘러진 푸른빛 검광(劍光)에 교도 둘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실검(實劍)이 아닌 검기(劍氣)에 당했다. 파고든 검기가 그들의 피부와 뼈를 뚫고 심맥을 찢어 버렸다.

남은 교도는 둘.

연위는 그들을 쳐다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먼 하늘, 황궁 쪽을 바라보며 고요하게 검을 내릴 뿐이었다.

꿀꺽.

묘한 침묵 아래, 교도 한 명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럴 수가!’

조장인 진사가 일검에 목이 달아난 것만으로도 상대의 무력이 지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금군이 전투에 개입할 때까지 연위를 잡아 놓는 것이었다. 죽이지 않고 진을 형성해 끈질기게 대항하다 보면, 두셋은 당할지언정 상대 역시 이곳에서 쉬이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틀렸다.

연위는 고작 네 번의 발걸음, 세 번의 칼질로 절정고수 여덟 중 여섯을 쓰러트렸다.

심지어 체력을 소모하지도 않았다. 그토록 절제된 움직임, 내공을 화려하게 쏟아붓지도 않았기에 처음 만났을 때처럼 고요한 신색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강했다. 강함의 고하를 비교할 수준조차도 넘어선 희대의 강자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교도 둘이 한순간 눈빛을 교환했다.

동시에.

화르르르르륵!

쓰러진 교도 셋의 몸에서 화려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목이 달아난 셋을 제외, 심맥이 파열된 셋의 몸에는 화정(火精)이 잠자고 있었다. 그 화정은 광혈교의 이혼술(移魂術)이나 사음교의 초혼술(招魂術)과 달리, 목이 달아나지 않는 한 신체를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신비의 힘이었다.

광혈교처럼 죽은 사람의 혼을 망자의 몸뚱이에 씌우거나, 사음교처럼 고수의 몸에 혼을 불러들여 폭발적인 무력 증강을 이루는 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범용적이고 쉽게 죽지 않은 불패의 군단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신화교가 다른 이교(二敎)와 다른 부분이었다.

심지어 화정은 이혼술과 초혼술처럼 시기, 기력, 술자, 그릇 등의 조건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완성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신화교의 절공을 일정 이상 익히면 누구나 화정을 연성할 수 있다.

회복의 정도는 이룬 경지에 따라 다르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광혈교와 사음교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대륙 일에 간섭할 수 있었다.

‘불꽃은 아무리 베어도 되살아나는 법.’

화르르르르륵!!

점점 더 거세지는 불길.

연위가 교도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두 교도가 사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쉽게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연위가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은 다르구나.”

“보면 알겠지.”

그때였다.

퍼석!

화려하게 타오르던 세 줄기 불꽃이 힘없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꺼져 버렸다.

“……?!”

교도들의 얼굴에 경악이 일었다.

연위가 든 철검이 땅바닥을 긁었다.

카각.

검첨에 긁힌 땅이 비명을 질렀다.

“진짜 불은 내 아들의 가슴 속에 잠자고 있었느니라.”

“……?”

“어떤 물로도, 바람으로도 끌 수 없는 한(恨)의 불길. 그 불을 담은 녀석은 삼교의 주구와 마주할 때마다 폭발하고는 했다. 제아무리 아들이라지만, 나는 녀석이 시신을 그토록 참혹하게 다루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교도들이 침을 삼켰다.

“하나, 그런 아들의 방식이 너희에게는 필요한 모양이더군. 물론 지나치게 잔혹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백도 정파의 정종 무공처럼 우아한 방식으로 적을 베어서는 이 부덕한 싸움이 결코 끝나지 않음을 알았다.”

그때였다.

‘어?’

교도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들의 시야가 사선으로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자식들 앞에서 모범이 되어야 할 아비로서의 모습을 버리고, 확실하게 적을 끝장내는 전장의 군인이 되어야만 했다. 적어도 너희와 싸울 때만큼은.”

푸화아악!

사선으로 잘려 나간 두 교도의 상체가 땅에 떨어졌다. 반만 남은 하체가 주춤하는가 싶더니, 이내 나란히 허물어졌다.

주르륵.

쓰러진 그들은 되살아나지 못했다. 화정의 힘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두 동강이 난 몸뚱이를 어찌 이어 붙일 수 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목이 잘리지 않고 심맥이 찢어진 교도들 또한 아무도 되살아나지 못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연위의 검기가 그들의 체내로 파고들어, 온몸의 혈도와 신경을 모조리 찢어 놨기 때문이었다.

연위가 한숨을 쉬며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덕분에 큰 힘을 들이지 않을 수 있었지만.’

연위는 이런 종류의 침투경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손쉽게 그들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당관 덕분이었다.

당관의 만천화우를 완성하는 데에 연위가 도움을 주었고, 연위의 절대삼검을 완성하는 데에 당관이 도움을 주었다.

나아가, 연위는 당가의 무리(武理)를 배우는 와중에 당관이 잘 쓰는 침투경까지 익힐 수 있었다. 일부러 익히고자 한 게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다.

천하제일에 가까운 용독술, 그 침투력의 무리가 연위와 함께하는 한.

적어도 신화교의 무장급을 상대하면서 뒤통수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번쩍!

연위의 눈이 금군에게로 향했다.

한참 멀리 떨어졌지만, 연위의 눈빛을 본 금군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쉬이 움직일 수 없었다.

비단 눈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황궁의 무공을 배운 이들이었으나, 눈앞에서 본 진짜 고수들의 공방은 오감을 전부 동원해도 좇지 못할 만큼 살벌한 것이었다.

그 승부가, 힘의 흐름이 그들의 가슴에 경외심을 싹트게 하였다.

“진짜 역적은 따로 있음이라. 그러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그대들에게 자율적인 행동을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

연위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내.

훅! 퍼버버버버벅!

잠시 얼이 빠져 있던 금군 전방의 병사들 이십여 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검이 아닌 검집으로 복부를 맞았다. 반나절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이런!”

“역적이 금군을 공격하고 있다!”

“쳐라! 잡아라!”

허리춤에 검집을 맨 연위가 웃으며 몸을 돌렸다.

터어엉!

호쾌하게 달려 나간 연위가 순식간에 제이 궁문 앞까지 도달했다. 금군 병력의 삼 할이 연위의 뒤를 쫓았다.

제아무리 급하게 움직여야 할 상황이더라도, 아군에게 가는 피해를 최소화하려 한다.

그것이 연위였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언제나 숲을 볼 줄 아는, 강호 육대세가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인의 위용이었다.

‘이 정도면.’

금군이 어느 정도 따라붙었음을 파악한 연위가 눈빛을 달리했다.

‘이제 벌려도 되겠지.’

훅!

가볍게 땅끝을 박차고 나아가니, 이전보다 세 배는 더 빠른 속도가 나왔다.

순식간에 제일 궁문을 넘은 연위의 눈에 비로소 저 멀리 우뚝 솟은 화려하고도 고풍스러운 궁전 하나가 보였다.

‘저기다.’

황제의 어전이다.

그리고 어전 주변에, 연위의 감각으로도 잡아내기 어려운 고수들이 꽤 많이 산재해 있었다.

연위의 눈이 깊어졌다.

‘황후 폐하 측의 사람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 기운들…… 뜨거운 화기가 제법 많이 섞여 있…….’

그때였다.

쩌어어어어어엉!

금속성 충돌음이 무시무시한 공명을 일으켰다.

돌진하던 연위의 몸이 측방으로 오 장이나 밀려 나갔다.

괴력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힘, 마치 고속으로 날아온 바위를 막아 낸 것만 같았다.

“그걸 막았나? 대단하군.”

연위가 습격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붉은 장검을 든 중년 사내가 있었다. 멋스러운 관복과 화염처럼 이글거리는 안광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역적에게 말은 필요치 않겠지.”

파아아악!

두 검사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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