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6화. 삼파전 (4)
공손백룡이 움직이기 직전, 연호정의 전음이 곡경에게 날아들었다.
[무당파로 가시오!]
곡경의 눈이 흔들렸다.
무당파라니? 대체 왜?
그 순간, 공손백룡이 연호정에게 달려들었다.
쩌어어어어엉!
화려한 충돌음과 함께 연호정이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공손백룡은 이미 연호정의 근접거리로 접근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그때, 강량이 곡경의 곁으로 다가왔다.
“갑시다!”
“뭐, 뭐라고?!”
“가자고요!”
왜 그러냐고 묻기에는 강량의 눈빛이 너무나도 다급했다.
곡경이 이를 악물었다.
‘안 돼. 그럴 순 없다.’
이 자리, 이곳에서 반드시 비왕을 잡아야만 했다. 비왕 하나만 잡으면 앞으로 많은 일이 편해진다.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달려온 수천 리 길. 제아무리 벽산호장이라지만, 정말 저놈에게 맡기고 가도 괜찮은 것인가?!
쩌저저정! 퍼억!
고작 사 초를 넘겼을 뿐이지만, 이미 연호정의 몸에선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공손백룡의 소도가 그의 어깨를 베어 버린 것이다.
그냥 참고 무시하기에는 꽤 깊이 베였다. 특유의 반사 신경이 아니었다면 한쪽 팔을 못 쓰게 될 뻔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호정은 한 번 더 틈을 냈다.
콰아앙!
공손백룡이 접근하기도 전에 주작화기를 실은 진각이 무시무시한 살기와 함께 휘둘러졌다.
움찔!
공손백룡의 몸이 주춤했다.
그 사이 연호정의 전음이 벼락처럼 곡경에게 날아갔다.
[무당파로 가서 원군을 요청하시오! 황제 폐하의 밀사라는 사실과 증거를 전부 알려! 비왕보다 선수를 쳐야 하오!]
곡경이 이를 악물었다.
“가자!”
파아아악!
강량과 그의 수하들이 곡경의 뒤를 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손백룡은 연호정을 공격했다.
쩌저저저정!
잠시 주춤했다지만, 떨어진 거리를 찰나지간 무(無)로 만들어 버릴 만큼 공손백룡의 속도는 빨랐다.
연호정은 내심 기가 차는 기분이었다.
‘이래도 되는 거냐.’
적과 싸우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이 속도는 정말이지 반칙이었다. 구사하는 무공은 삼군급이지만 신법 하나만으로 신선제왕의 일좌를 차지한다고 하더니, 진정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번쩍!
연호정의 두 눈에 화염 같은 살기가 어렸다.
‘그래서 다수보다 일대일이 더 좋지!’
화르르르륵!
벼락처럼 휘둘러진 월도가 네 개의 십자참(十字斬)을 그었다.
강렬한 화기를 담은 참격이었다. 사방으로 쏘아 냈으니, 정면으로 달려오는 짓은 절대로 못 한다.
물론, 그렇다고 공격을 포기할 놈은 아니었다.
과연 어디로 공격이 들어올까.
‘위!’
콰아앙!
공손백룡의 발이 대지를 찍으며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반 박자 빠르게 움직인 연호정조차 진각의 파괴력에 휩쓸려 순간적으로 몸의 자유를 잃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이었다.
터어어어엉!
발끝, 발목, 무릎, 고관절 순으로 충격을 최소화한 연호정이 호왕구벽세의 백왕파(百王波)를 구현했다.
콰콰콰콰쾅!
거대한 참격의 파도가 무지막지한 힘을 담고서 전방을 갈아 버렸다.
천하의 공손백룡조차도 이 일격을 뚫고 들어올 수는 없었다. 그냥 뚫고 들어가기에는 공격의 사나움과 위력이 너무 강렬했던 것이다.
후우우우웅!
흙먼지가 걷히고, 공손백룡의 모습이 드러났다.
차가운 눈으로 연호정을 노려보는 그의 자세는 묘하게 낮아져 있었다.
연호정이 씨익 웃었다.
“안 쫓아가냐?”
“일대일 승부를 보자고 한 놈은 너였다.”
“서슴없이 비겁한 수법을 쓸 줄 알았는데.”
“그럴 필요가 있다면 하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거든.”
“나야 좋지. 그리고 하나 더.”
연호정이 검지를 까딱거렸다.
“너는 절대 무당파를 뒤흔들지 못해.”
“……!”
처음으로 공손백룡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극히 미세한 흔들림이었지만, 상대에게 극도로 집중한 연호정의 눈은 그의 반응을 정확하게 잡아챘다.
턱!
돌진하려던 공손백룡이 발끝으로 땅을 찍었다.
“무슨 말이냐?”
“맞았나 보군.”
“…….”
“후우, 고맙다. 숨 좀 고르자고.”
가만히 연호정을 노려보던 공손백룡이 미소를 지었다.
“저 바보들 쫓자고 각개격파의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너희는 실패했다.”
“언제 올 거냐? 삼 초 남았다.”
쩌어어엉! 콰앙!
연호정의 몸이 미친 듯이 뒤로 밀려 나갔다.
그 직후 폭음이 터졌다. 음속을 돌파한 공손백룡의 움직임, 그 충격파가 뒤늦게 폭발한 것이다.
우둑!
연호정이 이를 악물었다.
처음으로 정면으로 받아 낸 공손백룡의 공격. 대단치 않은 공격이었지만, 속도만으로 엄청난 파괴력이 나왔다. 베인 어깨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탈골되어 버렸다.
퍼어어어억! 우지끈!
연호정의 몸뚱이가 나무 세 그루를 박살 내며 땅을 굴렀다.
‘빠르다.’
탈골된 어깨를 광명신단의 진기를 이용, 순식간에 맞추며 각법(脚法)을 막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한 수로 목숨이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아.’
순간적으로 자세를 고친 연호정의 눈에 찬연한 광채가 일었다.
‘역시 덤비는군.’
연호정이 굳이 공손백룡과의 일대일 대결을 고집한 이유.
그 이유는 어느 하나의 목표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게 정보망을 뒤흔들던 공손백룡이 느닷없이 무당산 인근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작 황궁의 병력을 빼 오기 위해서일까? 황제의 최측근이자 가장 날카로운 칼인 곡경을 빼내기 위해서?
그럴 리 없다. 그런 의도도 있기야 하겠지만, 오직 그 이유만으로 이토록 대담한 행동을 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또 무슨 의도가 있을까?
답은 명백하다. 바로 무당파다.
숭산 인근에 나타났으면 소림이요, 화산 인근에 나타났다면 화산파며, 무당산 인근에 나타났으면 무당파다. 비왕 공손백룡이 노리는 것은 무당파일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당황해 다른 의도가 없는지를 고민했을 뿐, 정작 너무나도 당연하게 무당파에 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무당파를 공략하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곳에 검선(劍仙) 탁무자가 있으니, 홀로 무당파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검선이 없어도 그건 마찬가지다.
‘아마도 귀군을 유인하려 했을 것이다.’
광혼귀군 곡경.
그가 황제 밑에서 활동하는 고수라는 것을 뉘라서 알고 있겠는가.
무당파의 도사들이 봤을 때, 곡경은 여지없는 사파의 고수였다. 허락 없이 입산(入山)한다면 누구라도 무당산이 공격당한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적인 신법을 지닌 비왕이라면, 곡경을 끌어들여 무당파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게 가능할 것이다.
그리되면 무당파, 나아가 백도 정파와 황제의 대립까지도 유발할 수 있다. 가능성은 작지만, 그 정도 혼란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성천의 이름값은 대단한 것이었다.
설령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한들, 어떻게든 무당파에 해를 가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즉, 비왕의 등장은 여러 목적이 섞여 있는 지극히 전략적인 행동이란 뜻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
사고의 속도가 벼락처럼 빨라졌다.
연호정이 공손백룡과 일대일 승부를 자처한 것은 단순히 시간을 벌기 위해서, 혹은 무당파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넘어설 수 있다.’
뛰어넘는다.
연호정은 진심으로 비왕 공손백룡을 죽이고, 지금의 경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생각이었다.
나 자신의 발전, 비왕이라는 패를 잃은 삼교, 무당파의 안전, 혹시 모를 정파와 황궁의 대립 사전 차단.
그 모든 것을 위해, 연호정은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럴 자신이 있었다.
‘온다.’
후우욱!
무시무시한 살기가 끼쳐 드는 순간, 이미 공손백룡의 소도는 연호정의 목젖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전보다 더 빠르고 더 날카로운 움직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
번쩍!!
허공을 가른 소도의 도풍(刀風)에 건너편 아름드리나무 다섯 그루가 사선으로 잘려 쓰러졌다.
“…….”
공손백룡의 눈이 흔들렸다.
“후우.”
나직이 들리는 호흡 소리.
천천히 몸을 돌리는 공손백룡의 눈에, 얼굴에 얇은 도상을 입은 연호정의 모습이 보였다.
“……피했다고?”
“그러게.”
연호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보는 사람의 복장을 터지게 하는 비릿한 미소였다.
“그나저나 날 죽이지 못했군. 이번이 십 초였는데.”
“…….”
“역시 넌 얼간이었어. 말이 신선제왕이지, 뭐 별것도 없구만.”
연호정의 목소리에는 진한 실망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소도를 쥔 공손백룡의 손이 하얗게 물들었다.
연호정이 월도로 공손백룡을 겨누며 말했다.
“네놈이 귀군과 붙는다면 십중팔구 귀군의 패배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라.”
“…….”
“귀군보다 약한 나에게, 너의 케케묵은 전투 방식 따위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십 초 안에 죽이겠다.
십 초 안에 죽일 수 있을 거라 얕본 게 아니었다. 공손백룡에게 십 초는 지극히 효율적인 초식이요, 시간이었던 것이다.
“덤벼라.”
연호정의 눈에 웃음기가 어렸다.
“십 초 안에 죽여 주마.”
“……애송이!”
번쩍!
공손백룡이 순식간에 연호정의 전권 안으로 들어갔다.
연호정은 그 속도에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겨눈 월도의 날을 횡으로 틀었을 뿐이었다.
‘늦었어.’
공손백룡의 얼굴이 온통 살기로 젖어 들었다.
‘죽어라.’
번쩍! 서걱!
핏물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딸칵!
연호정의 비갑이 세로로 쪼개져 땅으로 떨어졌다.
그뿐이었다. 그 외엔 어떠한 상처도 없었다.
반면 공손백룡은?
주르르륵.
그의 목덜미에 자상이 생겼다.
동맥을 건드리진 못했지만, 아차 했으면 목젖까지 베었을 것이다.
공손백룡의 얼굴이 처음으로 창백해졌다.
“이게 뭐냐?”
“뭘?”
“내게 무슨 짓을 했지?!”
후욱!
연호정이 말없이 돌진하며 월도를 휘둘렀다.
주작공, 홍염육살공의 홍련일섬(紅蓮一閃)이었다. 불꽃처럼 화려하고 벼락처럼 빠른 일도(一刀)가 단숨에 공손백룡의 몸을 사선으로 베어 낼 것만 같았다.
‘늦어!’
몸을 회전하며 소도를 휘두르는 공손백룡.
이미 그의 소도는 연호정의 복부 다섯 치 인근에 근접해 있었다. 미치도록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번쩍! 촤악!
서로를 지나친 도객.
연호정의 옆구리가 피로 물들었지만, 거죽만 베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공손백룡의 상체에는 기다란 도상이 새겨져 있었다. 사선으로 그어진 도상은 꽤 깊었다. 연호정에게 입힌 상처보다 훨씬 더 중한 상처였다.
“……!!”
공손백룡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반 박자가 늦다?!’
속도는 여전히 자신이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칼이 적을 베려는 순간, 이상하게 공격과 회피가 반 박자 늦어졌다.
“그래서 넌 자격이 없는 거다.”
훅!
벼락처럼 접근한 연호정이 연가십삼권(燕家十三拳)을 펼쳤다.
사신무에 비하면 너무나도 단순하고 유연한 권법이었지만, 공손백룡은 허둥지둥하다가 일권을 허용하고야 말았다.
퍼억!
연가십삼권의 척구권(拓鉤拳)이 공손백룡의 복부를 후려쳤다.
“컥!”
거친 숨을 토해 낸 공손백룡이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다.
연호정은 후속타를 포기했다. 더 들어가 봤자 곧바로 거리를 넓혔을 것이다. 의미가 없을 공격이었다.
“오로지 속도, 그 하나만을 위해 무극에서 지녀야 할 많은 소양을 다 버리고 온 너는 절대 나를 이길 수 없어.”
속도는 곧 힘이다.
쏘아지는 포탄의 속도가 빠를수록 파괴력이 좋고, 날아가는 화살이 빠를수록 관통력이 좋다. 그건 어린애도 알 만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전투술에 한해서는 성천의 고수들보다도 우위에 있는 연호정에게 있어서, 단순하기 그지없는 공손백룡의 무공은 그리 큰 피해를 줄 수가 없다.
공손백룡이 소도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차원을 달리하는 속도로 일격에 적을 베기 위해서는 칼날이 그보다 짧아서도, 길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공손백룡의 무공은 속도뿐인지라 지독하게 단순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껏 초식이랄 것도 없이 칼과 주먹, 발만을 이용해 내친 이유 역시 초식을 구현해 봤자 지나친 속도 때문에 적에게 효율적인 공격을 못 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자멸할 위험이 더 컸다.
단기전으로 가면 삼군조차 당하지 못한다. 장기전으로 가도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하면 삼군 정도로는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천하에 산재한 전투술의 총화(總和) 그 자체인 연호정에게, 비왕의 무공은 다소 대응하기 힘든 무공에 불과할 뿐이었다.
“칠 초식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