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2화. 반응 (3)
연호정 일행의 귀환은 가라앉아 있던 묵룡부에 묘한 활기를 더해 주었다.
물론 묵룡부의 무사들 대다수는 연호정을 탐탁지 않아 했다. 동맹을 맺었지만 결국 그는 정파의 사람,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두 지파의 성격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무사들이 연호정을 떨떠름하게 여기는 더 큰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그가 부주와 친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과거 연호정의 침투전으로 정보가 털린 전적이 있었다. 부주인 양천은 그것을 용서했지만, 무사들 대다수에겐 그 일이 앙금으로 남아 있었다.
더하여 부주가 그를 아낀다는 사실은 무사들의 질투를 유발하기 충분했다. 양천이 누군가를 총애한 적은 있어도, 휘하 부하와 동등한 위치에서 친분을 나눈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연호정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다. 무사들이 그를 질투하고 싫어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다만.
그가 사천과 섬서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일을 해결하고 왔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무림맹과 동맹을 맺은 묵룡부로서도 제법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고수의 귀환.
묵룡부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
* * *
“오셨는가.”
“선배님.”
연호정이 포권을 취했다.
“그간 잘 계셨습니까.”
“하하하! 나야 잘 있었지.”
막원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기 의원이 일을 아주 잘 처리한 모양이로군요. 더는 병마(病魔)의 싹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 의원이 큰 고생을 했네.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사해하고 있어. 그리고…….”
막원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살리고 기 의원까지 불러 준 자네에 대한 은혜는 그 무엇보다도 크다네.”
“별말씀을.”
“부주에게는 이미 말했지만, 나는 묵룡부의 사람이 될 생각은 없네. 적어도 지금은 말이야.”
“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단순한 사람일세. 세상 경험이 많지도 않고, 가진 것이라고는 무(武) 하나뿐이야.”
“천하가 경배하는 삼군(三君)의 일인께서 그 어인 말씀이십니까.”
“그따위 허명, 애초에 바란 적도 없다네. 물론 가끔 그 이름이 주는 고양감에 도취된 적은 있지만, 백병신군이라는 별호가 나를 증명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렇습니까.”
“나는 단순한 사람일세. 원한이 있다면 풀고, 은혜를 받았다면 갚아야지.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 자네를 따르며 그 은을 갚고 싶네.”
연호정이 피식 웃었다.
“천하의 백병신군께서 힘을 보태 주신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만, 제게는 삼군을 품을 만한 도량도, 힘도 없습니다. 그저 든든한 아군으로 남아 주신다면 그것으로 족할 따름이지요.”
“솔직히.”
막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하다고 생각했네. 자네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는.”
“…….”
“하지만 저 머나먼 사천과 섬서에서 벌어진 온갖 난투를 해결하고 돌아온 지금, 더 이상 자네에게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군.”
“과찬이십니다.”
“받은 은혜를 갚는 데에 나이와 위치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만 나는 무인(武人)인지라, 나보다 많이 부족한 자네를 따르기에는 떨떠름했던 것도 사실이네.”
막원이 양손을 벌렸다.
“하지만 보게. 다시 돌아온 지금의 자네는 어느덧 전 중원에서 열세 명만이 올랐다는 경지에 발을 들여, 미숙했던 이전보다 훨씬 더 커진 거인이 되었네.”
“…….”
“이제 내게 망설임은 없다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 영역에 올랐으나 여전히 부족한 것투성입니다. 황궁에는 많은 관료가 살고 있지만, 황족에게 고개를 뻣뻣이 드는 이는 없는 법입니다.”
막원이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비유가 너무 과하군. 서른이 안 된 나이에 무극을 연 강자라면, 십 년 후에는 능히 천하제일인이 될 거야. 그 화려한 가능성을 지닌 후배에게 몸을 의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연호정이 재차 포권을 취했다.
“그저 함께해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가진 게 무력뿐이라, 이 거친 난세를 헤쳐 나가기에 부족함이 많은 사람일세. 부디 잘 이끌어 주게나.”
“별말씀을.”
다시 만난 막원과의 반가움은 그저 반가움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백병신군 막원. 비록 신선제왕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삼군의 일원이지만, 그 역시 명백한 성천의 강자다. 그와 같은 대단한 고수가 함께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다.
연호정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막원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관계를 떠나, 자네와는 한번 싸워 보고 싶군.”
“저야 영광이지요. 다만 지금은 이런저런 일로 복잡한 상황이니, 그 일은 나중으로 미루심이 어떻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그저 그 약속 한 번은 받아 내고 싶었을 뿐일세.”
호탕하게 웃는 막원의 모습에는 어떠한 그림자도 없었다.
천하의 고수라도 고립되고 병을 얻다 보면 본래의 자신을 잃기 마련이었다. 딱 막원이 그러했다.
그러나, 병을 치료하고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돌아오자 막원의 본래 성격이 드러나고 있었다.
“자네가 큰일을 마치고 돌아왔단 말은 들었네만,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어. 그 얘기도 나중에 듣도록 하세.”
“물론입니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는 어떤 행보를 보여 줄 참인가?”
“행보라니요?”
막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원 북부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들었네만.”
연호정의 눈이 반짝거렸다.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딱히 누구랄 것도 없네. 식당에서 들려오는 얘기들도 있고, 이런저런 일로 묵룡부의 분위기가 붕 뜨지 않았나.”
연호정이 턱을 쓰다듬었다.
‘비왕의 출현을 이미 아는 건가.’
정확한 사정은 몰라도 중원 북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양천이 그 부분에 대해 정보를 통제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긴, 숨긴다고 숨겨질 만한 얘기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빠르군. 나중에 다 드러낼 얘기라도, 당장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기가 흘러나오는 걸 막지 않았다는 것은…….’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슬슬 준비하라는 뜻이로군.’
언제, 어디서,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 형국이다.
그러니 흐르는 얘기를 막지 않는 것이다. 그간 꼭꼭 숨어 있던 비왕이 세상에 나왔으니, 조만간 천하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크게 벌어질 거란 경고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긴장감 조성. 거기에 연호정의 귀환.
‘확실히 이런 걸 보면 능력이 좋아.’
연호정이 고개를 숙였다.
“일단은 편히 쉬십시오. 조만간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좋네. 자네도 이제 막 돌아왔는데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나.”
“감사합니다.”
그렇게 막원과 헤어진 연호정이 찾은 곳은 기우희의 거처였다.
“연 대수님.”
“여어.”
기우희가 반가운 얼굴을 하며 일어났다.
“오셨다는 말은 들었어요. 몸은 건강하신가요?”
“물론이지.”
“한데…….”
기우희의 미안(美顔)에 점점 놀라움이 깃들었다.
“더 강해지셨군요?”
연호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예민하기 그지없군. 자네 눈에도 그게 보이나?”
“남들만큼 강하진 못해도 보는 눈은 있답니다. 그간의 사투가 정말 지독했던 모양이에요.”
“지독했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정말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렇군요.”
기우희의 눈이 흔들렸다.
‘대단해.’
그녀는 남들과 다른 능력을 안고 태어났다. 그것은 단순히 재능이라고 치부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가히 신이 부여한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바로 영안(靈眼)이었다.
‘활활 타오르고 있다.’
기우희의 영안에 비치는 연호정의 모습은 끔찍한 불길을 휘감은 악신(惡神)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악신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흐릿했던 이전과 달리, 지금 연호정의 영기(靈氣)가 만들어 내는 악신의 형상은 훨씬 더 정교하고 훨씬 더 막강해 보였다.
‘달라.’
기우희의 눈이 흔들렸다.
‘훨씬 선명해졌지만…… 분위기가 달라.’
그녀는 연호정의 그 극단적인 살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삼교를 향한 맹목적인 증오였다. 그 증오의 크기는 실로 엄청나서, 돌멩이 몇 개만 던져도 불이 붙어 사방을 불바다로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차갑다.’
그들을 향한 증오는 그대로지만, 예전처럼 폭발적이지 않다.
조용하고 차가우며, 그렇기에 차분했다.
‘무공만 강해진 게 아니야. 사람 자체가 달라졌어.’
기우희의 눈빛이 묘해졌다.
‘그 영역에서도 자기(自己)를 되돌아보며 변화를 꾀할 수 있다…….’
그때, 연호정이 말했다.
“어때?”
“네?”
“이전과는 많이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지? 자네의 그 신통한 눈에 말이야.”
“아…….”
연호정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뭐, 그건 됐고. 물어볼 게 있어서 찾아왔어. 맹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 네. 막 대협의 병마를 잡긴 했지만, 혹시 재발할까 우려가 돼서요. 몇 달간만 상태를 확인해 보고 싶었지요.”
“그래? 재발할 가능성이 있나?”
“현재로서는 없어요. 다만 워낙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터라, 재발할 경우 석 달에서 반년 사이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죠. 그 시간만 지나면 완치 판정을 내려도 괜찮을 테고요.”
“음, 그렇구만. 하면 맹은……?”
“의선각에는 저보다 실력 있는 의원들이 많으니까요. 파견을 나온 셈이니, 그쪽에서도 알아서 잘하고 있을 겁니다.”
“좋아. 그럼 거리낄 게 없겠군.”
연호정이 기우희의 맞은편에 앉았다.
기우희의 얼굴에 은근한 긴장이 일었다. 연호정이 앉았다는 것은 깊게 얘기할 게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가 의원인 자신과 깊은 사담을 나눌 만한 내용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직 못 들었겠지만, 황궁 측의 암투가 제법 심해진 것 같다.”
“황궁이요?”
“그래. 그리고 황궁에서 암약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화교지.”
기우희의 눈이 흔들렸다.
연호정이 눈을 빛냈다.
“자네도 알고 있었지?”
“네. 그리고 이 부분에 관해서는 전에 말씀을 드렸었지요.”
“알아. 더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다고 책 잡으러 온 게 아니야. 어차피 그쪽 사정에 정통하지도 않잖나?”
“……네.”
“다만.”
“…….”
“신화교 측에서도 자네가 무림맹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아. 한데 자네의 감시자이자 보호자를 죽였는데도 신화교 측에서는 자네에게 따로 연락을 취하지 않았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맞아요.”
“들킨 건가?”
기우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알 수 없지요.”
“뭐, 그렇겠지.”
기우희는 철저히 무림맹 측 사람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아예 무림맹 사람이 되었지만, 신화교는 그것을 모를 것이다. 설령 세작을 심어 두었다 하더라도 그녀가 무림맹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여길 테니, 그녀의 친근한 태도를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자네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 이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짐작해 볼 수 있네.”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있거나…….”
“아니면, 결정적인 순간에 활용하려고 잘 묵혀 두고 있거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에 자네의 감시자를 대하던 태도를 돌이켜 보면, 신화교 놈들 앞에서도 제법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 줬을 것 같은데.”
“……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 나랑 일 하나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