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689화 (689/963)

◈689화. 불타는 산 (7)

퍼어어엉!

황석태와 동권, 신휴와 용호진인의 공격은 대단히 빠르고 강력했다.

그러나 이 조장과 사 조장을 잡진 못했다. 사방이 막힌 생사결의 장이라면 모를까, 그들은 전쟁 중이었다.

이 조장과 사 조장은 미련 없이 절벽 밖으로 몸을 날렸고, 네 초고수의 공격은 의미 없이 허공을 갈랐다.

그때였다.

퍼어엉!

한 줄기 폭음과 함께 살벌한 파공음이 들렸다.

황석태가 외쳤다.

“피해!”

촤아아악!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른 신휴는 순간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주르르륵!

반투명한 작은 철망이 신휴의 몸을 휘감았다.

말이 철망이지, 그물의 굵기는 실보다 조금 굵은 정도였다. 게다가 표면에 무슨 처리를 했는지, 신휴의 몸을 휘감은 철망은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크윽!”

신휴가 비틀거렸다.

그 또한 실수였다. 그가 미세하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철망이 그의 살과 근육을 점점 파고들었던 것이다.

동권이 외쳤다.

“사제!”

“건드리지 마시오!”

황석태가 적룡창으로 동권을 제지했다.

“늦었소!”

부글부글.

전신이 그물에 묶여 피범벅이 된 신휴.

뒤늦게 내공을 끌어 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살을 파고든 철망에는 극독까지 발라져 있었던 듯, 순식간에 신휴의 얼굴이 거무죽죽해졌다.

잠시 후.

후두두둑!

섬뜩한 소리와 함께 신휴의 몸뚱이가 산산이 조각나 바닥에 흩뿌려졌다.

“……!!”

산전수전 겪은 고수들도 쉽게 보기 힘든 참혹한 광경이었다.

동권의 얼굴에 충격이 일고, 용호진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때였다.

펑! 퍼퍼펑!

혈랑단의 파상 공세는 절묘함 그 자체였다.

적진의 장수 하나가 죽자 기다렸다는 듯 화전(火箭)을 쏘아 낸다. 이전과는 달리 그 목표는 청목애의 책임자인 황석태와 동권이었다.

박자를 읽는 안목이 괴물처럼 날카롭다. 조장들의 명령 없어도 한마음이 되어 능동적인 전술을 구사한다. 중원 어떤 문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술안이었다.

동권이 눈물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개 같은 놈들!!”

그때, 용호진인이 동권의 몸을 껴안고 바닥을 굴렀다.

동시에 황석태의 창이 불을 뿜었다.

퍼퍼퍼퍼퍼펑!!

허공에서 화려한 폭발이 일었다.

전진무적(前進無敵), 묵룡부 최강의 부대 철기단주의 창술은 필요에 따라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성질을 지닌다.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창격에 화전 대다수가 폭발하며 갈 길을 잃었다.

퍼억! 쾅!

그중 몇 발은 후미에 자리한 검사들의 진법 압력에 힘을 잃었고, 몇 발은 절벽 위에서 폭발해 커다란 불꽃을 일으켰다.

황석태가 외쳤다.

“당황하지 마라! 절대 놈들을 이 위로 올리지 마!”

콰아앙!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 조장 화한이 재차 모습을 드러냈다.

황석태와 화한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 순간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전투에서 언젠가 꼭 마주치게 될 상대라는 걸,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생사결의 상대라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두 사람의 창검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쾅!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황석태가 한 발을 더 물러났지만, 먼저 공세를 취한 쪽이 화한이라는 걸 생각하면 두 사람의 무공은 동수(同手)라고 볼 수 있었다.

화한이 외쳤다.

“모두 올라와라!!”

낮고 울림 넘치는 목소리는 경험 많은 늑대 무리 우두머리의 그것이었다.

황석태와 용호진인이 화한을 향해 창검을 휘둘렀다.

그 어디에도 피할 곳은 없다. 막기에는 부담스럽고, 피하려면 다시 절벽 밑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그러나 화한은 놀라운 판단을 내렸다.

콰쾅!!

한계까지 끌어올린 내공으로 거대한 검을 휘둘러 기어이 두 사람의 무공을 막아 냈다.

막아 냈지만, 상당한 손해를 입었다. 낯빛은 창백해지고, 입가에는 핏기가 비쳤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황석태의 눈이 깊어졌다.

‘이놈!’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놈이 아니었다.

이번 일격에 물러났다면 적의 기세가 다시 한번 꺾였을 터. 화한은 내상을 감수하면서까지 두 초고수의 공격을 버티며, 혈랑단의 등반 시간을 버는 동시에 사기 저하를 차단해 버린 것이다.

파아아악!

기어이.

혈랑단원들이 절벽 위로 하나씩,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용호진인이 물었다.

“어떻게 할 거요?!”

황석태가 적룡창을 휘두르며 외쳤다.

“끝까지 막아야 하오! 우리가 유리한 건 변함이 없소!”

“차라리 병력을 더 끌어와 압도해 버리는 것이……!”

“운용할 병력이 없소!”

“그럴 리가? 매화검수와 창수들이 남아 있잖소?”

“창수는 본진 수성 담당이오! 매화검수들은 따로 보낸 곳이 있소!”

“따로 보내다니? 어디로?!”

퍼억!

혈랑단원 하나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황석태가 칙칙한 얼굴로 말했다.

“가장 중요한 곳.”

* * *

“저기로군.”

혈랑단주 하복의 눈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백 병력을 조용히 이끌고 온 곳은 바로 종남 본산의 샛길들이었다.

명극과 하복은 종남산 인근의 비밀 통로와 샛길 대다수를 파악했고, 하복은 병력을 뿌려 각 샛길을 수색도록 했다.

현재 하복의 뒤를 따르는 병력은 오십 명. 나머지 삼백오십 명은 본산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최초의 발견자는 하복이었다. 그 야생의 감이 부하들보다 훨씬 더 날카로웠던 것이다.

스르륵.

자세를 푼 하복이 칼집을 들어 올렸다.

번쩍!

그의 뒤를 따르는 오십 혈랑들의 두 눈에 살벌한 빛이 번뜩였다.

어두운 밤,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붉은 안광을 이글거리는 무리가 있다. 멀리서 보면 정말 굶주린 늑대 떼라고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발견하긴 했는데.’

하복의 눈이 깊어졌다.

‘이것들 봐라?’

그가 맡은 임무는 종남파의 도동들과 학도사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그들 모두의 목을 베어 들고 본산으로 돌진하는 것이었다. 어린아이들과 무공을 배우지 못한 도사들의 목을 던져 적의 사기를 꺾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말하자면 이번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정파 무림의 화신이라는 구대문파와의 싸움에서, 이와 같은 전술은 엄청난 파급력을 낳을 것이다.

한데.

‘종남이 아니야.’

어린아이들의 호흡소리가 들렸다. 그것만으로도 정신 상태를 알 수 있다. 아이들과 학도사들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거친 호흡 위, 안정적이면서도 열기가 묻어 나오는 고수들의 호흡도 섞여 있었다.

‘방금 도착한 모양이군.’

하복이 혀를 찼다.

‘별수 없겠어.’

하복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바로 뒤에 있던 혈랑단원 하나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우우우우우!!

우렁차면서도 날카로운 늑대의 울음소리.

내공이 섞인 그 낭소는 아군에게 보내는 신호임과 동시에 적의 기세를 꺾는 음공이었다.

사사사사삭!

사방에서, 그리고 그 너머의 사방에서도.

소리를 들은 혈랑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복이 손을 까딱였다.

“이동한다.”

잠시 후.

하복을 위시한 오십의 혈랑이 공터로 나왔다.

“허억!”

“크읍!”

학도사들이 도동들을 등 뒤로 숨겼다. 도동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들 앞.

백오십의 매화검수들과 용국진인이 차가운 눈으로 하복을 노려보았다.

하복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막 도착했다 해도 서둘러 이동했다면 이곳에서 부딪칠 일은 없었을 텐데.”

담담한 목소리 안에 감당 못 할 난폭함이 가득하다.

“흐흑!”

“으아앙!”

하복의 목소리를 들은 수십 도동들이 저마다 흐느끼거나 울음을 터트렸다.

학도사들이 도동들을 다독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울음은 점점 커졌다.

순간 하복의 눈이 사나워졌다.

“닥쳐!!”

쩌어어어어엉!

산천초목을 떨게 하는 것은 범의 포효만이 아니다.

범보다 크고 흉포한 늑대의 외침은 도동들의 울음소리를 한순간에 지워 버렸다.

하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애들 울음소리는 딱 질색이다. 사지가 찢겨 죽고 싶지 않으면 주둥이 관리 똑바로 해.”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용국진인이 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하에 온갖 악인을 다 봐 온 나이지만, 네놈 같은 마인(魔人)은 처음 보는구나.”

“칭찬으로 듣지.”

“제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무공 한 줌 익히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해치려 하다니, 대체 어떻게 배워 먹은 놈들이냐?!”

“네놈이 말했잖느냐. 마인이라고.”

사사사사삭!

수풀 움직이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흩어져 있던 혈랑들이 빠른 속도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마인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닌가.”

“죽일 놈들! 최소한의 도리도 모르는 짐승 같은……!”

“그래서 너희가 약한 거야.”

하복의 음성이 차가워졌다.

“전쟁 중에 도리를 찾다니, 어지간히 달콤한 꿈속에서 사는 모양이군.”

“이놈!”

“마음에 안 들어. 너희처럼 말랑말랑한 것들이 질 좋은 땅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낭비다.”

스르릉.

하복이 칼을 뽑아 들었다.

그의 칼은 만도(彎刀)의 형상을 띠었지만, 톱니처럼 날카로운 거치도(鋸齒刀)였다.

저런 칼에 베이면 살점과 근육이 거칠게 파인다. 그만큼 출혈이 심하고 회복도 느리다. 그냥 베이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용국진인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쉽지 않겠군.’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의 숫자가 굉장했다. 어림잡아도 삼사백은 너끈할 듯하다.

그에 반해 이쪽은 겨우 백오십이다. 현 매화검수의 좌장이자 차기 장로로 언급되는 녀석도 있지만, 자신까지 포함해 봐야 초절정고수가 둘뿐이었다.

반면 저쪽은 초절정고수가 하복 하나지만, 그 하복의 존재감이 지나칠 정도로 대단했다. 장문인인 용선진인조차 압도할 것 같은 기세, 소림 방장이 떠오를 정도의 무공이었다.

용국진인의 눈에 결심의 기색이 어렸다.

‘우리 모두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들만큼은 끝까지 살릴 것이다.’

굳이 이곳에 진을 친 이유가 있었다.

도동들 뒤쪽으로 샛길이 있다. 그리고 그 샛길 좌우는 경사가 상당히 심했다. 적의 병력이 따라붙기 힘든 길인 것이다.

차라리 이곳에서 적들을 맞아 싸우고, 도동들과 학도사를 천천히 그 샛길로 보내는 게 낫다.

하복이 거치도로 용국진인을 가리켰다.

“달 좋은 밤에 말이 너무 많았군. 이제 시작할까?”

용국진인이 버럭 소리쳤다.

“죽일 놈들! 언제든 덤비거라!”

그때였다.

화아아아악!

용국진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뭐지?!’

샛길로 이어지는 곳, 그 먼 곳에서부터 강력한 기세가 느껴졌다.

한둘이 아니었다. 이곳에 진을 친 화산의 검수들만큼이나 많은 수가 샛길 너머에서 접근해 오고 있었다.

용국진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럴 수가! 설마 저놈들이 이 길까지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때였다.

‘……?’

용국진인의 얼굴이 묘해졌다. 달빛에 드러난 하복의 표정 역시 미미하게 굳어졌음을 본 것이다.

‘……적군이 아니다?’

그 순간.

다급하고도 낭랑한 목소리가 서늘한 밤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개방에서 왔소! 거기 누구요? 화산인가!”

용국진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거리가 멀기도 했고, 긴장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들의 기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용국진인이 외쳤다.

“개방이다! 개방에서 지원군이 왔다!”

우아아아아!

매화검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며 함성을 질렀다.

도동과 학도사들의 얼굴이 밝아지고, 화산 검사들의 사기가 무서운 속도로 올라갔다.

하복이 으르렁거렸다.

“다 죽여라!!”

우우우우우!

굶주린 혈랑들이 습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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