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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688화 (688/963)

◈688화. 불타는 산 (6)

“큭!”

얼굴을 일그러트린 명극이 상반신에 힘을 실었다.

파아악! 쾅!

그 힘에 못 이겨 날아간 연호정이 몇 번이나 땅을 구르곤 일어났다.

훅!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보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명극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걸.

그리고 그걸 눈으로 확인한 순간, 어느새 철기둥처럼 단단해 보이는 정강이가 얼굴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연호정이 재빠르게 바닥을 굴렀다.

퍼어어어엉!

허공을 걷어찼을 뿐인데도 폭음이 울렸다.

각법의 속도가 음속을 넘어섰다. 그 충격파에 연호정의 몸이 더 멀리 날아갔다.

타다닥!

몸을 세워 고개를 들었는데, 어느새 명극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휭!

그 순간,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연호정이 본능적으로 흑룡부를 등 뒤로 휘둘렀다.

쩌어어어엉!

명극의 수도와 흑룡부가 부딪치며 찬연한 불꽃을 튀겼다.

회전하여 백룡부를 휘두르던 연호정은, 순간 명극의 우권이 복부로 날아드는 것을 보았다.

쾅!

또다시 날아간 연호정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흑백쌍룡부는 저 멀리 날아가 버린 후였다.

명극이 눈살을 찌푸렸다.

‘용케 버티는군.’

우두둑!

부러진 콧대를 손으로 잡아 세우고, 진기를 보내 단단히 고정시켰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지만, 명극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 정도 고통은 웃으며 넘길 수 있을 정도로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휘이이이이잉!

불어닥치는 눈보라가 점점 기세를 잃어 갔다.

반대로 명극은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다 완성되었군.’

음황투신진(淫荒鬪神陣).

상단전의 신기를 타고난 천재 명극은 본디 무공보다 술법에 특화된 이였다.

그러나 사음의 술법은 사이하고 독특하나, 그 자체로 신의 권위를 증명하진 못했으니.

명극은 교주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신이 타고난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가 지금 그의 주력 무공인 도화천신공(導禍天神功)이었다.

그러나 교주는 말했다.

‘훌륭하다. 하나, 그걸로도 부족해. 본교의 이인자 정도라면 모를까, 최고가 되기 위한 무공으로는 약간의 손색이 있다.’

최고의 칭찬임과 동시에 절망 가득한 악평이었다.

이인자 정도는 된다. 그러나 최고는 될 수 없는 무공이다.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았던, 최강이 되기 위해 싸워 왔던 그에게 있어 그러한 평가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완성된 무공을 다시 고칠 수는 없는 법. 명극은 도화천신공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것이 바로 이 음황투신진이었다.

쿵!

한 발을 내딛자 산 전체가 진동한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무극의 힘을 담은 무공, 그 무공의 힘을 극대화하는 진법이 도화천신공의 출력을 두 배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족히 석 달 동안 죽은 듯이 지내야겠군.’

반나절 이상 무적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 있으나, 힘이 소진되면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했다. 사음교주 역시 명극의 이러한 특성을 알고 있기에 서슴없이 중원으로 보낸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모든 힘을 폭발시켜 주변을 정리할 수 있을 테니까.

뭐가 되었든, 이제 놈에게는 승산이 없다.

“본교의 난적으로서, 그에 걸맞은 죽음을 안겨 주마.”

명극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훅!

움직인다 싶은 순간 그의 몸은 연호정 앞에 도달해 있었다. 착공비보의 속도까지 올라간 것이다.

명극의 주먹이 냉정하게 휘둘러졌다.

목표는 연호정의 가슴이었다.

쾅!

강력한 권풍이 대지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었다.

빠각!

명극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움직인 연호정이 그의 가슴팍을 걷어찬 것이다.

통증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심리적인 충격은 대단히 컸다.

‘뭐야?’

연호정은 짧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지친 기색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고작 몇 방이라고는 해도 그토록 강력한 힘을 정면으로 받았는데 몸이 정상일 수는 없었다.

명극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가만히 연호정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한 발을 내디뎠다.

파아아앙!

벼락처럼 빠르고 변칙적으로 움직인 명극이 어느새 연호정의 뒤를 잡았다.

번쩍!

사선으로 내리치는 수도결, 도화천신인이 다시 한번 연호정의 목숨을 노렸다.

퍼억!

연호정이 앞으로 고꾸라져 바닥을 구르다가 일어났다.

명극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변한 게 있다면, 그의 복부에 흙 묻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는 것이었다.

“……!!”

명극의 눈이 흔들렸다.

‘뭐지?’

두 번에 걸친 공격, 그리고 실패.

그것만이라면 모르겠지만, 두 번 다 반격을 허용했다. 자신이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연호정 역시 창졸간의 반격이라 제힘을 싣지 못했다. 그래서 명극이 멀쩡한 것이다. 제대로 힘을 실었다면, 음황투신진이든 뭐든 명극 역시 상당한 손해를 입었을 것이다.

‘어떻게 반격을 했지?’

심지어 상대의 움직임을 보지도 못했다.

명극이 멍하니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연호정 역시 가늘어진 눈으로 명극을 보고 있었다. 거칠어진 호흡, 당장이라도 바람에 휘날릴 듯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명극의 얼굴에 결심의 빛이 어렸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해 본다.’

파아아아앙!

이전보다 더 빠른 움직임이었다.

이 정도 속도는 성천십삼좌도 쉬이 내기 힘들 것이다. 명극이 그리 자신할 정도로 압도적인 속도였다.

번쩍!

진혈수의 공력이 단숨에 연호정의 안면을 향해 날아갔다.

신법의 속도, 수공의 발경.

완벽한 박자였다. 당대 천하 누구라도 피하기 어려운 일격, 막아 내도 손해를 감수해야 할 만한 힘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때였다.

‘……!!’

찰나에 찰나를 쪼갠 순간.

마침내 명극은 깨달았다. 밀고 들어가는 자신의 손이 허공에서 반 박자 늦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저항을 받고 있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공기의 저항인가? 아니면…….

‘설마?!’

퍼억!

명극의 입에서 피가 튀었다. 고개를 틀어 진혈수의 공격을 피한 연호정이 그대로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타다다닥!

순식간에 오 장 거리를 벌린 명극이 턱을 매만졌다.

천만다행히도 턱이 부서지진 않았다. 금이 조금 간 정도, 주먹질의 위력과 자신의 속도를 생각하면 천운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새끼가!”

명극의 입에서 기어이 험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네깟놈이 감히 도화신안을 써?!”

그렇다.

이 정도로 빠른 공격을 반 박자 늦춰 버리는 신기(神技)는 도화신안밖에 없었다. 이렇게 기척도 없이 옭아매는 신기(神氣)의 운용법은, 도화신안 말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으르렁대던 명극은 순간 깜짝 놀랐다.

‘한데 어떻게 썼지?’

도화신안은 단순히 상단전을 운용할 줄 아는 자라고 하여 쓸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수법이 아니다.

나름의 격식이 있고 구결과 법문이 있는, 술법에 가까운 무공이었다. 배우지 않으면 누구도 쓸 수 없다는 뜻이었다.

‘대체 어떻게!!’

그때, 연호정의 발이 움직였다.

쿵!

부드럽게 한 발 내디뎠을 뿐인데, 산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엄청난 진각이 터져 나왔다.

순간 명극은 중심을 잡기가 어려워지는 것을 느꼈다.

‘……!’

당황한 명극이 재빨리 자세를 낮춰 중심을 잡았다.

연호정이 다른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콰앙!

또 한 번 진각이 터져 나왔다.

명극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큰 울림에 귀청이 다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연호정이 다시 한 발을 내디디려 할 때, 명극이 참지 못하고 몸을 날렸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쾅!

명극이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연호정을 노려보는데, 순간 알 수 없는 기운이 하복부 쪽으로 몰려드는 게 느껴졌다.

콰앙!

“컥!”

명극이 답답한 신음을 토해 내며 물러났다.

‘뭐야.’

도대체 뭐에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뭐냐고!’

콰콰쾅!

두 발을 땅에 박은 그가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질렀다. 도화천신권의 권풍이었다.

퍼엉!

반 박자 느리게 쏘아진 권풍이 무형의 진동파에 맞아 하늘로 튕겨 나가 버렸다.

그 틈에 거리를 좁힌 연호정이 장(掌)을 질렀다. 연가의 절정 무공, 반룡장(反龍掌)이었다.

퍼억!

이번에는 신음도 없었다.

코와 입으로 피를 쏟아 내며 물러난 명극이 쌍수를 어지럽게 휘둘렀다.

파바바박!

신기(神技)였다.

그 빠르고 날카로운 수도를, 연호정은 모조리 피해 내고 있었다. 순간순간 느려지는 공격들, 그사이 미세한 생로(生路)를 포착한 몸이 알아서 안전한 길을 찾아 들어간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급하게 퍼붓는 명극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해 낸 것도 모자라, 거리까지 좁혀 들어간 연호정이 양손을 모았다.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위기감을 느낀 명극은 반격할 생각도 못 하고 다시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때, 연호정의 두 손이 합장하듯 강하게 맞부딪쳤다.

쾅!

강력한 충격파에 그대로 날아간 명극이 땅을 굴렀다.

“우웨에엑!”

검붉은 피를 토한 명극이 창백해진 얼굴로 연호정을 노려보았다.

“후욱. 후욱.”

연호정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호흡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고, 또렷했던 눈은 어딘지 모르게 흐리멍덩했다.

마치 무언가에 빠져들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기감은 날카로워, 정확하게 명극을 인식하고 있었다.

“……너?”

멍하니 연호정을 보던 명극, 그의 입에서 불신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음제의 수법을 알고 있는 거냐?!”

그렇다.

명극은 음제와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무공을 잠시나마 견식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연호정이 쓰고 있는 무공의 정체를.

바로 음제가 즐겨 사용하는 진동의 무공, 암공파(暗空波)였다.

심지어 장공(掌功)으로만 쓰는 음제와 달리, 연호정은 진각은 물론 손가락 튕기거나 손뼉을 치는 것만으로 암공파의 힘을 그대로 구현해 내고 있었다.

번쩍!

느슨하게 풀려 있던 연호정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제빛을 찾았다.

“……!!”

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현듯 명극은 깨달았다.

‘이게 아니야.’

음황투신진으로 힘을 끌어 올렸다?

이건 아니다. 강력하고 무서운 필살기였지만, 적어도 연호정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연호정이 유리해져 버렸다. 더 강해지고 더 빨라졌지만, 자신의 이 ‘기술’이 연호정의 알 수 없는 ‘재능’을 부채질한 것 같았다.

그 재능은 무엇인가?

파아아악!

휘몰아치는 도화천신권.

동시에 마주 질러 오는 연호정의 반룡장은 강한 진동과 함께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퍽! 퍽!

도화천신권의 투로가 흔들렸다.

암공파와 함께 내질러진 반룡장의 힘이 천신권의 방향을 흔들어 버린 것이다.

명극의 머리에 벼락이 쳤다.

‘저 정도 힘으로 흔들릴 투로였던가.’

아니다.

도화천신권의 투로는 완벽하고 탄탄했다. 어떤 힘으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데 무너지고 있다. 음제에 비하면 반절도 되지 않는 진동의 힘 앞에.

티이잉!

천신권을 튕겨 낸 연호정의 반룡장이 명극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쩌어어어어엉!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연호정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스르르르륵.

약간의 한기가 남았던 강풍이 잠잠해졌다. 음황투신진이 사라진 것이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피 섞인 가래를 뱉어 낸 명극이 차갑게 웃었다.

좌절의 웃음이었고, 분노의 웃음이었다.

“어린애들 좋아하나?”

“……?”

“종남의 뿌리를 뽑는다…… 그 의미가 뭔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순간 연호정의 눈이 충혈되었다.

“너?!”

번쩍! 콰아앙!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강력한 힘의 역장이 두 사람 주변으로 휘몰아쳤다.

명극이 하얗게 웃었다.

“종남에서 배운 도동들의 머리통을 다 베고 나면, 네 아군들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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