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화. 정리(整理) (3)
치이이이익!
공터 중앙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당관이 헛기침을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외따로 떨어진 지역에서 구현해 볼 것을 그랬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는 가주님이 이렇게 힘 조절을 못 하시는 분인 줄 몰랐습니다.”
“시끄럽다.”
“몸은 어떠십니까?”
“조금 뻐근하지만, 그래도 썩 나쁘지는 않군.”
어깨를 휘휘 돌리던 당관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바라보았다.
‘음.’
그가 원한 범위는 횡으로 일 장, 종으로 일 장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피격당한 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횡으로는 이 장에 가까운 길이가 나왔고, 종으로는 일 장 하고도 반은 되는 듯했다.
당형이 인상을 찡그렸다.
“진기 조절이 제대로 되었으면 땅에 꽂히기만 했을 뿐, 발경 폭발까지 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 보셨습니다.”
“타격의 순간을 읽지 못했다. 머리채를 잡고 당기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어딜 잡아야 할지를 읽지 못했어.”
“그것이 바로 지금의 만화수가 무서운 이유입니다. 구사할 때마다 진기의 통제를 벗어나는 부분이 천차만별이에요.”
“너라도 그랬을 것 같으냐?”
“예. 완성형에 가까운 것이지, 완성된 무공은 아니니까요. 애초에 만화수는 시전자조차 암기 한 조각, 한 조각의 움직임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시전자도 모르니 적은 당연히 모르지요. 그래서 치명적인 겁니다.”
“잘 보았다.”
“해서 더더욱 함부로 구사해서는 안 될 무공입니다. 한번 펼쳤다 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게다가 이 위력, 직격당한다고 생각하면 성천의 고수라도 위험할 겁니다.”
당관이 연호정을 힐끔거렸다.
“너도 버티기 어려울 것 같으냐?”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불을 놓는다면 괜찮겠지만, 파훼나 회피는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철저하게 방어로 일관한다고 해도 출혈을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쉽군.”
“뭐가요.”
“방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길 기대했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진짜로 완성이 되면, 그때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가주님도 이 무공을 대성한 게 아니잖습니까.”
“…….”
“제게 한 방 먹이려거든 만화수부터 대성하십시오. 이제 절반을 넘기셨으면서 너무 꿈이 크신 것 같습니다.”
“건방진 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관은 전혀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다만 아직도 놀라긴 한 모양인지, 잊을 때쯤 연호정에게 묻곤 했다.
지금처럼.
“어떠냐? 신세계로 진입한 기분이.”
“째집니다.”
“어련하시겠나. 앞으로 툴툴거렸던 모 가문의 주인장 괴롭힐 생각에 잠도 안 오겠지.”
“그게 당가주님은 아니겠지요?”
“나야 모르지.”
당관의 말투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연호정과 많이 친해졌지만, 그래도 일정한 선은 있었다. 애초에 첫 만남부터가 좋지 않았거니와, 연위와 친분을 나누었기에 그 아들인 연호정을 아랫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연호정은 당가의 은인이다. 당가의 은인이면 곧 당관 자신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당가는 은원 관계에 철저하다. 법도 이전에 핏줄에 각인된 도덕이었다.
그래서 연호정을 대하는 당관의 태도가 이전보다 더 부드러워지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실제로 연호정이 아니었다면 당가를 다시 찾지 못했을 테니까.
연호정 역시 당관의 마음을 알았다.
어지간하면 자신의 경지에 질투가 날 만도 한데, 당관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경쟁심은 있어도 질투는 없다는 것, 이 강호 무림에서 그러한 성정을 보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이 좋은 관계가 깨지는 것은 연호정도 원치 않으니까.
“뭐가 되었든 구분을 나눈 것은 좋은 일입니다.”
“뭐가 말이냐?”
“만화수, 만천화우 말입니다.”
“……음.”
“당장 위력이 조절되진 않겠지만, 상황에 따라 식(式)을 나누는 것은 분명 큰 발전입니다.”
연위와 함께 만천화우를 만들 때, 당관은 초식을 세 개로 나누었다.
소수에게 집중하되, 더 뾰족하고 관통력 높은 일장(一章).
주위에 포진한 모든 적을 동시다발로 공격하는 이장(二章).
나아가 삼단전의 기를 몽땅 끌어와 일장의 관통력과 이장의 범위를 가져간 최후의 절기 삼장(三章).
일장과 이장은 범위와 관통력의 차이가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같은 무공이라 봐야 한다. 진기의 소모도, 구결에 따른 내공 운용도 거의 흡사했다.
하지만 삼장은 달랐다.
당관이 당호를 섬멸할 때 구현한 절초인 삼장은 만천화우에서도 최종오의(最終奧義)라 할 만한 무공이었다.
적아의 구분 없이 모든 것을 초토화하는 희대의 살초.
살초를 시전한 본인조차도 위험해질 수 있는 절체절명의 무공이라 할 수 있겠다.
“그것만큼은 네 조언을 따랐다.”
“예. 저도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의 그 사신공(四神功)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 상성을 무시하고 꺼내 쓰는 게 가능하지. 너다운 조언이었다고 본다.”
연호정이 쓰게 웃었다.
“상성을 무시하는 무공은 없습니다. 그저 상대가 사람이기에 통하는 것일 뿐이지요.”
“그런가.”
“오히려 그래서 어려운 무공이라고 봅니다. 그때그때 상황을 읽고, 최적의 수를 즉각적으로 꺼내 써야 하니까요. 내공 소모가 적은 편도 아니고, 기실 만화수처럼 필살기라 할 만한 초식도 없습니다.”
“너와는 잘 어울리는군.”
“예. 저에게는 장점이죠.”
사신무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무공이다.
그렇기에 어렵고 난해하다. 철저하게 시전자의 능력에 따라 위력의 증감이 이뤄지는 무공이기에, 무공 외적인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신무를 뒷받침해 줄 능력만 확실히 키워 냈다면, 대인 전투에 있어서 사신무에 비견될 만한 무공은 찾기 힘들 것이다.
‘아니지.’
연호정은 내심 생각했다.
‘필살초(必殺招)라…… 없는 건 아니지만.’
황룡공.
정식 명칭은 황룡신왕공(黃龍神王功)으로, 사신의 진기를 일절 거슬림 없이 조화롭게 합일하면 드러내는 최종 오의다.
굳이 말하자면 황룡신왕공이야말로 사신무의 필살초다. 그러나 황룡은 단순히 최강의 공격력을 지닌 무공이 아닌, 그 자체로 완성된 신공이라고 봐야 했다.
‘얼마나 걸릴까.’
광명신단을 만들어 사신기의 각 상극을 무시하고 합일시킬 수 있었지만, 네 가지의 기운을 완전히 하나로 합치는 것은 아직도 불가능했다.
흑암제 시절에도 입문 자체를 하지 못했다. 문을 열 수 있는 단초는 보았지만, 그마저도 광명신단을 연성한 지금에야 의미 없는 과거였다.
‘이왕이면 빨리 그 모습을 드러냈으면 좋겠군.’
생각을 갈무리하며, 연호정이 말했다.
“어쨌건 식도 완성이 되었고 진기의 이동 구결도 완성되었으니, 남은 것은 확인된 문제점을 보완해 완성하는 것과 신체의 부담을 줄이는 것뿐입니다.”
“그렇겠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물끄러미 연호정을 보던 당관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밤에 일 없으면 찾아와라. 좋은 술을 대접해 주지.”
연호정이 씨익 웃었다.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빼먹으려고요?”
“들켰군.”
역시나 당관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연호정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다는 걸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웃으며 당관을 보던 연호정이 일순 눈을 빛냈다.
당관이 말했다.
“공사도 더 도와줄 필요 없다. 폐허가 된 지역도 대충 정리되었고 담벼락도 세워졌으니, 남은 인선 문제와 사업체 정도만 손보면…….”
“그런 거 이전에, 오늘은 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충분히 쉬었다. 할 일이 태산이거늘 한가롭게 무공이나 점검한 것도 나에게는…….”
“제아무리 일이 많아도, 가족과의 시간은 짬을 내서라도 보내야지요.”
“무슨 말이냐?”
그때, 후원의 문이 열렸다.
당관은 깜짝 놀랐다. 문이 열리자마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가오는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돌아보니, 그곳에는 반가운 얼굴 둘이 있었다.
“아버지.”
당형이 미소를 지었다.
“수련에 방해가 될까 싶어 기척을 죽였거늘, 보아하니 다 끝난 모양이구나.”
중단과 하단의 기운을 봉인했지만, 아직 그에게는 상단전이 남아 있었다. 실제로 당형은 독공을 봉인했음에도 연호정을 일격에 날려 버리기도 했었다.
애초에 상단전을 봉인하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만히 당형을 보던 당관이 연호정을 힐끔거렸다.
연호정이 양손을 들어 보였다.
“안 그래도 가려고 했습니다. 너무 눈치 주지 마십시오.”
“커험!”
당관이 헛기침을 하는 모습은 참 생소했다.
연호정이 당형과 당윤에게 포권을 취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당윤이 말없이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
“큰 은혜를 입었네.”
당형이 포권을 취했다.
당관과 당윤은 물론 연호정도 깜짝 놀랐다. 강호의 대선배이자 고고하기론 성천 중 제일이라는 암왕이 예를 취한 것이다.
연호정이 당황하여 말했다.
“저는 고생한 게 없습니다. 전부 당가주의 공이지요. 오히려 득을 봤으면 봤지…….”
“자네가 아니었다면 귀문의 기운을 느꼈음에도 끝까지 나오지 않았을 것이야.”
“…….”
“자네의 꾸짖음이 나를 이곳에 있게 만들었네. 그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막막해.”
당가의 은인이기 전에, 당형 개인의 은인이라는 것이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저 오지랖 넓은 수다쟁이의 참견이었을 뿐입니다. 너무 담아 두지 마십시오.”
“그래서는 안 되지.”
부드럽게 일축하며, 당형이 당윤에게 물었다.
“본가의 철칙이 무엇이냐?”
당윤이 웃으며 답했다.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갚는 것입니다.”
당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호정을 보았다.
“원한을 열 배로 갚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은혜를 받은 만큼 갚는 것은 쉽지 않아. 하물며 두 배로 갚아야 하니, 죽을 때까지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걸세.”
연호정의 표정은 떨떠름 그 자체였다.
남에게 미움을 사는 것도 싫지만, 부담스러울 정도의 감사를 받는 것도 사절이었다.
‘하긴, 당씨들은 원래 적당히라는 걸 몰랐지.’
참 불편한 성격들이다.
연호정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받을 은혜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단 가족과의 시간부터 보내시지요.”
“허허, 그럼세.”
“저는 이만.”
가주원에서 나온 연호정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족이라.’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동생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친척들은 각지로 뻗어 나갔다. 연가는 언제나 적통만이 남아 가문을 지켰고, 적통을 지키는 무사들이 모여 무가를 형성했다.
즉, 연호정에게도 남은 가족은 둘뿐이었다.
“가족과의 시간은 짬을 내서라도 보내라…… 웃기고 있군. 누가 누굴 가르치는 거냐. 나도 못 지키는 것을.”
연호정의 얼굴에 씁쓸함이 어렸다.
아버지와 동생은 항상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일이 바쁠 때는 생각을 못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 두 사람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을 떠올리며 걱정하겠지.
불쑥 밀려드는 미안함과 그리움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번 일을 처리하고 한번 찾아뵈어야겠어.’
무공이 강해져도, 배움이 많아져도 그는 한 아비의 자식이자 한 청년의 형이었다.
그는 그것을 잊지 않으려 하였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니까.
씁쓸함을 뒤로하고 걸어가려는 찰나, 문득 느껴지는 기세에 연호정이 옆을 바라보았다.
“오셨소?”
“그렇다네.”
벽에 삐딱하게 기댄 모용군의 표정은 무척이나 심드렁해 보였다.
연호정이 담담하게 물었다.
“나에게 볼일이 있소?”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모용군이 턱짓으로 옆을 가리켰다.
“얘기 좀 하지.”
참 심심할 새가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