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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630화 (629/963)

630화. 천하를 논하다 (5)

청년이라 하기에는 나이가 많았고 중년이라 하기에는 젊어 보이는 얼굴.

그럼에도 어중간하지는 않다. 젊음의 패기와 중년의 완숙함이 적절하게 섞인, 몹시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키는 당관과 비슷했으나 골격은 조금 더 왜소했다. 무공을 연성한 무인보다 학자에 더 어울리는 외양이었다.

“…….”

당관의 눈이 깊어졌다.

통제 불능의 진기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얌전히 숨을 죽였다. 주인의 긴장한 몸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진기가 역류하고 있군요.”

당윤의 목소리는 지극히 담담했다.

그는 큰형인 당관이 이런 꼴이 된 걸 본 적이 없었다.

당관은 사천의 패자였으며 누구 앞에서도 무릎을 꿇은 적이 없었다.

언제나 고고했던 제왕의 풍모.

그런 사람의 피폐한 꼴을 보고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저 담담한 표정 위, 옅은 안타까움만이 맴돌고 있었다.

스르륵.

당관이 몸을 일으켰다.

깊어진 눈으로 막내를 보는 당관의 표정은 당윤과 비슷했다. 차갑게 굳어진 표정 위, 안타까움과 서글픔이라는 감정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당관이었다.

“너도냐?”

당윤은 대답이 없었다.

당관이 말을 이었다.

“너도 호아와 함께 본가를 뒤엎으려 했던 것이냐?”

“…….”

“그렇다면 너 또한 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 어떤 이유로도 반역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관의 입이 저절로 다물렸다.

막내는 지금껏 한 번도 자신의 말을 끊은 적이 없었다. 언제나 자신에게 공손했고, 당가인답지 않은 선한 성품으로 주변인들에게도 평가가 좋았다.

그런 동생의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바뀐 것 같았다.

‘너도냐.’

안으로 고였던 피눈물이 두 눈으로 확 몰려드는 기분이었다.

‘너도 내가 그리 싫었느냐.’

당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윤이 말을 이었다.

“끝나지 않았지요.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겁니다. 형님이 바뀌지 않는 한.”

“……?”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일까?

당윤이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낀 하늘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먹구름 사이사이에 은은한 녹색 빛이 쏟아지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더 어둡고 더 음침했다. 당가에서 보는 사천의 하늘은 그러했다.

“둘째 형님의 목표는 언제나 큰형님이었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

“모르셨겠지요. 큰형님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형님은 가주가 되신 이후, 당관이 아닌 당씨 문중의 주인으로서 사셨으니까요.”

당관은 당윤의 말을 깊이 통감했다.

가주에 오른 그는 단 한 번도 가족을 제대로 돌본 적이 없었다. 부모 형제는 물론이고 자식을 두었음에도 부정(父情)을 몰랐다.

그에게 당가인들은 모두 똑같았다. 형제자매의 구분도 없었고 직계와 방계의 구분도 없었다.

당관의 그러한 시선은 당가라는 무가의 발전에 불을 붙였다. 엄하고, 가끔은 편협했으며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했지만, 적어도 그의 일 처리만큼은 철저하고 합당했다.

달리 보면 그것은 이상적인 수장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상 어떤 조직의 수장이라도 내 가족, 내 핏줄에게는 관대한 편이지만 당관은 모두에게 공평했으니까.

그러한 철저한 법도가 당가의 힘을 강하게 했고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당관은 좋은 군주였다.

그러나.

당관은 알았어야 했다. 그러한 철저한 법도를 내세우기 전에 내실부터 다졌어야 했다는 것을.

사람은 감성의 존재다. 머리로는 옳다는 걸 알아도 내 감정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에는 엇나가고야 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다 챙겨 가며 집단을 성장시킨 군주는 역사를 뒤져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당관은 노력했어야 했다. 힘든 걸 알아도 무시하지 말고 신경을 써야 했다.

“조직원의 잘못은 조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상관의 잘못입니다. 나아가 상관에게 제대로 주의를 주지 못한 수장의 잘못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당가인의 잘못은 수장인 형님의 잘못입니다.”

“…….”

“고로, 둘째 형님이 이 지경이 된 것 역시 형님의 잘못입니다.”

“……안다.”

당관의 턱에 힘줄이 불거졌다.

“내 잘못이다.”

당윤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미소가 새겨진 얼굴임에도 서글픔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그리고 제 잘못이지요.”

“……?”

“둘째 형님은 당가의 조직원입니다. 동시에 제 가족이지요.”

“…….”

“내 형제가, 내 가족이 사도에 빠졌습니다. 잘잘못의 우선을 따질 필요 없이, 사도에 빠진 형제를 다독이지 못한 우리의 잘못입니다.”

“…….”

“그래서 끝나지 않은 겁니다. 형님께서 당가를, 이 위대한 가문을 진정성 있게 가꾸지 않는 한, 이러한 사태는 언제고 다시 터지게 될 겁니다.”

“…….”

“저는 큰형님과 둘째 형님, 둘 모두를 증오했습니다.”

“그러냐.”

“예. 그리고 그 증오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두 사람을 증오합니다.”

당관이 눈을 감았다.

“그래, 이해…….”

“그리고 뼈에 사무치게 사랑합니다.”

“……?!”

“한번 생긴 증오는 스스로가 놀랄 만큼 그 크기를 키워 갔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증오를 넉넉하게 덮을 만큼의 사랑이 있습니다.”

당관이 눈을 떴다.

당윤의 눈이 물기로 젖어 들었다.

“원통합니다.”

“…….”

“증오만 남았다면 가문을 떠났을 겁니다. 사랑만 남았다면 진즉 죽었겠지요.”

“…….”

“죽는 게 나았습니다. 떠나는 게 좋았을 겁니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눌러앉아, 골육상쟁의 비극이 벌어지는 걸 직감했음에도 막지 못했습니다. 그럴 바에야 사천 땅에서 사라지는 게 나았을 겁니다.”

“윤아.”

“큰사람이 되십시오.”

“…….”

“적어도 자신의 잘못을, 지난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을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형님께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당관은 이미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직시했고 그것을 인정했다. 나아가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을 의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당관은 막내에게 자신의 변화를, 난 이미 그렇게 바뀌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당관의 목소리는 지독하게 잠겨 있었다.

“절대 이와 같은 일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내 실수를 인정한다. 열 번을 잘해도 한 번을 잘못하면, 그 한 번의 잘못으로 모두가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당윤의 눈이 흔들렸다.

당관이 고개를 숙였다.

“본가는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본가가 달라지려면 나부터 달라져야겠지.”

“…….”

“적어도 과거의 실수를 답습하는 군주가 되지 않겠다. 네 앞에서 맹세하마.”

“…….”

“못난 형들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참으로 미안하구나.”

이런 꼴이 된 당관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제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당관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당관은 본디 말이 많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간 보여 주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 주는 지금의 당관이라면, 확실히 예전보다는 더 나은 군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당윤이 허리를 숙였다.

“위대한 군주로 남아 주십시오.”

“그래, 반드시 그리되겠다.”

당윤이 몸을 돌렸다.

“뇌옥은 파괴되지 않은 모양이군요. 잘되었습니다.”

“……?”

“가문의 상황이 대충 정리가 되면, 저는 제 발로 뇌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윤아.”

당관이 조심스레 물었다.

“너…… 설마?”

그때였다.

“반대입니다.”

당관이 고개를 돌렸다.

당형의 눕히고 진기를 도인하는 연호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멀리 떨어졌음에도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생생했다.

“당윤 대협은 반역자 당호와 함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뭐……?”

“용두방주가 말한 당가의 암인(暗人). 그 암인이 바로 당윤 대협입니다.”

“……!!”

당관이 당윤을 바라보았다.

몸을 돌린 당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연호정이 말을 이었다.

“암왕 노선배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패율 선배와 접선했습니다. 그 와중에 생각이 나서 다시 한번 암인을 호출했지요. 내부 정보를 보다 더 자세히 알고 싶었거든요.”

“…….”

“어떻게 개방의 암인으로 활동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윤 대협은 끝까지 스스로를 숨긴 채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모아 두고 있었습니다. 물론 낙원소의 정보 통제가 워낙 심해서 개방에게 제대로 정보를 전달하진 못했습니다만.”

“…….”

“당윤 대협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개방과 낙원소 중간에서 이중 첩자로 활동했기 때문이었지요.”

당관의 얼굴에 경악이 일었다.

연호정이 당형의 가슴에서 손을 떼었다.

“다행입니다. 그래도 진기가 완전히 봉인되기 전이라, 부러진 갈비뼈를 스스로 뽑아 맞춰 주셨어요. 관통된 장기도 무서운 속도로 복구 중이로군요. 아마도 독술을 쓰신 듯한데,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예, 무사하십니다.”

당관이 당형을 바라보았다.

기력이 쇠했던 것일까? 당형은 어느새 정신을 잃은 채였다. 처음 기습을 당했을 때보다 안색이 괜찮아 보였다.

연호정이 당형을 등에 업었다.

“슬슬 정리하시지요.”

당관이 다시 당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등을 돌렸음에도 시선을 읽은 당윤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에 담긴 의문도.

당윤이 말했다.

“마음에 드는 처자가 생겼습니다. 화전민의 자식이었지요. 나이 차이가 크게 나서 주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정리하려 했습니다.”

“…….”

“그래도 한 번만 더 보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어느새 가족 전체가 사라져 버렸더군요.”

“……?!”

“그 사람과 가족은 낙원소에 잡혀가 도살당했습니다. 인육을 좋아하는 미친놈들의 뱃속에 들어가 버렸지요.”

“……!!”

“낙원소의 존재를 안 것이 그때입니다. 마음 같아선 모조리 다 불살라 버리고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사를 시작했지요.”

당윤이 고개를 돌려 폐허가 된 땅을 바라보았다.

당호가 만천화우로 소멸한 곳이었다.

“둘째 형님이 그곳의 책임자 비슷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저는 철저하게 스스로를 숨겼습니다. 하지만 꼬리를 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지요.”

“……그랬구나.”

“그때, 둘째 형님이 절 살렸습니다. 선택하라더군요. 저는 침묵을 택했습니다. 둘째 형님은 그런 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

“그 뒤, 저는 개방의 암인이 되었습니다. 개방 수뇌부와 접촉하기까지 오 년이 걸렸지요.”

당관이 나직이 탄식을 토했다.

당윤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러고도 형제의 정을 버리지 못한 것을 보면, 저도 둘째 형님도 제정신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다.”

당관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 않아.”

혈육의 정이 무섭다는 것을 근래 들어 깨닫게 되었다.

정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같은 피를 혈관에 담고 있는 사이란 그렇게나 끈끈한 것이었다.

“그래서 뇌옥에 가겠다는 것이냐?”

“…….”

“윤아, 그럴 필요는…….”

그때, 당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비둘기 한 마리가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늘었군요. 혹시나 했는데, 저쪽에서도 애가 닳았던 모양입니다.”

“……?”

“낙원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번쩍!

연호정과 당관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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