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8화. 천하를 논하다 (3)
당관은 과거 연위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것이었소?’
‘그렇소.’
‘호정이 이런 무리(武理)를 전해 주었단 말이지…….’
‘익숙하지 않은 거요? 그놈 무공이 독특하기는 해도 결국 뿌리는 연가의 무공 아니오? 연가주도 잘 알 거라 생각했는데.’
‘당가주께서 보기에, 이러한 무리가 본가의 무공과 어울릴 거라 보시오?’
‘물론 그리 생각하진 않았소. 그래서 다소 의아하긴 했지. 연가의 검법에 이처럼 화려한 운용법이 있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호정의 무공은 이 사람이나 지평이 익힌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오. 녀석이 본가의 신공을 익힌 건 분명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바탕일 뿐이오. 이미 호정은 스스로의 무도(武道)를 창안하여 일가를 이루었소이다.’
‘그렇구먼.’
‘그나저나, 역시나 대단한 무공이외다. 내, 나름대로 수많은 무학을 공부했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나 섬세한 무공은 본 적이 없소.’
‘하지만 부족하지. 여전히.’
‘음, 완성되진 않았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히…….’
‘적당한 무공 하나 만들려고 지금껏 붙들고 있었던 게 아니오.’
‘허허, 지나친 과소평가요. 적당한 수준이 아니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소. 연가주의 검을 완성하는 데에 도움을 드릴 테니, 만화수(萬花手)를 완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시오.’
‘만화수라…… 두 무공을 하나로 합칠 생각이구려.’
‘그렇소.’
‘당가주. 알고 계시겠지만, 이 무공은 지금도 대단하오. 아니, 대단한 걸 넘어 위험하지.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완성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강호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무공이 될 것이오.’
‘존심 내려놓고 부탁하는 이유가 뭐겠소?’
‘다만, 지나치게 위험할 것이오. 적에게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외다.’
‘…….’
‘연가의 무공은 천하 무공 중 가장 중도(中道)에 가깝소. 그 무리를 얻어 가는 이상, 만화수 역시 쓰고 싶어도 함부로 쓸 만한 무공이 되진 않을 거요. 또한 나 역시, 그러한 무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부탁드리는 거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부족한 능력이나마 한 손 거들어 드리겠소.’
‘고맙소.’
‘허허, 참으로 별일이 다 있소. 당가주께 고맙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소이다.’
왜일까? 이 폭발할 것 같은 순간에 연위와의 대화가 떠오른 까닭은.
의아해하다, 당관은 그 대화에서 자신이 말했던 한 단어에 순간 사로잡히는 것을 느꼈다.
‘중도(中道).’
중도란 어중간한 것이 아니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길을 뜻한다.
혈육과의 싸움,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이 비정하기 그지없는 전장에서.
마침내 당관은 깨닫는다. 무공의 중도가 무엇인지.
만천공(滿天功)과 화우공(花雨功), 이 두 무공을 하나로 합쳐 만든 만화수(萬花手)가 이끌어 낸 중도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촤라라라라락!
쇳조각끼리 얽히며 퍼져 나가는 소리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취해 넋을 놓고 있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음파의 공명, 서로 부딪치고 상쇄되면서도 점점 증폭되는 쇳소리가 귀를 파고들어 뇌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우우우우우우웅!
“크으윽!”
당호는 저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만천(滿天)을 뒤덮는 별 무리가 아리따운 장송곡을 뽑아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겁고 큰 울림을 주는 음파. 생각지도 못한 이상 증세에 당호는 끌어 올린 마기를 두뇌에 집중시켰다.
치이이이이익!
당호의 칠공에서 허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끌어 올리지 말아야 할 부위에 마기를 퍼부으니 정신은 아득해지고 광기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활활 타올랐다.
당호가 소리를 질렀다.
“크아아아아!!”
인간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포효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둔탁하고 음험했다.
말 그대로 마성(魔聲)이었다. 마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쇳조각끼리 부딪치며 쏟아지던 음파가 조금씩 힘을 잃었다.
‘본능이군.’
두뇌에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충격을 상쇄함과 동시에, 만화수의 음공을 분쇄하는 일련의 과정이 알아서 이뤄지고 있었다.
이미 음파로 뇌에 충격을 주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해진 게 아니었다.
즉.
‘역시 너는 더 이상 내가 알던 형제가 아니다.’
당관이 눈을 감았다.
그가 힘차게 대지를 밟았다.
쿵!
진각으로 퍼져 나가는 울림이 쏟아지는 음파와 공명했다.
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당호가 입을 떡 벌렸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 비할 데 없는 마성은 더 이상 터져 나오지 못했다. 입을 쩍 벌린 상태, 그 상태로 몸이 굳어 버린 것이다.
번쩍! 번쩍!
세상에 존재하던 소리가 사라졌다. 적어도 당호는 그렇게 느낄 것이다.
주르르륵.
당호의 두 귀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소리, 진동, 공명으로 시작부터 상대를 약화시킨다. 그것은 당가 무공의 근본 무리(武理)와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독을 쓰기 전에 독을 잘 풀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라.
암기를 쓰기 전에 암기에 적중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끌어내라.
독공을 운용하기 전에 스스로 중독 상태를 겪어 봐야 한다. 암기를 던지기 전에 받아 내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당가의 모든 무도(武道)는, 무언가를 실행하기에 앞서 성공이라는 결과부터 만든다. 즉, 어떤 전투에서도 일단 이겨 놓고 싸움에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당가의 무공을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출력의 상승, 맹목적인 공격력의 증대를 꾀하는 파괴적인 무도와는 거리가 있음에도.
쿠르르르릉!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왼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오른손은 대지를 덮었다. 왼손을 통해 뻗어 올라간 진기는 만천에 별 무리를 흩뿌리고, 오른손을 통해 쏟아져 내려간 진기는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어 냈다.
당형의 내기를 제어하던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엄청나군.’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진기의 움직임.
그러나 연호정의 눈에는 보였다. 당관의 양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섬세함의 극치!’
하늘로 올라간 진기가 수천 갈래로 찢어져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벼락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구현한다.
대지로 낮게 깔린 진기는 넓고 풍성한 구름을 만들어 쏟아져 내리는 벼락의 속도를 증가시킨다.
음(陰)과 양(陽)의 이치가 절묘하게 중도를 지키고 있었다. 독공을 연성한 자가 저와 같은 기운을 분리하여 하나의 무공으로 완성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활혼인백(活魂引魄)이구나.”
연호정이 당형을 내려다보았다.
경이와 기쁨이 그의 파랗게 질린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제왕경의 활혼인백은 양독(陽毒)으로 음독(陰毒)을 추출하는 활생의 대법이건만, 그것을 저처럼 놀라운 암기술의 바탕으로 깔다니!”
당형은 아는 모양이었다. 저 암기술의 기반이 된 진기 운용법에 대하여.
하지만 이 놀라움 가득한 표정을 볼 때, 당형은 저와 같은 운용법을 생각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
성천의 강자조차 감히 떠올리지도 못한 운용법을, 성천에 이르지 못한 자가 깨우쳐 탄생한 새로운 무공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당관의 안목은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실제로 저 무공을 구상했을 때가 아주 오래전임을 생각하면, 당관의 천재성은 독보다 암기에 더 부각을 나타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저건……!”
경이로 가득했던 당형의 얼굴에 문득 그림자가 끼었다.
“너무 위험하구나.”
연호정 역시 동감이었다.
상대가 아니라 당관이 위험하다. 두 사람은 그리 느꼈다.
연호정은 애써 당형의 가슴을 눌러 눕혔다.
“당가주님의 싸움입니다. 걱정은 싸움이 끝난 후에 하시지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기를…….”
“걱정 말게. 난 죽지 않네.”
“노선배님.”
“상체를 일으켜 주게. 난 정말 괜찮아. 이 정도로 죽을 운명이었다면 이십 년 전에 죽었네.”
결국 연호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부러진 뼈를 스스로 움직여 경화를 시킨 상황이었다. 당형은 이대로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 싸움을 두 눈 똑똑히 지켜보지 않으면 평생의 한으로 남으리라.
연호정이 당형의 상체를 세워 준 그때.
당호의 발악이 시작되었다.
퍼어어엉!
쏟아내는 장력이 당관의 몸에 부딪히며 소멸했다.
“크아아! 으아아아아!”
쾅! 콰쾅!
당호의 권장은 놀라우리만치 강력한 위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일격, 일격이 초절정고수의 살초라 할 만했다. 바위를 부수고 철판을 뚫으며, 성벽조차 깨부술 만한 위력의 무공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지고 있었다.
콰콰쾅! 콰르릉!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공격의 위력이 점점 더 상승했다.
하지만 당관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당호의 모든 공격은 그의 몸에 닿는 족족 폭발하며 스러졌다.
“쉽게 얻은 사특한 힘으로는 잠시의 영광을 손에 쥘 수 있을지언정.”
번쩍!
당관의 두 눈에서 신광이 발해졌다.
“진짜에게는 통하지 않아!”
그가 뻗은 왼손을 서서히 쥐기 시작했다.
“옥음강포(獄飮鋼鋪).”
치리리리리리리링!!
지옥의 아가리가 수천 개의 쇳조각을 빨아 마시며 이무기와 같은 형상을 만들어 냈다.
쇠 비늘을 단 이무기였다.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하늘을 거니는 거대한 이무기의 두 눈에는 무시무시한 열기가 담겨 있었다.
“분신만파(焚身萬波).”
파지지직! 화르르르륵!
쇠와 쇠가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수천 개의 불꽃이 명멸을 반복하며 벼락과도 같은 모습을 만들었다.
쇠 비늘 위, 벼락을 끌어온 거대한 강철 이무기였다. 어두워진 하늘을 꿈틀거리는 강철의 정령이 보는 이를 압도하는 형상으로 사위를 굽어보았다.
당호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으아아아아아!”
“만천(滿天).”
당관의 왼손이 내려왔다.
낮게 깔린 오른손이 올라오며 왼손과 만났다.
카카카캉! 카카카카카카카캉!!
이무기의 몸이 사방으로 퍼졌다.
사방으로 퍼지며 상공을 장악한 쇳조각은 이전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 훨씬 더 첨예한 살기를 담은 채 단 하나의 목표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자소혼진에서 백면인을 상대로 약식으로 구사했던 무공이 아닌.
상중하, 삼단전의 힘을 모조리 끌어와 구사하는 당관 최강의 살상 무도.
당관이 맞잡은 두 손을 아래로 내렸다.
“화우(花雨).”
그 순간.
달아오른 수천 개의 쇳조각은 유성우(流星雨)가 되었다.
콰콰콰콰쾅!! 콰콰쾅!!
대지는 초토화가 되었다.
콰르르르르릉!!
쏟아져 폭발하는 암기들이 품고 있는 양기와 대지에 깔린 음기가 충돌하며 이차 폭발을 일으켰다.
콰쾅!! 콰콰콰쾅!!
무시무시한 폭발 위로 또 다른 유성우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려왔다.
유성우와 폭발, 폭발과 유성우가 반복되며 지옥도를 그렸다. 천하의 연호정조차도 훅! 하고 밀려드는 화력과 충격파에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인간의 반사 신경으로는 피할 수 없는 속도. 인간의 육신으로는 막아 낼 수 없는 파괴력.
단순히 수많은 암기를 쏟아 내는 것이 아닌, 상대의 육신은 물론 영혼조차 갈아 버리는 최악의 광역기가 여기에 있었다.
당관이 맞잡은 손을 떼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어느새 하늘을 수놓은 별 무리는 사라지고, 처참하게 능욕당한 대지만 덩그러니 남아 신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땅도, 사람도, 의복도, 영혼도, 의지도.
그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는 무(無)만이, 기나긴 싸움을 마무리 지은 당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결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