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화. 끝이 없음이라 (6)
“크아아악!”
입과 코로 피를 뿜는 당호의 모습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뭐지?’
오히려 당황한 것은 당관이었다.
척추를 으스러트리고 극심한 내상의 고통을 당하게 만든다?
그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죽일 작정을 했다면 깔끔하게 죽인다. 그는 일격에 당호의 심맥을 파열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한데 장력이 휘어지며 발경술이 튀어 침투경의 힘이 흩어져 버렸다.
‘내가?’
아니다. 당관은 확신할 수 있었다. 혈육을 위한 본능으로 저도 모르게 엇나간 것이 아니라는 걸.
그때, 당형이 말했다.
“무극…….”
“……?”
당관이 당형을 바라보았다.
당형은 놀란 얼굴로 저 먼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정도 힘이 실린 압력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구나. 무극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야, 그 먼 거리를 격하고 이만한 충격을 줄 수는 없는 법이지.”
“……?!”
“이 기운은…… 그래, 그 녀석이군.”
당형은 기가 막힌다는 투로 말했다.
“날 찾아왔던 그 젊은 녀석, 무림맹 유군 부대의 수장이라는 그놈의 몸에서 나온 기운이야.”
순간 당관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연호정, 그놈이 무극에 올랐단 말입니까?”
“……적어도 내 기감으로는.”
성천의 강자가 직접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무극이라니.’
당관의 입이 벌어졌다.
‘너, 정말 무극지경에 오른 거냐?’
무극(無極), 혼돈(混沌), 무한(無限), 반선(半仙).
어떤 말로도 형용하지 못해 그저 무극지경이라 불리는 그 경지.
한 세대에 한 명 나기도 어려운 절대자의 경지다. 당대 무림에 열셋이나 되는 무림인들이 무극의 경지를 개척했지만, 실제론 그중 누구라도 천하제일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연호정의 나이였다.
‘그 연배, 그 나이에 정녕 무극에 올랐단 말이지?!’
약관을 갓 넘은 나이에 무종의 벽을 뚫은 것만으로도 천하가 놀랄 일이다. 연호정이 괜히 천하제일 후기지수라 불렸겠는가.
한데 이제는 무극이다.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무림 역사에 이름을 새길 위대한 경지로 발을 들인 것이다.
“정말이지…….”
당관의 목소리에 허탈함이 묻어났다.
“무지막지하구나.”
질투도 어지간해야 나는 법이다.
성천의 강자들 대부분이 오십 대 혹은 육십 대에 무극의 경지에 올라 희대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칭송을 들었다. 그 놀라운 천재들이 한 세대에 이리 많이 난 것도 불가해한 일이라고들 말한다.
한데 연호정은 아직 이십 대다. 오륙십 대에 무극에 오른 이들이 천재라면, 연호정은 대체 뭐라 불리어야 할 것인가.
“괴물이로군.”
당형이 나직이 탄식했다.
“세상은 언제나 발전하는 법이지. 학문도, 무공도, 사회도.”
“…….”
“재능 이전에, 지금의 시대에 맞는 또 다른 괴물들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그렇다 해도 그 연배에 무극은 너무 과하구나.”
“…….”
“향후 또 다른 천재들이 무극의 경지를 개척한다 한들, 다음 세대의 선두 주자는 필경 그 녀석이 될 것이다.”
전 무림의 한 세대를 대표하는 절대강자.
그 얼마나 무시무시한 수식어란 말인가. 그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관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허.”
당관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 놀래는 재주를 타고난 녀석이지만, 이제는 더 놀랄 일도 없겠군.”
당관이 당호를 내려다보았다.
“커헉! 컥!”
기가 역류했음인가.
당호는 연신 검붉은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일그러진 두 눈은 잔뜩 충혈되었고 두 팔은 마구 꿈틀거렸다.
척추가 부러졌으니 일어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미 당형의 암기술에 다리 하나가 망가진 뒤였지만, 이제는 정말 폐인이 다 되었다.
당관이 재차 손을 들었다.
우우우웅.
다시금 모여드는 묵룡신장에 강력한 기운이 실렸다.
잘 가라는 말도, 죽으라는 말도 없다.
당관이 냉정하게 손을 휘둘렀다.
퍼어억!
물고기처럼 퍼덕거린 당호가 이내 축 늘어졌다. 침투경으로 파고든 묵룡신장의 기운이 그의 심맥을 완전히 파괴한 것이다.
그렇게 당호가 목숨을 잃었다.
당관이 한숨을 쉬었다.
많은 감정이 묻어나는 한숨이었다.
당형 역시 마찬가지였다. 죽은 둘째를 보는 그의 얼굴에 깊은 허망함과 사무치는 슬픔이 배어났다.
연호정의 무극 돌파가 제아무리 놀라운 일이라 한들, 혈육을 처단한 부모 형제의 서글픔에 비할 것인가.
가만히 당호를 내려다보던 당관이 그의 시체와 정신을 잃은 당여선을 양어깨에 메었다.
당형이 물었다.
“형당으로 데려갈 생각이냐?”
“그렇습니다.”
“……그래.”
한숨을 쉬던 당형은 순간 드는 생각에 주춤거렸다.
‘이제 내 역할은 끝이 난 겐가.’
왜 유폐지에서 벗어나 가문의 사태에 개입하였는가.
당호 때문이었다. 피범벅이 되어 버린 가문을 본래대로 되돌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당관이 나타났고, 당호는 죽었다. 기감으로 느껴지는 가주전 너머의 전투도 끝이 난 것 같았다.
훅.
하늘을 벼락처럼 가로질러 누군가가 이동하는 것도 느껴졌다.
무극의 경지를 개척한 자, 연호정이다. 그 녀석이 저 싸움을 끝내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연호정이라.’
당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지 않지만, 무극을 열었다면 가내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무극은 소위 초절정고수의 영역과는 아예 다른 차원의 경지였다.
절정에서 초절정이 벽을 부수고 그 너머의 세계로 진입하는 거라면, 초절정고수가 무극의 영역을 연다는 건 땅을 걷던 자가 하늘로 비상하는 것이라고 봐야 했다.
신체, 진기, 생각, 영혼 그 모든 것이 뒤바뀐다.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종(種)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하긴, 믿기지 않을 건 또 무언가.’
이 나이쯤 되다 보면, 세상에 불가능이라고 여겨졌던 일들이 수도 없이 터진다는 걸 알게 된다.
연호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른 전에 무극을 열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분명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스륵.
당형이 걸음을 멈추었다.
앞서 걸어가던 당관 역시 걸음을 멈추었다.
“…….”
땅에 박히기라도 한 듯 말없이 서 있는 두 사람.
먼저 입을 연 것은 당형이었다.
“너는 좋은 가주다.”
당황에서 벗어난 당형의 목소리는 생각 이상으로 담담했다.
“네가 가주위에 올랐을 때, 나는 네가 좋은 가주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장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지.”
정면을 응시하는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당형이 말을 이었다.
“실제로 너는 부족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의 너도 충분했지만, 완벽과는 거리가 있었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
“비록 이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지만, 조금 전 네가 보여 준 모습만 보아도 크게 성장했음을 알겠다. 참으로 훌륭한 가주가 되었어.”
훌륭한 가주가 되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 대다수가 그런 것처럼, 아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보여 주는 아버지는 많지 않다.
잘해도 부족하다 하고, 못하면 잘할 때까지 꾸짖는다. 이 시대에 그것은 당연한 교육 방식이었다.
하물며 독하기 그지없다는 당가의 핏줄들은, 어지간해선 잘했다는 한마디를 꺼내지 않는다.
“…….”
당관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당형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하고 있다.”
이 말만큼은 꼭 하고 싶었다.
네 노력이 빛을 발할 것이다, 너는 열심히 하고 있다 따위의 말이 아닌.
지금의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을 언제고 꼭 해 주고 싶었다.
스륵.
당형은 자신도 모르게 흑색 장포를 쥐었다.
“…….”
장포를 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당형이 장포에서 손을 풀었다. 마지막 용기는 내지 못한 것이다.
그가 몸을 돌렸다.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한들, 다시 쌓아 올리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
“어지간하면 식사는 거르지 않도록 해라.”
그때였다.
“어떻게 아십니까.”
당형이 다시 당관을 돌아보았다.
당관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였다.
“아버지가 어떻게 아시냔 말입니다.”
“……?”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당씨 문중의 주인으로서 괜찮은 가주인지.”
“그것은…….”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하지 말라. 귀로 듣지 못한 것을 안다고 착각지 말라.”
“…….”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귀에 인이 박이도록 하셨던 말씀입니다.”
“그랬지.”
“아버지는 저를 모릅니다. 제가 이 가문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살았는지 절대 모르실 겁니다.”
“…….”
“마음에도 없는 칭찬은 하지 마십시오.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한 것을 두고 확신과 착각을 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당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저…….”
“저를 제대로 평가하고 싶다면.”
당관이 고개를 돌렸다.
부드럽지도, 냉엄하지도 않은 얼굴.
무표정이지만, 형용할 수 없는 빛을 담은 두 눈이 호수처럼 맑고 깊었다.
“제 옆에서 보고 들어 주시면 됩니다.”
“……?!”
“성천의 감각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직접 보고 듣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잖습니까.”
“……!!”
당형의 눈이 흔들렸다.
당관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담담한 척 말을 이었다.
“최대의 피해는 막았다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데, 다시 예전으로 되돌리다니요.”
“…….”
“예전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당가를 만들 겁니다.”
“……!”
“지나치게 엄격한 법도의 허점, 지나치게 폐쇄적인 가풍의 단점, 모두 변화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
“이십여 년 전처럼, 급하고 위험하게 바꾸지는 않을 겁니다.”
당형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울컥 올라오는 무언가를 삼키기 위해 목에 몇 번이고 힘을 주어야만 했다.
그 모습을 본 당관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와 눈을 마주하고 말하면, 왠지 저 뜨거운 감정에 매몰되어 할 말도 못 할 것 같았다.
헛기침을 몇 번 한 당관이 시원한 음성으로 말했다.
“옆에서 보고 들으십시오. 아버지께서 직접 가주위를 물려준 녀석이 청출어람(靑出於藍)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셔야, 발 뻗고 말년 보내실 거 아닙니까.”
애증으로 얼룩져 평생을 보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부자지간.
이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 그간 못했던 진심을 아비가 먼저 전해 주니 뻣뻣하기 그지없는 아들도 자신의 진심을 토로한다.
“항상 모시고 싶었습니다.”
“…….”
“하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찾아가질 못했습니다.”
“……안다.”
“나중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포기를 했습니다.”
“나도, 나도 그랬다.”
당관이 애써 고개를 돌렸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죄송했습니다.”
주르륵.
당형의 두 눈에 기어이 눈물이 흘렀다.
당관이 몸을 돌렸다.
보지 않아도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존심 강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꼴을 아들에게 보여 주고 싶을 턱이 없었다.
당관이 조금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시지요.”
“가자. 같이 가자.”
두근!
상처 입고 찢어진 내장 속.
파열된 심맥이 조금씩, 조금씩 이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