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화. 끝이 없음이라 (4)
쩌저저저정!
스스로를 칠사제부의 부장이라 칭한 황면인의 공격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모용군의 눈이 흔들렸다.
‘이놈.’
부우우웅! 쾅!
창대의 중간을 쥐고 회전시켜 힘의 밀도를 증가, 그 힘 그대로 후려치는 발경술이 기가 막힌다.
아무렇게나 후려치는 것 같지만 파괴력이 굉장했다. 희대의 창술가 황석태조차도 그 일격에 십여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야 했다.
화르르륵!
황면인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마기가 은은한 파동을 일으켰다.
공기를 오염시키는 마기였다.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하게 만드는 기운. 내공은 곧 호흡이요, 호흡이야말로 내가고수의 근본임을 생각한다면 황면인의 마기 발산은 그 자체로 적의 힘을 억압하는 효과를 지닌다.
파지지지직!
모용군의 뇌정기가 사납게 일렁이며 공기 중에 녹아든 음습한 마기를 태워 날렸다.
공기의 밀도는 낮아지지만, 아무런 대안 없이 호흡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황면인의 입매가 씰룩거렸다.
“제석(帝釋)의 힘이라. 당대 무림에 뇌기 그 자체를 다루는 자는 찾아보기 힘들 거라 하였거늘. 모용가주로 추정되는 이가 뇌기를 다룬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게 사실이었어.”
모용군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는 뇌정공을 딱히 숨긴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개나 소나 다 알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훅!
마기의 발산력이 강해졌다.
마치 생명 그 자체를 불태우는 듯하다. 모용군은 황면인의 마기에서 목숨을 건 인간 특유의 광기를 느꼈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든,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모용군이 단조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몰라도, 내가 원하는 건 네가 한시라도 빨리 죽는 거지.”
황면인이 씨익 웃었다.
입가에 새겨진 미소에도 마기가 깃든 것일까. 이전보다 입술 색이 조금 더 어두워진 듯했다.
“당신이 죽은 뒤에 이뤄질 소원이군.”
파아앙!
모용군의 움직임은 언제나처럼 대단했다.
그 자신이 품고 있는 뇌기처럼 빠르고 변칙적인 움직임. 어느 순간 황면인의 시야에서 모용군이 사라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모용군의 보검이 하단에서 사선으로 솟구쳤다.
쩌저정!
불꽃을 튀기며 맞부딪치는 창검.
비산하는 뇌기의 파편은 지극히 위험해 보였다. 그러나 황면인은 조금도 물러섬이 없었다. 상대가 품은 뇌기에 놀랐을 뿐, 뇌기 그 자체에 위압감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쩌정! 쩌저정! 쩌저정!
연이은 파열음.
두 사람 주변으로 살벌한 충격파가 터져 나갔다.
‘제길.’
적룡신창을 고쳐 쥔 황석태가 이를 악물었다.
이건 비무가 아닌 실전, 나아가 전쟁이다. 전쟁에서 일대일 대결만큼 우스운 건 없다. 당연히 모용군을 도와 놈을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충격이 너무 거세!’
쾅!
역천의 마기와 최강의 뇌기가 부딪치며 발생하는 힘은 묵룡부 최강 부대의 수장인 그조차 접근하기 힘들 만큼 매서웠다.
섣불리 끼어들었다가는 창질 몇 번 해 보지도 못하고 내상을 입을 것 같았다.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방해하는 꼴이 될 것이다.
파아앙!
황석태는 재빨리 목표를 바꾸었다. 황면인의 부하들, 적면인들을 향해 그 강철의 창날을 겨눈 것이다.
퍼어어억!
남은 흑혈대원들을 죽이고 가주전으로 돌입하려던 적면인 셋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황석태의 창술은 요란하지 않았다. 강하고 빨랐다. 그저 그것이 전부였기에 오히려 공략하기 까다로웠다.
파바바바박!
남은 적면인들의 숫자는 이제 스물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절정고수인 데다 제각기 사방으로 퍼져 움직이는 이상, 황석태라고 해도 일일이 따라잡아 죽일 수는 없었다.
그의 장기는 힘과 전진이지, 모용군처럼 다채로운 기공의 발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번쩍!
그래도 황석태는 끝까지 그들을 막으려 하였다.
다 잡을 순 없지만, 적의 목적지로 향하는 길목을 막는 건 충분하다. 누구보다 빠르게 이동한 그가 적면인 하나의 등판을 깨부수고는 가주전으로 향하는 길목 앞에 섰다.
스르륵.
전방을 향해 적룡신창을 겨눈 그의 모습은 전장에 강림한 전신(戰神)과도 같았다.
“죽을 놈들은 와라.”
묵직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묵룡부가 자랑하는 위풍당당한 장수의 위엄이 새어 나온다.
흩어져서 황석태를 노려보던 적면인 중 둘이 품에서 작은 물건을 꺼내 들었다.
오리알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흑색 구슬.
황석태의 눈에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안 좋군.’
저 물건이 어떤 물건인지는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봐서 알고 있었다.
‘소리라니.’
화약을 쓴 화탄이 아니라 음파를 이용한 화탄이다.
다시 생각해도 저런 물건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화약은 물질이지만 소리는 손으로 만지거나 공정, 제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폭발과 동시에 무지막지한 소음으로 뇌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물건.
‘분명 속임수가 있어.’
뭐가 되었든 저 자그마한 구슬이 까다로운 물건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내공으로 온몸을 보호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고도 잔여 충격을 완전히 해소할 수가 없었다.
초절정고수인 자신이 이러할진대 다른 사람은 어쩔 것인가. 흑혈대원들 대다수가 무력화된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었다.
‘뭐가 되었든.’
적룡신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황석태가 버럭 소리쳤다.
“어디 덤벼 보아라!”
그때였다.
화아아아아악!
“……?!”
멀리인가? 아니면 가까이인가?
하늘인가? 아니면 땅인가?
알 수 없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일순간 폭발하듯 번져 나온 이 바람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에 있는 모두는 깨달았다.
이 힘, 어딘지 모르게 황금빛을 머금은 듯한 이 바람에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막강한 힘이 드리워져 있다는 걸.
파아아악!
살기 넘치는 공방을 주고받던 모용군과 황면인도 대경하며 거리를 벌렸다.
“이건?”
모용군이 멍한 얼굴로 가주전 쪽을 바라보았다.
황면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굴 대부분을 가린 피풍의 속, 경악으로 얼룩진 시체의 놀란 표정이 드러났다.
“……육사제장님?”
아니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지만 황면인은 이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이 육사제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것은 모용군도, 황석태도, 적면인들도, 나아가 기절했다가 깨어난 강량도 알 수 있었다.
“쿨럭! 형님이다.”
한 움큼 피를 쏟아 낸 강량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온몸이 무너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강량은 경악과 환희로 얼룩진 표정으로 외쳤다.
“형님이야! 형님이 드디어……!”
그때였다.
훅!
소리 없이 불어오는 폭풍.
찰나의 시간 속에서, 고요는 길었다.
그리고 그 고요가 끝나는 순간 재해에 가까운 힘이 그곳을 들이닥쳤다.
콰르르르르릉!!
“으아압!”
“크윽!”
무형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부서진 건물 잔해를 날리고 황석태를 넘어트렸다.
황석태를 넘어트린 폭풍은 모용군과 황면인을 비틀거리게 했으며, 두 사람을 지나친 힘의 여파는 적면인들을 그대로 쓸어 버렸다.
콰콰쾅!
폭풍이 불어닥치며 나무를 쪼개고 건물을 뒤흔드는 광경은 도무지 이승에서 벌어지는 일 같지가 않았다.
우지직! 콰직!
허공에 뜬 강량이 나무 표면을 부수고 파묻혔다. 곧이어 나무가 휘어질 대로 휘어지더니 이내 뿌리가 뜯겨 나가며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쿠구구궁! 콰아앙! 콰쾅!
가주전으로 향하는 곳, 그 균열 가득한 성벽이 무너지고 숲이 초토화가 되었다.
죽은 흑혈대원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아직 생존한 대원들 역시 제멋대로 튕겨 나가며 땅을 굴렀다.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이들 중 가장 약한 무사도 강호에 나가면 일류 소리를 들을 텐데,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밀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푸스스스스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처참했다.
균열이 갔지만 그래도 형체는 유지했던 성벽도, 불안한 눈으로 이 전투를 주시하던 숲도, 살기 넘치는 난전 속 피와 죽음을 흩뿌렸던 무사들의 투쟁도.
그 모든 것이 초토화가 되었다.
죽은 사람은 없으되, 그들 모두가 경악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쿨럭!”
나무와 함께 나뒹굴었던 강량이 또다시 일어났다.
왜일까? 육체가 받은 타격은 제법 심한데, 이상하게 내공은 기절하기 전보다 더욱 활발해지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비단 그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황석태도, 모용군도.
그리고 죽지 않은 흑혈대원들도 이상하게 기운이 나는 것을 느꼈다.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의 내공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대체 이 바람이 무엇이기에 이리도 강하고, 왜 몇몇 무사들의 몸에 이런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가.
“심의상인(心意傷人).”
모용군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심의상인이다.”
심의상인, 혹은 심인상인(心印傷人).
다른 말로는 심즉살(心卽殺)이라고도 하는 지고한 경지로, 풀이하자면 마음만으로 사람을 상케 하거나 죽일 수 있다는 뜻을 품고 있다.
물론 실제로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마음속으로 ‘죽어라.’라는 말을 했다고 상대가 죽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나 생명체라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단어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경지가 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영역에 오른 자가, 불현듯 그 이상이 존재함을 인지하고 손을 뻗게 되는 마력의 경지.
글로도,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경지. 보여 줄 수도, 인도할 수도 없는, 오직 그 자신만이 인지할 수 있는 혼돈의 경지.
형용할 수 없기에 그저 무극(無極), 시작도 끝도 없는 경지라 부를 수밖에 없는 지고(至高)의 세상에 발을 들인 자들을, 강호 무림인들은 존경을 담아 이렇게 불렀다.
“성천(聖天)!!”
황석태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 힘은 성천이다!”
황석태와 모용군은 양천의 진실된 힘을 본 사람들이다.
그래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힘이 가진 깊이를, 이 힘이 증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마…….”
모용군의 목소리는 경악으로 떨리고 있었다.
“연호정, 그놈이?!”
그때, 황면인이 외쳤다.
“퇴각하라!”
비명에 가까운 명령.
깜짝 놀라 황면인을 본 모용군과 황석태는, 어느새 그가 왔던 길로 몸을 날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몸을 날리면서도, 황면인은 끊임없이 외쳤다.
“퇴각! 퇴각해라! 육사제장님이 당하셨다!”
육사제장의 몸은 본래 황면인, 칠사제부의 부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이 거대한 폭풍 앞에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소멸!!’
제대로 된 힘도 못 써 보고 소멸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육사제장님이, 당대 교도들을 위해 스스로의 몸을 버려 거름이 되신 그분께서 진정 귀천(歸天)하신 것이다.
“모두 흩어져라! 육 번 거점으로 모여! 당가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쾅!
황면인이 피를 토하며 역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콰쾅! 쾅!
적면인 둘과 부딪치며 날아간 황면인은 무려 이십여 장이나 날아가 쓰러졌다. 황석태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육 번 거점이라.”
나른하고도 섬뜩한 목소리.
모두가 그 목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저벅저벅.
숨길 것도 없다는 듯 휘적휘적 걸어오는 청년의 몸에서는 사색의 진기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모용군이 침을 삼켰다.
그 먼 거리를 어떻게 이동했을까.
청년, 연호정이 어깨를 돌리며 담담하게 물었다.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 그 육 번 거점이라는 곳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