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화. 끝이 없음이라 (1)
백면인, 아니 육사제장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퍼어엉! 퍼엉!
손짓 몇 번에 공기가 마구 폭발한다.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 같지만, 육사제장의 손길은 광혈교의 절정무공 공심장(空心掌)의 투로와 구결을 완벽하게 살리고 있었다.
울컥!
연호정이 피를 토하며 물러났다.
치이익!
흑색과 백색의 손도끼에서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보통 신병이기(神兵利器)가 아니로군.’
공심장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무형의 발경을 생성, 폭파시키는 무시무시한 무공이었다.
절정고수 수준으로도 입문이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의 한계를 돌파하여 신광(神光)을 보기 시작하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입문이 가능한, 난해함에 있어선 중원의 절기들도 쫓아오지 못하는 무공인 것이다.
당연히 위력은 형언 불가다. 어지간한 고수는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다. 위력 이전에 발경의 생성 과정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한데도 읽고 막는다?’
발경의 순간을 읽어 내는 감각이 놀랍다. 무극을 눈앞에 두었다지만, 연달아 내치는 공심장을 이 정도로 발 빠르게 읽는 자는 교내에서도 사제장들을 제외하곤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저 병기, 도끼들이 공심장의 경력을 완벽하게 상쇄하고 있다.’
고수의 손에 들리면 풀 줄기도 천하 신검의 예기를 발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수들끼리의 접전에서 정말로 풀을 뜯어서 싸우는 경우는 없다. 그들에게도 병기의 이점이 곧 전력의 이점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한들, 상대의 무공을 폄하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더 대단하다고 봐야 했다. 병기는 괜찮지만, 병기를 쥔 사람은 괜찮지 않다. 한데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다는 건 신체의 내구력이 괴물 같다는 뜻이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또 한 번 핏물이 튀었다.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연호정.
내상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은 분이라도 바른 듯했다. 코와 입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이 질린 낯빛 때문에 더욱 부각되어 보인다.
육사제장이 다시 한번 손을 휘둘렀다.
퍼어어엉!
연호정의 상체가 후측방으로 휙 돌아갔다.
흑백쌍룡을 교차시켜 막았다. 두 다리는 굳건히 땅을 딛고, 허리를 비틀어 충격을 상쇄시켰다.
“……?!”
육사제장의 눈이 깊어졌다.
“후우.”
연호정이 숨을 내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시 고개를 돌려 육사제장을 노려보는 연호정의 모습은 이전과 변함이 없었다.
“……처음이군.”
우두둑.
육사제장의 오른 주먹이 살벌한 소리를 냈다.
“처음으로 제대로 흘려 냈어.”
공심장의 충격파를 흘려 내듯 받아 냈다.
바위도 우습게 깨부수는 경력이었다. 그걸 상체의 탄력으로 돌려 흘려 냈다. 허릿심이 괴물처럼 강력하다는 증거였다.
파아아앙!
막아 낸 것도 기가 찰 일인데, 심지어 반격까지 해 온다.
촤아아악!
물결 같은 충격파를 일으키는 백룡부의 참격 뒤로, 회전한 후 사선으로 내리치는 흑룡부의 참격이 이어진다.
쩌정!
우수도로 막은 육사제장, 그의 눈빛이 돌변했다.
‘뭐야?’
연호정이 곧바로 발을 뻗어 냈다.
쾅!
폭음과 함께 연호정이 뒤로 밀려 나갔다. 정작 각법에 맞은 육사제장은 그 자리 그대로 버티고 서 있었다.
힘의 깊이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정작 공격을 감행한 연호정이 충격을 받았고, 받아 낸 육사제장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몸은 괜찮을지언정, 육사제장의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
‘더 강해졌어?’
쾅!
밀려난 즉시 다시 튀어나온다.
육사제장의 예민한 감각은 또 하나의 변화를 읽어 냈다.
‘빨라졌다.’
육사제장의 우수도가 반월을 그렸다. 연호정의 도끼가 다가오기도 전에 먼저 공격한 것이다.
쩌어어어어어엉!
엄청난 공명음과 함께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금이 갔다.
콰콰쾅!
연호정의 몸이 대지를 갈아 대며 튕겨 나갔다.
차원이 다른 충격이었다. 공심장에서 광혈교의 신마구살도(神魔九殺刀)로 바꾸었다.
그냥 내리친 게 아니라 정말 죽일 기세로 내리친 일격.
푸스스스.
자욱한 연기와 함께 연호정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
육사제장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공심장까지야 첨예한 집중력으로 막아 낼 수 있다고 치자.
신마구살도는 사제장급의 무공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는 신공절학이었다. 공심장이 허를 찌르는 공격이라면, 신마구살도는 힘으로 상대를 쪼개는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걸 막았다. 막은 것도 모자라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일어난다.
‘내 육신이 아니라 온전한 힘을 낼 수는 없다지만.’
채혼술(債魂術)은 광마의 절학을 익힌 자의 몸에 혼을 실을 수 있는 천고의 비학이었다.
당연히 이치에 맞는 비술은 아니다. 육체의 본 주인, 혼주(魂主)는 물론이거니와 육신에 강림한 혼도 마력이 전부 소모되는 순간 승천할 테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제장급이 아니면 막을 수가 없을 텐데?!’
번쩍! 콰앙!
벼락처럼 날아온 시커먼 도끼를 쳐 내는데, 우수도에 은은한 통증이 느껴졌다.
육사제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강해졌다!’
도끼에 실린 힘이 달라졌다.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흘러나오는 기파는 그대로, 아니 내상으로 인해 더 약해졌는데 공격은 더 강해지다니?
‘대체…….’
훅!
시뻘건 불꽃을 일으키며 다가온 연호정이 백룡부로 육사제장의 목을 노렸다.
서걱!
피풍의 끝자락이 잘려 나갔다.
육사제장은 처음으로 연호정의 도끼를 피했다. 이번 일격은 피하지 않으면 피를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쩌어엉!
사선으로 올려 친 신마구살도에 연호정이 재차 뒤로 날아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대지를 갈아 대며 튕겨 나간 연호정은 또다시 일어서 육사제장을 노려보았다.
“후욱! 후욱!”
호흡이 거칠다.
두 눈은 충혈되었고, 하얗게 질렸던 얼굴은 이제 시퍼렇게 보일 정도였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무공을 모르는 범부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경험 중인 육사제장.
치이이이익!
연호정의 도끼에 베인 왼손이 붉은 연기를 내며 아물기 시작했다.
“안 되겠군.”
뭉클뭉클.
붉은 연기가 구름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쪼개졌던 왼손은 어느새 완벽하게 복구되었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초회복.’
마공으로 인한 초회복이다.
정공, 신공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역천의 공부, 불사(不死)를 추구하는 마공의 경지가 극치에 다다른 자만이 가능한 신묘막측한 기술이었다.
“아무래도 저 하늘이, 내 목숨을 더 빨리 거두어 갈 생각인 듯하도다.”
고풍스러운 말투 속 은근한 탄식이 묻어 나온다.
채혼술로 육신을 점거하면 생명의 원천, 선천지기는 사라지고 보유한 마력이 생명을 유지시킨다.
육사제장이 최소의 힘으로 연호정을 잡으려는 이유였다. 연호정을 잡고 당가 일을 마무리 지으면 얼추 마력이 고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호정의 이해할 수 없는 무공이 그의 목표를 바꾸었다.
우두둑!
주먹을 쥐는 왼손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상당한 양의 마기를 집약시켜 치료한 손이었다. 그만큼 이승을 거닐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이 몸으로 펼칠 수 있는 모든 무공을 구사할 것이다.
“이만 끝을 내도록 하세.”
파아아아앙!
연호정의 눈이 부릅떠졌다.
육사제장의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연호정의 단련된 눈으로 훤히 그 움직임을 훤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 속도가 빠르지 않다 하여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좌측?!’
쩌어어엉!
연호정의 몸이 좌측으로 밀려 나갔다.
좌측에서 공격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우측에서 들어왔다.
충격량이 이전과는 또 달랐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마기, 내공 운용의 섬세함과 속도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깊고 빨랐다.
콰드드득!
끝까지 발로 버티며 충격을 상쇄한 연호정, 그러나 이미 육사제장의 후속타가 그의 복부로 날아오고 있었다.
쩌저정! 푸화악!
청룡답운보로 물러나며 반격의 때를 노렸지만, 사각에서 날아든 각법에 맞아 동작이 흐트러졌다.
‘빌어먹을.’
갈비뼈 두 대에 금이 갔다. 사신기가 총동원된 육신, 근육의 밀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는데도 충격을 다 상쇄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반격을 노려? 대단한 호승심이야. 그 투지만큼은 본교의 어떤 후배들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구나.”
훅!
육사제장이 또다시 연호정의 전면에서 나타났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눈으로 보이는 움직임인데, 어디로든 피하거나 반격하기가 애매했다.
‘이것이다.’
쩌저저정! 퍼억!
연호정이 또 한 차례 밀려났다.
피는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충격은 고스란히 남았다.
육사제장의 공격이 하나씩 하나씩 연호정의 몸에 적중하고 있었다.
연호정의 눈이 충혈되었다.
‘이것이 바로 무극이다.’
퍼어어엉!
신마구살도가 교차되어 다가오는가 싶더니, 그 속에 공심장의 발경이 섞여 있다.
폭음을 내는 발경술, 연호정이 땅을 구르다가 어느 나무둥치에 퍽! 소리를 내며 박혔다.
육사제장의 눈이 빛났다.
‘끝을 낼 때가 왔군.’
상반신의 탄력으로 흘리거나 땅을 굴러 충격파를 흐트러트리는 등, 거의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공심장과 신마구살도를 막았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공기 중으로 번져 나오는 연호정의 진기는 눈에 띄게 옅어져 있었다.
이화접목(移花接木)의 술수도 힘이 있어야 쓸 수 있는 법.
육사제장은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잘 가라, 놀라운 강자여.’
신마구살도의 살초, 초혼신마참(招魂神魔斬)이 모습을 드러냈다.
번쩍!
엄청난 참격이었다.
검붉게 물든 집채만 한 초승달이 연호정을 향해 파도처럼 쏟아졌다.
속도도, 힘도, 날카로움도 격을 달리하는 무공.
공격을 인지한 순간 이미 일 장 거리 앞까지 다가온 검기공이었다. 회피는 물론 방어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별거 아니야.’
위이이이이잉!!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회전하던 연가신단이 더더욱 속도를 높였다.
세 배, 아니 네 배의 속도로 신단이 회전한다. 회전하며 생성된 막대한 양의 진기가 연호정의 뇌와 신경에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번쩍!
강제로 뇌가 활성화되고, 날이 선 신경은 뇌의 명령을 평소보다 열 배는 더 빠르게 전달한다.
신경이 타 버릴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세상이 느려지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그 속에서 연호정은, 물결치듯 다가오는 참격 너머 형용하기 어려운 흉측한 외모의 적을 당당하게 노려볼 수 있었다.
‘무극이지만, 진짜 무극은 아니야. 잘해야 반쪽짜리일 뿐.’
연호정은 알고 있었다. 상대의 경지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저 육신을 차지한 자의 경지는 능히 무극지경에 도달했지만, 몸뚱이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연호정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호정이 이와 같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호정이 상대의 무공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호정은.
‘나도.’
마침내 깨닫는다.
‘나도 저놈과 같다.’
육신은 도달하지 못한 곳에, 그의 정신은 진즉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아니, 저놈보다 내가 나아.’
저놈은 저 육신을 써 본 적이 없지만, 자신은 이 몸으로 회귀한 후 수년 동안 노력하여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한다. 저 반쪽짜리 초고수를 상대할 수 있음을, 아니 그보다 한 발 더 앞서갈 수 있음을.
과거 자신이 이루었던 경지, 그 꿈의 세계로 진입하여 이 파괴적인 무공에 대응할 수 있음을.
‘비슷한 조건이라면.’
물결치듯 다가오는 참격을 향해 연호정의 손이 나아갔다.
‘내가 저놈에게 밀릴 이유가 전혀 없어!’
번쩍!!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모든 것을 바꾸는 황금빛 벼락, 이 세상에 또 하나의 왕(王)을 점지하는 신의 선택.
연호정의 발이 힘차게 대지를 밟았다.
콰르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