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화. 문제의 중심 (6)
쩌어어어엉!
거대한 쇠 종을 탄력 좋은 망치로 두들긴 것 같다.
소리가 또 하나의 충격파가 되어 진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당관은 답답한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천하의 당관조차도 충격파를 이기지 못해 튕겨 나온 판국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 이름 모를 백면인은 그 강한 충격파에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파아아앙!
질풍처럼 치고 들어와 내리치는 삼첨양인도.
단순한 태산압정의 초식이었지만, 회피와 방어 둘 중 어느 것을 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절묘한 움직임이었다.
당관의 손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쾅!
‘이런.’
당관은 또다시 물러나야 했다.
당가천독수의 극의를 따로 금강천독수(金剛千毒手)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극한의 독기를 담아내기 위해선 손의 내외 강도가 금강석처럼 단단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손으로 쳐 냈음에도 손바닥 전체가 아릴 만큼의 충격이 전해져 온다. 손을 넘어 손목, 팔꿈치 관절까지 삐걱거릴 정도였다.
‘뭐지? 이 강함은?’
파바박!
몇 번의 보행으로 충격을 분산하고 재차 치고 들어간 당관이 백면인의 중단으로 삼양신장(三陽神掌)을 밀어 넣었다.
당가의 절정장공, 독장답지 않게 파괴력이 빼어난 무공이었다.
백면인이 마주 장을 질러 왔다. 자세가 무너졌음에도 병장기술에서 권장술로 전환하는 속도가 몹시 빨랐다.
콰앙!
폭음과 함께 당관은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반면 백면인은 달랐다. 뛰어들어 가한 일격이었음에도, 정작 그것을 받아 낸 그는 두어 걸음 주춤한 것이 전부였다.
‘말도 안 된다.’
당관은 알 수 있었다. 백면인의 무공 경지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걸.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가 승패에 영향을 줄 만큼은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도 파괴력의 차이가 이 정도로 난다. 무공 자체의 위력 차이도 아닌 것 같았다.
‘설마하니.’
파파팡!
당관의 신법 조예는 이런 상황에서도 빛을 발했다.
충격으로 물러났지만, 기가 막힌 발재간으로 충격을 해소하는 동시에 반격의 실마리를 잡는다. 중원 어디서도 보기 힘든 신들린 몸놀림이었다.
훅!
당관의 사공권이 뱀처럼 구불거리며 나아간다.
단숨에 지근거리로 파고들어 옆구리 허점을 노리는데, 일련의 동작이 무척이나 빠르고 날카로웠다.
다급한 순간, 그러나 백면인은 옆구리로 들어오는 일격을 빤히 보면서도 삼첨양인도의 창봉으로 당관의 등판을 노렸다.
‘……!’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공격이었다.
사공권이 들어가면 백면인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하지만 양인도의 공격 역시 막을 수가 없다. 발경의 밀도만 봐도 척추가 쪼개질 것이었다.
독하기로는 누구 못지않은 당관이지만, 그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방식이 아니다. 뼈를 주고 뼈를 취하는 방식이다.
이런 전투가 익숙한 놈들은 애초에 오래 살 수가 없다. 그런데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동귀어진의 공격이 들어왔다.
파아아앙!
주먹을 회수한 당관이 재빨리 외측으로 빠져나갔다.
쿠웅!
갈 길 잃은 창봉 끝이 대지를 찍으며 강렬한 충격을 일으켰다.
“과연.”
부웅!
그 무거운 중병을 손가락 세 개를 움직여 자연스레 어깨에 걸쳐 놓는다.
“감이 좋소이다.”
여유롭기 그지없는 말투, 몸짓.
날카로운 눈으로 백면인을 노려보던 당관은 판단을 내려야 했다.
‘일단 수거한다.’
치리리리링!
그의 소매 안쪽에서 쇠 비늘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비갑처럼 만들어 놓은 암기들을 다시 분해하는 소리였다.
“호오, 아까 그 무시무시한 암기술은 쓰지 않을 생각이오?”
소리만 듣고도 알아차린다. 실력 이전에 안목과 감이 대단했다.
“아쉽구려. 그 살벌한 무공, 다시 없을 기예임이 확실하거늘. 꼭 한 번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말이오.”
당관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으으으.”
“끄르륵.”
시체들은 여전했다.
어두운 하늘, 붉은 대지 역시 똑같았다. 불길한 분위기, 당장이라도 불비가 쏟아지고 땅이 쪼개질 것 같다.
‘뭔질 모르겠군.’
어지간한 진법은 반 각도 안 되어 운용 원리를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이 진법은 도통 그 효용을 모르겠다. 당호와 싸웠을 때는 시체가 자신을 공격하더니, 지금은 또 구부정하게들 서서 자신을 보고만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아.’
그건 확실했다. 이 진법은 완벽하게 펼쳐진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져나갈 길이 막막했다. 생로(生路)와 사로(死路)의 구분이 희미했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곳이 나에게는 불리한 환경이라는 거지.’
백면인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머리에서 쥐 나겠소이다. 생각이 많은 모양이오?”
당관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답했다.
“말 많다고 뭐라 하더니, 네놈 주둥이도 나 못지않은 것 같구나.”
“도무지 흥이 나질 않아서 말이오. 사천 최고의 무인이라는 작자와 화려하게 부딪칠 줄 알았더니만, 간이나 찔끔찔끔 봐 대니 이거 영 재미가 없어서 말이지.”
도발적인 어조였다.
아마도 진심일 것이다. 굳이 상대를 경동하려 들기 위한 말은 아닌 듯했다.
당관은 백면인의 말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이놈, 통제가 안 되는군.’
후우웅!
견봉에 놓은 삼첨양인도를 휘돌려 자세를 낮춘 백면인이 눈을 빛냈다.
“하지만 당신 말도 맞소. 더는 말이 필요치 않겠어.”
스르륵.
낮춘 자세에서 한 발을 앞으로 내미니, 그 순간 기도가 달라졌다.
스으으으으.
그렇지 않아도 불길했던 진법 속 세계에, 갑자기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더 보여 줄 게 없다면, 이만 가시오.”
콰아아앙!
당관의 눈이 부릅떠졌다.
‘빠르다!’
직선으로 치고 들어오는 속도가 깜짝 놀랄 만큼 빨랐다.
체감으로는 이전보다 배는 더 빨라진 듯했다. 당관은 서둘러 독룡보를 밟으며 백면인의 공격을 피해 냈다.
콰앙!
내찌르는 일격에 대지가 박살 나고, 그 뒤에 선 시체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역시!”
파아아앙!
그리 강력한 일격을 먹인 뒤에도 곧장 당관의 뒤를 쫓아온다.
이제야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는가. 움직임의 탄성이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관절은 훨씬 더 유연해졌고, 휘두르는 삼첨양인도는 일순 휘어져 보일 만큼 역동적인 궤적을 그려 냈다.
당관의 두 손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쾅! 콰앙! 콰앙!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작정하고 몰아치기 시작하는 백면인, 한순간에 일어난 변화였다. 천하의 당관조차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강했다.
‘이런.’
극한의 내공을 담은 금강수로 막았지만, 막으면 막을수록 팔에 충격이 쌓인다.
당관이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콰앙!
진각을 밟아 상대의 중심을 무너트리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 의도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당관이 진각을 밟는 동시에 백면인은 허공으로 몸을 띄워 당관의 중단으로 삼첨양인도를 뻗었다.
허를 찔렸다. 장포 속에 가려진 발의 움직임을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당관이 다급하게 몸을 회전시켰다.
찌이이이익!
직선으로 찔러 들어온 삼첨도의 칼날이 그의 의복과 등판을 베었다.
쩌저정!
베임과 동시에 백면인의 목덜미로 비수 세 자루를 날렸다.
하지만 그조차도 무소용이었다. 어떻게 알아챈 건지 삼첨도를 등 뒤로 돌려 비수를 튕겨 내는데, 정확하게 세 자루가 노린 방향으로 움직여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마치 등 뒤에도 눈이 달린 것 같았다. 당관은 물러서며 소매 안의 독낭을 터트렸다.
푸스스스스스.
퍼져 나가는 독의 운무.
마침내 당가 비전의 용독술이 모습을 드러낸다. 폭발하듯 흘러나온 운무는 푸른색 연기를 피워 내며 당관의 모습을 숨김과 동시에 백면인이 선 곳을 모두 잠식했다.
치이이이익!
독기에 닿은 땅이 연기를 피워 올리며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당연히 단순한 맹독 따위가 아니다. 화골산의 특성과 단장산의 침투력을 조합한 당관만의 내공독(內功毒), 군자무(君子霧)였다.
독인의 경지, 거기서도 극한의 영역을 일깨운 당관의 내공은 백여덟 가지의 맹독 성분이 담겨 있다. 일깨우지 않으면 고밀도의 내공력을 발휘하지만, 독력을 조절하는 순간 누구도 버틸 수 없는 맹독의 폭풍이 되어 접근하는 자를 중독시킨다.
독인이 아닌 한, 아니 독인조차도 잠시지간 그 움직임을 봉쇄할 만한 독력.
하지만.
‘……?!’
당관은 본능적으로 상체를 사선 아래로 움직였다.
퍼어어엉! 찌이익!
삼첨양인도와 한 몸이 되어 화포처럼 쏘아진 백면인이 당관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 뒤로 넘어갔다.
‘후속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직선으로 몰아치던 살기가 빠르고 부드럽게 선회하여 등판을 노린다.
이 순간만큼은 당관조차도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제왕독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그가 추뢰신법을 발휘하며 삼양신장의 발경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콰아아아앙!
진법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막강한 충격.
당관의 코와 입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낯빛은 창백했고, 눈은 살짝 충혈되었다.
이전과는 달리 충격파를 완전히 상쇄하지 못했다. 꽤 심각한 내상에 속이 다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와중에 그걸 피했소? 역시…….”
부우우웅!
화려한 움직임으로 다시 삼첨양인도를 어깨에 올린 백면인이 고개를 저었다.
“진법 없이 정면으로 붙었으면, 정말 누가 이겼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겠소. 대단해.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좌장 중 지금의 나와 비빌 만한 고수는 소림과 무당의 주인장들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쿨럭!”
“보고해야 할 게 늘었군. 역시 직접 나서길 잘했소이다. 하긴…….”
백면인이 다시 자세를 낮추었다.
“제정신 아닌 상부에서 내 보고를 중요하게 생각해 줄지나 모르겠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당연히 당관은 그의 말에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역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실체가 되어 당관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이놈, 단순히 강한 게 전부가 아니야. 내가 어떤 공격을 할 건지, 어디로 피하고 어떻게 막을 건지를 전부 알고 있어.’
그렇다.
실력만 보면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당관이 몇 합 만에 손해를 본 이유는 상대가 자신의 공방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래도 상대의 대단함을 폄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했더라도, 그 순간에 효율적인 반격술을 구사하고 공방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즉, 백면인은 백전(百戰)의 고수였다. 무수히 많은 사선을 넘지 않고서야 이런 능력을 보여 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놈이 내 움직임을 전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때였다.
“망할 시체들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콰콰콰쾅!
여유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진법 바깥쪽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백면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진법 안에 속한 자는 주인이든 출입자든 외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철저하게 분리된 세상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부나방께서 이 지옥에 손수 발을 뻗으시는지.”
훅!
마치 세상이 반으로 쪼개진 것처럼.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대지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진 환한 빛 속에서, 두 자루 도끼를 든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너?”
“자신 있게 잡으러 가더니만 이게 뭡니까? 괴상한 바가지 뒤집어쓴 놈 하나 어쩌지 못하는 꼴이라니, 실망이 큽니다.”
“싸가지!”
연호정이 서늘한 눈으로 백면인을 노려보았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