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4화. 격돌 (4)
암총귀문(暗塚鬼門).
이는 곧 당가의 그림자이자 대외에 알려져선 안 될 부덕의 상징이다.
과거 당씨 문중은 독과 암기의 효과 증대를 위해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만한 짓을 많이 했다.
대표적인 예라면 역시 인체 실험을 들 수 있겠다. 어떤 독이 사람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중독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체질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또 연구했더랬다.
수백 년 전의 당가는 그렇게나 강함에 집착했다. 가문을 꽃피우기 위해,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는 십팔 대 가주의 선에서 끝장이 났다.
힘도 중요했지만, 그런 부도덕한 짓으로 명성을 쌓아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 것을 떠나, 애초에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러한 실험을 종결시켰다.
하지만 가주라고 해서 그만한 일을 단독으로 중단시키긴 어려웠다. 선대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타협점을 본 것이 죄를 지은 이들에게 형량과 실험,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중 절반 이상은 실험대에 오르길 자처했다. 어차피 당문의 뇌옥에서 썩어 봤자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고, 실험대에 오른 자의 가족에게는 부족함 없는 삶이 보장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중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는 그러한 선택권도 없었다. 무조건 실험체로 활용했으니까.
당가의 가법이 더더욱 엄격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더 엄격하고, 더 날카롭고, 더 중한 법도가 세워져야 사소한 잘못도 벌할 수 있다. 죄인들을 쉽게 실험대로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암총귀문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실험대에 오르고도 생존한 자들, 거기에 지닌 능력이나 재능이 뛰어난 이들을 모은 곳이 바로 암총귀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 역시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당형의 선대는 가법을 느슨하게 바꾸었고, 정말 죽어 마땅한 자가 아니면 실험 소굴로 집어넣지 않았다.
지금의 암총귀문은 죽을죄를 지은 실험체 중 살아남은 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생존자들은 일정한 실험을 성공리에 버틴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삶을 보장받았다. 당가는 그렇게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당형의 선대는 그들의 심리까지는 알지 못했다.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에서, 미래를 잃은 채 가축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지독한 살의와 분노로 하루하루를 버텨 가는지.
그들은 귀문을 벗어나려 하였고, 그러기 위해 온갖 독술과 암기술은 물론, 진법에 기관진식까지 창안하였다.
창안하는 것까지는 자유였지만, 그러한 결과물이 당가 수뇌부에 보고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 기술의 총화는 또다시 당가로 귀속되었다.
쌓이는 악업, 악의 진흙탕 속에서 꽃핀 기술들, 그 기술들을 뽑아내며 조금씩 나은 삶을 보장해 주는 공포의 가문.
귀문은 당가의 그림자였다.
“설마, 귀문까지 깨운 것이냐?!”
그림자 속 귀신들이 대지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당형은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민해지는 그의 감각은, 귀문의 기괴한 진법에서 풍겨 나오는 사기(死氣)가 가주전 쪽에서 아른거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까드드득!
당형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호아야.’
당형은 떠올렸다. 귀문주와의 대화를.
젊을 적, 세상 무서운 것이 없었던 자신과 귀문의 주인이 되어 버린 삼촌과의 대화를.
‘과거는 잊을 것이오. 당신들 모두가 뇌옥에 수감될 생각이 있다면, 내 대(代)에서 귀문을 봉할 것이오.’
‘클클클, 요만했던 핏덩이가 가주가 되더니 제법 그럴듯한 말도 할 줄 알게 되었구나.’
‘당신들 모두가 중범죄자들이오. 그러나 더는 이 가문에 그림자가 없었으면 하오. 그렇다고 내 멋대로 당신들을 자유로이 놓아줄 수는 없으니, 평생 뇌옥에 갇혀 반성하며 산다면…….’
‘되지도 않는 거래를 하러 왔구나. 우리는 충분히 자유롭다. 증오도, 분노도 마음껏 쏟아 낼 수 있는 이곳에서 왜 뇌옥으로 가겠느냐?’
‘…….’
‘혹시 모르지. 완전한 자유를 보장한다면, 너희에게 숨겨 놓은 기술을 건네주겠다.’
‘죽고 싶소?’
‘미친놈! 설마하니 너는 이곳에 죽음이 두려운 놈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
‘이곳에 있는 모두가 이미 몇 번의 죽음을 겪고 나온 사자(死者)들이니라. 죽이겠다는 협박 따위는 통하지 않아.’
‘…….’
‘뭐, 되었다. 두렵지는 않아도 아직 할 일은 많거든. 다만 이것 하나는 기억해라. 내가 아니면 다음이, 다음이 아니면 그다음이 당가를 뒤집어엎을지도 모른다.’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자신하지 말거라, 어린놈아. 해는 져도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둠이 최고조에 이르러 달빛마저 사라지는 순간, 당가는 귀문에 먹힐 것이다.’
‘…….’
‘썩 꺼지거라. 네 애비 아들이 아니랄까 봐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나오려 하는구나.’
‘당신들의 영혼은 죽어서도 이곳을 맴돌다 사라질 것이오.’
‘바라 마지않는 일이다. 원통해서 저승에 갈 수나 있겠느냐?’
‘우리가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오.’
‘크하하하!’
세세한 대화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웃음소리는, 그의 삼촌이자 반역을 저질렀던 당시 귀문주의 웃음소리는 아직도 생생히 귓가를 울리고 있었다.
‘안 돼.’
당형은 다리가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귀문이 열려선 안 된다.’
귀문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소에는 멀쩡했던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귀문에 들어가면 기다렸다는 듯 신묘한 기술들을 만들어 냈다. 실제로 당대 독술과 암기술 중엔 귀문의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은 그들이 만든 진법과 기관진식이었다.
그들이 만든 진법은 실체와 허상을 구분치 못하게 만드는 최악의 물건들이었다. 당시 무극지경을 코앞에 두었던 당형조차도 빠져나올 자신이 없다며 혀를 내두를 만한 진법이 다섯 개가 넘었더랬다.
당형의 얼굴에 지독한 고뇌가 새겨졌다.
‘귀문.’
당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머뭇거리는 얼굴로 자신의 생일을 챙기러 온 둘째 아들이.
서글퍼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다행이라는 감정을 느끼던, 애비를 완벽히 속인 줄 알고 안도하던 아들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이 가문을…….’
당관과 고성을 주고받던 때도 떠올랐다.
달빛 아래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를 질러 댔던 그 날이.
과거와 현재를 만들었던 군주의 눈에 비친 미숙한 왕자, 현재의 부족함을 알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열혈의 군주 눈에 비친 고지식한 선왕.
서로를 지독하게 닮은, 그래서 손을 쓸 수도 없었던 어설프기 그지없는 부자지간.
‘…….’
당형은 눈을 감았다.
‘내 잘못이다.’
아들이 가업을 제대로 잇지 못해 이 사달이 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부모인 자신이, 전대 가주인 자신이 새 가주를 위해 힘을 실어 주었어야 했다. 그의 치세를 믿고, 그의 재능을 믿어 주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부자지간이 지금처럼 파탄이 나지도 않았을 것을.
그랬다면 새 가주이자 자신의 아들을 더 많은 사람이 믿고 따라 주었을 것을.
‘모두가 내 잘못이다.’
한 번의 싸움으로 모든 것이 뒤틀려 버렸다.
그 한 번의 싸움이 수없이 중첩되어 당가의 부덕한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 귀신 들린 역사는, 이제 와 자신이 아닌 자신의 자식들에게 한(恨) 묻은 혈채를 받아 내려 하고 있었다.
문득 당형은 무림맹 유군 부대의 수장이라는 당돌한 청년의 말을 떠올렸다.
‘문풍과 가법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를 변명 삼아 현실을 외면하지 말란 말입니다!’
번쩍!
또다시, 비로소, 다시금.
그리고 이제야.
당형의 눈이 뜨였다.
스르르르륵.
마치 쌓고 쌓은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오랜 시간 지내 왔던 모옥이 지붕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부스러지고 있었다.
화아아아악!
불어오는 열풍에 산산조각이 난 돌멩이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우우우우웅!
오랜 시간 봉인해 두었던 단전에서, 태산처럼 거대한 석상이 되어 버린 악마가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쿠구구구궁!
산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스스로 완성했던 제왕의 독경. 천하에 산재한 독공과 천하제일을 논하는 무리를 합쳐 일구어 낸 제왕독공(帝王毒功)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콰드드득! 콰드드드드득!
당형이 딛고 선 발밑.
단단한 대지에 실금이 번지기 시작했다.
피이이이잉! 피이이이이이잉!
이 커다란 영역을 지키고 있던 금줄이 묵직하게 밀려 나오는 제왕의 기파를 이기지 못하고 마구 끊어졌다.
우우웅!! 우우우우웅!!
하단전에서 올라온 진기가 중단전을 거쳐 상단전까지 수직으로 돌파한다.
번쩍!
당형의 동공이 금빛 안광을 터트렸다.
제왕독공을 대성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금천신안(禁天神眼)의 현현이었다.
화르르르륵!
스스로에게 건 모든 금제(禁制)를 벗어던진 당형.
촌로와도 같았던 그의 몸에서 일순 천하를 위진할 듯한 압도적인 위엄이 뿜어져 나왔다.
불타오르는 황금빛 진기. 옅은 연녹빛 연기를 피워 내는 금빛 진기는 제왕의 결심을 축하하는 환호성과도 같았다.
쿵!
디딘 발을 들었다 다시 바닥에 놓으니, 대지가 놀라 숨을 멈추었다.
제왕독공의 완전한 개방, 암왕 당형의 재출도다.
당형이 손을 휘둘렀다.
콰콰콰쾅!
땅 밑에 화탄이라도 심어 둔 것인지.
무시무시한 폭발과 함께 입구가 활짝 열린 동굴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빠져나갈 길만 만들어 놓았던 연호정의 무공과는 위력도, 전개도, 힘의 흐름도 완전히 달랐다.
스르르륵.
무너져 버린 동굴의 잔해를 밟고 걸어가는 당형의 등 뒤로 한 벌의 검은색 장포가 날아들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그 장포는 바로 당관의 즉위식 때 선물하려 했던, 당형이 저잣거리 포목점에서 직접 고른 장포였다.
아들의 몸에 걸쳐졌어야 할 장포를, 오랜 시간 건네주지 못한 아비가 걸치고 나아가는 한 걸음이다.
스르륵.
몇 걸음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당형은 거처를 통과해 내원으로 진입했다.
이치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전설상의 축지성촌(縮地成寸)의 경지를 숨 쉬듯 자연스레 보여 주는 그였다.
“…….”
당형이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수많은 무사들이 입을 쩍 벌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형의 눈이 깊어졌다.
“흑풍, 그리고 녹의로구나.”
흑풍대주가 떠듬떠듬 말했다.
“다, 당신은……?!”
“당신?”
퍼어어엉!
흑풍대주의 몸이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무슨 수로,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당형은 그저 노려보았을 뿐이고, 그걸로 흑풍대주는 폭사해 버렸다.
신의 경지에 이른 무공이었다. 극에 이른 용독술과 한계를 초월한 기공술의 조합은 말 그대로 신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당형이 담담하게 말했다.
“가주의 명을 받들어야 할 놈들이,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고 설쳐 댔더냐?”
부르르르.
흑풍대와 녹의대 전원이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스스로에게 건 금제를 벗어던진 지금의 당형은, 이전에 연호정이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당형이 몸을 돌렸다.
“따라오라. 이 암왕이 누구에게 가주위를 건네었는지, 너희의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