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585화 (584/963)

585화. 반역의 향기 (7)

당관의 존재는 드넓은 당가타 전체의 시선을 확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연호정과 일행들은 당관이 말한 샛길을 통해 반대편으로 쉬이 진입할 수 있었다.

등장만으로도 거대한 마을 하나의 시선을 온통 사로잡는 사람. 어느 정도 틈을 만들어 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저것이.’

당가타 안 어느 어두운 골목의 그림자 속.

연호정의 눈이 저 멀리 우뚝 솟은 수많은 전각을 향했다.

‘당가로군.’

츠츠츠.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졌다.

저 많은 전각이, 마치 뱀과 전갈들이 우글거리는 마경(魔境)처럼 보인다.

‘과거와는 보이는 풍경이 달라.’

흑암제 시절에도 몇 번이나 사천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의 사천은 꽤나 음침한 곳이었다. 삼교의 침공으로 거리는 온통 불타 버렸고, 사람은 신음 외의 표현 수단이 없었다.

한차례 지옥 불이 휩쓸고 지나간 광경. 당가타 역시 지금과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불길함이 느껴져.’

눈으로 보이는 곳은 전부 평온하다. 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그 누구보다도 피 냄새에 민감한 연호정. 그가 보는 사천은, 그리고 당가는 일촉즉발의 살벌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모용군이 입을 열었다.

“당가주가 시선을 잘 묶어 둔 것 같군.”

“그런 것 같소.”

“자네 기망(氣網)에는 걸리는 것이 없는가?”

“없소. 아직까지는.”

“그럼 진행해도 되겠군.”

“그렇긴 한데.”

“왜? 뭔가 찜찜한 거라도 있나?”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생각이 깊어지는 그다. 모용군과 황석태, 패율과 강량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연호정의 입은 열릴 줄을 몰랐다.

모용군이 슬쩍 황석태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괜찮겠나?”

“……?”

“기도를 보아하니 시가전(市街戰)보다 섬멸전에 능할 듯한데.”

기도에는 그 사람의 전투 방식은 물론 삶의 태도까지 묻어 나온다.

하지만 그것을 읽기는 쉽지 않았다. 고수일수록 더더욱.

모용군의 경지가 황석태를 완전히 압도한다는 증거였다.

황석태가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죽을 것 같으면 빠질 것이오.”

“어허?”

모용군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모두 목숨을 걸었는데, 자네는 그러지 않겠단 말인가?”

“함께하라는 명령은 받았지만, 엄한 곳에서 목숨을 버리라는 명령은 받지 못했소.”

“자네는 부담이 없어서 좋겠구먼.”

황석태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당가를 바라볼 뿐.

모용군이 강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강량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지극히 냉정했다.

활화산과 같은 분노도 엿보였지만, 그 열기를 모조리 가둘 만큼의 냉정함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얻을 수 없는 냉철한 검사의 눈빛이었다.

‘나쁘지 않군.’

패율의 능력이야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연호정과 함께 작전을 나갔던 사람이니까.

다만 이 둘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실제로 그들이 임무를 수행한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용군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느 하나 만만치가 않다…… 좋군.”

그때였다.

“그래야겠군.”

“음?”

연호정이 눈을 빛냈다.

“어쩔 수 없지. 두 번째 이목은 내가 끌겠소.”

모용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가 당가의 이목을 끌겠다고?”

연호정이 품에서 몇 개의 주머니를 꺼냈다.

아기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주머니는 총 세 개였다. 각기 적색, 청색, 흑색의 주머니로, 그 내용물은 모두 당관이 직접 제조한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적임인 것 같소. 철기단주나 패율 선배, 강량의 실력은 충분히 믿음직하지만, 독에 대한 내성을 생각하면 이번 일을 맡기기에 불안한 감이 있소.”

냉정한 평가였지만, 작전 중이기에 그 누구도 연호정의 말에 자존심 상해 하지 않았다.

설령 작전 중이 아니더라도 상대는 당가였다. 초절정 고수는 물론, 비전 극독이라면 성천의 고수도 중독시킬 수 있는 것이 당가였다. 누구라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대인 것이다.

모용군이 말했다.

“세상 모든 일이 미리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지. 하지만 초반부터 너무 틀어 버리는 것 아닌가? 두 번째 이목을 빼앗는 자는 패율 장로로 정하지 않았나.”

패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창의 신법은 그 실전성만큼이나 대단하다. 장거리 신법이나 찰나의 이동 속도에 있어서는 그보다 대단한 무공을 보유한 문파가 많지만, 변칙적인 움직임과 치고 빠지는 보행에 있어서만큼은 점창을 따라올 문파가 몇 없을 것이다.

실제로 패율의 진가는 그 무시무시한 실전 보법에 기인했다. 무서운 관통력을 지닌 창술도, 무궁무진한 살법을 풀어 내는 검법도 전부 보법에서 나오는 것이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패율 선배의 실력은 내가 잘 아오. 어지간해서는 당할 분이 아니지.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일이 틀어지면…….”

“연 대수.”

“……?”

“좀 냉정해지지?”

연호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충분히 냉정하오만.”

“아니, 자네는 전혀 냉정하지 않아.”

모용군의 말은 단정적이었다.

연호정이 재차 입을 열려 할 때, 모용군이 말을 이었다.

“자네가 정말로 냉정했다면, 이번 작전의 군사 역할을 겸한 스스로가 벌써부터 선봉에 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게야.”

“……!”

“자네 능력의 출중함을 모르지 않네. 자네가 나선다면야 그만큼 믿음직할 수가 없겠지.”

모용군이 서슬 퍼런 안광을 빛냈다.

“하지만 자네는 이번 작전의 중심이야. 사천 내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당가주를 제외하고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네라는 것이지.”

“물론 그렇지만.”

“하물며 용두방주조차 ‘우리’가 아닌 ‘자네’와의 연계로 선을 그었네. 말하자면, 자네에게 문제가 생기는 즉시 이번 작전이 반쯤 실패해 버린다는 뜻이야.”

연호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모용군이 입맛을 다셨다.

“정적(政敵)으로서 자네가 사라져 준다면야 나도 속이 다 시원하겠네만, 자네는 이따위 작전에서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일세. 우리가 왜 손을 잡았는지, 자네가 왜 나를 불렀는지 벌써 잊었나?”

“…….”

“냉정해지게. 자네가 말했지? 우리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그 말마따나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자신의 목숨을 걸었네. 하물며…….”

모용군이 피식 웃으며 황석태를 바라보았다.

“이 창술사도 말이지.”

황석태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죽음의 위기가 닥치면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그게 그의 본심은 아니었다.

“능력이 되어도, 훤히 보여도, 안타까워도 다 감수해야 하네. 그것이 지금 자네의 역할이야.”

모용군의 흔치 않은 조언이었다.

그리고 그 조언은, 연호정의 마음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그렇다. 모용군의 말이 옳다.

연호정은 언제나 선두에 서서 적을 해치웠다. 전투가 일어나는 곳에선 언제나 벽산호장이라는 초고수가 적의 기세를 꺾었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앞으로의 전투가 빤히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상대는 당가였다. 하물며 당가의 영역으로 침투하는 일이었다.

연호정이 앞장서서는 안 된다. 그는 이번 작전의 모든 것을 머리에 담은 자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도 남에게 맡겨야 했고, 작전원이 죽어도 냉정을 유지하며 이번 일을 성공시켜야 했다.

그것이 바로 수장이 짊어져야 하는 숙명의 짐이었다. 천하 모든 패자(霸者)가 이고 가야 하는 혈향 가득한 신뢰였다.

가만히 모용군을 바라보던 연호정이 나직이 숨을 내쉬었다.

“좋소. 그리하겠소.”

모용군이 빙긋 웃었다.

“이래서 자네가 무섭다네. 거슬리는 소리를 들어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알지.”

연호정이 패율을 바라보았다.

“선배. 부탁하겠소.”

패율이 콧방귀를 뀌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아직 제대로 즐길 만한 싸움을 해 보지 못했어. 그리고 너는 내게 약속했다.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고 재미있는 전장에 데리고 가 줄 거라고.”

“싸움이 그렇게 좋습니까?”

“사람마다 취향은 제각각인 법이다.”

연호정이 청색 주머니를 패율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오냐.”

“이번 작전은 위험하기만 하고 재미는 없을 겁니다. 멋대로 날뛰다가 약속 못 지킨 사기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말하는 싸가지를 보니 안심해도 되겠군.”

“이번 작전의 좌장으로 말합니다.”

연호정은 죽지 말아라, 당하지 말아라 따위의 멋없는 대사는 날리지 않았다.

“제대로 주의를 끌어 주십시오.”

패율이 씨익 웃었다.

“나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하는 남자지.”

그가 청색 주머니를 열고 내용물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훅!

순간 패율의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큭!”

억누르려 했지만, 결국 짓눌린 신음이 흘러나온다. 천하의 패율조차도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후우우.”

나직한 한숨과 함께 패율의 피부가 제빛을 되찾았다. 핏줄이 불거졌던 목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로써, 당가의 오대극독을 제외한 거의 대다수의 맹독에 반 시진 동안의 면역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반 시진 후.

패율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당관조차도.

스르릉.

단창과 기검을 꺼내 든 패율이 앞으로 나섰다.

“준비하고 있어. 제대로 날뛰어 줄 테니.”

파아아아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패율이 당가를 향해 질주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콰아아앙! 콰드드드득!

매서운 폭음과 함께 담벼락 무너지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 * *

중앙에 선 오십 대 초로인, 당묵이 허리를 접었다.

“삼장로 당묵이 가주님을 뵙습니다.”

좌우에 선 초로인들 역시 똑같이 허리를 접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던 당관이 턱으로 자신의 앞을 가리켰다.

“앉게.”

“……예.”

세 사람이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자리에 앉았다.

당묵이 입을 열려는 순간, 당관이 천장의 금줄을 잡아당겼다.

“예까지 왔는데, 술이라도 한 잔씩 받아야지.”

“송구하옵니다.”

잠시 후,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가주님.”

“빈 잔을 세 개 가져오게.”

“예에.”

“아, 나와 같은 잔 말고.”

“……네?”

순간 당관의 눈이 차가워졌다.

“네년의 두 눈을 파내어 두 잔을 만들고, 아래턱을 뽑아 마지막 하나의 잔을 만들면 되겠구나.”

“……?!”

여인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너무 느닷없는 폭언이라 일순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한 것이다.

그때, 당관이 손을 휘둘렀다.

쿵!

한순간 눈이 풀린 여인이 탁자 위로 쓰러졌다.

“……!!”

당묵과 두 장로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탁자 위에 쓰러진 여인은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하얗게 분을 칠한 얼굴을 제외한 손과 목덜미의 피부는 점점 퍼렇게 변해 갔다.

죽었다.

당관이 여인을 순식간에 독살시켜 버린 것이다.

“가, 가주님? 이게 대체 무슨……!”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란 것은 장로들이었다.

당관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녹수주루의 지분 대다수를 호아가 가지고 있었더랬지? 비밀리 진행한 것이라 내 모를 줄 알았던가.”

“……?”

“고작 팔 성(八成)에 달한 갈행전음(蠍行轉音) 따위를, 내가 듣지 못할 줄 알았느냐?”

“……!!”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더군. 들어오자마자 저희들끼리 하도 전음을 날려 대서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당관이 시원하게 잔을 비우고 말했다.

“너희를 홀린 것이 호아였느냐? 아니면 호아도 반역자의 졸개가 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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