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582화 (581/963)

582화. 반역의 향기 (4)

“아버지.”

다급하게 들어오는 아들을 본 당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여선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큰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이 사천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일순간 심박수가 치솟는다.

당호는 애써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어차피 당관이 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디쯤 왔다더냐?”

“사천 서부 대충현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흑안(黑眼)의 보고였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정보 수집 기간이 짧았을 것이다. 성도 인근으로 진입하려면 며칠의 시간이 걸릴 것이야.”

그 정도면 충분하다.

당관은 가주위에 오르고 나서도 무공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버지를 넘어서고자 밤잠을 줄여 가며 수련과 업무를 병행했다.

당문의 오대극독까지 섭취하며 독공을 불렸을 정도니, 가히 목숨을 건 수련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당관은 현역 중 최고였고, 설령 전대의 노고수들이라 한들 극소수를 제외하곤 감히 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다.

무공의 경지가 아닌 독과 암기를 다루는 실력 자체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요 며칠 새에 그는 장로원까지 완전히 사로잡았다.

물론 격렬히 반대하거나 당관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을 바치는 이들도 많았다. 그중 태반은 현재 가문의 뇌옥에 갇혀 있었다.

당장의 전력은 줄어들었지만, 이제 가문의 전력 대다수가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당관이 아니라 무림맹의 정예 부대가 쳐들어와도 손쉽게 막아 낼 수 있으리라.

‘게다가.’

당호의 눈빛이 음험해졌다.

‘그 비전(祕傳)의 일부분만 가져와도 당관은 죽은 목숨이다.’

가문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당관이 그런 수를 숨기고 있을 줄은.

어쩌면 대대로 가주들만 알고 있는 비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당호는 그 비밀을 알았다.

정식으로 가주위를 받지 않았을 뿐, 실질적인 가주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비선은?”

“현재 연호정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쫓아갔다고 합니다.”

“추정되는 인물이라니? 홀로 움직이는 중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홀로 움직이고 있다…….”

당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자는 짓이지?’

놈이 낙원소에 대해 모를 거라는 희망은 진즉에 버렸다.

나아가, 연호정은 아주 똑똑한 놈이었다. 놈이 낙원소를 건드린 순간 이쪽에서도 놈의 정체를 알아냈으리란 걸 모를 리가 없었다.

‘뭔가를 꾸미고 있다.’

당호가 말했다.

“연호정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파악하라. 그리고 놈과 함께 사천으로 진입했던 병력은 어디에 있다더냐?”

“사천 서부 끝에 있습니다. 아마…….”

“당관과 합류할 모양이군.”

당호가 피식 웃었다.

“나쁘지 않지. 여기저기 흩어진 고양이들을 일일이 잡아 죽이는 것보다야, 한 번에 묻어 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당여선이 미소를 지었다. 제 아비와 똑 닮은 그 미소는 몹시 음험해 보였다.

“그렇지요.”

당호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나와 손을 잡은 장로들에게도 기회를 줘야겠지. 그 인간들은 선을 넘었어. 사람이 한번 선을 넘으면, 그때부턴 철저하게 이득을 따지기 시작하지.”

판만 제대로 깔아 주면 충성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당가인들의 기질 자체가 그러하지만, 특히나 장로원의 장로들은 하나같이 자존심이 강한 자들이었다. 그들 역시 당관의 능력을 인정하여 그를 가주로 대할 뿐, 인격적으로 그를 좋아하는 이는 드물었다.

기회만 되면 언제든 등을 돌릴 만한 자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원칙을 깨부수려 하지 않는 자들.

그런 자들이 자존심을 꺾고 원칙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의 사람이 되었다.

당관이 실권을 잡은 뒤 힘이 축소되었던 장로원은, 억눌러 왔던 그 강력한 욕망을 활화산처럼 폭발시킬 것이다.

“궁금하구나. 당관의 얼굴이. 자신이 다스렸던 장로들에게 가주임을 부정당하고 공격받는 심정이 어떨까?”

* * *

번쩍!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던 당관이 눈을 떴다.

동시에 모용군도, 언자방도 눈을 떴다.

“왔군.”

하나둘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니, 어느새 그들 뒤로 연호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들 쉬고 계셨습니까.”

모용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용두방주께서는 뭐라 하시던가?”

연호정은 용두방주와 나누었던 대담을 풀어놓았다.

“…….”

일행의 얼굴이 침통해졌다.

“개방까지…….”

사천에 한해서일 뿐이지만, 결국 그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용두방주의 실책이라 할 만하다.

당관이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결국 예상했던 바와 같이, 본가를 위시한 청성과 아미는 새외 무림과 끈이 닿아 있었던 것이로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되었든, 지금은 본가에서 자라난 악의 씨를 뽑아내는 게 우선이야.”

“맞는 말씀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불타오르는 감정을 삭였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삼교를 증오하지 않는 자는 없다.

다만, 아무래도 마음이 가장 복잡할 사람은 당관이리라.

“그리 보지 마라.”

“예?”

당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당씨 문중의 주인이다. 가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오명은 들었을지언정, 미쳐 날뛰는 가인(家人)들을 바로잡지 못했다는 소리까진 듣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그를 보던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예, 그러셔야지요.”

모용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화는 그쯤 합시다.”

분위기 깨는 소리였지만, 삼교와 연관되었음을 확신한 순간부터 그의 기분 역시 최악이었다.

“이제부터 위험천만한 당가를 상대해야 하네. 시간은 금이야. 작전이든 뭐든 서둘러 짜야 할 걸세.”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관이 저 멀리 당가타를 바라보았다.

“저곳은 언뜻 여느 도시처럼 보이지만, 저 영역 전체에 당가의 눈이 드리워져 있다. 저곳에 사는 이 중 칠 할 이상이 당씨다.”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놀랍군요.”

“즉, 우리는 본가의 외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저곳부터 아무 피해 없이 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겠지요.”

“샛길은 알고 있다. 믿을 만한 사람도 알고 있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외원 앞까지 당도할 수는 있다.”

모용군이 끼어들었다.

“문제는 외원부터겠지.”

“그렇소.”

“이미 당가 측에서는 당신과 우리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오. 지금쯤 이 주변에서 호시탐탐 가문을 노리고 있음을 알 테니, 그에 대한 준비도 마쳤을 것이오.”

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연호정이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음?”

“용두방주가 손을 써 두었다더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용두방주는 우리가 사천에 진입하기 훨씬 전부터 사천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장로들의 변심을 알게 되었고, 낙원소의 정체까지도 파악했습니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천하의 용두방주라도 섣불리 움직일 순 없었을 것이다.

개방의 장로들이 연관되었음은 알지만, 그 밑으로 얼마나 많은 방도들이 그들과 연관되었는지는 알기 힘들었을 테니까.

그렇게 낙원소와 연관되지 않은 이들을 알음알음 하나씩 추려서 명을 내린 그는, 일행이 사천에 들어온 이후 낙원소의 정보망을 뒤흔들었다.

“지금쯤 저는 따로 움직이고 있다고 여길 것이고, 당가주님은 아직 사천 외곽에 있다고 확신할 겁니다. 제 일행과 만나서 본격적으로 치고 들어올 거라고 예상 중이겠지요.”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뜻밖의 도움이었다.

모용군이 물었다.

“용두방주를 믿을 수 있겠나?”

연호정이 쓴웃음을 지었다.

“한없이 무(無)에 가까운 가능성이라도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소. 다만, 내가 본 용두방주는 그런 머저리들과 손을 잡을 만큼 미친 사람은 아닌 것 같았소.”

“자네 안목이라면 믿을 만하지만…….”

모용군은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 그는 연호정의 능력을 신뢰했다. 특히나 그의 안목만큼은 능히 천하제일을 논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순히 안목만 믿고 일을 진행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위험했다. 아닌 말로, 가문끼리의 세력전을 상정해도 상대가 당가라면 조심, 또 조심해야 옳았다.

연호정이 당관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당가주님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당관의 용서라니? 이게 무슨 뜻인가?

“개방은 중원에서 정보력으로 제일을 달리는 문파입니다. 그래서 대대로 용두방주의 자리는, 협의가 증명되지 않은 자는 앉을 수 없었지요. 개방의 일부는 타락했을지 몰라도, 용두방주가 사마외도(邪魔外道)에 물든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용두방주가 되려면 그 누구보다 강단이 있어야 합니다. 중원 모두에게 증오를 받아도 꿋꿋이 살아 나가야 하지요.”

“말이 길구나. 본론을 말하라.”

“중원 최고의 정보 집단이기 때문에 개방이 흔들리면 강호 무림의 정보망이 마비됩니다. 그래서 용두방주는 주요 문파 몇몇에 사람을 심어 두었습니다.”

“……?!”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중원 정보망의 숨통이 트일 수 있도록, 지역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조직에 무기한 활동 정지를 명 받은 정보원들을 심어 둔 것입니다.”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용군은 물론 일행 전체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보망의 마비를 지역별로 일거에 해제할 수 있는 능력자. 중원에 전쟁이 나도 활동하지 않지만, 개방이 위기에 빠졌을 때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암인(暗人).”

“……!”

“그 암인이 당가에도 있었습니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가……!”

당관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솟구쳤다.

그의 반응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의 가문에 같은 백도를 걷는 개방의 세작이 숨어 있다는데, 뉘라서 화를 내지 않겠는가.

“용두방주가 저를 부른 이유가 그것이었습니다. 현재 사천에서 개방은 제힘을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현재 우리의 위치를 교란시킨 것만으로도 용두방주는 상당한 무리를 하는 중이지요.”

“…….”

연호정이 품에서 작은 금낭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안에 가루가 있습니다. 이걸 불에 태우면 훈련받은 개들이 냄새를 맡습니다. 그렇게 연달아서 신호가 넘어가면, 이윽고 암인이 활동을 재개합니다.”

“그래서.”

당관의 얼굴은 그야말로 흉신악살을 보는 듯했다. 혈육들이 이 난장을 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통이 터질 지경이거늘, 개방의 세작까지 숨어 있었단다.

정신이 다 아득해지는 현실이었다. 당가의 가주라는 사람에게 있어, 이처럼 충격적인 상황은 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관은 끝끝내 이성을 유지했다. 극단적인 분노와 살의로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았지만, 그 와중에도 끝까지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가루를 태우면 암인이 활동을 재개한다고?”

“그렇습니다.”

“암인이 우리를 도울지, 아니면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본가의 배신자들에게 우리의 위치를 알릴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예,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대신.”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용두방주를 중독시켰습니다.”

“……뭐?”

“가주님께서 주신 독으로 용두방주를 중독시켜습니다. 소량만 썼지요.”

“……!!”

“심후한 내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길어야 두 달입니다. 두 달 안에 찾아가 해독해 주지 않으면 용두방주의 목숨이 날아갈 겁니다.”

일행은 질린 눈으로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서로에게 그런 초강수를 두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시겠습니까? 우리의 이번 싸움의 농도는 그 정도로 짙습니다. 무림의 고위 인사들도 목을 걸고 진행하는 싸움이란 말입니다.”

연호정이 쓰게 웃었다.

“이제는 우리도 목숨을 걸어야지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반나절 후.

치이익!

가루를 태운 연기가 훅! 하고 흩어져 사라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