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8화. 누구를 위한 낙원인가 (3)
“…….”
서늘하고 무뚝뚝하기만 했던 당관의 얼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도무지 무표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학…… 학…….”
침대 위에는 팔다리가 묶인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몸은 피투성이였다. 복부가 절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의 눈은 흐릿했다. 약에 중독이 된 것 같았다. 당장 죽지 않도록 적정량의 약물이 투입된 듯했다.
당관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헉!”
방구석에는 피 묻은 단검을 쥔 땅딸막한 사내가 주저앉아 있었다.
입고 있는 하얀 옷이 온통 피에 젖었다. 공포로 얼룩진 얼굴에는 곰보 자국이 가득했다.
사내가 쥔 단검과 소년의 몸을 번갈아 바라보던 당관이 입을 열었다.
“궁금했더냐?”
“……?!”
“이 아이의 뱃속이 그리도 궁금했더냐?”
사내는 왜 소년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저 곰보 사내는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쾌락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짓으로도 자극을 느낄 수 없으니,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것은 그의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당관이 손을 뻗었다.
휘이잉! 콱!
“컥!”
당관의 손에 곰보 사내의 목이 잡혔다.
“기름기가 가득하구나. 그것만 빼면, 네놈 뱃속이나 저 아이의 뱃속이나 다를 건 없을 것이다.”
우두둑!
당관이 사내의 손에서 단검을 빼앗았다. 사내의 손이 그대로 뭉개졌다.
푹!
단검이 사내의 배에 박혔다.
“컥! 컥!”
사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배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에 오줌까지 지렸다.
당관이 그대로 단검을 그어 올렸다.
푸화악!
곰보 사내의 몸이 덜덜 떨렸다.
사내를 아무렇게나 내던진 당관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간의 마비산(痲痹散)을 뿌렸으니 고통 때문에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거기서 네놈 뱃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즐겁게 공부해 보도록.”
“히이익!”
사내를 일별한 당관이 소년의 곁으로 다가갔다.
주르륵.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가만히 소년을 내려다보던 당관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수를 갚아 주마.”
“…….”
“그것밖에 약속할 수가 없다.”
지키지 못할 말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당관의 성격이 그러했다. 눈앞의 아이가 죽어 가고 있어도, 거짓말이라도 살 수 있다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될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당관의 도덕이었다. 소년 스스로도 죽음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당관 입장에선 위선이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너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들을 전부 엮어 지옥으로 보낼 것이다. 그것만은 내 약속하마.”
멍하니 풀려 있던 소년의 눈이 천천히 당관에게로 돌아갔다.
당관의 표정은 무뚝뚝했다. 목소리에도 죽어 가는 소년을 향한 동정이나 애도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사천 최악의 공포라 불리는 당가주답지 않게 흔들리고 있었다.
뚝.
소년의 도드라진 광대뼈에 걸린 눈물이 침상에 떨어졌다.
그렇게 소년은 죽었다.
당관은 눈을 감았다.
이 소년이 자신의 말을 믿었는지는 모른다. 애초에 들리기나 했을지도 의문이었다. 들렸다 한들, 이놈들과 똑같은 놈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소년의 상태와 감정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당관은 바랐다. 두려움과 억울함으로 가득했던 이 소년의 마음에, 자신의 말이 한 가닥 위안이라도 되었기를.
당관은 소매 안에서 돌돌 말린 투명한 실, 단혼사(斷魂絲)를 꺼내 바늘과 연결했다. 그리고 소년의 복부를 꿰맸다.
잠시 후, 그는 소년을 안고 방을 나섰다.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이 무례한 놈들이!”
초로의 사내가 보여 주는 신경질적인 반응은 꽤 일품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어딜 감히 그 흉한 물건을 들고 들어와!”
기세 좋게 외치고 있었지만, 초로인의 얼굴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황석태가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꺽!”
괴상한 신음과 함께 초로인이 벽에 처박혔다.
순간 힘 조절을 잘못하여 죽일 뻔했다. 그 정도로 황석태의 분노는 대단했다.
“으어어!”
바닥에 쓰러진 초로인의 몸이 벌벌 떨렸다. 죽지는 않았지만, 주먹질 한 방에 아래턱이 부서졌다. 피와 침을 줄줄 흘리는 그 모습은 제법 비참해 보였다.
공포에 질린 초로인이 방문을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눈치가 없는 그도 이제는 아는 것이다. 상대가 지위나 권력에 구애받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을.
황석태가 적룡신창을 내리찍었다.
콰득!
“으아아!”
적창이 초로인의 허벅지를 뚫고 땅에 박혔다.
뼈와 대동맥을 절묘하게 비껴갔다. 과다 출혈이나 충격으로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백 번, 천 번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황석태는 참았다. 이놈들을 지금 죽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편한 죽음을 안겨 줘서는 안 되는 것이다.
황석태가 침상을 바라보았다.
“히익!”
“사, 살려 주세요!”
커다란 침상에는 세 명의 여인이 있었다.
한 명은 서른이 넘어 보였고, 둘은 스물도 안 되어 보였다.
서른이 넘은 여인은 약에 취한 듯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둘도 눈빛이 탁했다.
벌거벗은 여인들을 본 황석태가 이불을 펼쳐 그녀들의 몸을 가려 주었다.
“미안하오.”
황석태는 그렇게 말했다.
뭐가 미안한지는 그도 몰랐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공포에 질린 그들의 얼굴을 보며, 황석태는 문득 연호정과 함께 철기단의 훈련을 함께 지켜봤을 때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자네들, 섬멸 명령이 떨어지면 민간인도 죽이나?’
‘그것이 명령이라면.’
‘그러지 말게.’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전투가 벌어지면, 우린 철저히 도구가 될 뿐이다.’
‘그래도 그러지 말게. 그런 명령이 떨어지면 상관을 쥐어패든 묵룡부를 떠나든 해.’
‘말도 안 되는 소리로군. 자네들 세상에서는 그게 통용될지 모르겠지만, 흑도(黑道)는 그렇지 않아.’
‘흑도는 사람 사는 곳 아니라던가?’
‘…….’
‘흑도와 백도의 구분은 가치관과 삶의 방향성 차이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그 다름에 민간인의 목숨 유무가 끼어선 안 돼. 민간인들의 세상은 흑백 모두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절대적 중립 지역이야.’
‘…….’
‘대협이 되라는 게 아니야. 하지만 사람은 되어야지.’
사람이 되어라.
사람이란 무엇인가. 본디 이렇게, 강자가 약자를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 세상이 인간의 세상인 것일까.
황석태는 실감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아니, 무림의 힘을 실감했다. 본인들이야 더 높은 세상, 더 강한 무공을 손에 넣기 위해 분투하지만, 이 힘의 방향이 조금만 틀어져도 민간인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실감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실감은, 황석태에게 강한 회의와 원인 모를 분노를 안겨 주었다.
그래서 황석태는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미안하오.”
지하실에 갇힌 사람들을 모두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쩔 수 없었다. 몸을 망친 여인들이나 소년들의 경우엔 그나마 스스로 걸을 수는 있었지만, 강제로 약에 취하거나 죽기 직전인 사람도 많았다.
그들을 한 명 한 명 조심스럽게 옮기고 응급조치를 취하는 데에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반 시진 후.
극락향의 독기를 몽땅 빼낸 건물에 피해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자칭 회원이라는 놈들은 모두 마당에 꿇렸다.
놀라운 것은, 와중에도 목에 힘을 주는 놈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개자식들! 너희 뭐야? 무림인이야? 이것들이 감히 국법을 행사하는 관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장한은 제형안찰사 소속 고위 관리였다.
“정체를 밝혀라! 내 상부에 보고하여 너희 무림인들을 모조리 잡아 죽일……!”
우두둑!
“크아아아악!”
장한이 거친 비명과 함께 땅을 굴렀다. 강량이 그의 오른쪽 어깨를 으스러트린 것이다.
강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왼손잡이일려나?”
“크악! 아아악!”
“뭐, 그럴 수도 있겠군.”
강량의 발이 장한의 좌측 어깨를 밟았다.
콰직!
장한이 입을 떡 벌렸다. 심한 고통에 비명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강량이 몸을 돌렸다.
“상부? 걱정하지 마라. 연관된 놈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잡아 죽일 생각이니까. 굳이 보고 따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담담한 목소리에 무시무시한 분노가 깃들었다.
그 분노를 받아 타오르는 살기는 끔찍할 정도였다. 밧줄에 묶여 무릎을 꿇은 이들 대부분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였다.
“관림불침조약을 잊었느냐!”
육십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 버럭 외쳤다.
주름진 얼굴에서 지긋한 나이가 느껴졌지만, 아주 정정해 보였다. 그 정정함으로 나랏일에 매진했으면 좋았을 것을, 소년과 소녀에게 풀길 좋아하는 망종이 그였다.
“관부와 무림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법이다! 너희가 무림인이라면 당장 우리를 풀어 주거라!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벌어질 것이야!”
그때, 가만히 서 있던 연호정이 말했다.
“전쟁은 이미 벌어졌다.”
“뭣이?!”
“관부와 무림인이 결탁하여 민간인을 납치해 그들의 삶을 짓밟았다. 그 시점에서 이미 너희는 전쟁을 일으킨 거야.”
“미친놈! 내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냐?! 너희가 우리를 건드리면 관부는 절대……!”
번쩍!
어느새 연호정이 노인의 앞에 나타났다.
순간 깜짝 놀란 노인이 뒤로 쓰러졌다.
연호정이 담담한 얼굴로 백룡부를 뽑아 들었다.
퍽!
백룡부가 노인의 빗장뼈와 갈빗대를 갈랐다.
“끄아악!”
노인이 비명을 질렀다.
연호정은 냉정하게 백룡부를 계속 내리쳤다.
퍽! 퍽! 퍽!
내공을 싣지도 않았다. 너무 많은 힘을 가하지도 않았다.
그는 장작 패듯 노인의 몸에 도끼질을 했다.
피슉! 피슉!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핏물이 연호정의 얼굴과 상반신을 적셨다.
부르르 떠는 노인의 얼굴에 비로소 공포가 깃들었다.
드높은 지위로도 당장 내 몸에 가해지는 도끼질을 막을 수가 없었다. 대화의 여지도 없었다. 호통 몇 번 친 걸로 몸이 작살이 나고 있는 것이다.
퍽! 퍽! 퍽!
연호정의 도끼질은 일정했다.
이미 노인의 목숨은 끊어졌다. 그런데도 그는 도끼질을 멈추지 않았다.
상반신부터 하반신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하반신에서 상반신으로 올라가 머리까지 잘게 다져 놓았다.
스릉.
도끼날에 묻은 피를 닦은 연호정이 몸을 돌렸다.
“……!!”
그 살벌한 광경을 목격한 회원들은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덜덜 떨었다.
사람을 죽이거나 고문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저놈은 사람을 산 채로 다져서 죽였다. 이미 죽었는데도 온몸이 으스러질 때까지 다졌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다진 고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차라리 깔끔하게 목이 잘려 죽는 게 나을 것이다. 저렇게 죽으면 죽어서 귀신도 못 될 것 같았다.
연호정이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물었다.
“당가주님은?”
“건물 안에서 피해자들의 몸 상태를 봐주고 계십니다. 철기단주와 송하신니가 손을 보태는 중입니다.”
“알겠다.”
연호정이 눈을 감았다.
“량아.”
“예, 형님.”
“하나만 부수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다.”
“동감입니다.”
당가의 처리도 시급하다. 하지만 낙원소의 지부 하나 부쉈다고, 이 미친놈들의 광기가 줄어들 것 같지 않았다.
“기충 분타주에게 연락해라. 사천 전역에 낙원소의 존재를 알리라고. 속히 와서 이곳 현장도 보존하라고 전해라.”
“예.”
연호정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빌어먹게도 맑은 하늘을 보는 그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지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