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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576화 (575/963)

576화. 누구를 위한 낙원인가 (1)

“뭐라?”

당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삼현대가?”

“그렇습니다.”

“다시 묻는다. 삼현대가 몰살을 당했다고?”

“예.”

“허!”

삼현대가 얼마나 대단한 전력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당장 이 조와 삼 조를 제외한 일 조만 보내도 어지간한 중소 문파는 반 시진도 안 되어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아니, 중소 문파가 뭔가. 기습전을 펼치면 구파일방을 제외한 대문파라도 그 뿌리를 뽑아낼 수 있는 전력이었다.

하물며 거기에는 당가의 독공과 암기술을 익힌 자들도 많지 않은가?

“설마…….”

당호의 눈이 깊어졌다.

“당관이?”

“조사해 본 결과, 당가주의 무공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이냐? 설마하니 무림맹이나 묵룡부에서 나서기라도 했단 말이냐?”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등화사태와 같이 움직였던 사람 중 적과의 교전에서 생존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냐?”

“당각입니다.”

“당각?!”

당각은 당가의 직계로, 무공이 썩 대단한 녀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직계요, 당가인이다. 녀석의 독공과 암기술은 분명 일절이라 불릴 만하다. 기습이라면 초절정고수도 죽일 수 있다.

“당각이 말하기를, 적은 삼십이 되지 않은 청년이라 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서른도 안 된 어린놈에게 당했다고?”

“예. 청성과 아미의 고수들과 함께 덤볐지만, 모두가 그 청년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당호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암습이라도 당했다더냐?”

“아니라고 합니다. 당당한 정면 승부였다고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당금 무림에 그만한 전력을 짓눌러 버릴 수 있는 청년 고수는 둘뿐이다. 하물며 그중 하나는 서른이 넘었고, 아직도 광동에 있다고 하였다.”

“…….”

“……설마?!”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도끼를 들지 않았다고 하였으니까요. 그러나 권법을 위시한 백타술이 워낙 뛰어났고, 특히나 실전 감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했습니다.”

“…….”

“강호에 나서지 않은 기인이거나 반로환동의 고수가 아니라면…… 칠 할 이상의 확률로 연호정이 맞을 것입니다.”

당호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연호정의 소문은 그도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연호정의 임무 달성률은 거의 십 할을 자랑했다. 무림맹에서 어떤 임무를 내려도 척척 해결하는 연호정의 실력은 가히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무공만 강한 게 아니라 머리도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무림맹은 묵룡부와의 동맹 책임자로 후기지수인 연호정을 선택했다. 그리고 묵룡부는 연호정이라는 젊은 대표를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말하자면 연호정은 무림맹과 묵룡부, 양측 모두가 인정할 만한 실력자라는 것이다.

“녀석은 묵룡부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 해서 부랴부랴 정보 대대를 운용해 알아보니, 며칠 전 사천 동부 쪽에서 흡사한 외양의 청년이 몇몇 고수와 함께 들어왔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빌어먹을!”

쾅!

당호가 주먹으로 탁자를 후려쳤다.

세인들은 연호정이라는 존재를 무공의 천재로만 인식하고 있다. 거기에 성격이 다혈질이라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무림맹에 속한 이들, 특히 간부급 인사의 세력들은 연호정의 진면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연호정은 존재 자체가 부담이었다. 나이가 젊다고 얕봐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구대문파의 장문인보다도 위험한 인물이 연호정이었다. 당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숨을 몰아쉬며 분노를 제어하던 당호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제아무리 연호정의 실력이 뛰어나다 한들, 삼현대를 상대할 수는 없어. 함께 온 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지만, 그들 모두가 구파 장문인급 고수라 해도 삼현대의 상대가 되긴 힘들 것이다.”

타당한 분석이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고수라도 당호와 똑같은 분석을 내놓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당호의 분석은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무림인들은 대개 전략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애초에 개개인이 지닌 힘 자체가 대단하다 보니, 부대 단위로 움직이는 전술이나 기습전, 시가전, 산악전 등을 상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호정은 달랐다.

그는 오랜 전쟁으로 인해 천하에 알려진 모든 전략과 전술을 써 봤으며, 그러고도 몇몇 전투에서는 패퇴하여 숱한 아군을 잃어 보았다.

전투의 경험치부터가 다르다. 당호는 물론 천하 어떤 사람도 연호정의 진짜 능력을 파악하기는 힘들 것이다.

“뭔가가 있구나.”

“저희도 그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고수라 해도 그 수는 네다섯에 불과합니다. 그 안에 성천의 강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그들만으로 삼현대를 무찌를 순 없습니다.”

당호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야 안정적인 기반을 쌓았거늘, 느닷없이 늑대 무리가 들이닥쳤단 말이지.”

“어떻게 할까요?”

“…….”

“상대가 연호정이든 아니든, 적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지금쯤 낙원소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겠지.”

당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여러 준비를 해 놓았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십 년이 넘도록 아무도 낙원소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낙원소를 만든 것은 사천삼강의 고수들이었다. 사천에서 가장 강한 세력의 초고수들이 만든 조직인 만큼, 낙원소는 철통같은 보안이 유지되고 있었다.

“뭐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무슨 상황이든 낙원소의 존재가 알려져서는 안 되는 법이지.”

“…….”

“비선(飛仙)들에게 연락하게.”

“……비선 말씀이십니까?”

“낙원신선조는 안 되네. 바쁘기도 바쁘거니와, 만에 하나라도 그들까지 당하면 당장 낙원소의 운영이 어려워져.”

“낙원신선조의 무력은 대문파도 능히 감당할 만합니다.”

“그래서, 며칠간 낙원소의 문을 닫고 그들 모두를 소환해서 적을 없애잔 말인가?”

“…….”

“관부의 높으신 분들이 매일같이 예약을 잡아 놓았어. 지부 하나가 마비되면 다른 곳으로 보내면 되지만, 지부 전체가 마비되면 그들과의 신뢰가 깨져 버리네.”

“…….”

“우리의 사업은 신뢰가 없으면 망해. 어떤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 줘야 해.”

“만약 투입된 비선들까지 무너진다면…….”

“그때는.”

당호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본가와 청성, 아미 전체가 움직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비선이 실패할 확률은 극히 낮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간이 없군. 더 할 얘기가 없으면, 속히 움직이도록 하게.”

“나중에 뵙겠습니다.”

당호의 앞에 뒷짐을 지고 서 있던 복면인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신법이었다. 초절정고수인 당호조차 상대의 움직임을 제대로 읽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당호의 얼굴에 놀라움은 없었다. 익숙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심각했다.

“연호정이라…….”

거기에 조만간 당관도 사천에 진입할 것이다.

보고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사천에 들어오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것 하나만큼은 정말 다행이었다.

‘아니,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된다. 당관은 본가의 정보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요리조리 피해 가거나 자연스레 얼굴을 숨길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만 참으면 돼. 조금만 참으면, 모든 것이 내 손에 들어온다. 그때까지만 별 탈 없이 지나가면 돼.”

너무 놀라서일까? 아니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지금 이 순간, 당호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적이 연호정이라면, 그가 왜 사천에 들어왔는지를 궁금해했어야 했다.

천하에 산재한 문젯거리를 해결해 온 불세출의 천재가, 하필 이 시점에 사천에 들어온 이유를 고민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고민하지 않은 당호에게, 미래는 조금씩 먹구름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 * *

“음?”

통로를 올라온 오선은 문득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뭐지?’

쿠구구궁.

비밀 통로가 닫혔다.

꺼진 땅이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음에도, 오선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 냄새는?’

혈향이다.

인육 작업과 방 곳곳에서 벌어지는 고문 등의 이유로 그는 피 냄새에 둔감했다.

하지만 지상의 공기는 상쾌했고, 상쾌한 공기 속에 섞여 든 피 냄새는 도리어 그에게 당황스러운 익숙함을 선사했다.

오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가 건물을 돌아보았다.

‘없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인기척이 없다. 경비들이 시시덕거리는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마치 경비 전체가 사라지기라도 한 양, 건물 내부는 고요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 고요한 건물 안에서 자욱한 피 냄새가 풍겨 오고 있었다.

오싹!

순간 오선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있다.’

자신을 주시하는 몇 쌍의 눈길이 느껴졌다.

파아아악!

그것을 깨닫자마자 오선의 발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쾅!

순식간에 건물 벽을 뚫고 들어간 오선은 바닥의 기관을 확인했다.

‘작동하지 않았어!’

오선은 서슴없이 발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득!

바닥이 부서지며 훅! 하고 반투명한 연기가 퍼져 나왔다.

마치 모닥불 끝에서 넘실거리는 연기와 같았다. 연기의 움직임은 결코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연기가 보이는 순간, 이미 극락향은 반경 삼 장을 아우르고 있었다. 그만큼 전파력이 빨랐다.

‘흡!’

오선은 소매로 코와 입을 막았다.

극락향의 해독약은 보름에 한 번씩 먹고 있었다. 해독약을 복용한 이상, 극락향 때문에 죽거나 몸에 이상이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모른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이차 함정을 터트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비상이다! 어서 이 상황을……!’

그때였다.

콰드득!

“컥!”

오선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 냈다. 누군가가 자신의 왼팔을 부러트린 것이다.

육안으로 보긴커녕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오선은 팔에 감촉이 이는 즉시 오른발로 각법을 시전했다.

콰직!

“크아악!”

오른발이 허공을 찼다. 주축인 왼 다리가 역으로 꺾여 부러졌기 때문이다.

왼팔이 부러지자마자 왼 다리까지 박살이 나 버렸다. 오선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파아아악!

누군가가 오선의 멱살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헉!”

오선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자신의 멱살을 잡아 올린 사내는 눈빛이 날카로운 중년 사내였다.

그리고 그 중년 사내의 눈빛은, 보기만 해도 섬뜩한 진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선의 얼굴에 경악이 깃들었다.

‘이자는?!’

중년 사내, 당관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빠르더구나.”

“……!”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서슴없이 움직이는 그 행동력, 감탄스럽군. 본가의 아해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을 정도다.”

“…….”

“한데.”

꾸우우욱!

“끄윽!”

오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멱살을 쥔 당관의 손이 비틀리며 당겨진 옷깃이 목을 조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반격하고 싶었지만, 부러지지 않은 오른팔과 오른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독!’

당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흰자위까지 녹색으로 물든 당관의 얼굴, 일그러진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악마가 따로 없었다.

“누가 허락했더냐? 네까짓 놈들이 극락향을 써도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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