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4화. 낙원의 치욕 (6)
삼현대의 삼 조장 효안의 눈이 빛났다.
‘엄청나군.’
삼현대는 총 세 개조로 나뉘어 있다.
그중 일 조가 바로 연호정에게 죽은 풍뢰자가 이끄는 오십 명의 부대였다. 그들 모두가 청성과 아미, 당가의 무공을 연성하였으며, 오랜 세월 연마한 그들의 무공은 최소가 절정고수 수준이었다.
반면 나머지 이 조와 삼 조는 낙원소의 초기 설립 때부터 키워진 암살자들이었다.
말이 암살자지, 실제로 사람 죽이는 일을 극단적으로 연마한 이들은 아니었다.
낙원소는 정보 통제에 극히 민감한 조직이었다. 필요에 따라 암살도 불사하지만, 그보다는 첩보와 정보 조작 등에 훨씬 더 큰 힘을 쏟았다.
삼현대의 이 조와 삼 조 역시 그러한 흑안들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한 개조에 오십 명씩, 총 백 명의 흑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첩보 조직으로서의 명령을 수행한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 전력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들의 능력이 진가를 발휘하는 영역은 암살이 아닌 첩보와 정보 통제니까.
‘과연.’
효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억지로 우리까지 데려온 이유가 있었구나.’
물론 오만하기 그지없는 일 조장은 이 조와 삼 조까지 전투에 참여시킬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했다. 흑안이 익힌 살법은 일 조의 무공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자칫 잘못 싸우다가는 쓸데없이 아군의 희생만 커질 것이다.
일 조장이자 대주인 풍뢰자가 삼현대를 모두 동원한 것은, 혹시라도 새어 나가는 병력을 통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휘말리고 있다.’
콰아앙!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터져 나오는 굉음에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실로 엄청난 힘이 부딪치고 있었다. 경력과 경력의 충돌, 그 충격파만으로도 산천초목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굉장해. 풍뢰자가 일격에 죽다니.’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상관이지만, 그나 이 조장이나 사적으로 풍뢰자를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임무였다. 사적인 감정은 배제해야만 했다.
‘어쩌나.’
후우우우웅!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충격파, 그 충격파에 달궈진 바람이 여기까지 불어오고 있었다.
열풍에 혈향이 섞였다.
그 혈향은, 적의 것이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효안이 품에서 작은 뿔피리를 꺼내 들어 불었다.
삐이이이.
미세한 소리였다.
이 소리에 단련되지 않은 자는 절정고수라도 들을 수가 없다.
잠시 후.
삐이이. 삐이이이.
반대쪽 봉우리에서 똑같은 뿔피리 소리가 짧게 두 번 끊어져 들려왔다.
효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향해 말했다.
“더 대기한다.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잠복하도록.”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당연했다. 삼현대의 흑안들 대부분이 혀가 뽑힌 이들이었다. 적의 손에 잡혀도 내부 정보를 발설치 못하도록 조치가 취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야전 잠복에서 쓸데없는 복명복창으로 소음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효안이 눈을 빛냈다.
‘어디, 저들이 얼마나 버틸지 구경이나 할까.’
놈들은 예상외로 강했고 일 조의 피해도 예상보다 컸지만, 효안은 일 조가 저들에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절정고수만 사십에 가까웠고, 나머지는 모조리 초절정고수였다.
이 정도면 소림 방장급 고수 넷이 있어도 정면 승부로는 이기기 힘들다. 치고 빠지는 전술로 목숨 부지는 할 수 있겠지만, 일 조를 섬멸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면 되겠지.’
일 조 역시 무리하게 힘을 빼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싸움이니까.
그러나.
쾅! 퍼퍼퍼펑!
폭음은 계속 강해졌고, 온갖 타격음과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끔찍한 비명이 연이어 울렸으며, 절벽과 대지가 미친 듯이 뒤흔들렸다.
“……?!”
놀란 효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싸움이 진행될수록, 일 조의 진형이 점점 엉성해지고 있었다.
엉성해진 것까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저 진형 한가운데에서 성난 짐승처럼 날뛰고 있는 한 존재였다.
스르르륵!
제멋대로 늘어나는 철쇄에 열 명이 넘는 절정고수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불꽃이 치솟았고, 파괴적인 발경법이 초절정고수들을 몰아쳤다.
후방에서는 적창을 든 일기당천의 창술가가 절묘한 진퇴로 부대 후미의 혼을 빼 놓고 있었으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검사 하나는 철쇄와 도끼를 다루는 고수와 창술가 사이에서 절묘하게 전투를 조율하고 있었다.
‘이게……?’
이럴 수가 있나?
효안은 당황했다.
고작 넷이었다. 하나하나가 놀라운 고수들이었지만, 그것은 일 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데 그 네 명으로 인해 벌써 일 조 병력의 오분지 이가 날아가 버렸다.
‘이, 이런.’
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조와 삼 조는 움직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효안은 정말 이대로 대기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이런 난전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일 조도 모두가 당황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이 조와 삼 조에 지원을 요청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완전히 홀려 버렸어!’
적의 실력에, 적의 기파에, 적의 기가 막힌 진형 전술에 그들의 의식이 혼란으로 물들어 버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
효안의 얼굴에 결심의 빛이 어렸다.
‘어쩔 수 없다. 이대로는 안 돼. 나중에 추궁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일 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그가 품에서 뿔피리를 꺼내 들었다.
삐이이이이이.
길고 강렬한 소리였다. 적어도 암살자들 귀에는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효안은 귀를 기울였다.
‘……?’
뭐지?
효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조장에게서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이 소리를 못 들었을 리는 없다. 그들은 그 정도로 책임감 없는 이들이 아니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다시 뿔피리를 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조장에게서 피리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효안의 입에서 기어이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조장, 이놈 지금 뭘 하고 있는…….”
그때였다.
“그 눈 하나 없는 애꾸 놈을 말하는 거냐?”
순간 효안의 몸이 얼어붙었다.
스으으. 스으으으.
후방 어디에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왠지 하얗고 무거울 것 같은 연기가 천천히 흘러나오는 듯했다.
효안의 뒷덜미가 식은땀으로 젖었다.
“재미있는 놈들이군.”
정체 모를 자의 목소리는 나른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암살공을 배우기는 했는데, 제대로 활용할 줄은 모르는구먼. 암살이 주 업무가 아니었나? 한데 그런 쭉정이들을 굳이 여기에 부른 이유는 또 무엇인가?”
뚝. 뚝.
효안의 턱을 타고 내려온 땀방울이 젖은 낙엽 위로 떨어졌다.
몸이 굳어 버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힘들었다.
등 뒤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가 접근해 왔다. 한데 그가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 아니 말을 할 때까지 효안은 조금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건 엄청난 일이었다. 살법이 주가 아닐 뿐, 효안은 물론 흑안들 모두가 일류의 암살공을 익히고 있었다.
암살공이란 대저 은신술에 집중되기 마련이고, 은신술의 고수는 타인의 인기척을 느끼는 데에도 지극히 민감하다.
그런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상대의 실력이 실로 가늠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뜻이었다.
부스럭.
섬뜩한 소리였다.
지척이라 해도 제법 떨어진 거리였는데, 그 잠깐 사이에 우측방 직전에 도달해 있었다.
언제,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
싸워 보기도 전에 패배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패배가 문제가 아니었다.
효안은 확신했다. 손가락 하나 잘못 놀리는 순간, 자신의 목이 날아가리라는 것을.
그 짙은 공포심이 효안의 몸을 목석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의 직감은 사실이었다. 그의 등 뒤에 나타난 희대의 사신(死神)은, 효안 정도의 실력자는 입김 한 번으로 죽여 버릴 수 있을 만큼 무시무시한 고수였다.
“호오, 혀를 다 뽑아 버렸구먼.”
“……!”
“어설픈 놈들이로고. 이럴 거면 무엇 하러 비싼 돈 들여 가면서 사람을 길렀는가.”
효안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스르륵.
상대가 굽혔던 허리를 펴고 있었다.
이제는 상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오싹!
마치 목덜미에 거대한, 그러나 투명한 독사가 이빨을 들이대고 있는 것 같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네놈 혓바닥도 이놈들처럼 잘린 게 아니라면, 슬슬 몸을 돌려 보는 것이 어떠하냐?”
두근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상대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효안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헉!’
나뭇잎을 뚫고 내려온 희미한 달빛 아래.
한 명의 사신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사신(死神)이자 사신(邪神)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장포 자락은 마치 사특한 신이 뿜는 숨결과 같았고, 진녹색으로 물든 두 눈은 사람을 홀리는 악마의 요술경처럼 괴악하게 빛나고 있었다.
효안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부르르르.
몸 전체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화아아아악.
낮게 깔리듯 퍼져 나오는 기파가 안개처럼 흩어지며 효안의 몸을 꽁꽁 에워쌌다.
그 존재감은 필설로 형용키가 어렵다. 몰랐을 때는 아무런 존재감도 느끼지 못하다가, 눈이 마주친 순간 태산처럼 거대한 이무기를 마주한 것만 같았다.
사신이 물었다.
“너희, 뭐냐?”
효안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불가항력이었다.
“저, 저희는 삼현대라 합니다!”
“삼현대라…… 들어 본 적 없구먼.”
사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지만, 그래도 독침 하나씩은 들고 있더군. 이 정도 부대가 사천에서 버젓이 숨 쉬고 있었다면, 내가 모를 리 없었을 터인데.”
“…….”
“정보 통제를 아주 제대로 한 모양이로군. 그렇지 않으냐?”
“예, 예!”
효안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했다.
사신이 효안의 손에 들린 뿔피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이었느냐?”
“……?”
훅!
뿔피리가 저절로 날아서 사신의 손에 잡혔다.
가공할 만한 내공 조예였다. 하지만 효안은 그것이 내공술이라는 생각도 못 했다.
사신이 하는 일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뿔피리를 살펴보던 사신이 피식 웃었다.
“조악하군.”
“……?!”
“다음 생에도 이따위로 살 거라면 이런 물건은 갖다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끄러워서 귀가 다 먹먹해지더구나.”
“……!!”
“얼굴 보았으니 되었다. 이만 가거라.”
사신이 손을 까딱거렸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컥!”
마치 거인의 손으로 목이 졸린 것만 같았다.
숨통이 턱 막힌 효안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얼굴이 퍼렇게 질렸고, 코와 입에서는 시커먼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독.’
시야가 점점 흐릿해졌다.
그리고 그 흐릿해진 눈으로, 마침내 그는 볼 수 있었다.
오십 명의 흑안이 모조리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는 광경을.
그 섬뜩한 시체들의 밭 위에 너무나도 당당하게 서 있는 사신의 존재를.
‘대체 무슨 독을……?!’
순간 효안의 눈에서 퍽! 소리가 났다. 혈관이 터져 버린 것이다.
세상이 붉어졌다. 죽기 전의 마지막 광경치고는 지나치게 섬뜩했고, 지나치게 불친절했다.
피눈물이 흐르는 효안의 눈이 점점 감겼다.
감기기 전, 그의 눈에 사신의 좌측 흉부에 새겨진 뱀과 전갈의 문양이 담겼다.
“당가…….”
“그렇다.”
효안의 눈이 감겼다.
사신, 당관이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내가 당가의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