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화. 조각 (6)
한 조직의 수장을 맡기 위해서는 여러 능력이 필요한 법이다.
정당성을 제쳐 놓고 말하자면, 무공도 뛰어나야 하고 안목도 출중해야 한다. 지혜로워야 하고, 지혜가 부족하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즉, 하나의 장점만으로 조직의 수장이 되어선 안 된단 말이다. 그런 수장을 가진 수많은 조직이 금세 와해되거나 뛰어난 인재에 밀려 치욕적으로 물러났다.
당장 팽가의 팽무강만 보더라도 대외적으로 보여 주는 인상은 화통하고 직설적인, 가히 전형적인 팽가의 남자였으나, 그 속에는 날카로운 직감과 뛰어난 화술을 숨기고 있는 거물이었다.
등천교는 다르다.
좋고 나쁨의 평가를 떠나, 등천교는 겉과 속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다혈질, 오만한 성격, 강력한 무공, 눈치 보지 않는 성격 등 그는 일부러라도 자신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어중간한 문파의 수장에게 그러한 모습은 단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공동파의 장문인 정도가 되면 얘기가 다르다.
공동파는 구파의 일익이다.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백도 정파에서 가장 잘나가는 문파 중 한 곳의 수장이란 말이다.
굳이 스스로를 숨길 필요도,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단순하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 공동파의 이름값이 워낙 대단했다. 강호인 대부분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동파의 검사들도 비슷할 것이다.
수장부터가 좋게 말하면 화끈한, 나쁘게 말하면 오만하기 그지없는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휘하 문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연호정은 등천교의 그 성격에 의문을 가졌다.
‘등천교는 젊을 때부터 그러했다.’
제갈문호가 조사한 내용 중 등천교에 관한 사항은 유독 많았다. 그만큼 스스로를 숨기지도,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에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그 정보를 보자면, 등천교는 입문했을 때부터 성질이 괄괄하기로 유명했단다. 다만, 머리가 나쁘진 않았다. 성질에 가려져서 그렇지, 그 역시 남들만큼은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저 머리 쓰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
‘일부러 정보를 숨기지 않았나?’
붉으락푸르락해진 등천교의 얼굴을 보며, 연호정은 생각했다.
‘공동파에 입문 전부터 삼교 소속이었다면, 지금의 저 성격이 꾸며진 것일 가능성도 있다. 일부러 정보를 통제하지 않았던 것도 대외에 오만한 성격을 알리고자 계산한 것일 수도 있다.’
정보 문서를 분석한 결과, 일행은 찝찝한 사람 둘을 추렸다.
그리고 그 둘에, 등천교는 속하지 않았다.
그래도 연호정은 등천교를 의심했다. 등천교만이 아니었다. 봉공 모두를 의심했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보았나!”
주먹을 불끈 쥔 등천교의 몸에서 이전보다 더 강력한 기파가 흘러나왔다. 분노로 눈이 뒤집힌 것이다.
“내 제자를 상케 한 것도 모자라 세작? 정녕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것이냐!”
“삼교 측에서 봤을 때, 무림맹에서 가장 껄끄러운 사람이 몇 있지. 그리고 그중 하나가 나요.”
연호정이 차갑게 웃었다.
“제자를 시켜 의정군 대수에게 칼을 날린다…… 세작이라면 저지를 법한 짓이지 않소?”
“닥치지 못하겠느냐!”
“그게 아니면 뭐요?”
연호정이 눈을 빛냈다.
“사람이 약속을 했으면, 본인이 어떤 위치라도 응당 준비를 해야 마땅하오. 설마하니, 공동파의 장문인이라고 내가 손바닥 비비면서 설설 길 거라고 생각한 것이오?”
“정녕 혓바닥이 뽑혀야 그 요망한 언사를 멈출 것이냐?!”
“그렇다면 당신은 이만 무림맹을 떠나는 것이 좋겠소.”
“뭐라!”
“무공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그래도 무림맹의 봉공씩이나 되는 분께서 지나치게 오만하시구려. 지금 내게 하는 꼴을 보니 어지간히 아랫사람을 괴롭힌 모양인데, 당신의 위치를 떠나 그런 사람은 무림맹에 필요치 않소.”
“이놈이!”
“착각하지 마시오. 무림맹은 질서와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권력 행사를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 아니외다. 그 잘난 권력을 휘두르고 싶으면 공동산에 처박혀 제자들이나 쥐잡듯 잡으란 말이오.”
번쩍!
등천교의 눈에서 살기가 폭발했다.
“어린놈이 알량한 무공 몇 수 익혔다고 존장을 몰라보는구나! 내, 봉공직을 내려놓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의 사지를 부러트려 질서가 뭔지를 가르쳐 주마!”
“강의는 사양이오. 맹에 당신만큼 질서를 모르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으니까.”
“죽일!”
파아아앙!
등천교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화가 난 와중에도 이전처럼 상대를 가볍게 보진 않는 것이다.
연호정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콰앙!
등천교가 전권에 진입하기도 전에 찍은 진각이 백호군림의 힘을 받아 막강한 폭발력을 자아냈다.
파아아아앙!
어느새 등천교의 손이 연호정의 머리통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공동파 비전, 비봉수(飛鳳手)였다. 빠르고 경쾌한 수공(手功)에 천뢰복마진기가 담겼다.
제아무리 연호정이라도 저 공격을 머리로 받아 냈다간 즉사를 면치 못할 것이다.
사지를 부러트리겠다더니 냅다 살수로군.
피이이이이잉!
연호정이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비봉수를 피했다. 유연하기 그지없는 몸놀림이었다.
등천교는 깜짝 놀랐다.
주먹질의 위력이 대단한 걸 보아 이번 일격으로 당할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쉽게 피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옆?!’
정확히는 후측방 사각이었다.
이 위치, 이 자세에서 가장 반격하기 좋은 지점을 고른 것이다. 등천교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화아아아악!
연호정의 반룡장이 등천교의 오금을 짓눌렀다.
후려치거나 폭발하는 발경이 아니라 힘 있게 짓누르는 발경이었다.
일순 등천교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연호정은 즉시 각법을 구사했다.
하지만 등천교가 공동파의 장문인이 된 것은 무공이 강해서였다. 그 자리를 도박으로 딴 건 아니란 말이다.
피리리리링!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굉장하군.’
그 자세에서 자신의 각법을 피해 순식간에 십 보 밖으로 물러났다.
기가 막힌 몸놀림이었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 그처럼 역동적인 몸놀림을 구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놈이……!”
파아아악!
연호정은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실력 차이는 명확했다. 등천교는 인정하려 들지 않겠지만, 연호정의 무공은 등천교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전력으로 붙었을 때나 해당되는 얘기다.
‘과격하게 상대해선 안 돼.’
이러나저러나 등천교는 무림맹의 봉공이었다.
물론 잘못은 상대가 먼저 했으니, 사정을 잘 설명하면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려도 뇌옥에 갇히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차후에 문제가 될 것이다.
봉공 중에는 등천교만큼 과격한 사람도 있고, 권위 의식에 빠진 사람도 있다. 모두가 공공대사나 연위 같지는 않은 것이다.
죄를 묻진 못해도 사사건건 따지고 들기 시작할 것이다. 뭔가 일을 치르려 할 때마다 발목을 잡으려 들 수도 있다.
한솥밥 먹는 사이라고나 할까. 모두가 그러진 않겠지만, 등천교를 거칠게 다루면 연호정이라는 이름 석 자를 폭탄과 이음동의어로 여길 것이다.
당연히 그런 결과를 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지금은.
‘더불어.’
피슉! 파아아아앙!
연호정의 볼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지풍(指風)은 날카롭기가 검기 못지않았다.
공동의 비전, 백사지(白蛇指)였다. 뱀처럼 꾸불거리며 날아드는 지풍은 회피와 방어가 어려웠다.
파바박!
등천교가 재차 접근했다.
전면에 보이는 모든 방위를 선점하며 다가오는 보법이 일품이었다. 성격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단련한 무공만큼은 과연 종사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삼교, 정확히는 신화교 특유의 도형(圖形)을 따르는지를 봐야 해.’
세작이 신화교에서 파견한 족속인지 사음교에서 파견한 족속인지, 그게 아니면 광혈교에서 파견한 족속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 상대의 무공에서 신화교 특유의 도형과 같은 움직임이 보인다면, 그가 세작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연호정은 등천교의 보법과 권법, 수공, 지법을 모조리 받아 내거나 회피하며 방위를 읽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역시 아니야. 하지만…….’
아니라서 좋다. 생각한 대로, 이 역할에는 등천교가 제격이었다.
번쩍! 콰앙!
연호정의 벼락같은 일장(一掌)에 등천교가 주르륵 뒤로 물러났다.
등천교의 표정은 낭패로 얼룩져 있었다. 자신의 권장지각(拳掌指脚)을 모조리 회피한 것도 모자라, 반응하기 어려운 박자에 치고 들어와 일격을 가하는데 그 위력이 뼛속까지 울리는 듯했다.
“이…… 이놈!”
상황이 이 정도가 되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등천교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감히 날 상대하면서 여유를 부려!”
연호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단련을 게을리하셨소이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 상대하느라 벅차진 않으시오?”
“놈!”
파아아악!
어느새 연무장 끝으로 물러나 있던 사인호의 검이 등천교의 손으로 날아왔다.
그나마 등천교와 가까운 거리였지만, 그래도 허공섭물의 한 수를 썼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극치에 이른 수준이라 보긴 어려우나, 초절정고수라고 쉽게 보여 줄 수 있는 기예가 아니었다.
차아아앙!
등천교는 거침없이 검을 뽑았다.
검을 뽑으니, 이전과는 또 기세가 달랐다. 공동파 최강의 무공이 검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하물며 그 검법을 펼치려는 자가 등천교였다.
기세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상대해 주……!”
순간 연호정의 두 발에 불꽃의 진기가 어렸다.
퍼어어어어엉!
등천교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공동파 최강의 절기, 복마검법(伏魔劍法)을 구사할 틈도 없었다. 연호정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치리리리링!
무서운 속도로 뽑혀 나온 백룡부가 등천교의 검을 후려쳤다.
미묘한 각도, 날이 아닌 검배를 후려친 도끼날에 강력한 폭발음이 터졌다. 등천교의 검이 일순간 투로를 잃고 우측 상방으로 튕겨 나갔다.
촤르르르르륵!
흑룡부와 연결된 교룡쇄, 흑룡쇄가 나선을 그리며 등천교의 팔뚝과 상박을 휘감아 버렸다.
연호정이 힘차게 흑룡쇄를 당겼다.
콰드드드득!
등천교의 두 발이 또다시 땅에 고랑을 만들었다. 연호정의 끌어당기는 힘에 용케 맞선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연호정의 완력은, 내공이 없어도 일류고수를 제압할 정도로 막강했다. 거기에 주작의 속도와 백호의 힘을 담아 당겨 버리니, 제아무리 등천교라도 버틸 수가 없었다.
연호정이 백룡부를 휘둘렀다.
날아간 백룡부의 도낏자루가 검을 쥔 등천교의 손목을 후려쳤다.
퍼억!
“크윽!”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다. 결국 등천교는 검을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치리링!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천하의 공동파 장문인이, 검법을 전개하기도 전에 사로잡혀 검까지 놓쳐 버린 것이다.
등천교는 경악한 얼굴로 연호정을 보았다.
연호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유군 부대의 수장을 죽이려 하다니?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니오?”
“……너!!”
“비무도 아니었고, 명백한 살의가 있었소. 장문인을 제압하지 않았다면 내가 죽거나 반병신이 되었겠지.”
연호정의 눈이 차가워졌다.
“뇌옥에 가셔야겠소.”
“어디서 개소리를! 네놈이 감히 공동파의 장문인인 나를 뇌옥에……!”
그때였다.
“추하시오.”
깜짝 놀란 등천교가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언제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팔짱을 낀 채 담벼락 위에 선 모용군이 서늘한 눈으로 등천교를 노려보고 있었다.
“봉공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참으로 못난 모습을 보이시는구려. 아무리 화가 났대도 그렇지, 무림맹에서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모용가주! 이건……!”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바, 제아무리 봉공이라도 그냥 넘어갈 만한 사안이 아니오.”
모용군이 연호정에게 말했다.
“연 대수, 괜찮은가?”
“죽을 뻔했지 뭡니까.”
“포승줄을 대신하긴 뭣하지만, 묶기 좋은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군. 등 장문인과 제자를 안전히 뫼셔야 할 것이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연호정이 웃으며 등천교를 보았다.
등천교의 눈에는, 악귀보다 백배는 더 사악하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형당 최고의 자리로 모시겠소. 저항하지 말고 같이 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