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화. 무림맹에서 (4)
당상아는 아버지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
굉장히 민감한 질문이었다. 이런 공적인 질문을, 그것도 가주위(家主位)에 얽힌 질문을 자신에게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양선이 가주에 어울리느냐고?’
당상아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당관이 말했다.
“부담 갖지 말고 대답해라. 어떤 대답이든, 불필요한 오해를 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당상아는 당양선을 떠올렸다.
제 동생이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인물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물론 무공에 재능은 있다. 무림맹에 온 이후, 세상에 이리도 천재가 많다는 걸 실감했지만, 그렇다고 당양선의 재능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성품이었다.
무림에서 보는 사천당가는 어떤 가문인가? 이런저런 말은 많지만, 독랄하고 가까이하기 힘든 가문이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살벌한 유명세는 지금껏 당가가 걸어온 행보에서 기인한다. 당가는 적에게 자비가 없고, 원한을 지면 열 배, 스무 배로 갚아 주는 독한 가문이었다.
그러한 가문의 가주로서, 과연 당양선은 어울리는 인재인가?
“솔직히…….”
당상아가 한숨을 쉬었다.
“지금으로서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요.”
지금으로선 시기상조다?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했지만, 결국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무공이야 조부님도 계시고 아버지도 계시니, 작정하고 가르친다면 언젠가 굉장한 고수가 될 수 있겠지요.”
“그렇겠지.”
“하지만 성품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양선도 내년이면 이십 대 중반인데, 평생을 그리 살아온 성품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합니다.”
“양선의 성품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
“말해 보거라.”
“좋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수식어가 없는 말이지만, 그래서 더 와닿는 표현이었다.
“가주로서도, 무인으로서도, 나아가 당가의 혈족으로서도…… 양선의 성품은 좋다고 보기 힘들어요.”
무척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 말인즉, 부모인 당관이 아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는 당상아도, 당관도 그런 부분에서 오해하지 않았다. 잘못은 잘못이고, 못난 것은 못난 것이다.
당상아의 말을 곱씹던 당관이 입을 열었다.
“기루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적이 있었다.”
“네?”
“오 년 전, 양선이 자주 가던 기루가 있었지. 알고도 모른 척했다. 기루에 중독이 된 거라면 모를까, 적어도 녀석은 해야 할 일을 미루진 않았으니까.”
“아, 네.”
딸 앞에서 쉽게 하기 힘든 말이다. 어쨌거나 기루는 여인들이 술과 웃음, 나아가 몸도 파는 곳이었으니까.
“무림은 험하지. 적어도 그 또한 경험의 일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막질 않았다. 나아가, 육욕(肉慾)에 미쳐서 스스로를 등한시할 녀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한데 녀석이 자주 가던 기루가, 오 년 전에 화재로 전소된 적이 있었다.”
당관이 눈을 감았다.
“그 화재로 기녀들이 스무 명 넘게 죽었다고 했다. 루주는 물론, 주방 숙수와 일꾼들까지 총 사십여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났다.”
“……!”
당상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양선이?”
“네가 솔직히 대답했으니, 나 또한 솔직하게 말해 주마.”
당관이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이런 한숨을 정말 오랜만에 들었다.
“따로 조사하지 않았다.”
“……네?”
“그 일이 양선의 짓일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조사하지 않았다. 유추는 했지만, 직접 조사해서 녀석이 한 짓이라는 게 분명하게 밝혀지면…….”
당관은 그답지 않게 말을 마치지 못했다.
당상아가 말했다.
“실망할까 봐요?”
“지금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때는 다른 이유가 있었어.”
“네?”
“그때는, 녀석이 저지른 짓임이 밝혀져도 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굳이 그때라는 걸 강조하고 있었다.
상대가 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변화를 직접 목도한 딸이기 때문에, 오해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혹시나 오해할까 봐 그런 표현을 강조하는 것이다.
당관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다. 자식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적어도, 과거보다는 지금의 당관이 훨씬 더 인간적인 부모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당시에 내가 그것을 조사하지 않았던 이유는 녀석이 가주가 되는 길에 방해가 될까 봐서였다.”
비밀은 비밀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유출의 시작이다. 제아무리 입이 무거운 수하들이라도, 비밀을 공유하는 순간 탈이 나게 마련이다.
당관은 혹시 모를 유출의 가능성을 사전에 막아 버리려 한 것이다.
“……그렇군요.”
“너도 알다시피, 우리 당가의 가주는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다. 하지만 역대 모든 가주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
당관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금은 답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연위나 제갈문호에게는 보여 주지 않을, 혈육에게만 보여 주는 진심 어린 표정이었다.
“당가의 가주는 도전을 받는다. 특히 아래가 아닌 위에서부터의 제재를 물리쳐야 하지. 내가 네 조부를 멀리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그것이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다.
당관의 아버지 암왕은 냉혹한 가주이자 당가 역사상 최강의 군주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동시에 가장 무서운 군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당관에게 가주위를 물려준 후, 그는 변했다.
자신의 공포 정치가, 앞으로 무수히 많은 가주들이 펼칠 공포 정치가 언제고 당가를 병들게 할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태상왕(太上王)은 왕국의 정치에 관여해선 안 돼. 그러나 역대 은퇴한 전(前) 가주들은 그것을 못 했다. 독선적이고 편협한 시각 때문에, 뛰어난 후예라도 못마땅한 구석이 보이면 가주업에 관여하고는 했지.”
사천성에서만큼은 절대권력을 누릴 것 같은 당가주였지만, 실제로는 많이 달랐던 것이다.
“하나 네 조부는 지금껏 한 번도 나의 정치에 관여하신 적이 없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참으로 깔끔하신 분이야. 애초에 워낙 뛰어난 가주였으니, 선대의 제재도 받지 않으셨지.”
“…….”
“다만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 한 번씩 나를 불러 담소를 나눌 때마다, 나의 통치 철학이 잘못되었다며 한마디씩 하셨더랬다.”
당관이 눈을 감았다.
“나와 네 조부는 사상이 다르고, 보고 배운 것이 다르다. 당가를 전성기로 이끈 네 조부의 눈에, 나의 정치는 많이 모자라 보였겠지.”
“그, 그럴 리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상아 역시 알고는 있었다.
조부에게 무공을 배울 적, 조부는 저도 모르게 아버지에 대해 몇 마디 흘리곤 했다. 능력에 관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눈치 빠른 당상아는 조부님이 아버지를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걸출한 수장에게는 능력 좋은 수하도 많은 법. 본가의 여러 어르신께서 알게 모르게 내 정치에 관여하려는 시도를 했었지.”
당관이 눈을 뜨고 당상아를 보았다.
“알겠느냐? 당가의 가주는 그렇게나 힘든 자리다. 후계라고 세워 두었지만, 제대로 힘을 실어 주는 어른들은 많지 않아. 방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
“나는, 양선이 그런 환경에 처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녀석에 관한 악소문은 전부 묻었다.”
쉽게 하기 힘든 고백이었다. 자식 앞에서는 더더욱.
그것만 보아도 당관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내 실책이었지.”
“아버지.”
“진정 양선을 위하고 싶었다면, 그래서는 안 되었다.”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후회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이렇게나 심각한 얘기를, 이렇게나 진지하게 꺼내신 건.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실책은, 양선을 무조건 가주로 세우고자 한 내 편협함이다.”
“아, 아버지.”
“능력이 되지 않는 자, 가주의 자리를 버틸 수 없다. 나는 양선이 충분한 능력을 갖추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녀석에게 힘과 독함을 가르쳤을 뿐,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는 가르쳐 주지 못한 것 같다.”
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훗날 다시 가문으로 돌아가면, 양선의 소가주 직위를 박탈할 생각이다.”
“……!”
당상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선대의 관여를 물리치고 가주로서의 권력을 공고히 한 당관은, 전대 가주 당형에 이어 역대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쥔 가주가 되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권력이 강해도 한번 정한 후계자 자리를 박탈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정치적으로 무리를 하는 것이란 말이다.
나아가, 당가의 역사와 싸우는 일이기도 했다. 부득이하게 후계자가 죽거나 불구가 되지 않는 한, 한번 정해진 후계자 자리를 박탈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정확히는, 양선이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면 후계자 자리를 박탈할 것이다.”
“위험하진 않을까요?”
“골치 아픈 일이 많이 터지겠지. 특히 원로들의 반발이 심할 것이다. 어쩌면, 당가의 역사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가주 실격이라는 말까지 나올지도 모른다.”
“그건…… 그건 너무한 발언이에요.”
“물론 늙다리들의 반발로 무너질 내가 아니다. 다만, 그리되면 당분간 내 기반이 꽤나 흔들릴 수도 있다.”
당관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것을 감수하기로 했다. 내 자식을 위해서도, 가문을 위해서도.”
당상아의 얼굴에 걱정이 깃들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가주위에 오른 이후 가장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이리라.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치열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당상아가 고개를 숙였다.
“아무런 힘이 되지 않겠지만…… 저는 아버지를 응원해요.”
“그렇지 않다.”
“네?”
“충분한 힘이 된다.”
“……!”
부녀 사이에 짧은 침묵이 어렸다.
이내 당관이 말을 돌렸다.
“조만간 연호정이 온다고 하더구나.”
“아, 네.”
당상아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발언이 몹시 기뻤던 것이다.
“모용우는 오지 않는다고 하더군.”
“그렇군요.”
“아쉽지 않으냐?”
당상아가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닌걸요.”
당관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모용가주는 빈말로도 좋은 인간이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모용우는 달라. 집안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사람만 따지자면 그 녀석도 배필감으로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런 말까지 하시는 걸 보니, 정말 많이 바뀌시긴 한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갈 생각이에요. 연이 아니라면 이어지지 않겠지요. 반대로 인연이라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이어지지 않겠어요?”
“틀렸다. 인연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는 단어에 홀리지 마라. 관계란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빛을 비춰 주지 않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당관 역시 딸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으니까.
“네 나이가 적지 않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거침없이 뛰어들어라.”
당상아는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어 버렸다. 거침없이 뛰어들라니? 참으로 아버지다운 표현이었다.
“그나저나, 연 대수만 귀환하는 이유가 있나요? 임무가 끝났으니 의정군도 함께 귀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광동이 안정화될 때까지 의정군은 그곳에 머무를 것이다.”
“그럼 연 대수는 왜……?”
당관의 눈이 차가워졌다.
공포로 사천을 뒤흔들었던, 실로 그다운 눈빛으로 돌아온 것이다.
“미꾸라지를 잡아야 하니까. 이번만큼은, 나 역시 녀석을 좀 도와줘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