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화. 진실을 찾는 여정 (7)
“호오, 시작되었구만.”
싸움터에 도착한 연호정과 정안, 그리고 삼십여 명의 무사들이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공격에 성공한 모양이군.”
먼 거리였지만 연호정의 날카로운 눈은 전홍의 상체와 어깨에 새겨진 검상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정안의 눈이 빛났다.
“굉장한데요?”
“누구? 강량?”
“네.”
“어떤 면에서?”
“저 남자, 지나치게 사나워서 그렇지, 육체의 강도가 굉장해요. 호신기(護身氣)가 근육 한 올, 한 올에 스며들어 어지간한 검사의 일격으로도 긁힌 상처 하나 내기 힘들 것 같아요.”
“잘 봤어.”
“그런 고수의 몸에 두 번이나 검상을 새길 정도면, 강 검사의 검력(劍力)이 얼마나 날카롭다는 뜻이겠어요.”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카롭지. 날카롭고말고. 흑철(黑鐵)의 귀검(鬼劍)은 절단과 압박에 있어서 천하를 논할 만한 검이다. 연성하기는 어렵지만, 경지에 달하면 정면 승부에서 그만한 무공을 찾기도 힘들어.”
“대단하군요.”
“대단하지만, 말했듯 경지에 이르기가 어렵다. 무공이란 근본적으로 복수의 요소를 구현하기 힘들어. 빠르면 무게감이 떨어지고, 예리하면 연약할 것이며, 부드럽다면 강할 수가 없지.”
연호정의 눈이 빛났다.
저 멀리, 강량이 휘두르는 귀신 같은 검법이 찢어지는 귀곡성(鬼哭聲)을 내고 있었다.
“그런 것은 개인의 깨달음으로 얻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고위의 무리(武理)를 신공으로 녹여 낸 게 흑철귀검이야. 하나를 제대로 얻기도 힘든 세상이다. 두 개는 오죽할까.”
“입문 난이도가 엄청나겠는데요.”
“그래도 다행이지. 귀검의 입문이라는 귀영검을 대성했으니, 이제 날개만 달면 돼.”
강량에게 시선을 집중했던 연호정이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양일을 필두로 한 삼십여 명의 무사들이 엉거주춤 서 있었다.
연호정과 정안이 무방비하게 등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들은 언감생심 기습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주루에서 보여 준 연호정의 한 수는 그렇게나 충격적이었다.
그렇다고 주인으로 모신 전홍을 버려 두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 그야말로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가만히 그들을 보던 연호정이 피식 웃고는 다시 싸움터로 고개를 돌렸다.
후우우우웅.
시뻘건 진기와 함께 사나운 살기를 드리우는 전홍.
그리고 그 앞에, 고요한 신색으로 무형의 힘을 모으는 강량이 있었다.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 놈이다. 깔끔하게 밟고 넘어와라.”
콰아앙!
전홍의 공격 수단이 변했다.
잡고 찢고 조르는 특유의 체술에 더불어 파괴력 넘치는 권법까지 구사하는데, 그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땅에 구덩이를 만드는군.’
강량은 그 파괴력에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저 정도 흔적이야 마음만 먹으면 자신도 낼 수 있다. 문제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홍의 주먹은 평타 한 방, 한 방이 저런 위력을 낸다. 자칫 스치기만 해도 뼈가 부러지고 내상을 유발할 위력이었다.
“이 새끼!”
전홍이 괴성을 지르며 연신 주먹을 휘둘렀다.
“쥐새끼처럼 도망만 칠 생각이냐!”
콰르르릉!
뿜어져 나오는 권풍에 대기가 뒤흔들렸다.
막강하기 그지없는 권법, 바로 양천의 여러 절기 중 하나인 쇄암신권(碎巖神拳)이었다.
양천의 진신절기는 총 세 개였다. 그러나 그것은 양천이 자신에게 맞는 절기들을 추려 발전, 변형시킨 것일 뿐 그가 알고 있는 무공은 여럿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홍이 구사하고 있는 괴암무(怪巖武)였다. 육장(肉掌)의 파괴력과 진중한 공격력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공으로, 능히 구파의 비전에 비견될 만한 절학이라 하겠다.
화아아아악! 콰르릉!
전홍이 선보인 건 권법만이 아니었다.
특유의 유연한 체술을 이용, 쭉 뻗어 내는 다리로 거목 하나를 통째로 분질러 버리는데, 그 탄력과 힘이 굉장했다.
쇄암신권에 이은 타암각(打巖脚)이었다. 극에 이르면 각법으로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까지 구현할 수 있다는 극상승의 무공이었다.
파아아앙!
허깨비처럼 전홍의 공격을 피하던 강량이 일순 벼락처럼 움직였다.
피슉!
전홍을 지나쳐 허공으로 날아오른 강량의 모습은 한 마리의 새와 같았다.
빠른 이동 속도, 거기에 맞물린 귀검일참이 전홍의 몸에 또 하나의 검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번 검상은 이전의 검상보다 깊이가 더 얕았다. 혈사자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린 채 괴암무를 발동한 전홍의 몸은 가히 도검불침의 강도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량은 실망하지 않았다.
전홍이 재차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이 정도로는……!”
콰아앙!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전홍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전홍의 눈이 빛났다.
‘장법?!’
원거리에서 쏘아진 장법은 쇄암신권의 발출 순간을 노리고 폭발했다.
덕분에 발경과 권풍이 그대로 무산되었다. 적은 힘으로 큰 힘을 증발시키는 기가 막힌 술수였다.
‘이놈.’
쾅!
진각과 함께 거리를 좁힌 전홍이 쌍장을 휘둘렀다.
화아아악!
재차 거리를 벌리려던 강량은 순간 강한 흡입력에 신체의 자유가 박탈되는 걸 느꼈다.
혈사자기의 혈풍인(血風引)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내공력으로 구사되는 혈풍인은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했다.
강량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떻게든 자세를 낮춰 버티려 했지만, 점점 전홍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굉장한 내공이군.’
힘으로 버티고 있는 자신을 끌어당길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저 술수 자체가 신묘했지만, 그만큼의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만한 위력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전홍이 씨익 웃었다.
“드디어 잡았다, 망할 쥐새끼.”
후우우우웅! 후우우웅!
쌍장으로 혈풍인을 발현한 그가 오른 주먹을 쥐었다.
위이이잉!
그의 우권(右拳)에 막강한 힘이 모여들었다. 쇄암신권의 힘이었다.
놀라운 능력이었다. 혈풍인 자체가 내공 소모가 극심한 무공이었다. 하물며 구결과 내공 운용이 복잡해서 다른 무공과 겸하는 게 어려웠다.
어디 혈풍인뿐이겠는가. 종류가 다른 무공을 동시에 구현하는 것은 누구라도 어렵다. 한데 그 어려운 일을 전홍은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무종지벽을 돌파하지 못한 경지로.
‘천재군.’
강량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홍의 재능을.
재능도 놀랍지만, 노력도 엄청났을 것이다.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다고 가능한 술수가 아니었다.
‘적어도 자존심만 센 철부지는 아니라는 것이지.’
전홍이 광기 어린 조소를 터트렸다.
“끝내자!”
쾅!
허공을 격한 쇄암신권의 권풍이 강량을 향해 쏘아졌다.
혈풍인의 인력, 부자유스러운 신체, 그 틈을 노린 막강한 권법까지.
제아무리 강량이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
찰나에 찰나를 쪼갠 순간, 전홍은 좌수에서 전해지던 강한 저항감이 싹 사라지는 걸 느꼈다.
파아아앙!
인력에 저항하던 강량이 도리어 신법을 구사하며 전홍에게 달려들었다. 빨아들이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속도를 더한 것이다.
놀라움의 순간이었다. 달려오는 방위까지 틀었기에 쇄암신권의 권풍마저도 빗나가 버렸다.
‘역시.’
어느새 강량은 전홍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의 검은 정확하게 전홍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피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이미 예측하지 않았다면.
‘네놈 잔머리라면 이런 짓을 벌일 수도 있을 거라 예상했다.’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여 불의의 일격을 날린다?
어지간한 용기가 없다면 시도조차 못 할 일이다. 하지만 강량은 그처럼 위험천만한 일을 감행했다.
문제라면, 전홍이 이미 그것을 내다보고 있었다는 것.
우르릉!
쇄암신권을 내질렀던 전홍의 팔이 접히며, 그의 팔꿈치가 강량의 검을 노렸다.
무척이나 시기적절한 순간이었다. 강량은 검사, 검만 부러트린다면 전투력은 급감한다.
겉보기와는 달리 전홍 역시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알았던 것이다.
‘이걸로 끝이다!’
바로 그때였다.
두웅.
전홍의 눈이 커졌다.
팔꿈치에 맞은 강량의 검은 부러지지 않았다. 아니, 부러지기는커녕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검을 놨어?!’
전홍의 시선이 강량에게 닿았다.
검을 놓은 강량, 그의 왼손이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
수도(手刀), 수검(手劍)이었다.
‘이……!’
느려졌던 시간이 일순 무서운 속도로 빨라졌다.
파바바바바박!
“크윽!”
섬광처럼 뿜어진 무수한 참격에 전홍의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무서운 참격이었다. 맨손 육장으로 구사하는 검법, 귀검신수(鬼劍神手)의 발현이었다.
전홍의 눈이 흔들렸다.
상체를 거미줄처럼 긋고 지나간 검상은 상당히 깊었다. 뿜어져 나온 출혈량 또한 굉장했다. 일순간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미친!”
퍼어억!
강량의 발끝이 전홍의 목젖을 후려쳤다.
제아무리 도검불침의 신체라도 목과 안면의 방호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전홍이 토사물 비슷한 것을 쏟아 내며 비틀거렸다.
전홍의 목젖을 후려치고 회수된 강량의 발이 땅에 떨어진 검병 끝을 찍었다.
치리리링!
청량한 소리와 함께 떠오른 검이 어느새 강량의 코앞으로 떨어졌다.
꾸욱!
강량이 양손으로 검을 쥐었다.
한 손이 아닌 양손, 결전의 순간을 읽은 강량의 귀왕진기(鬼王眞氣)가 그의 대검에 시커먼 아지랑이를 피워 냈다.
흑철귀검의 귀살검(鬼殺劍), 발동이다.
무정하기 그지없던 강량의 두 눈이 일순 시퍼런 인광(燐光)을 발했다.
“참(斬)!!”
번쩍!
휘황찬란한 검광 한 줄기가 전홍의 오른팔을 관통했다.
푸화아아악!
깔끔하게 잘려 나간 팔 하나가 땅으로 떨어졌다.
전홍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고통도 고통이지만, 신체 일부분을 잃었다는 심리적 충격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 충격은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곧 살의가 되어 강량에게 쏟아졌다.
“육시랄 놈!”
혈풍인을 푼 전홍이 재차 쇄암신권을 휘둘렀다. 그 와중에도 내공 운용의 속도와 무공 구현의 박자가 뛰어났다. 확실히 대단한 인재였다.
강량의 눈이 빛났다.
“망(網).”
파바바바바바박!
신들린 듯 휘둘러진 귀살검, 귀살망의 초식이 전홍의 전신에 또 한 번 거미줄과 같은 검상을 만들어 냈다.
푸화악!
대량의 피가 터져 나왔다.
제아무리 단련된 몸뚱이라도 이 정도 출혈 앞에서는 버틸 수 없다.
쿵!
비틀거리던 전홍이 이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다.
잔뜩 일그러진 전홍의 얼굴은 실로 형용키 어려운 감정을 담고 있었다.
“이, 이런…….”
너무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피를 많이 흘려서 눈이 자꾸만 감기고, 의식도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내가…… 이런 잡놈한테……!”
강량이 피식 웃었다.
“글쎄다. 아무래도 잡놈은 네놈 같은데?”
그가 발길질로 전홍의 턱을 갈겨 버렸다.
빠각!
피를 토하며 뒤로 벌러덩 넘어간 전홍이 결국 의식을 잃었다. 이빨 대여섯 개가 부러지고 턱뼈에 금이 갔지만, 그 고통에도 전홍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확실히 강인한 신체였다. 혈사자기로 보호하지 않았는데도 턱뼈가 부서지지 않았다.
스르릉.
납검한 강량이 쓰러진 전홍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대로 팔 하나 가져간다. 젓가락질부터 다시 배워라.”
더는 볼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린 강량이 연호정에게 걸어갔다.
연호정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강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죽일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고 본 거다, 인마.”
“한데 저놈들은……?”
“아, 쟤네들?”
연호정이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극심한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표행원들이다. 선물 포장 끝났으니 우리 양 부주께 보내 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