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화. 진실을 찾는 여정 (6)
강량의 질주는 몹시도 빨랐다.
자신보다 열 관은 더 나가는 거한의 멱살을 쥐고 있음에도 그의 신법은 느려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기세를 탄 듯 더 빨라지는데, 마치 한 줄기 질풍을 연상케 했다.
전홍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이 새끼가.’
감히 자신의 멱살을 잡은 것도 모자라, 벽을 뚫고 나와 몰아치고 있었다.
어떠한 내외상도 없지만, 자존심에는 굉장한 상처를 입었다. 처음 멱살을 잡히고 밀리는 순간, 그 힘이 너무 굉장해서 막지도 못했다.
벽을 뚫고 건물 하나를 넘어가서야 전홍은 자신의 양손을 움직일 수 있었다.
파악!
전홍의 양손이 자신의 멱살을 쥔 강량의 팔뚝을 잡았다.
덩치만큼이나 손도 크고 두툼한 그였다. 단련된 강량의 팔뚝 대부분이 그의 손에 뒤덮였다.
우둑!
전홍의 아귀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잡힌 팔뚝을 그대로 부러트릴 듯 무시무시한 악력이 전해져 왔다.
그때, 강량이 상상 초월의 행동을 했다.
빠각!
“컥!”
전홍의 머리가 뒤로 튕겨 나갔다.
코뼈가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혼신의 힘을 다한 박치기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날아갈 뻔했다.
그 틈을 타 전홍의 멱살을 쥐었던 손을 푼 강량이 양발로 그의 가슴을 힘차게 걷어찼다.
퍼억! 콰아앙!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전홍이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사라락!
전홍과는 달리 사뿐하게 내려선 강량이 전홍을 내려다보았다.
“……빌어먹을.”
누운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전홍의 눈빛은 의외로 깊기만 했다.
코뼈가 부러진 아픔에도 직관적인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 상황이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실전임을, 강량의 기습이 알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강량도 누워 있는 전홍에게 검을 내리칠 수가 없었다.
‘빈틈이 사라졌군.’
마음 편히 누워 있는데도 아무런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공격을 가해도 반응할 수 있을 듯한 유연함이 엿보이고 있었다.
파악!
물구나무를 서며 몸을 뒤집어 일어난다.
일련의 동작이 몹시 부드러우면서도 재빨랐다. 덩치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가뿐한 몸놀림이었다.
치이이익!
전홍의 몸에서 주기(酒氣)가 뽑혀 나왔다.
맑아진 눈빛, 형형한 안광에 비치는 차가움이 북해의 빙설과도 같았다.
“과연 반역 문파의 후계자답군. 비겁하기가 승냥이 저리 가라야.”
반역이라는 말은 참으로 듣기가 괴로운 것이다.
하지만 강량은 그 단어를 흘려들었다. 지금은 누가 더 분노하는지를 겨룰 때가 아니라, 누구의 기량이 위인지를 판단할 때였다.
강량은 오히려 전홍의 말을 비웃었다.
“술을 마시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반응할 줄 알아야 진짜 무사인 법이지. 묵룡부에서는 그런 것도 안 가르치더냐?”
“그런 같잖은 발언으로 도발 후 기습하는 게 주 장기인 모양이군. 네놈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비결인가?”
“애송이와 입씨름해 봤자 기운만 빠지겠어. 양천의 제자라길래 조금은 기대했더니만, 결국 스승의 위명만 믿고 설치는 반쪽짜리에 불과했군.”
“……!”
“자세 잡아라. 금방 끝내 주마.”
전홍의 볼이 미세하게 떨렸다.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으려 했지만, 사부를 언급하며 반쪽짜리라 부르는 것만큼은 도무지 참기가 힘들었다.
스르륵.
자세를 낮춘 전홍이 양손을 내밀었다.
마치 무언가를 밀려는 자세처럼 보이기도 했고, 잡아 뜯으려는 자세처럼 보이기도 했다. 살짝 오므라진 그의 양손은 보검보도(寶劍寶刀)만큼이나 위험해 보였다.
전홍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꽤나 참혹하게 죽었다고 하더군. 네 부모 말이다.”
“…….”
“걱정하지 마라. 네놈은 고이 보내 줄 테니.”
“이심전심이군. 나 역시 널 양친 곁으로 보내 주마. 어? 근데 설마 양친께서 살아 계신 건 아니지?”
“…….”
“미안. 오해했다.”
전홍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적어도 도발에 있어서는 강량이 한 수 위인 듯했다.
“죽일!”
파아아아악!
강량의 동공이 확 커졌다.
‘빠르다.’
작정하고 승부에 임한 전홍의 돌진은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표범에겐 늑대만큼의 체력도, 치악력도 없다. 하지만 순간의 돌진력과 사나움은 늑대 이상이다.
전홍의 기세가 그러했다. 짧은 거리를 순간적으로 좁히는 보법은 야생 동물, 그것도 범의 그것과 비슷했다.
전홍의 손이 강량의 목덜미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쉬이이이익!
후려치듯 허공을 베어 내는 손짓은 마치 고양잇과 맹수의 앞발질과 같았다.
‘조법(爪法)이군.’
주먹을 쥔 것도, 손을 편 것도 아닌 형태.
조법, 상대를 잡을 수도 있고 할퀼 수도 있으며, 내공력이 충만하다면 살점이든 뼈든 그대로 뜯어낼 수 있는 잔혹한 수법이었다.
전홍의 눈이 빛났다.
첫 일격을 피한 강량이 자신의 우측으로 돌아간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의 발이 강량의 얼굴을 향해 휘둘러졌다.
파아아아앙!
굵고 긴 다리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는 섬뜩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각법을 시전하기 애매한 자세였음에도 타격의 순간에는 어느새 완벽한 자세로 돌변했다.
‘신체의 균형이 대단하군. 탁월한 완력에 수준 높은 유연성, 거기에 짐승처럼 예민한 감각이라.’
파아악!
전홍이 어느새 후방으로 회피한 강량을 향해 돌진했다.
이번 각법은 유난히 동작이 컸다. 그런데도 곧장 자세를 변화시켜 따라붙는데, 그 속도가 눈이 부실 정도였다.
강량은 순수하게 전홍의 기량에 감탄했다.
‘한 마리 짐승이 따로 없다. 체술의 완성도만큼은 연 형님에 비해도 크게 모자람이 없을 거야.’
연호정의 체술을 수도 없이 봐 온 강량이었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연호정의 박투술은 가르친다고 다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전미가 살아 있는 그 박투술은 철저한 경험과 무자비한 결단력, 신체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입문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 전홍의 체술은 고도의 무리(武理)로 쌓아 올린 신공(神功)이었다. 배운다면 누구나 입문은 가능하지만, 전홍만큼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줌도 되지 않을 것이다.
‘절학(絶學)이다. 박투술에 있어서만큼은 흑도제일을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과연 양천의 무공이라 이건가?’
감탄은 감탄일 뿐이었다.
재빨리 회피해 내는 강량에게 화가 난 건지, 전홍의 공격이 한층 사나워졌다.
찌이이이익!
간발의 차로 피해 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전홍의 손에 무복 소매가 길게 찢어졌다.
섬뜩한 순간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팔뚝이 잡혔을 것이고, 팔뚝이 잡힌 순간 그대로 팔 하나가 망가졌을 것이다.
강량의 몸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순간 전홍의 안광도 새빨간 빛을 토해 냈다. 드디어 강량이 공격을 감행하는가 싶었던 것이다.
후우우우웅!
전홍의 예측은 틀렸다.
귀신 같은 움직임으로 전홍의 어깨를 타 넘은 강량은 검을 쥔 채 그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홍이 고개를 돌려 강량을 보았다.
빤히 등을 보이고 있는데도, 강량은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다.
“뭐 하자는 거냐.”
강량은 대답하지 않았다. 왼손에는 검집을, 오른손으로는 검병을 쥐고 있는 그의 의식은 전홍의 움직임에 집중되어 있었다.
전홍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세는 제법인데 싸울 줄은 모르는 건가?”
이번에도 강량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전홍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몇 번의 움직임으로 전홍의 대략적인 움직임을 파악해 낸 것이다.
전홍의 눈에서 이채가 발해졌다.
‘읽은 건가.’
강량의 눈이 자신의 어깨, 호흡, 발의 위치 등을 끊임없이 살피고 있었다.
‘집중하고 있군. 나에게.’
전홍이 몸을 돌렸다.
콰앙!
힘차게 땅을 밟은 전홍의 자세가 이전보다 더 낮아졌다.
“음침한 놈은 딱 질색이야.”
“…….”
“그 눈알, 확실하게 뽑아 주지.”
이번에도 여전히, 강량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끊임없이 전홍의 움직임을 주시할 뿐.
후우우우우웅.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더운 날씨인데도 바람은 찼다. 두 사람의 첨예한 기도가 일대의 온기를 앗아가 버린 것이다.
‘…….’
반 각이 반 시진처럼 느껴질 만큼의 침묵 끝에 먼저 움직인 것은 강량이었다.
사락.
그의 발이 반의반 보 앞으로 움직였다.
순간 전홍의 살기가 폭발했다.
퍼어어어엉!
땅을 박찬 전홍이 어느새 강량의 전권 안으로 진입했다.
그야말로 무서운 속도였다. 이전의 그가 보여 주던 것과는 판이한 움직임이었다.
심지어 경동맥을 노리는 조법 역시 훨씬 빠르고, 훨씬 날카로웠다. 강량이 검을 뽑아 휘두르기도 힘든 거리였다.
‘이겼다.’
전홍은 승리를 확신했다.
‘이 거리에서는 검을 뽑을 수 없어.’
그때, 강량의 눈이 번뜩였다.
화아아아악! 콰아앙!
허공을 할퀸 전홍의 손, 그 손에서 풀려나온 발경이 대지에 길고 깊은 흔적을 만들어 냈다.
전홍의 눈이 흔들렸다.
촤아아아악!
동시에 그의 상체에 사선의 검상이 새겨졌다.
강량의 참격이었다. 절대 검을 뽑을 수 없는 근거리에서, 귀신처럼 발검 후 참격까지 가하곤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제대로 안 들어갔군.”
파악!
전홍의 상체를 벤 즉시 좌측으로 이동했던 강량이 재차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둘렀다.
전홍의 움직임이 이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면, 강량의 움직임은 그보다 반 박자가 더 빨랐다.
번개처럼 빠르고 귀신처럼 기괴하다. 흑철검문 최고의 보법, 귀영신보(鬼影神步)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파라라라락!
이제야 본 실력을 보여 주겠다는 듯, 허공에 무수히 많은 검영(劍影)을 피워 내며 전홍을 압박하는 강량의 검술은 아름다울 정도였다.
이내 그 아름다움이 도를 더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음험해졌다.
귀검(鬼劍)의 제일 경지, 극치에 달한 귀영검(鬼影劍)이 허공에 환상을 그려 내고 있었다.
카카카카카캉! 서걱!
전홍의 두 손은 강철처럼 단단했다. 신들린 속도와 예리함을 보여 주는 검격을 모조리 쳐 내는데, 어깨와 상체의 유연성이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홍의 어깨에는 꽤 깊은 검상이 새겨져 있었다.
파악!
전홍의 손을 피해 거리를 벌린 강량이 입맛을 다셨다.
‘몸이 너무 단단해.’
근거리에서 가한 참격, 그리고 이번에 들어간 귀영검은 바위도 절단 낼 만큼 날카로운 검격이었다.
상체가 쪼개지고 팔 하나가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검력(劍力)인데, 전홍의 상체와 어깨에 깊은 검상을 새기는 데에 그친 것이다.
‘아쉽군.’
강량은 아쉬움을 토했지만, 전홍은 달랐다.
“이…… 이 쓰레기가!”
화르르르륵!
전홍의 몸에서 시뻘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양천의 신공, 혈사자기(血獅子氣)였다. 무종지벽을 돌파한 부선만큼 깊지는 않았으되, 그 사나움만큼은 부선을 압도하고 있었다.
“멸문한 쓰레기 문파의 후예 따위가 내 몸에 칼질을 해?!”
실력이 비슷해도 압도할 수 있다. 전홍은 강량을 자신의 상대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양천의 제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자신이 배운 무공이 천하를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데 고작 흑도 무림에서나 인정받았던 검법 따위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것이 전홍의 자존심을 또 한 차례 찢어발기고 있었다.
“세 합 안에 죽여 주마!”
파아아앙!
혈사자기를 폭발시키며 돌진하는 전홍의 위압감은 강량조차도 쉬이 받아 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럼에도 강량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내세울 게 배운 무공에서 끝나는 정도라면, 넌 죽었다 깨어나도 날 못 이겨.’
지이이이이잉!
강량의 검이 울음을 토해 냈다.
그 소름 돋는 검명(劍鳴)은, 어느새 귀영검이 귀살검(鬼殺劍)의 힘을 품었음을 뜻했다.
강량의 검과 전홍의 손이 충돌했다.
콰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