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백무제-426화 (425/963)

426화. 사신(四神)으로 엮인 과거 (1)

눈을 감고 검을 세운 연위의 모습은 마치 한 그루의 대나무와 같았다.

당관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당상아는 긴장 가득한 눈으로 연위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스르륵.

나뭇잎 하나가 살랑이며 연위의 어깨에 닿았다.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뜨이며 태양처럼 강렬한 빛을 토해 냈다.

번쩍!

한 줄기 섬광이 번뜩인다 싶더니.

쩌어어엉! 쿠르르르릉.

무려 십 장 밖의 바위가 사선으로 갈라졌다.

“흐음.”

워낙 내공이 심후하고 안력(眼力)이 좋아서, 십 장 밖 거리라도 바위의 절단면을 세밀하게 살필 수 있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봐 줄 만하군.’

절대일검의 범용성을 넓혀, 자격(刺擊)에 이은 참격(斬擊)에 검력을 담아 보았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거듭된 노력이 결국 지금의 위력을 선물했다. 연위는 절대일검을 만든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낸 결과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가 당관과 당상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소?”

당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청난 검기(劍技)임에는 분명한데.”

연위의 눈이 빛났다.

당관의 성격상 저렇게 칭찬부터 나오진 않는다. 분명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것이다.

“발출과 참격, 회수까지의 과정은 흠잡을 데가 없는 듯하지만…… 힘의 흐름이 아쉽군.”

“힘의 흐름이라면?”

“이건 당문의 문인들과 검사의 차이점일지도 모르겠소. 다만 나라면, 그리 단정한 투로가 아닌 유검(柔劍)을 섞어 상대의 공격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참격으로 가닥을 잡았을 것 같소.”

“……음.”

당관이 오른손을 쫙 편 채, 왼손 검지를 들었다.

“이렇게 상대가 공격을 가하면.”

왼손 검지가 오른손을 향해 직선으로 나아갔다.

“연가주의 참격은 마주 부딪쳐 깨부수고 절단해 버리는 형식이지만, 그리되면 자칫 시전자에게도 충격이 전해질 수 있소. 그러니…….”

당관의 오른손이 왼손 검지를 유선으로 휘돌아 왼손 손목을 잡아챘다.

“이렇게, 바람에 따라 휘날리는 나뭇잎처럼 상대의 공격을 흘려 내고 몸통에 작렬할 수 있도록 교정해 보는 것이 어떻소?”

“허어.”

연위가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려. 만일 그러한 참격을 구사할 수 있다면, 상대와 부딪치지 않고 먼저 베어 버리는 것도 가능하겠소.”

“바로 그거요. 연가주의 무공이야 의심할 나위가 없지만, 기실 그대의 성정은 지나치게 올곧소. 그 올곧은 성품과 정통의 검학이 정정당당하고 깊이 있는 투로(套路)를 자아내지만, 결국 무공이란 상대를 이기는 데에 그 근본이 있소.”

그것이 당관의 무(武)였다. 싸움을 그치게 하는 것도, 상대의 공격을 완벽히 방어하는 것도 아닌 내가 당하기 전에 상대를 먼저 죽이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무(武)인 것이다.

연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연위는 전방위 어떤 곳에서 날아오는 공격도 모조리 막고 튕겨 내는 것이 일차요, 나아가 상대를 공격하여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것을 둘째로 삼는다.

말 그대로 정통이다. 중원 대부분의 무학이 그러했다. 그중에서도 연위의 무공은 철벽의 위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아서, 압도적인 공격 이전에 완벽한 방어를 주축으로 삼았다.

당관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내 조언대로 검을 완성시킬 필요는 없소. 하지만 구사할 수 있음에도 필요가 없어 펼치지 않는 것과, 구사할 수 없어서 필요할 때도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르오.”

“확실히 당가주의 무리(武理)는 내 무검(武劍)에 어울리지 않게 다소 살기가 짙소이다. 다만, 가주의 말마따나 그 또한 무도(武道)의 일면인바. 큰 도움을 받았소.”

당관이 피식 웃었다.

“그것이 도움일지는 모르겠소. 말이야 쉽지, 어떤 상대의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는 참격을 구사하는 것은, 그대가 지금 그 검을 만들기까지의 과정보다 더 힘들 수도 있소이다.”

“길이 있는데 걸어는 봐야 하지 않겠소? 보다 완벽한, 보다 깊이 있는 검학을 만드는 것이 나의 소원이외다. 내 끝내 삼검(三劍)을 완성하지 못한다 한들, 하나의 검을 허투루 넘기고 싶지 않소.”

연위의 성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손을 대면 끝을 본다. 어쩌면 연호정의 독한 기질은 연위의 그러한 몰입도와 책임감에서 물려받은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보법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오. 연가의 보법 말고, 그 일검에 어울리는 보법 말이오.”

“이해했소. 상대의 공격과 부딪치지 않고 작렬하는 참격은 인상적이지만, 그 전에 상대의 공격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회피기도 있어야 할 테니까.”

“잘 아시는군.”

“고맙소. 덕분에 또 나아갈 길이 보였소.”

당관이 입맛을 다셨다.

“등가교환일 뿐이오. 가주 덕에 만천공의 진기 운용이 더 섬세해졌으니까.”

연호정에게 만천공과 화우공의 살상력을 극대화하는 방법과 그 둘을 일치시킬 수 있는 합일의 무리(武理)를 받았다면, 연위에게는 만천공의 진기를 거미줄처럼 퍼트릴 수 있는 기반을 얻었다.

당관은 설마하니 연씨 부자 두 명에게 이 정도로 큰 도움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각 문파의 무공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이유는 비인부전(非人不傳)의 원칙 때문이었다.

비인부전. 됨됨이가 갖춰지지 않은 자에겐 가르침을 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림 문파에서는 문파에 소속되지 않은 자에게는 문내 무공을 전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타 문파가 본문의 무리를 얻어 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이 무림 문파들의 특성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림은 아차 하는 순간 칼부림이 벌어지는 살벌한 세상이다. 상대가 나보다 강해지는 순간 이쪽을 잡아먹으려 든다.

거기에 정도니 대의니 떠들어 봤자, 당한 사람에겐 일절 의미가 없다. 즉, 당하기 전에 조심하는 것이 첫째요, 상대를 압도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둘째인 것이다.

그래서 작게 시작한 문파가 대문파로 성장할 확률이 극히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껏해야 대문파와 연을 맺어 한 지역의 강성한 문파로 성장하는 것이 대다수 중소 문파들의 바람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확실히 벽산연가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문파와 이렇다 할 교류도 없이 순수한 실력과 협의지심만으로 강동 최강의 무가로 명성을 떨쳤으니까.

또한, 그랬기 때문에 명가에게 먹힐 뻔한 것이다. 다른 문파와 연을 맺지 않은 만큼 그 뒤처리가 깔끔할 테니까.

“앞으로도 자주 교류합시다.”

연위의 말에 당관이 당상아를 힐끔거렸다.

당상아의 표정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연위가 보기에 괜찮은 일검이었고 당관이 보기엔 아쉬운 일검이었지만, 당상아에게 있어 이번 일검은 말 그대로 절대일검(絶代一劍)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위력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 어떤 무공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검. 파괴력이 넘친다거나 지극히 예리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일단 뽑으면 모조리 베어 버린다.

단순하면서도 막을 수 없는 일검이 당상아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동시에 그녀를 매료시켰다.

검이란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내 무공 교류는 안 되오. 다만 당신이나 나나 새로운 무학을 만드는 처지이니, 그에 한해서는 머리를 맞대어 봅시다.”

연위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도록 합시다.”

말은 그랬지만, 연위는 알고 있었다.

새로운 무공을 창시하는 데에 문파의 무리가 담기는 건 당연하다.

당관의 만천공에는 연가의 진기 운용법 일부가 들어가 있다. 장차 완성될 만천공과 화우공에는 연호정의 파격적인 무리(武理)가 깃들 것이다.

동시에, 연위가 추구하는 절대삼검(絶代三劍)에는 당가의 살상력과 방위 선점에 대한 무리가 가득 담길 것이다.

이미 두 가문은 서로 간 가전 무공의 구결과 법문을 모를 뿐, 특성과 대응법에 대해서는 충분한 교류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교류는 앞으로 더 깊어질 것이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배신하지 않는 이상, 다음 세대의 두 가문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그나저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소.”

“말씀하시오.”

“싸가지, 아니 댁의 큰아들 말이오.”

연위가 미소를 지었다.

“호정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소?”

당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에 한번 대강 들은 것 같기는 한데, 대체 그놈은 무슨 무공을 익히고 있는 거요?”

“아, 호정의 무공 말씀이구려.”

“그렇소. 이모저모 살펴봐도 연가의 무공은 아니외다. 물론 녀석의 재능이야 인정할 만하지만, 그 녀석이 벌써부터 연가의 무공을 재조립해 새로운 무공을 창안한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소.”

“물론 그건 아니오.”

연위가 나무에 기대어 섰다.

납검한 검을 땅에 박고, 검병 위에 두 손을 올려놓은 연위의 자태는 실로 감탄이 나올 만큼 수려했다. 당상아는 검(劍)에 매진하는 무인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 내심 놀랐다.

“호정이 익힌 무공은 사신(四神)의 이름을 딴 무공이오.”

묻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진짜로 말해 줄 줄은 몰랐다.

놀란 와중에도 당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신? 사신의 무(四神武)라고?”

“그렇소.”

“사신의 형상이나 뜻을 따서 만든 무공이 한두 개가 아니긴 한데…….”

“나 역시 알고 있소. 다만, 호정도 우연히 얻은 비급이라 하더이다.”

“호오, 우연히 얻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바로 천하제일의 비급을 손에 넣으면 뛰어난 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진기 도인법, 즉 심법까지는 혼자서도 완성형에 가깝게 익힐 수 있지만, 무공의 투로(套路)나 형식은 비급만으로 배울 수 없다. 백 년에 하나, 천년에 하나 태어날 수준의 천재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당관은 떠올렸다. 연호정의 그 파격적이고도 지극히 실전적인 전투술을.

분명 초식은 초식이되, 일정한 틀이 없었다. 구사하는 무공의 특성은 명확하되, 상황과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그 방식은 지극히 자유로우면서도 완벽했다.

‘엄청난 실전 경험이 없이는 절대 그런 식으로 무공을 구사할 수 없다. 아니, 당대 무림에 어떤 놈도 그 싸가지와 같은 투로를 구사할 순 없어.’

입으로는 항상 욕을 해 대지만, 당관 역시 연호정의 무공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실전 경험을 얻기 위해서는 잘 정제된 투로를 기반으로 한 생사결이 필수다. 그렇다면 녀석에게 연가주 외의 스승이 있다는 뜻인데.’

당관이 연위를 힐끔거렸다.

연위는 담담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숨기는 게 있군.’

당관은 그 부분에 있어서 전혀 서운해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숨기고 싶은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다만, 궁금했다.

‘사신의 무공이라…… 투로 이전에 진기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당해도, 당해도 끝까지 일어서서 적을 도륙 낼 것 같은 독함이 느껴졌어.’

당관의 눈이 빛났다.

‘분명 오랜 세월에 걸쳐 연마된 무공일 것이다. 삼사백 년 수준이 아니라, 어쩌면 소림에 필적할 만큼의 세월이 담겼을 수도.’

* * *

“좌포정사 어르신.”

“무슨 일이냐.”

“그, 그것이…….”

“어찌 그리 말을 더듬는가?”

호위대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그 무림인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종명의 얼굴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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