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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무제-407화 (406/963)

407화. 뒤흔들다 (1)

묵비의 참전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퍼퍼퍼퍼펑! 퍼어엉!

직사(直射)와 곡사(曲射)가 정신없이 소방의 몸을 노렸다.

평소라면 이 정도 사격이야 거리를 벌려 피하거나 빈틈을 노려 뚫고 들어갔을 것이다. 쉽진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 소방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죽일!’

퍼퍼퍼펑! 사악!

소방의 소매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대응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었다. 활잡이 하나가 참전했다고 다섯 창병들이 뿜는 진세가 더 강해졌는데, 그물망처럼 전신을 휘감는 진세의 끈끈함에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대체 이 진법은 뭐지?!’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같은 수에 당하지 않기 위해, 진법과 마주하기도 전에 원거리 공격으로 이년들을 잡으려 했다.

한데 그게 불가능했다. 이미 진형을 형성한 채 달려오고 있었기에, 장력이 진세에 가까워질수록 힘이 퍽퍽 깎여 나갔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원거리 공격을 감행했지만, 저 다섯 창병은 기가 막힌 합동술로 격공장을 막아 갔다.

‘본교에도 이런 진법은 없다. 광혈과 신화에도 이런 진법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어.’

소방이 이를 갈았다.

이건 반칙이다. 주먹질 한 번으로 손쉽게 죽일 수 있는 하수 다섯에 불과한데, 고작 진법을 형성했다고 반신사도의 경지를 코앞에 둔 고수를 막아?

이게 정녕 가능한 일인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콰아앙!

거센 충격파와 함께 소방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진기의 흐름이 더 느려졌다. 체력은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었고, 발경술의 위력도 본래보다 삼 할은 더 깎인 듯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이전처럼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지? 도무지 방법이…….’

순간 소방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해도 적을 죽일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 순간, 그녀의 머리에 떠오른 하나의 단어가 있었다.

도주.

“……씹어먹을!”

화르르르륵!

극단적인 분노에 혈음사기가 한층 더 맹렬하게 타올랐다.

소방이 광기 어린 외침을 토해 냈다.

“고작 너희 벌레 같은 놈들 때문에, 이 내가 물러날 성싶으냐!”

콰콰쾅!

이번 장력은 실로 거셌다.

왈칵!

송연경과 창병 둘이 피를 토했다.

진법을 형성하는 건 훈련만 독하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진력은 구성원의 내공과 깨달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멸사군에 들어오기 전부터 아미에서 합동술을 연마한 창수들은 멸사군 내에서도 소수 진법으로는 최강의 위력을 자랑했다.

그 정도라도 되니 소방의 일방적인 공격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군병들이었다면 진즉에 진이 무너졌을 것이다.

“다 죽여 버리겠다!”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달려들던 소방은, 순간 창병들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어?’

찰나의 찰나를 쪼갠 순간.

소방의 예민한 감각에 진세가 흐트러지는 것이 잡혔다.

‘흔들린다? 진세가?’

그제야 소방은 깨달았다.

‘그렇군. 저년들에게도 한계가 온 것이야!’

정답이다.

멸사삼살진은 대(對) 고수전(高手戰)에 있어서 지극히 뛰어난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진법이라 한들 이 정도 역량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명확한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를 넘으면 시전자에게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

삼살진의 한계란 곧 시전 시간이었다.

몇 명의 인원으로 극상승의 고수를 상대할 수 있지만, 진세를 형성하는 기운 자체는 구성원의 내공에서 나온다.

그 내공을 이 정도로 부풀리기 위해선 폭발적인 진기 상승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 진기 상승은 극심한 피로를 유발하고, 한계 시간이 넘어가면 시전자에게 지독한 내상을 입힐 수 있다.

말하자면 등가 교환(等價交換)이다. 극단적인 힘의 상승을 불러오되, 한계를 넘어서면 구성원을 죽일 수도 있는 진법이다.

그래서 삼살(三殺)이다. 상대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아니면 적아 모두가 죽거나.

그리고 지금, 다섯 창병은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파아아아앙!

소방이 십 장 밖으로 물러났다.

도주하려는 게 아니었다. 저 진법이 알아서 와해될 수 있도록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묵비가 다급하게 활을 날렸다.

파파파파파팡! 퍼어엉!

여섯 발은 막았지만, 마지막 한 발은 제대로 막지 못했다. 소방의 어깨에서 폭음이 터졌다.

하지만 괜찮다. 자신의 힘이 떨어지기 전에 죽이는 공격전에서, 상대의 힘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방어전으로 바꾸는 와중이었다. 이 정도 충격은 이 악물고 참아 낼 수 있었다.

파아아아악!

묵비가 하늘을 날았다.

상대가 이쪽 진법의 약점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진법이 깨지기 전에 압도적인 공격력을 퍼붓는 수밖에 없었다.

펑! 퍼퍼펑! 퍼어엉!

신들린 궁술로 공격하는 묵비, 변칙적인 경신술로 회피하는 소방.

그 사이에서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던 진세가 점차 힘을 잃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툭! 투둑!

소방의 눈이 빛났다.

자신의 몸을 묶은 거미줄과 같은 진세가 한 가닥, 한 가닥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화아아아악!

느려졌던 진기 흐름이 일순 급격하게 빨라졌다.

콰앙!

이번만큼은 묵비의 화살을 피하지 않았다. 소방의 장력이 묵비의 무형탄 한 발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묵비의 눈이 흔들렸다.

투두두두둑! 투두둑!

소방을 옭아매던 삼살진의 진력이 절반가량 끊어져 버렸다.

화르르르르륵!

혈음사기의 영역이 두 배나 더 확장되었다.

소방은 숨이 탁 트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야 자신의 본 실력을 보여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개 같은 년들! 오래 기다렸다!”

번쩍!

소방이 묵비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진기의 흐름이 빨라지자 반응도 빨라졌고, 그만큼 힘의 밀도도 올라간 것이다.

번쩍!

묵비가 땅으로 내려섰다.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소방의 손에 목이 꺾였을 것이다.

“빠르구나, 궁사.”

파아아악!

아직까지는 묵비보다 느리다. 하지만 따라잡는 정도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소방이 무서운 속도로 묵비에게 다가왔다. 이제 저 다섯 창병은 신경도 쓰지 않는 그녀였다.

‘저년만 잡으면……!’

그때였다.

‘……?!’

무섭게 확장되는 궁사의 얼굴, 그 표정이 묘했다. 마치 이렇게 다가올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 소방은 좌우와 상단에서부터 은밀하게 다가오는 살기를 느꼈다.

퍼퍼퍼퍼퍼퍼펑!

허공에서 격한 폭발이 일었다.

보이지 않는 무형탄을 사방으로 쏘아 내 그물을 형성, 진기로 조종하여 휘어잡는 구룡파천궁의 용살신망(龍殺神網)이었다.

화살과 무형탄, 두 가지를 전부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초식과는 달리 용살신망은 오직 무형탄으로만 구사할 수 있었다. 이유인즉, 기(氣)를 철저하게 조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무종지벽을 돌파한 후, 처음으로 구사해 보는 절정의 궁술.

‘잡았나?’

허공을 보던 묵비는 순간 이를 갈았다.

‘제길!’

그녀가 용비순행을 펼쳤다.

파아아악! 콰아앙!

묵비가 서 있던 땅에 큼직한 구덩이가 패었다.

“망할 년!”

쿠웅!

바닥에 내려선 소방의 몰골은 가관이었다.

몸 곳곳이 무형탄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찢어지거나 터졌다. 온몸이 피 칠갑이 된 것이다.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피를 많이 흘렸다.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다는 말이었다.

사아아아아아악!

어느새 삼살진의 진세가 거의 다 끊어져 버렸다.

후우우우우웅.

소방의 상처에서 피가 멎었다. 혈음사기의 공능으로 일제히 지혈을 한 것이다.

송연경이 이를 악물었다.

“모두 힘을 내! 어떻게든 묶어 놔야……!”

그때, 묵비가 소리쳤다.

“안 돼! 그러다 너희가 죽어!”

“묵 부장님!”

“진세를 풀어라! 차라리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무리는 하지 마!”

“하지만……!”

“다시 말한다! 진세를 풀어! 명령이다!”

묵비의 목소리에는 강한 위엄이 실려 있었다.

송연경이 이를 악물었다.

“……모두, 삼살진을 해체한다.”

스르르르르륵.

삼살진의 진력이 씻은 듯 사라졌다.

“허억!”

“콜록!”

창병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렸다. 그중 두 명은 코와 입에서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이미 한계에 도달해 내상을 입은 것이다.

훅!

활화산처럼 뿜어지던 소방의 진기가 일순간 체내로 응축되었다.

“……오래 기다렸다.”

우두둑!

소방이 어깨를 빙빙 돌렸다.

내상을 입었고, 외상도 꽤 심각했다. 하지만 혈음사기를 온전히 구사할 수 있는 지금, 그런 것들은 더 이상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방이 차갑게 이죽거렸다.

“너부터냐, 활잡이? 아니면 저것들부터 처리해 줄까? 입맛대로 골라 봐.”

묵비는 대답 없이 홍련궁을 들었다.

소방의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삼살진의 진세가 풀린 지금, 전세는 완벽하게 역전되었다. 그건 느껴지는 기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묵비는 괜찮았다.

까드드드드득!

홍련궁이 비명을 질렀다. 활궁강현진기를 있는 대로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아, 너부터? 원한다면 그리하도록 하지.”

묵비가 시위를 놓았다.

콰아아아아앙!

소방의 전면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위력적인 무형탄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스르르륵.

연기가 걷히고, 손을 뻗은 소방의 모습이 보였다. 한 손으로 막아 낸 것이다.

소방의 눈이 깊어졌다.

“재롱은 끝이다, 개 같은 년!”

그때였다.

촤르르르르르륵!

섬뜩한 쇳소리에 소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묵비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재롱은 끝이다.”

치리리리리링!

“헉!”

어느새 날아온 교룡쇄가 소방의 왼팔을 칭칭 휘감았다.

반응조차 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아니, 실제로 거리가 얼마 떨어지지도 않았다.

재차 홍련궁의 시위를 당기며, 묵비가 말했다.

“피하지 않고 막을 줄 알았다. 너의 그 오만함이라면 말이야.”

소방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연호정이 삼 장 거리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

그제야 소방은 깨달았다. 저 궁사가 혼신의 힘을 다해 무형탄을 날린 것은, 저 귀신 같은 놈의 이동을 숨겨 줄 충격파를 생성해 내기 위함이었다는 걸.

소방은 연호정의 눈을 보았다.

어떠한 감정도 엿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무심함의 극치를 달리는 두 눈을.

‘……안 돼!!’

파아아악!

소방이 몸을 뒤로 빼며 혈음사기를 방출, 교룡쇄를 풀려고 들었다.

퍼어어엉!

“카아악!”

복부에 무형탄을 맞은 소방이 괴성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묵비는 자비가 없었다.

퍼퍼퍼퍼펑!

무형탄 오연발이 소방의 몸에 모조리 틀어박혔다.

“쿨럭!”

혈음사기의 내공 방패로도 내부가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화르르르륵!

교룡쇄를 통해 전달되는 무지막지한 화기가 그녀의 혈음사기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소방의 왼팔에서 희뿌연 연기가 일었다. 주작화기에 살이 타들어 가는 것이다.

“꺄아아아악!”

퍼버버버벅! 퍼버버버버벅!

묵비는 냉정하게 무형탄을 갈겼고, 연호정의 내공에 꼼짝없이 붙들린 소방은 무려 스물여덟 발의 무형탄에 고스란히 적중당했다.

풀썩!

소방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지독한 내외상에 혼절해 버린 것이다.

연호정이 재빨리 달려와 소방의 허벅지를 밟았다.

빠각!

소방의 대퇴부가 골절되었다. 혹시 깨어나더라도 도주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묵비가 한숨을 쉬었다.

“고생했…….”

“어서 이년을 업어. 제삼 거점으로 이동한다.”

“네?”

“옥청이 위험해. 어떻게든 명줄은 붙들고 있지만, 한시라도 빨리 의원에게 보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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