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음신(陰神)의 그림자 (7)
소방의 얼굴이 싹 굳어졌다.
반쪽짜리.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혈관에 오염된 피가 흐르는 신의 씨앗들 모두가 그 말을 싫어했다. 아니, 싫어하는 걸 넘어 증오했다.
하지만 소방은 쉬이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이놈…….’
반쪽짜리라는 말. 그리고 혈음장의 투로를 풀어 내기도 전에 파훼해 버린 접근전 능력.
‘설마, 나를 알아?’
연호정이 차갑게 웃었다.
“왜? 놀랍나?”
“……너.”
“혈음사기를 대성했군. 아니, 아직 대성한 건 아닌가? 어쨌든 놀라운 수준까지 익혔어.”
“어떻게 혈음사기를……?”
“혈음사기가 경지에 올랐으니 조만간 음황무(陰荒武)도 전수받는 건가? 음, 그건 좀 별론데.”
“……!!”
소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네, 네놈이 어떻게 그걸?”
혈음사기는 사음교에서도 상당히 특수한 무공에 속했다.
위력이나 난이도 때문이 아니었다. 혈음사기가 탄생한 배경과 독특한 역사 때문이었다.
혈음사기는 대대로 사음교주가 연성하는 호교신공(護敎神功)에서 갈라져 나온 무공이었다.
물론 발전형은 아니었다. 오히려 퇴보형에 가까웠고, 자연히 호교신공보다 위력과 난이도가 하향되었다.
놀라운 것은, 아무나 혈음사기를 익힐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 혈음사기를 연성한 자들은 꼭 중반부를 지날 때 기가 역류하여, 그대로 주화입마에 빠져 목숨을 잃거나 광인이 되었다.
그 탓에 혈음사기를 익히고도 살아남은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극소수의 사람 모두가 교주의 혈육이었다.
재능 이전에 혈통이 중요시되는 무공인 것이다. 세상천지에 여러 무공이 있다지만, 혈통을 타는 무공은 손에 꼽는다.
혈음사기가 바로 그런 무공이었다. 즉, 사음교주의 피가 섞인 자들만이 혈음사기를 연성할 수 있는 것이다.
당대 사음교에는 혈음사기를 연성한 자가 총 열 명 존재했다.
그리고 그 열 명 모두, 사음교주의 적통이 아닌 사생아들이었다.
“어쨌건 잘 왔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잡아 주마.”
치리리리링!
상체를 휘감은 교룡쇄를 단숨에 광룡부와 연결시킨 연호정이 머리 위로 광룡부를 돌렸다.
부웅! 부우웅! 부아아아앙!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교룡쇄와 연결된 광룡부가 연호정의 머리 위에서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 무게를 버티는 교룡쇄의 강도와 탄력 이전에, 그것을 너무나도 가볍게 다루는 연호정의 완력이 더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 충격적일 만큼 대단한 광경도 소방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소방이 버럭 외쳤다.
“네놈이 본교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아느냐 물었다!”
연호정이 다시 한번 싸늘하게 웃었다.
“저승에서 들으시게, 반쪽짜리.”
“……이 개자식이!”
퍼어어엉!
소방이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다.
상대가 혈음장의 투로를 완전히 꿰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그녀였다. 충격 뒤에 오는 맹렬한 분노가 그녀의 이성을 완전히 상실시켜 버린 것이다.
“죽어!”
소방이 장을 내쳤다.
퍼어어어엉!
혈음장이 발출되자마자 철전 한 발이 그것을 소멸시켰다.
혼신의 힘을 다해 쏘아 낸 구룡궁술이었다. 순간적으로 전력을 다한 묵비의 일격은 혈음장 한 방 정도는 충분히 상쇄시킬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연호정이 광룡부를 휘둘렀다.
부우우우우웅!!
공기를 찢으며 휘둘러진 광룡부가 정확히 소방의 허리께를 노렸다.
교룡쇄를 잡아 휘두르는데도 광룡부의 도끼날을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꽂아 넣을 수 있다. 단순히 강하고 빠른 것만이 아니라, 병기의 섬세한 운용에 있어서 연호정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소방이 공격하고, 묵비가 장력을 분쇄하고, 그 틈을 노린 연호정의 일격이 소방의 옆구리 두 치 앞까지 이르기까지는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했다.
부아앙!
광룡부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소방이 참격을 피한 것이다.
그 빠른 속도로 직선 이동을 했음에도 기가 막힌 몸놀림으로 광룡부를 피해 낸다. 자신의 무공에 자신감을 가질 만한 실력이었다.
허공에서 몸을 눕힌 소방이 연호정의 정수리를 향해 혈음장을 내쳤다.
퍼어어엉!
연호정의 어깻죽지를 스치고 지나간 장력이 땅을 폭발시켰다.
순간 소방의 발이 십여 개로 흩어지며 연호정의 상체를 노렸다.
치리리리리리링!
소방의 몸놀림이 신기에 달해 있었다면, 연호정의 대처 능력도 경악 그 자체였다.
광룡부의 무게에 체중을 실은 채 교룡쇄를 팽팽히 당겨 쏟아지는 각법을 막아 내는데, 그 빠른 공격을 일일이 쳐 내고 있었다.
무서운 반사 신경이었다. 맨주먹이든, 장병을 들든 중병을 들든 연호정의 접근전 실력은 중원 정점에 달해 있었다.
투우웅!
하지만 천하의 연호정도 연달아 퍼부어지는 각법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순 없었다. 속도와 투로에 완벽히 대응했지만, 근본적인 내력의 강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콰앙!
뒤로 튕겨 나가던 연호정의 몸이 그대로 멈추었다. 광룡부가 땅에 꽂히며 무게추 역할을 해 준 것이다.
소방의 눈이 흔들렸다.
이미 왼손을 뒤로 젖힌 채였다. 혈음장의 혈적도지(血蹟導池)를 펼치기 위함이었다.
‘물러나지 않아? 의도한 건가?!’
혈적도지의 초식은 상대와 일정 거리가 벌어져야 제 위력이 나오는 초식이었다. 접근전에선 쉽게 쓸 수 없지만, 거리가 벌어지면 가장 빠르고 날카롭게 구현할 수 있기에 혈음장의 달인들은 혈적도지를 애용한다.
한데 연호정이 튕겨 나가다 멈춰 버렸다. 그 상태론 벌어진 거리가 너무 애매했다.
한 번 주춤한 소방.
그때, 묵비가 홍련궁의 시위를 당겼다.
피유우우웅!
무서운 속도로 쏘아진 철전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정확하게 소방의 심장을 향해서였다.
연호정을 공격하려던 소방이 철전을 향해 장을 내쳤다.
퍼엉!
경로가 휘어진 철전이 숲으로 들어가 폭음을 일으켰고, 동시에 연호정의 홍염육살수가 소방을 향해 휘둘러졌다.
너무 시기적절해서 피할 수가 없다. 소방의 눈빛이 돌변했다.
‘이런!’
혈음장을 진짜로 파훼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다 떠나서, 이쪽의 빈틈을 읽고 공격하는 상대의 공략법이 너무나도 뛰어났다.
‘뭐 이런 미친놈이!’
전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이건 선천적인 재능은 물론, 헤아릴 수 없는 실전 경험을 토대로 깨달은 바를 몸에 때려 박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애초에 그런 재능을 타고나는 것도 힘들지만, 그런 재능을 갖췄다 해도 수없이 많은 실전에서 이 정도 반응이 몸에 밸 때까지 살아남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힘들다. 이유인즉, 약자를 이기는 건 쉽지만 강자와의 실전에서 생존하긴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놈은, 저 도끼를 든 미친놈은 그 모든 실전에서 살아남아 이와 같은 능력을 손에 넣었단 말인가?
퍼어어어엉!
홍염육살수의 화력이 소방의 몸을 삼 장이나 뒤로 날려 버렸다.
‘……!!’
소방의 표정이 한 번 더 바뀌었다.
‘왜 늦어졌지?!’
혈음사기의 반응이 평소보다 한 박자 느려진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그러지 않다가 서서히, 진기를 운용할수록 점점 느려지는 듯했다.
공격술과 방어술이 정확한 박자에 구현되질 않는다. 소방으로서는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사락!
바닥에 내려선 소방은 재빨리 자신의 내부를 점검했다.
‘문제가 없는데?’
내상을 입었다거나 진기에 파탄이 난 것이 아니었다. 평소와 똑같았다.
한데 왜 이러지? 왜 자꾸 반응이 느려지는 거지?
“어딜 보나?”
파아아아앙!
날카로운 검기 두 줄기가 소방의 옷깃을 스쳤다.
후방에서 날아온 검기 두 방, 바로 옥청과 여국이었다.
평소라면 코웃음을 치면서 막거나 피했을 공격인데 옷깃이 베였다. 전투에 집중을 못 한 탓이기도 했지만, 진기 반응이 이 순간에도 계속 느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방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옥청과 여국에게 공격을 감행하려 할 때.
훅!
한 손으로는 교룡쇄를, 다른 한 손으로는 광룡부를 들고 치켜올린 연호정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앙! 쩌저저저적!
광룡부가 대지를 갈랐다.
무자비한 일격, 주작화기가 담긴 도끼질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광룡부를 피한 소방이 연호정을 노려보았다.
“너……!”
치리리리링!
교룡쇄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소방의 상반신을 휘감으려 들었다.
‘이익!’
퍼퍼펑!
혈음장을 터트리며 물러나던 소방은 일순 등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어느새 불이 난 숲까지 밀려나 버린 것이다.
훅!
그때, 뜨거운 공기와 함께 한 줄기 서늘한 공기가 그녀의 콧속으로 들어왔다. 사방이 뜨거워야 할 공간에서 깜짝 놀랄 만큼 서늘한 공기가 들어온 것이다.
그 순간 소방은 깨달았다.
‘진법?!’
그렇다. 진법이다. 자신의 진기 반응이 느려지고 체력이 점차 감소하는 것은 전부 진법 때문이었다.
서늘한 공기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방금 전 연호정의 일격으로 진법 자체의 기망이 흔들려 외부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새어 들어온 결과였다.
하지만 소방은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자신이 정확히 이 자리에 올 거라고 예상하고 진법을 펼쳤단 말인가? 제아무리 전략 전술의 귀재라도 그럴 수는 없다.
그럼 고작 눈에 보이는 네 명이서 진법을 펼쳤다는 건데, 그런 진법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때, 연호정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놈의 말이 맞았군. 당황하면 생각이 많아져서 대응키가 더욱 쉬울 거라고 하더니.”
“뭐, 뭐라고?”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사악해 보이는 미소였다.
“너는 여기서 못 벗어나.”
퍼어어어엉!
소방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연호정이 시선을 끌 때, 묵비가 무형시 일격을 날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방어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머리통이 날아갔을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아아아아악!
그물망처럼 좁혀 드는 검기의 향연. 옥청과 여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한 것이다.
소방의 양손이 어지럽게 휘둘러졌다.
파바바바바박!
그녀의 양 팔뚝에 거미줄 같은 검상이 났다. 소매가 다 찢어진 건 당연했다.
연호정의 발이 허공을 갈랐다.
퍼어억!
“컥!”
최초의 비명이었다.
양팔을 교차해 막았지만, 각법의 충격이 내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소방의 코와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이만 끝을 내도록 하지.”
부우우웅! 콰앙!
소방은 미친 듯이 몸을 움직였다.
체력이 무서운 속도로 떨어졌다.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진기의 반응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었다.
펑! 퍼펑! 빠각!
“크악!”
연호정의 접근전은 자비가 없었다.
휘두른 도낏자루에 오른팔이 부러져 버렸다. 막지 않았다면 우측 상반신의 뼈란 뼈는 죄다 바스러졌을 것이다.
소방의 눈에 핏발이 섰다.
내상은 물론 오른팔 뼈까지 부러지자, 자존심은 고개를 숙이고 생존 본능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물러나야 한다!’
전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몸 상태는 점차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때, 연호정이 외쳤다.
“이년, 도망치려고 한다! 무조건 잡…… 크윽!”
돌연 연호정이 좌측 어깨를 치켜올리며 무릎을 꿇었다.
난데없는 이상 행동에 의아해하던 소방은 일순 쾌재를 불렀다.
‘혈음장!’
난전 중 어깻죽지를 스치고 지나간 혈음장.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체내로 침투한 암경이 이제야 이상을 일으킨 것 같았다.
거대한 그물망에 작은 구멍이 났다. 이제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파아아아아앙!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간 소방이 힘으로 옥청과 여국을 뚫고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또 검상을 입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파파파팡!
얼마나 다급했던지 소방의 신형이 눈 깜짝할 새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스르륵.
연호정이 담담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가지 마. 놔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