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화.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2)
모용군의 무시무시한 폭언에 양천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이놈이 어찌 사음교를 알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둘째였다. 양천은 설마하니, 성천의 강자를 제외하고 제게 이따위 폭언을 가할 만한 배포를 가진 자가 존재하리라곤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모용군이 말을 이었다.
“사음교를 어찌 아냐고? 어찌 알았을 것 같소? 내가 묵룡부에 간자를 심어 둬서? 내 불민한 딸년에게 묵룡부의 정보를 탈취하라고 시켰을 것 같소? 천만에!”
“…….”
“당신이 이 광활한 호남 땅에서 대장 노릇이나 하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남 관부를 장악한 삼교 놈들을 하나하나 때려잡고 있었소!”
“……!”
“처음엔 믿지 못했소. 변방의 오랑캐들에게 그만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하지만 놈들은 강하오! 우리가 선제 타격을 가해서 다행이었지, 그걸 몰랐다면 수년 안에 무림맹 전체가 뿌리부터 박살 났을 거란 말이오!”
모용군의 눈에 짙은 살기가 어렸다.
놀랍게도 그 살기는 삼교가 아닌 양천을 향해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양천에게 살의를 품은 것이다.
“이 개 같은 자식들이 또 어디에 숨어들었을까? 궁금하더군. 그래서 조사했소. 그 조사에 무림맹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소. 그리고 발견했지. 삼교 중 하나, 사음교가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이 성스러운 중원 땅에서, 변방 오랑캐들의 힘을 빌려 팔자에도 없는 대장 노릇을 하면서 사는 멍청이가 누구인지!”
“……!!”
“바로 당신이었소. 백도 무림 전체의 눈을 속이고 묵룡부라는 거창한 조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양 부주의 수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거늘, 그게 아니었단 말이오!”
모용군이 검지로 양천을 가리켰다.
“당신, 삼교의 끄나풀이오?!”
“……그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게야.”
“그게 아니면! 중원에서 손꼽힌다는 강자이자 무림의 대선배라는 작자가 어찌 오랑캐들과 손을 잡고 제 배나 불리고 있었단 말인가!”
“닥치지 못할까!!”
푸스스스!
양천의 일갈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힘을 담고 있었다. 그 음공(音功)과도 같은 외침에 모용군의 몸이 후방으로 주르르 밀려날 정도였다.
그러나 모용군은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기파는 더더욱 거세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왜 화를 내는 것이오? 당신에게 화를 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뭐라?”
“백도와 흑도가 수백 년을 부딪쳤다지만, 그래도 우리는 중원의 사람들이오! 가치관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해도 다 같은 중원인이란 말이오! 한데 외세에 빌붙어 그만한 세력을 만들고 젠체나 하고 있었단 말인가? 정녕 당신이 삼교와 한통속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오!”
사아아아악!
양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파가 조금씩 출렁거렸다.
모용군의 폭언 아닌 폭언을 듣고 감정이 격해진 그였다. 동시에,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 당황은, 스스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하나의 감정, 부끄러움에 기인했다. 모용군의 매서운 질책에, 양천은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뜨끔해지는 걸 느꼈다.
‘이놈이.’
화르르르륵!
일렁이던 기파가 이내 강한 밀도를 형성했다.
부끄러움, 당황스러움을 분노로 뒤덮는 그였다. 모용군을 노려보는 양천의 안광에 매서운 살기가 어렸다.
“듣자, 듣자 하니 네놈의 무례가 도를 넘어서는구나! 내 오늘 백도 무림과 전쟁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을 시작으로 모용세가 전체를 피로 물들이리라!”
“당신이 공격해야 할 대상은!!”
모용군은 양천의 기백에도 전혀 주춤하지 않았다.
“당신이 잡아먹으려 날뛰어야 할 대상은 나도, 본가도, 무림맹도 아니오! 수십 년간 단련한 그 주먹을 겨누어야 할 대상은 저 멀리 새외에 있소이다!”
“이놈!”
“내가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당신에게 따지고 드는 줄 아시오?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는 외적들이 힘을 불리고 있는 지금, 다른 성천의 강자들을 찾아가 읍소치 아니하고 당신을 찾아와 이리 욕을 하는 이유를 아느냔 말이오!”
모용군이 씹어뱉듯 말했다.
“그래도 당신에게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오.”
“뭐?”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투왕 양천이란 사람은 그 빳빳한 고개를 숙이지 않을지언정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신의 잘못은 무엇인지, 이제라도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외다!”
“……!!”
“그리 생각지 않았다면, 내가 이곳에 왔을 것 같소? 그래, 오기야 왔겠지. 다만 당신을 불러내 죽이려 했을 것이오. 다른 성천의 강자들을 포섭해서라도!”
양천의 눈이 흔들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모용군이 빠르게 호흡을 골랐다.
“양 부주.”
“…….”
“다시 묻겠소. 당신, 사음교와 손을 잡았소? 삼교와 한통속이오?”
“…….”
“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오! 오랑캐들을 뒷배로 두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계약하여 무림맹을 시작으로 중원 전체를 놈들에게 가져다 바치려 한 못난 놈이냐고 묻질 않소이까!”
거칠고, 또 거칠다.
모용군의 언사는 이미 무례함의 영역마저도 넘어섰다. 당장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자극적인 언사로 상대를 마구 공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천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불처럼 타오르던 살기 짙은 기파도 어느새 절반이나 사그라져 버렸다.
알기 때문이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용군이 왜 화를 내는지, 그가 왜 자신을 저리 혐오스러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지.
애초에 양천은 사음교와 손을 잡지 않았다. 그저 사음교의 힘을 빌려 흑도를 통합하려 했을 뿐이다.
즉, 놈들의 능력을 이용하고자 했을 뿐 놈들과 한편이 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흑양을 그리 처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망설이고 있었던가?’
전(前) 정보부장 정(定)이 적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적, 그는 원인불명의 요인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더랬다.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왜 쓰러졌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음교주!’
그렇다.
그는 새외에서 사음교주와 일대일 대결을 벌인 적이 있었다.
당시의 사음교주는 이미 완성된 강자였다. 자신 역시 그러했지만, 놀랍게도 사음교주의 힘은 자신보다 한 수 위였다.
그 사음교주의 장(掌)이 남긴 흔적은 아직까지도 가슴팍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장흔(掌痕)이, 자신의 몸을 미세하게 깎아 먹고 있었다.
말하자면 사음교주 역시 자신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묵룡부는 중원 진출을 위한 교두보에 불과했을 뿐, 함께 미래로 나아갈 동지로서 보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왜 가만히 있었지?’
양천은 생각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도 자신이 왜 사음교를 공격하려 들지 않았는지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투왕 양천.
성천십삼좌 중 속세의 싸움에선 가장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는 투쟁술의 달인이다.
그에게는 자그마한 쇠붙이 하나도 필요치 않았다. 그가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에는 두 주먹이면 족했다. 그 어떤 세력도, 무기도 필요하지 않았다.
공격하면 대응해서 박살을 낸다. 속여도 박살을 내고, 뒤통수를 치면 상대의 조직 전체를 갈아 버린다.
그것이 투왕이었다. 천하를 주유함에 있어, 그 어떤 고수나 세력의 눈치를 본 적이 없었다.
한데 지금은 왜? 자신을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사음교주의 행태를 봐 놓고도 어찌 반격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
양천의 눈이 충혈되었다.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너무나도 부끄러워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작은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길 수가…….’
그렇다. 양천은 사음교주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미 마음 깊숙이 패배를 인정해 버리고야 만 것이다.
물론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예전과 달리 먹여 살려야 할 부하들이 생겼다. 한둘이 아니라 만 단위의 식구가 생긴 것이다.
수장은 결코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양천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고작 그런 이유로 지금껏 엉덩이 무겁게 앉아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내 가장 큰 장기인 투쟁을 껄끄러워하고 있었단 말인가.’
투쟁에 있어서 중원 제일을 논한다는 희대의 달인이 어느새 투쟁 자체를 꺼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이 명성을 가져다준 최대 장기를, 이제는 써먹지 않으려 하는 걸 넘어 무서워하고 있었다니.
으드득.
양천은 이를 갈았다.
치솟는 부끄러움,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강한 실망감에 눈앞이 다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모용군이 차갑게 말했다.
“무림맹의 유군이 호남을 거쳐 남부로 향할 것이오.”
“……?!”
“중원 암살자 세계에서 신(神)이라 불리는 작자가 있다더군. 그놈이 남부 백도 문파들의 분쟁에 참여하여 우리의 힘을 깎아 먹고 있다 들었소.”
“……!!”
“본맹의 유군 부대가 놈을 잡기 위해 파견될 것이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유군의 전력이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으리라 믿소.”
말을 하면서 모용군은 양천의 얼굴을 살폈다. 그 암살계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홍관이라는 자가 양천의 제자라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양천의 눈빛이 한 차례 뒤바뀌었다.
“아는 사람이오?”
“…….”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놈이 삼교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오. 그러나 백도의 살을 깎아 먹으려는 놈들은 삼교만이 아니지.”
모용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 당신이 아는 사람인가.”
짧은 순간, 양천은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이는 걸 느꼈다.
양천은 모용군을 바라보았다.
그 날카로운 눈빛 속에 드리워진 의심의 감정. 상대가 어떻게 나올까를 고민하고, 그 즉시 대응할 준비가 된 책략가의 눈빛.
양천이 눈을 감았다.
“알고 있었나?”
“그게 무슨 말이오? 알아듣게 말해 주시오.”
“그자가 나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 이미 알고 있군.”
“…….”
“하기야, 내가 사음교의 힘을 빌려 묵룡부를 창건했다는 것까지 알아낼 정보력이면, 그자가 나와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알아낼 수 있었겠지.”
모용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인정하시는군. 그래, 보고 듣기로는 그자가 당신의 제자라 하였소. 이름이 홍관이라 하였던가?”
“야율적(耶律蹟).”
“……?”
“홍관은 가명이야. 놈의 진짜 이름은 야율적이지.”
“야율적…….”
“또한, 놈은 전대 음신(陰神)의 제자로 들어가 그의 모든 암살 기예를 습득하고 스승과 다른 제자들을 죽인 후, 새로운 시대의 음신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용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음신? 전대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가만히 모용군을 바라보던 양천이 몸을 돌렸다.
“생각이 정리되면 무림맹에 따로 서신을 보낼 것이야. 자네도 이만 돌아가게.”
“양 부주.”
“무림맹의 유군이 호남을 지난다고? 마음대로 하게. 적어도 이번만큼은 길을 열어 주지.”
모용군이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 달 안으로 연락을 줘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을 시 묵룡부를 외적과 손을 잡은 간적이라 간주, 그 즉시 공격할 것이오.”
“과연 자네들에게 그만한 힘이 있긴 하나?”
“적어도 당신이 고려할 부분은 아니지.”
양천이 피식 웃었다.
“운 좋은 줄 알게, 모용가주. 내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삼교 이전에 모용세가부터 뿌리를 뽑아 버릴 수도 있으니.”
“……!”
“돌아가게.”